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로 본 대한민국 기생 이야기

기녀는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영화 <해어화>가 개봉하면서 기생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다. 음주가무뿐아니라 시·문예에 능통한 기생은 조선시대 문화를 관통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생의 삶이 현재에도 재조명되는 이유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미술, 문학, 무용 등 다양한 가치를 후세에 남겼기 때문이다. 

영화 <해어화>는 지난 13일 개봉했다. 한효주, 유연석 천우희 주연의 <해어화>는 일제강점기였던 194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란 뜻으로 기생을 의미한다. 이 말은 당나라 현종이 비빈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해어지화(解語之花)’에서 비롯됐다.

시·문예 능통
작부와는 달라

기생은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로 규정할 수 있다. 기생의 유래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고대 부족사회의 무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사제였던 무녀가 제정이 분리되면서 기생과 비슷한 신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태섭 동국대 교수의 <성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기생이라는 직종은 신라 24대 진흥왕 때 여자 무당이 유녀(遊女)가 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반면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성호 이익 선생은 기생이고려시대 생겼다고 본다. 고려 초에 팔관회와 연등회 등의 행사에 필요한 여성을 공급하기 위해 고려여약이 제정됐는데 이 고려여악이 기생의 원조라고 기생 연구가들은 주장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기생을 일종의 제도로 정착시켜 국가가 직접 기생들을 관리, 감독했다. 특히 ‘기생’의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따르면 기생은 관기로써, 관가에 등록된 기생만이 기생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기생은 교양 있는 지식인들로 노래, 춤, 악기, 서화에 능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장악원에 들어가 몇 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이러한 교육은 일정 나이가 지나거나 출산 등의 이유로 은퇴한 퇴기들이 주로 맡았다. 기생은 대개 소녀 시절부터 교육을 받고, 15세가 되면 성년식을 치러 본격적인 기생의 업무에 종사하게 됐다.

기생은 보통 정년이 50세로, 20세가 넘어도 활동하는 기생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20대 중반만 되면 ‘노기’로 취급받았다. 이들은 조선시대에 법적 신분으로는 양민이었지만, 직업의 특성상 생활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을 향유했고 사회적으로는 천민으로 대우받았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기생으로는 황진이를 들 수 있다. 황진이는 중종 6년(1511)에 태어나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으로 추정된다. 황진이는 19세기 풍속화를 그린 화가 신윤복에 의해 ‘풍속화 기생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 무녀서 비롯됐다?
고려 행사에 공급된 여성이 원조?

기생은 조선시대에서 남성과 공식적으로 관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기생 출신인 황진이는 규방출신의 감동이나 어우동과 달리 음란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었다. 시와 음악에 능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을 떨쳤다.조선 말기에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 세 부류로 나뉘는데 그 중 일패 기생은 관에 소속된 관기로 양반기생으로 불렸다.

이들은 임금 앞에서 노래, 춤을 하는 기생으로 예의범절 수준이 높고 남편이 있었기에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 등이 일패 기생을 대표한다. 이패 기생은 관아나 재상집에 출입했고 암암리에 몸을 파는 밀매음을 하기도 했다. 삼패 기생은 몸을 파는 유녀를 뜻했다.

조선시대부터 천한 백성으로 분류돼 독특한 신분구조를 형성했던 기생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사노비제가 폐지돼 외형적으로는 신분해체에 따른 천민을 면하지만 여전히 신분상의 차별을 극복하지는 못했것으로 알려진다.


1900년대 초 신문이나 잡지기사, 총독부의 공식문건 등에 나타난 기생에 대한 명명과 분류를 살펴보면 기존 여악의 일원인 관기가 중심축이었던 기생 집단이 창기 또는 매춘부로 불리게 된다. 조선시대까지 예악을 담당하고 사대부의 여흥을 주도한 기생은 신분해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전통 가무악을 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식민지 공창정책 하의 창기와 비슷하게 통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또한 기생들은 근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상품화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팔도에서 꼽힌 향기(鄕妓)들 중 평양기생이 가장 많았는데 평양기생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기업(妓業)을 차리기도 했다. 이런 향기와 관기 출신들이 모여 1909년 처음으로 만든 기생조합이 한성기생조합소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설립된 조선장악전습소의 학감 하규일이 만든 기생조합은 다동조합이다. 다동 조합은 훗날 조선권번으로 개칭된다.

이 시대에 권번을 빼고는 기생을 논하기 어렵다. <한겨레음악대사전>에 따르면 권번은 직업적인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들이 적을 두고 활동하던 기생조합이다. 당시 기생의 직업은 조선총독부 허가제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은 권번에 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교육과정의 기생을 관장하고, 수료한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관리감독함은 물론이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도 관리했다.

