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정읍시 '온천 스캔들' 내막

주민들 다 좋다는데 김생기 시장만 반대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시장의 역할이 막강하다. 시장이 바뀌면 전임 시장이 허가를 내줬던 사업이 까닭 없이 엎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해당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업체와 시민이 애꿎은 피해를 보기도 한다. 전북 정읍시도 전임 시장이 허가했던 사업이 중단된 사례가 있다. 지역경제 발전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시장이 바뀌면서 의도적으로 사업을 ‘스톱’시킨 것 아니냐며 불만이다.

전북 정읍시 부전동 1065번지 내장산 입구에 다다르니 흉물스럽게 헐벗은 산이 있었다. 이 곳은 개발되던 사업이 중단되면서 오랫동안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있어 왔다. 내장산 입구는 포클레인과 자동차로 진입로가 막혀 있어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지역경제 외면
주민들은 실망

차를 세워두고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걷다 보니 우리 안에 있던 개들이 짖어댄다. 마침 산을 관리감독하는 관리소장이 나와 기자를 맞았다. 관리소장의 도움을 받아 산 위로 올라가니 허허벌판에 잡초만 무성했다. 유스호스텔과 온천 개발이 중단되면서 산지 복구작업을 진행 중이란다. 허허벌판 옆으로는 개발 뒤 사용하려고 심어 놓은 소나무만 쓸쓸히 자리잡고 있었다. 

관리소장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개발을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현재는 허가가 취소돼 이렇게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산이 방치돼 있다”며 “경찰들도 우범지역으로 인식해 순찰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진행된 사업이 중간에 중단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사업이 무산된 데에 따른 아쉬움이 크다. 지역주민 노모씨는 “유스호스텔과 온천 개발이 지역주민에게 많은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사업이 중단되면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는 “정읍시는 관광도시라는 이미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마땅한 즐길거리가 없는 가운데 대형 사업이 진행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사업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개발지 근처에 사는 주민 최모씨는 “주변에 유스호스텔이나 온천이 생기면 고용효과가 증대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허가가 취소되는 바람에 상권이 죽었다”고 말했다. 

내장산 유스호스텔 사업
시장 바뀌고 갑자기 취소
 

인터뷰에 응한 지역주민 상당수는 이번 사업이 물거품 된 배경을 두고 전임 시장에서 현 시장으로 바뀐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사업을 진행했던 잔디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잔디로 측은 “강광 전 시장의 투자유치 노력으로 유스호스텔과 온천, 골프텔 사업을 진행했는데 시장이 바뀌면서 잇달아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행정 절차상의 이유로 사업이 무산됐으므로, 사실상 행정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잔디로와 정읍시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잔디로는 강광 시장 재임시절인 2007년 4월 정읍시와 유스호스텔 민자유치사업기본협약(MOU)을 맺었다. 그러나 2010년 김생기 시장 체제에 들어와 관련 사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정읍시가 2013년 9월 공사 지연을 이유로 투자협정을 파기한 것이다. 잔디로 측은 정읍시가 의도적으로 공사를 방해해 공사가 지연됐다는 주장이다. 

잔디로는 “유스호스텔 착공을 위해 토목공사(전체 52억 가량)를 진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막상 건물을 착공하려 하니 MOU체결 당시 쓸 수 있다던 정읍시 지방보조금 100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유스호스텔 사업의 수익성이 안 맞아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발견된 온천 개발을 허가해 줄 것을 정읍시에 요청했지만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공사 진행 속도가 늦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잔디로는 사업 취소 이후에도 정읍시의 행정폭력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읍시가 사업 취소 후 명령한 적지복구를 기한내 마치지 않았다며 적지복구비용 11억3000만원을 잔디로로부터 강제로 유치시키면서 관련 행정절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관련 행정절차법 제21조 1항에 따르면 '행정청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미리 관련 필요한 사항 등을 당사자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 같은 법 제22조 1항에 의하면 의견제출 기한 내에 당사자등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청문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온천 터지자
본전 생각?


