‘미리 보는' 전두환 회고록

계엄군 발포 명령 ‘입 연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5·18 발포 책임을 부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연내에 과거사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회고록을 통해 밝힐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말 많은 전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 봤다.

최근 <신동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명령 책임과 관련해 “보안사령관(전 전 대통령)은 정보·수사 책임자요,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꺾고 이렇게는 (발포 명령을) 절대 못해”라고 주장했다.

[5·16 과정은?]

1931년 경남 합천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대구공업중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 육사 동기 노태우, 정호용을 만나 훗날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를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4년 동안의 생도시절에 축구와 권투에 집중한 그는 학과 성적은 평균에 미치지 못해 교관들의 기대를 끌지 못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했던 그해 4월, 그는 육군본부 특전감실 기획과장 직무대리로 발탁되면서 군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5·16쿠데타를 통해 그는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육사로 돌아가 지지 시위를 주도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당시 그는 쿠데타 주모자들인 박창암·박치옥 대령에게 “강영훈 육사 교장이 육사 장교들과 생도들에게 금족령을 내려 혁명 지지시위가 방해받고 있다”고 말하는 등 군사 쿠데타를 강력 지지했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하나회를 조직한다. 하나회는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된 조직으로 훗날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를 주도하고 5·18민주화운동 진압에도 참가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애 속에 1970년 육군 대령으로 진급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0·26 후일담]

10·26사건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저격당했던 사건이다. 이날 전 전 대통령은 부하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합동수사본부 설치 기안을 명령하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계엄사령부 설치와 함께 그는 박 전 대통령 피살사건의 수사를 명령받았다. 같은해 11월6일 합수부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피살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계엄군법회의서 공개재판할 것을 언론에 발표했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김재규가 역적이고 배신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어야 된다고 봤다. 김재규의 동생 김항규에게도 이 같은 사정을 양해해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당시 그는 김항규에게 "나는 군 선배로서 김재규 장군은 존경하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일이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이해해 달라"라고 했다. 10·26사건 이후 그는 하나회 동기와 후배들을 규합해 군사반란을 일으킬 모의를 했다.

[12·12 자평]

1979년 12월6일 그는 육군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이 제안한 수사계획서에 의거해 반란을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엿새 후인 12월12일, 계엄사령부 합수부장으로 현장에 있던 김계원 및 계엄사령부 사령관 육군 대장 정승화 등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한다.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은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당한 뒤 강제 예편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2월12일 그와 신군부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와 내통했으니 체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 전 권한대행은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노태우, 최세창 등 부대에 병력출동 명령을 하면서 최 전 권한대행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결국 정 육참총장은 즉시 체포돼 감금당한다. 그는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군 주요 병력을 장악했다. 휴전선을 지키는 최전방의 병력마저 서슴없이 동원하는 등 대범함도 보였다.

자서전 집필 마무리 단계로 알려져
조만간 출간 예정…책 내용에 주목

그는 당시 주한미국대사 글라이스틴에 “부패를 일소한 후 병영에 복귀하겠다”고 말해 자신의 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당시 미국은 신원조회 결과 그가 공산주의자는 아닌 것이 확인되자 5·16때와는 달리 방관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불과 이틀 만에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 차장보를 겸임했고 이듬해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취임해 국내 모든 정보기관을 장악했다.

[5·18 진실은?]

1980년 5월17일 그는 노태우, 정호용 등에게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시국수습방안에 대한 찬성 의견을 주도하도록 지시함과 동시에 국무총리와 대통령에게 계엄 확대, 비상기구 설치 등을 실시하도록 강요했다. 같은 날 중앙청과 국회가 군으로 포위되고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상태서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이튿날인 18일에 그는 김대중, 김종필 등을 영장없이 불법 체포하고, 김영삼 등 다른 야당 인사들도 연금시켰다. 계엄 확대와 동시에 신군부는 계엄포고령 제 10호를 발표해 정치활동 금지, 휴교령, 언론 검열 등의 조치를 내렸다.

이날 전남대 학생들은 신군부의 쿠데타적 조치, 김대중 체포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고, 시위가 거세지자 신군부는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다음날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늘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워 시위대를 진압했다.
 

21일에는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 명이 사망했고, 시민들은 5·18사태수습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사태수습을 하려 했지만 계엄군의 거부로 협상이 결렬됐다. 5·18 당시 상황을 둘러싸고 그는 1995년 검찰 수사 결과 정식지휘계통에 불법 개입해 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청와대 생활]

1980년 8월6일 그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한국 언론은 미국 <타임>지의 공식 보도를 통해 '전두환 장군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훗날 이는 미국 인사들의 발언을 왜곡한 오보로 밝혀지게 된다. 같은해 8월15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자 8월27일 그는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했다.


그는 8월29일 장충체육관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간접선거로 제 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9월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과 동시에 경제학자인 김재익을 등용한다. 김재익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입각하면서 그의 가정교사 역할을 했고, 철처한 지지 속에 군부의 간섭을 벗어나 경제정책을 펴 나갔다.

