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지방자치단체장 탐구②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

옳은 건 끝까지 밀고나가는 나는야 ‘황소’

인천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당선됐다. 송 당선자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52.5%를 득표하면서 44.5% 획득에 그친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를 8% 차로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따라서 그는 향후 4년 간 인천시정을 이끌게 됐다. 송 후보의 인천시장 당선은 민주당 출신 최초의 인천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그간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띠었기에 전통적 야당세력인 민주당이 발 붙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너머 인천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송 당선자.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인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을지 조근조근 살펴봤다.

노동운동 전개…‘내 가족’이란 생각으로 투쟁
서른 살 나이에 사법시험 도전, 2년 만에 합격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어린시절 늘 배가 고팠다. 부면장이었던 아버지였지만 6남매를 키우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은 120원짜리 메밀 자장면을 먹어보는 것이었다.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절약정신’을 발휘했다. 학용품값을 아껴서 자장면을 사먹기로 결심한 것. 아끼고 아낀 끝에 결국 자장면을 사먹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둘째형에게 들키면서 송 당선자는 호되게 혼이 났다.

“자장면을 먹었다”는 이유로 혼이 났던 송 당선자. 그러나 형제애는 굳건했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한 것도 형들이었다. 공부하는 형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것.

고교생 때 사회비판 시각
박석무 선생 영향 컸다

그럼에도 ‘개구쟁이’ 기질은 버릴 수가 없었다. 남몰래 영화를 보러가다 선생님에게 들켜 화장실 청소를 하기 일쑤였다.
송 당선자가 사회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박석무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4·19 학생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박 선생은 김남주 시인의 선배로 정의감이 남달랐다. 특히 ‘책벌레’였던 그의 영향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할 수 있었다. ‘자랏골의 비가’ ‘아, 청춘의 도시 광주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면 ‘버럭 송영길’이 되곤 했다. 유신 말기 교련복과 M-16 총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때였다. 박 선생은 이 같은 현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송 당선자 역시 동감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 때문에 그는 반발심이 발동했다. 하루는 교련시간에 차렷 자세 등을 취할 때 불량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허벅지를 걷어찼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교련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는 그길로 운동장에 M-16 총을 던져버리고 집으로 향했다.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일념 하에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사귀며 사고의 폭을 넓혀갔다. 그리고 수도권 빈민 운동을 했던 손학규 전 대표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 기독교청년회가 주 활동무대였던 그는 사랑방교회를 열어 민중 목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 시절 ‘남다른 조직가’로 성장했던 그는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중 하나가 택시운전사다. 열악한 노동 조건 때문에 분신자살한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열성적으로 투쟁했다.
아픈 추억도 있지만 송 당선자는 택시 운전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송 당선자는 “택시를 탈 때마다 친정에 온 것 같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86년 전두환 암살음모 혐의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갔던 것.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송 당선자에 따르면 아내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 추파를 던진 이들이 많았다고.

그가 지금의 아내와 만난 것은 대학교 초년병 시절, 교회에서였다. 서로 얼굴만 익힌 정도라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까지 2년이 걸렸다. 신촌 로터리에서 가두행진을 할 당시 송 당선자가 경찰에 밀려 도로에 넘어져 있는 아내를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인천 시계공장에 다녔어요. 잔업이 끝나면 전철을 타고 구로역까지 가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역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 등을 먹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죠”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포지티브로 일관해

송 당선자는 인천 대우자동차 공장 건설현장 배관용접공과 택시기사 등 현장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로서 7년을 살았다. 이후 서른 살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도전해 불과 2년 만에 합격했다. 이때부터는 노동인권변호사로 변신, 노동현장을 지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에 몸 담았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2000년 16대 총선에 다시 도전,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17대, 18대 총선에서도 내리 승리를 거두며 민주당의 3선 중진 의원이자 최고위원으로 우뚝 섰다.

