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태광그룹회장)·임병석(C&그룹회장) 전격비교

‘정점에서 몰락까지~’ 철저히 다르거나 혹은 쏙 빼닮거나


한때 한 기업의 정점에서 검찰의 타깃으로 전락하게 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임병석 C&그룹 회장. 성격부터 태생까지 닮은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이지만 그 말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의 칼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 두 사람을 <일요시사>가 전격 비교해봤다.

이회장, 은둔형…임 회장, 꼼꼼하고 치밀
태생 좋은 이 회장…자수성가형 임 회장


태광그룹과 C&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두 그룹의 회장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들의 성격부터 인생의 굴곡 고비고비를 낱낱이 들여다봤다.

#성격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은둔형 오너’로 불린다. 그는 평소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동기 중에서도 그를 뚜렷이 기억하거나 활발히 교류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조용한 성격답게 술도 잘 마시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 일에만 매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들 중에도 이 회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회장은 전경련 회의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보도엔 아직도 10여년전 사진이 쓰이고 있다. 현장경영 사진은 고사하고, 그 흔한 자원봉사활동 사진도 구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룹 내부에서조차 이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없다. 태광그룹은 재계 서열 40위의 대규모 기업집단임에도 불구 대외 공식 창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계열사에 홍보 부서가 있긴 하지만 이 회장 관련해서는 속 시원히 답해주는 이가 없다. 태광그룹 측 관계자는 “회장님 관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잘 알지도 못한다”고 귀띔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선친인 고 이임룡 창업주의 경영 방침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 이 창업주는 생전에 “기업은 (다른 일에 나서지 말고) 사업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태광그룹은 90년 일주학술문화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장학사업에 3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하지만 그룹 측은 이를 외부에 널리 알리려 하지 않는다.

이 회장이 이끄는 태광그룹의 분위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5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40위권 기업이라는 것도 모르는 이가 많을 정도다. 외부와 소통을 꺼리는 사풍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1990년 창립 40주년 행사를 한 뒤로 20년간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았다. 60주년을 맞은 올해 들어서야 문화행사를 계획했을 정도다.

이런 사풍은 이 회장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고 이 창업주의 처남이자 이 회장의 외삼촌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받는 등 정권의 탄압이 만만치 않았다. 거의 매년 세무조사를 받았을 정도다. 1979년엔 6개월 동안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자연히 ‘눈에 띌 일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 회장은 씀씀이가 알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장충동 그룹 사옥도 옛 동북고등학교 6층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벌써 4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물론 계열사 사장들도 해외 출장 때는 이코노미석을 주로 탄다고 한다. 지인들은 그가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해왔던 고 이 창업주의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임병석 C&그룹 회장에 대한 주변인들의 평가는 ‘꼼꼼하고 선이 굵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임 회장은 치밀한 사람이었다. 급속히 계열사를 늘려가면서도 거의 모든 계열사의 자금 흐름을 꿰뚫을 정도였다. 때문에 계열사의 작은 사업이나 투자, 계열사 간 자금 이동 등에 대한 세세한 결정이 모두 임 회장에 의해 이뤄졌다. 각 계열사마다 대표들이 있었지만 사실상 임 회장이 모든 계열사의 대표였던 셈이다.

임 회장의 꼼꼼한 성격은 검찰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임 회장에게 횡령혐의와 관련된 자료를 제시한 뒤 “C&중공업에서 인출한 90억원 가운데 70억원이 그룹 계열사인 C&라인으로 갔다고 돼 있는데 이 돈이 라인 쪽에 없다. 횡령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리고 자료를 살펴본 임 회장은 “이 70억원은 우방 인수자금에 들어갔다. 증거자료도 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 전의 자금 이동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80억원의 연봉을 받던 임 회장이지만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직도 전세방에 살고 있으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취미에 빠진 적도 없다는 것이다.
또 임 회장은 그리 배짱이 두둑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그의 측근들은 임 회장이 직접 로비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회장의 한 측근은 “임 회장은 유력 인사들을 잘 알지도 못했고 몇몇 소개를 받은 사람에게도 직접 청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 성격 탓에 자기 대신 로비를 할 ‘대리인’으로 정·관계와 금융계의 유력 인사를 대거 끌어들였다는 얘기다.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 회장은 대원고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81학번)를 졸업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땄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93년 흥국생명 이사로 그룹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96년 선친이 세상을 뜬 뒤 35살의 나이에 그룹의 모기업인 태광산업 사장이 된데 이어 2004년 태광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단숨에 자리를 꿰찬 것.

