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는 도시개발의 뒤편으로 내몰린 돈의문뉴타운 철거민입니다.
1980년대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국내 건설경기는 도시의 모습마저 순식간에 변모시켰다. 그 사이 세월의 광풍을 머금은 낡은 단층 건물과 언덕배기 골목길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번쩍이는 고층빌딩이 세워지고 재개발이라는 이름아래 곳곳에서 굴착기 소음이 끊임없이 퍼졌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상당수는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개발에 따른 보상금이 주어졌지만 긴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무게와 견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비단 신도시나 변두리에서 통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도 마찬가지다.
역사공원 조성
광화문에 인접한 신문로2가 일대 돈의문뉴타운지구는 변신을 앞두고 있다. 이미 인근지역은 대단위 아파트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중이고 이곳 역시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돈의문뉴타운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는 이 지역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할 예정이다.
당초 공원정비계획은 전면철거 후 공원 조성이 기본 골자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인근지역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기존 거주민 이주 이후 일부 건축물을 존치한 상태에서 역사공원으로 꾸민다는 포부를 밝힌 상황이다.
서울성곽과 경희궁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비계획도 일부 변경했고 공원조성을 위한 예산 확보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조합이 근린공원 조성비용으로 책정한 약 25억원을 포함해 서울시 주택사업특별회계를 사용한다는 계획도 한층 구체화됐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 6월 공원이 개관한다.
지난 2013년 “용산참사에서 드러난 각종 철거비리와 재개발의 아픔을 기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시가 돈의문 일대에서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재개발의 아픔을 간직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공원 조성계획은 정작 이곳에 터를 두고 지금껏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서울시의 공원조성 계획에 이곳 상인들에 대한 배려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감 없는 이주 보조금이 문제였다.
돈의문뉴타운 지정구역에서 20년 가까이 상점을 운영중인 A씨는 당장 살길을 찾아야 이곳을 떠나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미 지난달 재개발조합은 강제 퇴거를 진행할 수 있다는 통첩을 전달했다.
그러나 보상비 명목으로 책정된 금액은 약 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 금액으로는 다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기에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돈의문뉴타운 인근 지역은 큰 회사들이 주변을 둘러싸있고 수요가 많아 지금껏 높은 월세에도 불구하고 착실히 장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보상금을 기반으로 지금과 비슷한 환경을 찾아 떠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물론 영업보상비를 받고 자진 철수한 상인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A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만 해도 10여 명에 이른다.
A씨는 “긴 세월동안 터를 잡고 생활한 이곳은 내게 고향이나 마찬가지다”며 “어디로 가서 다시 터전을 닦아야 할지 막막할 뿐만 아니라 막상 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겨울 앞두고…철거 예정자들 하소연
“쫓기듯 떠나야” 제2의 용산사태 우려
그 사이 기존 상인들과 서울시, 조합 간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상가세입자들의 거센 반발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 지역 상인들은 인근 돈의문뉴타운1구역 상가세입자들이 주축이 된 전국철거민협의회와 함께 단체 행동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의문뉴타운1구역 상가세입자들 역시 조합의 충분치 못한 보상금액과 쫓기듯 내몰렸기에 일정부분 공통분모를 두고 있긴 마찬가지다.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에서부터 교남동을 아우르는 돈의문뉴타운1구역은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책에 따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뒤 이듬해부터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이 한창이며 내년 준공을 앞두고 분양이 이뤄지는 중이다.
물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수차례 강구됐다. 서울시, 조합, 상인들 사이에 이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사전협의체가 구성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사전협의체를 통해 대책을 강구하기엔 상인들과 서울시의 입장이 애초부터 달랐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전협의체는 기본적으로 해당지역 상인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해진 조치”라며 “법적인 절차에 따라 사업을 구상한 만큼 사적인 이익을 모두 충당할 수 없고 중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언급했다.
10여 명 남아
이렇게 되자 돈의문뉴타운에서 제2의 용산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사태는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당시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국가는 철거민 8명에게 인명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이들은 결국 감옥에 갔다.
A씨는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 대다수는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쫓아내면 우린 미래가 없다. 이곳에서 제2의 용산참사 벌어지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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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뉴타운사업 현황
아파트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정작 서민들의 내집마련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100%를 넘긴 주택 보급률은 2014년에 103.5%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뉴타운사업으로 대표되는 대단위 아파트 조성공사가 주택보급률 상승에 일조했다고 평가한다.
뉴타운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2년에 은평·길음·왕십리 3곳을 시범 뉴타운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일부지역은 뉴타운 조성사업을 위해 그린벨트까지 해제했고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구는 35곳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들어선 2012년이 돼서야 뉴타운 출구전략이 시작돼 뉴타운 등 서울시내 재개발 지구 683개 중 절반가량이 지정 해제됐거나 해제될 예정이다.
그러나 뉴타운사업은 아파트를 늘렸을 뿐 서민들의 내집마련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긴 힘들다. 국토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소유 주택 거주 비중은 53.9%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수도권의 자가점유율은 45.9%였고 서울은 16개 광역시·도 중 최하위인 40.2%였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