그러나 정읍시는 잔디로의 적지복구 기한(2014년 4월30일∼2015년 5월31일)이 끝난 후 이틀만인 지난 6월3일 사전 공지 없이 11억3000만원의 예치금을 유치시켰다. 사실상 사전 안내없이 예치금을 유치시킨 셈이다. 정읍시 측은 이미 예치금 유치를 위한 공문을 여러차례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공사기한이 끝난 이후에는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에 앞서 실질적으로 공지를 해야하는 의무를 져버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정읍시가 유치한 예치금 규모도 행정적 괴롭힘을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정읍시가 보증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보험금액은 보험사고 발생 당시 객관적으로 산정되는 복구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읍시는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액 전액인 11억3000만원을 지급받아 예치했다.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공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이를 감안하지 아니하고 전액을 청구해 유치시키는 것은 행정목적 달성을 위함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22일 정읍시에 제출된 제7차 감리보고서에 따르면 적지복구공사는 ▲토공 85% ▲부대공 100% ▲식재 20%가 진행됐다. 정읍시 측은 잔디로 유스호스텔 사업과 관련해 “이미 행정절차가 끝난 사안”이라며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데 있어 관련법에 어긋난 점이 없다”고 해명했다. 

현재 중소기업인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 예치금으로 11억3000만원의 현금이 묶여 사실상 다른 사업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온천공 발견 신고가 취소된 점도 잔디로 측이 보복행정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2011년 정읍시는 잔디로가 발견한 온천공 신고를 적합판정을 내렸지만 2013년 9월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잔디로 측은 “갈팡질팡 행정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읍시가 잔디로의 온천공 신고 적합판정을 취소하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것은 온천공 개발계획 승인신청이 지연됐다는 이유였다. 

흉물스런 개발부지…지역민들 ‘부글’
기업 압박해 기부채납이 최종 목적?

하지만 온천법에 따르면 시장·군수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을 때 수리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이내에 온천공보호구역 지정 등을 해야하는데 정읍시는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읍시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천공보호구역의 지정승인신청 등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리를 취소했다. 잔디로 측은 이같은 행정절차상의 문제가 있어 온천발견신고 수리 취소 처분 및 대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잔디로 측은 정읍시의 일련의 행정폭력이 유스호스텔 및 골프장, 온천 등의 부지를 받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김생기 시장 당선 후 시장이 이 토지를 헐값에 넘기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부터 행정폭력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정읍시가 공문을 통해 해당토지 매각과 기부채납을 종용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정읍시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잔디로 측에 토지매각과 기부채납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은 잔디로 측이 땅 사용과 관련해 향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문의해와 일종의 제안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자치단체장의 인허가권은 지역사회의 경제 사회개발과 보편타당성의 원칙에서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행정은 행정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무효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법적 다툼 시작
시는 일체 함구

정읍시 측은 관련 사항에 대해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읍시와 김 시장에게 관련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요청했으나, 정읍시 측은 잔디로의 개발 건과 관련 법정 다툼 중이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읍시 개발사업 형평성 논란
‘어딘 되고 어딘 안되고’  


정읍시가 잔디로의 온천개발 사업을 막은 것은 산지관리법 규제인 보전산지 보호가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정읍시는 내장산 내 보전산지인 관광호텔 신축부지를 준보전산지로 완화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전라북도는 지난 7월10일 남원 스위트호텔 연수원에서 각 시군 관계자 및 업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끝장토론회를 열었다. 정읍시는 이 자리에서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유발 효과를 이유로 보전산지로 지정된 내장산 관광호텔 신축부지 4425㎡를 준보전산지로 해제해줄 것을 주장했다.

현행 계획관리지역 안에서는 4층까지만 건축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또 10층 규모의 관광호텔 신축을 위해서 지구단위 계획수립(관광휴양형)을 위한 부지 3만㎡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획부지 중 보전산지가 호텔소유 부지임에도 산지관리법 규제로 사업 추진에 애로가 크다는 주장이다.

이에 산림청은 관광호텔 신축(10층규모)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필요한 토지를 보전산지에서 준보전산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후 정읍시는 도시관리계획을 변경(계획관리지역 지정)하고 관광휴양형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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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