이런 이 회장과 달리 임 회장은 자수성가형이다. 85년 한국해양대 해양학과를 졸업한 임 회장은 전공을 살려 5년 동안 마도로스(항해사)의 길을 걸었다. 항해사로 승선생활을 하던 중 세상이 너무 좁다고 느껴 창업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1990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자신의 돈 500만원에 4500만원을 빌려 칠산해운이라는 조그만 회사를 설립했다.

#절정기
이 회장은 그룹의 모태인 석유화학·섬유산업에서 탈피해 금융 및 방송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쌍용화재와 예가람저축은행에 이어 투자자문사와 증권사까지 인수하면서, 기존의 흥국생명과 더불어 ‘생명보험-손해보험-증권-자산운용-저축은행’에 이르는 종합 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특히 방송 분야에서는 워낙 빠른 속도로 외형을 팽창하면서 잡음이 많았다. 1998년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를 세워 케이블방송업계 1위에 올라섰으며, 2009년 큐릭스를 인수함으로써, 씨제이(CJ) 등 다른 재벌 계열 케이블방송사들을 제치고 업계 1위 자리를 굳혔다.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과 흥국생명 등 금융업이 주력이던 태광은 그후 유선방송 사업에 뛰어들어 공격적 확장을 계속했다. 결국 지난해 케이블방송사 큐릭스를 약 4000억원에 사들이면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에서 확고한 1위에 올랐다.

임 회장은 1995년 회사이름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꾸고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2002년 세양선박을 인수하며 해운업계의 ‘무서운 별’로 떠올랐다. 세양선박은 51년 설립돼 77년 주식시장에 상장된 유서 깊은 해운전문기업이다.

이후 임 회장은 자금력을 확보한 뒤 부실기업을 인수합병(M&A) 하는 방식으로 황해페리, 필그림해운, 세모유람선,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승승장구했다.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최평규 S&T그룹 회장에 비견될 만큼 ‘M&A의 귀재’라는 별명도 생겼다.

#몰락
‘잘나가던’ 태광그룹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이 회장의 아들 현준(16)군에게 주요 계열사 지분을 편법으로 증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이내 비자금에 대한 수사로 번졌다.
이 회장은 고 이 창업주가 남긴 태광산업 주식 누락분을 차명계좌로 보유하다가, 일부를 태광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는 형태로 현금화해 160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흥국생명 차명보험 계좌를 통해서도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된 상태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 중 일부가 정관계 로비에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태광그룹이 쌍용화재와 케이블TV업체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혜를 누리며 거침없는 사업확장세를 보인 데 따른 것이다.

태광그룹은 기관 경고를 받아 쌍용화재를 인수할 자격이 없는데도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인수승인을 받아냈다. 또 인수경쟁사에는 허가하지 않던 ‘3자 배정 유상증자’도 태광그룹에만 허용했으며, 보통 한 달이 걸리는 지분취득 심사도 불과 열흘 만에 해치워버렸다.
또 태광 계열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티브로드홀딩스는 2006년 방송법의 독점 규제 조항을 피하기 위해 경쟁사였던 큐릭스를 군인공제회를 통해 우회적으로 인수했고, 이후 방송법이 개정되자 큐릭스 인수합병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검소하고 소탈한 성격은 두 회장 공통점
속출하는 비리에 두 회장 운명 ‘풍전등화’


이외에 이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 동림관광개발이 춘천시 남산면에 개발 중인 골프장에서 회원권을 계열사들이 구입하는 식으로 건설자금을 ‘지원사격’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기에 이 회장이 차명 부동산을 대규모로 소유·관리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더해졌다.
이밖에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불법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빙산의 일각 아래 시커먼 덩어리가 수면위로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형국이다.

C&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주력 조선산업의 침체와 무리한 M&A에 따른 후유증으로 그룹 전체가 급속히 무너졌다. 현재 영업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에 검찰의 수사까지 더해지면서 임 회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임 회장은 현재 자신을 둘러싼 대부분의 혐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임 회장의 로비행태에 대한 고발과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계열사인 C&진도가 생산한 모피코트를 명절 선물용 등으로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했다거나, 정·관계나 금융권 인사들을 접대할 때를 대비해 승용차 트렁크에 고급 양주인 ‘발렌타인 30년’을 꽉 채우고 다녔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로비에 활약한 임원에 대해선 충분한 대우를 해줬다는 설명이다. 비리가 드러나도 감싸줄 정도였다. 반대로 로비 실적이 떨어지는 임원들은 쫓아냈다는 주장도 있다. 또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임원들은 비록 전문경영인 영입 케이스로 그룹에 들였다고 해도 권한을 뺏고 따돌리거나 사표를 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전혀 다른 경로로 재계의 정점에 오르게 된 두 사람. 하지만 그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의 칼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 두 회장과 두 기업.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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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