권번에 들어오는 여성들은 남들의 추천을 받아오는 이가 제일 많았고, 일부는 본인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권번에서 예의범절과 노래와 춤을 배우고 지체높은 양반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치려 했던 여성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권번 명기는 서도기생과 남도기생으로 나뉜다. 남도 출신은 멋을 잘내기로 소문났고, 서도기생은 애교가 많기로 유명했다. 기생의 학습과목은 시조, 가곡, 검무, 가야금, 거문고, 양금, 한문, 시문, 사군자, 일어 ,독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전국구 명월관
구한말부터 유명

조선 후기에 평양에서 이름을 떨친 기생중에 장연홍이라는 기생이 있다. 장연홍은 1911년 평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5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가정형편으로 인해 14세 때 평양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됐다. 기생이 된 장연홍은 수려한 외모와 춤, 노래, 모델 활동 등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후 상해로 유학을 떠난 뒤의 행적은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1930년대에는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현매홍과 김옥엽이 서울로 상경해 각각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에 적을 두며 활동했다.

현매홍은 시조, 가곡, 가사에 능했고 김옥엽은 궁중무용과 서도잡가, 경기잡가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23년 일제 강점기 강명화 자살 사건은 당대를 떠들썩하게했다. 강명화와 그녀의 연인 장병천이 집안의 결혼 반대에 부딪쳐 자살한 사건이다. 장병천과 함께 온양온천으로 여행을 떠난 강명화는 1923년 6월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강명화의 시신은 경성부로 옮겨져 명월관과 여타 기생들의 애도 속에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실성한 장병천은 단식에 돌입했고, 강명화와 함께 살던 집인 경성부 중구 종로방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같은 해 10월 자살했다.

이 사건은 전국 각처로 퍼져나갔고 일본, 중국에까지 소문이 확산됐다. 사후 1924년 하야가와 일본인 영화감독은 종로구 집, 경성부의 명월관, 강명화의 고향 마을 등을 직접 답사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기생 문명옥을 캐스팅해 영화 <비련의 곡>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화제가 돼 많은 관객이 몰렸고 1925년에는 익명의 작가에 의해 <강명화의 죽음>이란 소설로 탄생하게 됐다.

신현구 중앙대 교수의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에 따르면 초창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중 기생 출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월화의 맹세’라는 영화에 출연한 이월화는 여장 배우가 아닌 여자로서 카메라 앞에 선 최초의 배우였다. 또한 기생 출신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여배우계를 주름잡았다.

신 교수는 언론을 통해 “당시 기생들은 당당한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예술사와 문화사회사 등을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였다”면서 “그 무렵 기생은 한쪽에서 보면 봉건적인 유물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로 대우받았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최고는 황진이
최고 미녀는 장연홍


명월관은 1900년대 기생들이 활약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명월관은 청풍명월에서 따온 이름으로 명사들을 초청해 대접한 요릿집이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개업해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했고, 궁중 나인이 담근 술을 팔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융희 3년(1909)에 관기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지방과 궁중의 각종 기생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월관은 많은 기생 중에서도 어전에 나가 춤과 노래를 불렀던 궁중기생이나 인물, 성품 및 재주가 뛰어난 명기들이 많이 모여들어 일류 사교장이 됐다.

1910년대 초반에는 조선 왕조의 왕족들, 대한제국의 고관, 친일파들이 이곳을 찾았다. 1910년 후반에는 망국대부의 자제들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주로 명월관 찾았는데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울분을 여기에서 푼 것으로 알려진다.

1920년대 초반에는 일본 유학생들과 상해의 애국지사들이 찾았다. 또한 1919년 3·1운동은 기생들이 사회를 보는 눈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기생인 사상기생이 생겨나게 됐다.

이들은 1919년 3월19일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10일 뒤에는 수원 권번 기생 30여명이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김향화는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기도했다. 192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언론인과 문인들이 명월관을 찾았다.

이때 기생들은 일본 유학을 가거나 근대식 학업으로 신여성으로 살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기생폐업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사업가들이 주로 찾았는데 이때부터는 서화와 기예를 익히고 예의범절을 배워 조신하게 행동하던 명기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다. 1940년대 후반은 미군들이 주로 찾아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를 마지막으로 기생과 명월관은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중·일 기생
3국의 다른 인식

송지성·김세이 한양대 교수의 <한·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게이샤는 일본에서 1688∼1704년경에 생긴 제도다. 게이샤는 유녀가 갖추지 못한 예능을 도와주는 게이샤와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 두 종류로 나뉜다.

