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물러난 유승민 손익계산서

당심 잃고 민심 얻고..."배신자라 쓰고 소신파라 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 반강제적으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한 주는 ‘유승민 정국’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소신과 존재감이 빛났다. 지고도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 의원의 손익계산서가 나쁘지 않다.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작은 것 버리고 
큰 것을 취하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사퇴 회견문의 일부다. 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확인된 의원들의 뜻을 수용하며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지난 2월2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156일,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선언한 지 13일 만이다. 
 
유 의원은 사퇴 회견문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맞서는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헌법 1조 1항을 언급했다. 이는 의원들 손으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일방적으로 끌어내리려 해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박 대통령과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조 친박이었던 유 의원이 사실상 이번 행보로 박 대통령과 친박과 완전히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의 뜻대로 결국 등 떠밀려 사퇴했다. 겉으로 보기에 유 의원이 원내대표직 자리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계 관계자들과 여론의 평가는 이번 행보가 유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이가장 빛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오히려 얻은 게 더 많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공개한 차기 여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유 의원은 지난달 조사에 비해 11.4%포인트나 오른 16.8%를 기록해 김문수 전 경기지사(6.0%), 정몽준 전 의원(5.7%), 오세훈 전 서울시장(5.1%)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특히 19.1%로 1위를 차지한 김무성 대표와는 2.3%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리얼미터의 이번 조사는 유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지난 8일 하루 동안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역별로는 대전·충청·세종(36.0%)과 광주·전라(19.7%)에서 1위에 올랐고, 대구·경북(TK)에서는 김무성 대표(22.2%)에 불과 1.1%포인트 뒤진 21.1%로 2위를 기록했다. 서울(16.8%)과 부산·경남·울산(12.8%), 경기·인천(12.7%)에서도 모두 2위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30대(24.0%)와 40대(29.7%)에서 김무성 대표(30대 8.1%, 40대 9.4%)를 크게 이겼고,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각각 12.6%, 10.1%를 기록했다. 성별로는 여성(18.0%)에서 1위, 남성(15.7%)에서는 김 대표(23.7%)에 이어 2위였다.

반강제적으로 사퇴…소신·존재감 빛나
‘마이웨이’ 선언 개혁적 보수로 거듭나


지지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9.8%의 지지율로 2위로 올라섰고,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에서는 20.1%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무당층에서는 20.9%의 지지율로 김 대표(5.3%)에 크게 앞섰다. 대구 출신의 중진 의원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결과적으로 유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지만, 지지율이 급등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 의원은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야권의 찬사를 이례적으로 끌어냈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혁신적인 보수’이미지를 확고히 함으로써 중도·진보층까지 정치적 저변을 확장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비박계가 다수 포진한 수도권을 중심으로는 유 의원이 총선 전에 재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잠룡군에 포함
여권주자 2위
 
유 의원이 이번 행보로 원내대표직을 잃었다. 일각에서는 원내대표직 자리는 다양한 역할을 통해 정치력을 정상적으로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유 의원이 사퇴를 통해 그가 지도자로서 대중에게 보여준 소신과 존재감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잃은 것도 아니라고 입 모아 말한다. 
 
하지만 유 의원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내에서는 유 의원은 내년 4월 총선에서 박 대통령의 ‘표적 낙천 대상 1호’가 돼 공천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 의원은 표면적으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끝까지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엔 사퇴를 수용했기 때문에 박 대통령 주요 지지층인 보수층에게 배신자라는 꼬리표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 의원의 지역구가 대구 동구 을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에서 재기가 가능할지 여부를 두고서도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유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90도 사과를 했지만, 그 후 청와대와 친박계의 반응이 냉정했고, 사실상 '원내대표 찍어내기'로 이어졌기 때문에 내년도 총선에서 공천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유 의원의 명운은 향후 박 대통령의 순항과 새누리당 체제에 달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 정부가 내년 총선 전까지 순항하느냐 아니면 위기를 맞느냐에 따라 유 의원의 ‘몸값’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입김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면 정치인 유승민은 위기에 놓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정치적인 유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총선 전에 유승민의 가치가 주목받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 의원은 그 동안 굴곡진 정치 역정을 걸어왔다. 그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여당 인사다. 정치 무대 한가운데서 화려하게 활동을 하다가도 한순간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다. 

사퇴회견까지 당당
대통령에게 직격탄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이다. 유 의원은 1958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등을 졸업하며,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만기 제대를 했다. 이후 1987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까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1983년부터 4년간 위스콘신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신고전학파 학풍과 달리 정부 개입의 필요성 등 소신을 피력하고는 했다.
 
유 의원은 박사학위 취득 이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낸다. 이 당시 그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연구에 주력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 연구에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1998년 유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를 만난 후 KDI 교수를 그만두고 한나라당으로 입당한다.  월급도 없는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장직을 맡아 이 총재를 도왔다. 하지만 이 총재의 핵심 경제 참모로 대선을 치른 유 의원은 대선 패배한다. 이에 더해 이른바 ‘차떼기’파동으로 감옥에 간 정치인들을 면회하며 야인의 시간을 보낸다. 
 
한때 친박 선봉
지금은 등 돌려
 
그러던 중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한나라당 대표직을 맡은 박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유 의원은 세 번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삼고초려 끝에 그를 비서실장으로 영입했다. 
 

2005년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 유 의원을 대구에 보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변신시켰다. 그는 ‘유승민 정치’를 강조해왔다. 따지고 보면 유 의원은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가 있었던 정치인이었다. 그는 유승민의 정치를 잠시 접고,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2007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명박 정부의 저격수도 마다치 않았다.
 
유 의원은 지난 2011년 당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유승민의 정치를 가동했다. 그는 당시 홍준표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친박계의 표가 분산되지 않았던 게 주요 요인이었다. 하지만 유 의원은 표 때문에 박 대통령을 무작정 ‘숭배’하지 않았다. 다른 친박과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유 의원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을 ‘동지’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상명하복식의 친박계 분위기에서는 감히 내뱉을 수 없는 발언이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을 동지로 생각했지만, 박 대통령은 유 의원을 신하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이 지점이 결별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또 유 의원은 평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 
 
박 대통령은 2009년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황우여 원내대표’ 카드를 밀었지만, 유 의원은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유 의원은 또 2011년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 대통령의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 개정도 강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10월엔 청와대 외교안보팀을 ‘청와대 얼라(어린아이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지칭하면서 날을 세웠다.
 
유 의원은 올해 초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원내대표 경선 때 박 대통령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고 선언, 박 대통령과의 관계회복에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박 대통령의 ‘공약 가계부’를 거론하며 “더 이상 지킬 수 없다. 반성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로선 매우 불쾌한 대목”이라고 한 친박계 의원은 전했다. 유 의원은 또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정치적 소신을 거리낌 없이 밝혔고, 박 대통령 역시 이와 관련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도입 공론화를 주장하는 등 청와대와 잇따라 엇박자를 냈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유 의원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상의 사퇴 압박이다. 유 의원은 곧장 국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우리 박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몸을 바싹 낮췄다.
 
당 공천 불투명
향후 행보 주목
 
하지만 지난달 29일 청와대가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통과시키자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됐다. 유 의원은 원내대표직 사퇴한 다음날인 9일 측근들과의 만찬에서 “내년 총선에서 다들 잘돼서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 의원의 미약한 정치적 기반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파국에 치달았던 당과 청와대의 실타래를 그가 풀 수 있을지. 또 앞으로 그가 홀로서기에 성공해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발돋음 할 수 있을지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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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