1981년에는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12대 대선에도 출마 의사를 밝히고 후보로 출마한다. 헌법 개정에도 깊게 관여해 유신헌법의 6년 연임제를 7년 단임제로 바꾸고 입법부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등 형식적으로 민주화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1인 장기집권' 대신 '1당 장기집권'을 유지했다. 직선제로 개헌하지 않았다는 점이 독재에 대한 그의 의지를 반증한다.

[삼청교육대]

제5공화국 시절 그는 당시 헌법의 주요 정책강령으로 정의사회구현, 복지사회건설을 구호로 내걸었고 재임기간 물가안정, 범죄 소탕, 경제 성장, 88서울올림픽 개최, 무역 흑자 달성 등의 성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파 억압 및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국민과 민주화운동가들에게 군부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과 민주화 운동가들은 하나회 계열에 부정적인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실세들을 권력형 부조리 혐의로 엮어 제거하면서 박정희시대를 부정과 부패, 부조리의 시대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정의사회구현을 추구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취임 초기 핵실험 및 개발을 포기했는데 원자력연구소를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강제로 통폐합시킨 뒤 에너지연구소로 개칭했다. 핵포기 이유는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 등으로 정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과 정당성 승인을 받기 위해서라고 알려진다.
 


인권탄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삼청교육대도 임기 중에 실시됐다. 삼청교육대를 통해 반체제 인사, 5·18민주화운동 참가자, 범죄자, 건달, 무직자, 노숙자 등을 잡아들여 특수훈련을 시켰다. 문제는 연행된 대다수가 전과가 없거나 초범임에도 삼청교육대 특수훈련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아웅산테러]

임기 3년째 되던 해에 아웅산묘소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1983년 10월, 제5공화국 내각은 그를 대동하고 동남아 순방을 떠났다. 10월9일 동남아 순방 기간, 순방국 중 하나인 미얀마에서 아웅산묘소 참배 도중 북한 공작원들이 자행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함병준 대통령비서실장 등 내각의 주요 요인들이 대거 사망했다. 이후 1년여 동안 남북관계는 냉각기에 돌입했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꾸준히 추진됐다. 1984년 8월20일, 그는 남북 간 물자교역 및 경제협력 제의, 대북 기술, 물자 무상제공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군사반란, 재임기간 비화 담길 듯
5·18, 추징금 등 언급도 초미 관심

같은 해 9월20일부터 24일까지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동시 교환방문이 이뤄졌다. 1987년 4월13일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국민의 개헌과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1988년 2월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그는 “본인의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이라며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 개헌 논의를 지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호헌조치는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호헌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이 겹치면서 6·10항쟁으로 번졌다. 당시 그는 5·18때와 마찬가지로 강경진압을 고려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와 미국의 민주화 수용 압박에 결국 직선제를 수용하면서 전두환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문민정부 심판]

그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수 만명의 국민에 의해 반란죄 및 내란죄로 고발당했다. 1995년 8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워 반란죄 및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불기소하기에 이른다.

국민들의 반발은 거세게 일었고 당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소시효 정지 규정을 둔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해 검찰은 1995년 11월 말 5·18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는 같은해 12월4일 '자신을 5·18특별법 등으로 구속한 김영삼 대통령 역시 군부세력과 연합했으니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듬해 8월26일 서울지방법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넉달 후인 12월16일 서울고등법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는다.

이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투옥 직후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이자 정치 탄압'이라며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형 확정 후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1997년 12월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 대화합의 명분으로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을 받는다.

[추징금 반응은?]

1997년 재산은닉, 비자금 조성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던 그는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텼다. 그 결과 지난 2013년까지 환수금액은 533억원에 그쳤다.

이후 국회는 추징금 집행시효를 4개월 앞둔 지난 2013년 6월 시효를 2020년까지 연장시키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켰고 지난달 말까지 그의 일가로부터 추징금 1136억원을 환수했다.

최근 검찰이 장남 재국씨 소유의 회사에서 미납 추징금 중 24억여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재국씨 소유의 (주)리브로를 상대로 낸 미납 추징금 환수 소송에서 “리브로는 국가에 7년간 24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지난 16일 확정된 이번 판결로 리브로는 2022년까지 매년 이자를 포함해 추징금으로 3억6000만원을 국가에 갚아야 한다. 검찰은 앞서 재국씨가 보유한 출판사 시공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올해 1월 추징금 56억9000여만원을 대신 변제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두환 가계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순자 여사와의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장남 재국씨는 출판사 시공사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장녀 효선씨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결혼했으나 2004년 9월 이혼했다. 윤 의원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장녀 경아씨와 재혼했다.

차남 재용씨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의 넷째 딸인 경아씨와 결혼했다가 1992년 이혼했고, 경아씨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재혼해 2명의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재용씨는 최정애씨와 재혼했고 결혼생활 15년 만에 이혼, 지난 2007년 탤런트 박상아와 다시 한 번 결혼했다. 삼남 재만씨의 부인은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의 딸 윤혜씨인 것으로 알려진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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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