이들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일본 전통예술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에 게이샤는 남자였지만 18세기 들어 여자로 바뀌었고, 소녀들은 사춘기에 이르기 전에 예능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이샤는 ‘아름다운 사람’ ‘예술로 사는 사람’ ‘예술을 행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음악, 서예, 다도, 시, 대화 그리고 샤미센이라 부르는 세 종류의 악기 연주를 익힌다.

전문적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5년의 수련과정을 거치며 견습 게이샤는 마이코라고 부른다. 게이샤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떠올리는 흰 화장과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의 기모노 차림은 마이코의 모습이다. 완전한 게이샤는 단순한 색상의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특별한 때에만 하얗게 칠한다. 근대에 와서 계이샤는예능 기량과 관계없이 성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여성이 되었고 술자리에 나가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기생은 서비스 유형과 방식, 기생업의 경영관리 등에서 다원화 형태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모가 뛰어나고 가무만 제공하는 예기, 몸을 파는 것을 주로 업으로 하는 색기, 가무와 여색, 성적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는 기녀로 나누어진다. 또한 중국의 많은 기생들이 문학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 고대 대부분 시대의 시, 사의 정수는 모두 기녀가 차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ㆍ일 기녀의 문화 이미지 분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국의 성별에 따른 기생에 대한 관점은 상이하다. 우리나라 남성은 기생을 유희의 대상, 창기로 본 반면 일본과 중국은 각각 예술가와 점유,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여성에게는 우리나라의 경우 시기, 질투,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은 예술가로 봤다는 분석이다.

현대판 기생집
강남 요정 영업

1970∼1980년대 정·재계 인사들의 비밀회합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요정은 현대식 유흥주점이 늘면서 쇠퇴를 거듭했다. 현재는 강남 역삼동 등에 소수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요정은 한 사람 당 35만∼40만원 가량을 받고 식사와 함께 3∼4시간의 유흥을 제공한다.

20∼30여종의 코스 요리가 제공돼 한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춤과 노래, 가야금 연주 등을 선보이는 이른바 현대판 기생이다. 이들의 성접대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업소는 한옥 등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외국인 바이어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기도 한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국영화 단골소재 기생 영화는?