당내에서 그는 거침없는 소신으로 유명하다. 초선이던 2001년 정풍운동을 주도했고 2003년엔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찬성과 대북송금 특검 반대 등으로 당내에서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뚝심 있는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일관된 포지티브 선거운동에 대한 유권자들 주목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 공약에 탄력 받을 듯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화살을 겨누며 쓴소리를 하는 그에겐 “건방지다” “지나친 비판이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에 그는 “옳다고 믿는 것은 밀고 나가는 ‘황소’같은 스타일 때문”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는 최근 ‘신(新)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공개적으로 대권의 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인물난을 겪자 당 최고위원으로서 ‘희생’을 각오하고 인천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바꿨듯 인천을 바꿔 한국의 심장으로 만들겠다”던 그는 결국 인천시장에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민주당 출신 최초의 인천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그간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띠었기에 전통적 야당세력인 민주당이 발 붙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서 ‘북풍’으로 이용하면서,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앞바다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지리적 요건으로 북풍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인천에서 송 당선자가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당 보다는 송 당선자 개인의 경쟁력을 꼽을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천의 민주당 지지도는 22.2%인데 비해 송 당선자에 대한 적극 투표층의 지지도는 46.8%로 나타났다. 그의 개인 지지도가 당 지지도보다 무려 24.6%포인트나 높았던 것이다. 

또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포지티브 선거운동으로 일관한 것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 후보는 선거 내내 정책과 공약의 대결이 아닌 송 당선자에 대한 인신비방과 흑색선전으로 일관하는 네거티브 전략에 의존했다. 하지만 그는 일체 대응을 삼간 채 정책과 비전을 내세운 포지티브 선거운동으로 일관함으로써 ‘당당한 정치인’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얻으며 인천시민들의 선택을 받게 됐다.

앞으로 4년 간 인천시 살림을 꾸려갈 송 당선자의 공약은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도시 균형발전, 교육지원예산 확충 등 시정 전 분야에 걸쳐 있다. 당초 교육 복지 환경 분야 공약이 주를 이뤘으나, 공약을 다듬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장 및 개발 부분이 대폭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송 당선자가 각별히 공을 들인 공약은 교육지원예산 1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천 내 10대 명문고를 선정해 2014년까지 이들 학교에 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초·중학교 무상급식 실시와 인천장학기금을 매년 500억원씩 증액해 2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송 당선자는 또 복지 공약으로 노인 일자리 3만 개 창출과 실버아카데미 개설 등을 제시했다. 노인 틀니 비용의 70%를 지원하고 홀몸노인에게 매주 2회 문안 전화를 드린다는 공약도 눈에 띈다.

교육지원 예산 1조
초중교 무상급식 확대

인천지역 8개 도시재생사업지구 중 상당수가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송 당선자는 3조원의 도시재창조기금을 조성하여 현재 추진 중인 재개발 및 도시정비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송 당선자는 인천 경제자유구역(FEZ)을 세계 3대 FEZ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국내 첨단기업에도 외국인 투자에 준한 세제혜택을 주고, FEZ에 부품소재 항공정비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매니페스토연구회 간사인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정치학 박사)은 “성장과 분배를 잘 조화시켰고, 앞으로 20∼30년 뒤 인천의 성장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하지만 인천의 전체 예산이 7조원인데 경상비를 빼고 나면 사업비는 극히 제한적이다”라며 “도시재생에 3조원, 교육지원에 1조원 등 공약 관련 예산이 수십 조원에 달해 보다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영길 인천시장 프로필

학력
1981년 2월  광주 대동고 졸업
1988년 3월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81학번)
2005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경력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1985년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자생활 시작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2000년 - 제16대 국회의원
2002 ~ 2008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2004~ 2008년 제17대 국회의원(재선) 
2004 ~2006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
2005 ~ 2007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2006 ~ 2007년 열린우리당 한미FTA특별위원회 위원장
2007년 - 국회의원연구모임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 공동대표(現)
2008년 - 제18대 국회의원(3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동문회 윤리위원장(現)
통합민주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現)
통합민주당 장외투쟁대책본부장(現)  
 
수상경력
2000년, 2002년, 2006년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선정  
2003 ~ 2004년  최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2001 ~ 2004년  우수 국회의원 연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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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