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의 아이콘’ 황장엽 전 북한조선노동당 비서

왜 하필 북한 ‘세자 책봉식’ 날 떠났을까?


지난 10일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의 삶은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다. 북한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황 전 비서. 어째서 그는 모든 영화를 뒤로한 채 남한땅으로 넘어와 북한 민주화를 목 놓아 울부짖었을까. <일요시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황 전 비서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불과 40세 나이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발탁
김일성종합대서 김정일 주체사상 개인강사로

황장엽 전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는 1923년 1월23일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광청리 삼청동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에 강제징용 돼 강원도 삼척탄광에서 노역하던 그는 해방 이후 모교인 평양상업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46년 11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교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당에 가입해야한다는 동료 교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후 1948년, 6개월 과정의 중앙당학교 이론반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회고록을 통해 그는 “야간대학생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뒤떨어진 공부를 메우기 위해 잠도 안자고 매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49년에는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 철학을 본격 공부한 그는 1953년 북한으로 돌아와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에 발탁됐다. 당시 그는 명석한 두뇌와 논리정연한 사고 등으로 당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학교 출신인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강사를 맡기도 했다.

마르크스 공부해
주체사상 아버지

그는 특히 김일성이 1955년 12월 처음으로 ‘사상에서의 주체’를 표방했을 때 이를 이론적으로 보좌했다. 70년대 초반에는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완성하기까지 북한체제의 대표적 이론가로 통했다.

이후 황 전 비서는 1958년 과학원 사회과학부문 위원에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임명되면서 당내 주요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내각 참사관 등 굵직한 자리를 거쳤다. 1965년에는 불과 40세의 나이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발탁됐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북한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75년 북한이 비동맹회원국이 된 이래 그는 최고인민회의·정부·당의 대표단장, 주체사상토론회 대표단장 등의 자격으로 20여 차례에 걸쳐 30여개국을 방문하며 주체사상연구회를 만드는 등 이른바 ‘인민외교’를 전개해 비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990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총서기와 면담하기도 했다. 1993년부터는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당 국제부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을 맡아 인도·중국·쿠바·유럽 등을 방문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 우상화 작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김정일이 백두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백두산 출생설’을 정론화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등의 호칭을 붙이게 한 것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그는 김 주석 부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비공식 중국방문 당시 단독 수행을 맡았을 정도다. 1996년 김일성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주석단 서열 2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90년대 중반 북한 내 대기근이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나는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전환하는 걸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북한의 권력에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생전에도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가는 것이 옳다는 식의 의견을 폈지만 김일성 부자는 남한과 수교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한 중국을 못마땅해 했다. 김일성 사후에도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취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자 그는 결단을 내렸다.

공개 활동 제약에도
비판의식 잃지 않아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12일,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 사장과 함께 베이징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 정권의 비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일성 부자는 독일 제3제국(1934∼1945년)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처럼 주민들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의 독재 정도가 10배는 더 강하다” “북한은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죽게 하고 있는 김정일”이라는 등 맹비난을 퍼부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황 전 비서는 그의 저서를 통해 김정일의 통치술과 전쟁관, 북한의 전쟁 준비 상황 등을 비판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의 공개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는 비판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북한 사정을 가장 잘 알기에 남한에서 가장 무섭게 북한의 치부를 공격할 수 있는 인물로 통했다.

개혁·개방 노선을 취할 기미 보이지 않자 탈북
가장 무섭게 북한의 치부 공격할 수 있는 인물

반대로 북한의 입장에서 그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였다. 북한은 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당 간부들의 추가 탈북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황 전 비서의 귀순 직후 김정일은 연설을 통해 그를 “개보다 못한 짐승”으로 매도하며 “모든 일꾼들은 우리나라 주체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며 더욱 빛내 나가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돈 착복, 여자문제 등이 원인이 돼 권력핵심부의 눈 밖에 나 탈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루머도 흘러나왔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때문에 그는 북한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올 6월에는 황 전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위장 탈북한 2인조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이들은 북한 정찰총국으로부터 “황장엽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자연사하게 놔둬서는 안된다”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 운동에 여생을 바치겠다”던 황 전 비서는 자신이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던 당 창건일이자 남한 망명 후 그토록 각을 세웠던 북한 세습체제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주석단에 공식 등장한 날에, 굴곡 많던 삶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록 황 위원장이 이날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지만 그가 남긴 북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평가다.

황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장례식에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하는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14일 오전에만 조현오 경찰청장,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 등 180여명의 조문객들이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 분향을 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황 전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이후 현재까지의 조문객은 2000명을 넘어선다.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과 정운찬 전 총리는 내실까지 찾아 황 전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68)씨를 직접 위로했다. 또 이날 빈소에 있던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는 장례 절차에 각별히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통일 전까지 현충원
결국 평양에 모실 것


특히, 황 전 비서가 ‘탈북자의 아버지’ ‘북한 민주화의 기여자’라고 평가 받았던 만큼 탈북자,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측 조문객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이날 오전 황 전 비서의 대전 국립 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자, 유족과 탈북 단체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현충원 안장 소식에 힘을 얻은 듯 유족과 탈북 단체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했다.
장례위원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선생님의 뜻대로 결국은 평양에 모셔질 것”이라며 “통일 전까지만 현충원에 잠시 모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장엽 프로필

1923년 1월23일 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출생
1941년 평양공립상업학교 졸업, 일본 도쿄 주오대 야간 법과 입학
1945년 삼척탄광 징용 생활 중 해방 맞아 평양공립상업학교 교사로 복귀
1946년 조선노동당 입당
1949년 김일성종합대 재학 중 모스크바대 유학,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 공부해 박사학위 취득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19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교사
1970년 당 중앙위원 선출
1972년 최고인민회의 의장
1979년 당 과학교육담당 비서
1980년 노동당 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당 국제담당 비서
1987년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1993년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중국으로부터 개혁·개방 제안 받고 김정일에게 방중 건의했다 거절 당함
1995년 세계 인민들과의 연대성 조선위원회 위원장
1997년 2월12일 주체사상 강연 위해 일본 방문 후 베이징에서 한국대사관에 망명 신청
1998년 국정원 통일정책연구소 이사장
1999년 탈북자동지회 고문
2003년 전주대 석좌교수
2008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상임고문,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2010년 10월10일 자택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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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