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의 아이콘’ 황장엽 전 북한조선노동당 비서

왜 하필 북한 ‘세자 책봉식’ 날 떠났을까?


지난 10일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의 삶은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다. 북한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황 전 비서. 어째서 그는 모든 영화를 뒤로한 채 남한땅으로 넘어와 북한 민주화를 목 놓아 울부짖었을까. <일요시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황 전 비서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불과 40세 나이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발탁
김일성종합대서 김정일 주체사상 개인강사로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는 1923년 1월23일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광청리 삼청동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에 강제징용 돼 강원도 삼척탄광에서 노역하던 그는 해방 이후 모교인 평양상업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46년 11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교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당에 가입해야한다는 동료 교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후 1948년, 6개월 과정의 중앙당학교 이론반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회고록을 통해 그는 “야간대학생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뒤떨어진 공부를 메우기 위해 잠도 안자고 매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49년에는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 철학을 본격 공부한 그는 1953년 북한으로 돌아와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에 발탁됐다. 당시 그는 명석한 두뇌와 논리정연한 사고 등으로 당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학교 출신인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강사를 맡기도 했다.

마르크스 공부해
주체사상 아버지

그는 특히 김일성이 1955년 12월 처음으로 ‘사상에서의 주체’를 표방했을 때 이를 이론적으로 보좌했다. 70년대 초반에는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완성하기까지 북한체제의 대표적 이론가로 통했다.

이후 황 전 비서는 1958년 과학원 사회과학부문 위원에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당내 주요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내각 참사관 등 굵직한 자리를 거쳤다. 1965년에는 불과 40세의 나이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발탁됐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북한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75년 북한이 비동맹회원국이 된 이래 그는 최고인민회의·정부·당의 대표단장, 주체사상토론회 대표단장 등의 자격으로 20여 차례에 걸쳐 30여개국을 방문하며 주체사상연구회를 만드는 등 이른바 ‘인민외교’를 전개해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990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총서기와 면담하기도 했다. 1993년부터는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당 국제부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을 맡아 인도·중국·쿠바·유럽 등을 방문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 우상화 작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김정일이 백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백두산 출생설’을 정론화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등의 호칭을 붙이게 한 것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그는 김 주석 부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비공식 중국방문 당시 단독 수행을 맡았을 정도다. 1996년 김일성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주석단 서열 2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90년대 중반 북한 내 대기근이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나는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전환하는 걸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북한의 권력에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생전에도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가는 것이 옳다는 식의 의견을 폈지만 김일성 부자는 남한과 수교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국을 못마땅해 했다. 김일성 사후에도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공개 활동 제약에도
비판의식 잃지 않아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12일,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 사장과 함께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 정권의 비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일성 부자는 독일 제3제국(1934∼1945년)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처럼 주민들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의 독재 정도가 10배는 더 강하다” “북한은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죽게 하고 있는 김정일”이라는 등 맹비난을 퍼부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 전 비서는 그의 저서를 통해 김정일의 통치술과 전쟁관, 북한의 전쟁 준비 상황 등을 비판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공개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는 비판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북한 사정을 가장 잘 알기에 남한에서 가장 무섭게 북한의 치부를 공격할 수 있는 인물로 통했다.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기미 보이지 않자 탈북
가장 무섭게 북한의 치부 공격할 수 있는 인물

반대로 북한의 입장에서 그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였다. 북한은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당 간부들의 추가 탈북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황 전 비서의 귀순 직후 김정일은 연설을 통해 그를 “개보다 못한 짐승”으로 매도하며 “모든 일꾼들은 우리나라 주체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며 더욱 빛내 나가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돈 착복, 여자문제 등이 원인이 돼 권력핵심부의 눈 밖에 나 탈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루머도 흘러나왔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때문에 그는 북한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올 6월에는 황 전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위장 탈북한 2인조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이들은 북한 정찰총국으로부터 “황장엽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자연사하게 놔둬서는 안된다”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 운동에 여생을 바치겠다”던 황 전 비서는 자신이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던 당 창건일이자 남한 망명 후 그토록 각을 세웠던 북한 세습체제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주석단에 공식 등장한 날에, 굴곡 많던 삶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록 황 위원장이 이날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지만 그가 남긴 북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평가다.

황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장례식에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하는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14일 오전에만 조현오 경찰청장,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 등 180여명의 조문객들이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 분향을 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황 전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이후 현재까지의 조문객은 2000명을 넘어선다.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과 정운찬 전 총리는 내실까지 찾아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68)씨를 직접 위로했다. 또 이날 빈소에 있던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는 장례 절차에 각별히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통일 전까지 현충원
결국 평양에 모실 것


특히, 황 전 비서가 ‘탈북자의 아버지’ ‘북한 민주화의 기여자’라고 평가 받았던 만큼 탈북자,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측 조문객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이날 오전 황 전 비서의 대전 국립 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자, 유족과 탈북 단체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현충원 안장 소식에 힘을 얻은 듯 유족과 탈북 단체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했다.
장례위원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선생님의 뜻대로 결국은 평양에 모셔질 것”이라며 “통일 전까지만 현충원에 잠시 모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장엽 프로필

1923년 1월23일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출생
1941년 평양공립상업학교 졸업, 일본 도쿄 주오대 야간 법과 입학
1945년 삼척탄광 징용 생활 중 해방 맞아 평양공립상업학교 교사로 복귀
1946년 조선노동당 입당
1949년 김일성종합대 재학 중 모스크바대 유학,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 공부해 박사학위 취득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교사
1970년 당 중앙위원 선출
1972년 최고인민회의 의장
1979년 당 과학교육담당 비서
1980년 노동당 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당 국제담당 비서
1987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1993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중국으로부터 개혁·개방 제안 받고 김정일에게 방중 건의했다 거절 당함
1995년 세계 인민들과의 연대성 조선위원회 위원장
1997년 2월12일 주체사상 강연 위해 일본 방문 후 베이징에서 한국대사관에 망명 신청
1998년 국정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1999년 탈북자동지회 고문
2003년 전주대 석좌교수
2008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상임고문,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2010년 10월10일 자택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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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