2007년 개봉한 <황진이>는 송혜교, 유지태 주연의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양반가의 딸로 자란 진이(송혜교)가 출생이 밝혀지자 ‘기생’의 신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사대부조차 동경하는 최고의 연인이 된 ‘진이’ 곁에 있던 놈이(유지태)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2002년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도 기생이 등장한다. 185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장승업이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에게 매료되는 내용를 다루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게이샤의 추억>또한 일본 기생 게이샤를 다룬 영화다. 1929년 일본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가난 때문에 게이샤가 되는 내용을 다룬다. 이어 안무, 음악, 미술, 화법 등 다방면에 걸친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게이샤로 사교계에 데뷔하게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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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이재명 마지막 관문 ‘헌법 제84조’ 대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앞길에 주황불과 녹색불이 번갈아 들어서고 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공직선거법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여전히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남은 재판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치권은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를 나노 단위로 뜯어 살피고 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선돼도 찝찝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2021년 20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발언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 후보의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사진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유죄로 봤지만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고, 아무리 확장 해석해도 같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며 1심을 뒤엎었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의견 표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로 해석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무죄 판결이 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항소심이 끝난 지 하루 만에 상고장을 접수한 만큼 대법원 판단을 빠르게 받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대법원서 다루는 상고심은 항소심 재판에 대한 불복 신청을 토대로 하는 만큼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는 법률심이다. 판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신속하게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며 내심 유죄를 희망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서 판결이 뒤집혀야 한다고 보느냐’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대법원서 결정을 내려줘야 법적인 논란이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 된 밥에 또…파기환송 ‘주황불’ “노골적 대선 개입” 대법원장 탄핵? 반면 민주당 사법정의실현 및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윤석열의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상고도 포기하길 바란다”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의 바람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무죄였던 2심 판결을 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는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발언’은 공직선거법 250조 제1항에 따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합 선고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언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대법관 10명 다수 의견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고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은 6~7년 전에 있었던 기억을 주제로 한 발언에 불과하고, 백현동 관련 발언은 국토부의 의무 조항을 지적한 부분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온 위기에 민주당은 “노골적인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겠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탄핵에 속도를 냈지만 이 후보는 “당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문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에 관한 해석은 밝히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까지 해석이 갈린 것이다. 어떻게 읽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추는 ‘형사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 소추의 범위가 ‘검찰의 공소 제기’만을 의미하는지,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하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현직 대통령을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새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내·외환죄가 아닌 죄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던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자로 풀어서 본다면 소는 기소, 추는 좇다, 즉 소추는 ‘공소와 공소 유지’를 뜻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해석이다. 기소가 중단될 수는 있지만 진행 중인 재판까지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된다면 이 후보는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더라도 재임 중 5개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현재 이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선거법 위반·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서 물러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소추가 기소까지만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면 이 후보의 모든 재판은 당선 즉시 중단된다. 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석으로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사의 수사와 소추권을 다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사건의 각하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다시 주목된다. 당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형사상 소추는 심판 기관과 분리된 소추권자가 유죄 판결 및 적정한 처벌을 구하는 활동으로 소추 기능은 공소의 제기와 유지 여부의 결정 및 공개된 법정서 피고인의 상대방 당사자로서 수행하는 변론 및 입증 활동, 이에 관한 법원의 재판에 대한 불복 등을 포함한다”고 밝힌 것이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재판 진행 여부는 이 후보의 재판을 맡은 각각의 재판부의 몫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법원이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개별 재판부에 재판을 어떻게 운영하라고 지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각 재판관이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구조상으로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법률심으로 만약에 그런 쟁점을 다루게 된다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 등 재판부가 헌법 제84조를 해석해야 하지만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까지 다방면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재가 대통령과 법원 사이서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한차례 끓어 올랐던 헌법 제84조 논란은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연기되면서 일단락하는 분위기다. 지난 7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오는 15일 예정됐던 첫 공판을 대선 이후인 다음 달 18일로 연기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함”이라며 재판 기일을 대통령선거일 이후로 변경했다. 이로써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마찬가지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등의 공판기일도 다음 달인 24일로 변경되면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민주당의 날선 반응도 다소 누그러졌다. 상고심 일정이 연기되면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서 대통령 당선 시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정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삼권분립이 붕괴된 좋지 않은 선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불소추특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확실히 못을 박는 분위기다. 이 후보의 파기환송이 결정된 다음 날인 지난 2일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대법원의 비이성적 폭거를 막겠다. 헌법 제84조 정신에 맞게 곧 법 개정안(재판중지)을 법사위서 통과시키겠다”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예고대로 지난 7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제306조에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 시까지 공판 절차를 정지한다’는 내용 신설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원회서 단독 처리했다. 대통령이 재판을? ‘소추’ 범위 물음표 최종심 연기됐지만…개정안 밀어 붙인다 민주당은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헌정 수행 기능 보장을 위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현행 법령 체계에서는 기소 후 재판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판 계속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재판을 계속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법안 상정 당시부터 반발하며 퇴장했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이런 무도한 집단이 깡패집단이지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유죄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왜 애꿎은 허위 사실 공표죄만 개정하느냐. 이참에 위증교사죄도 폐지하라. 대장동·백현동 관련 죄도 폐지해서 이 후보를 무죄로 만들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무부는 “대통령 취임 전에 범한 범죄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무관함에도 재판을 정지하는 것은 공직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 규정을 무력화하고 자격이 없는 피고인에게 부당하게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써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헌법 수호 의무를 지는 대통령의 지위와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국민 신뢰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신인도 및 국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이 후보의 재판 날짜를 잡으면 권력을 총동원해서 팔을 비틀고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가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을 것 같으니 재판을 못하도록 법을 위헌적으로 뜯어고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죄 판결을 한 대법원장이 보복 특검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눈앞에 와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헌법 제84조에 대해 “만사 때가 되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법과 상식, 국민적 합리성을 가지고 상식대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부질없다 헌법 제84조와 소추의 정의를 놓고 저마다 해석에 나섰지만 이 후보의 최종심 날짜가 대선 이후로 연기되면서 의미 없는 논쟁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강신업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소추에 대한 정의는)대법원이 결정하면 그만인데,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권한쟁의심판을 할 것이고 해당 문제는 헌재로 가게 된다”며 “(대통령이 된 이 대표가)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헌재를 장악하는 수순이다. 결국 헌재는 대통령 편을 들 테니 사실상 그때 가서 헌법 제84조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그래도 달리는 이재명 대권 열차 대선 기간 동안은 사법 리스크 부담을 지우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본격적으로 민생·경제에 집중할 전망이다. 우선 이 후보는 지난 8일 경제5단체장을 만나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이 후보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각 단체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내수 침체, 민생 경제 등을 논의했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12일부터는 ‘빛의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 유세에 나선다. 한편 이 후보와 별개로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등 사법부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