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월드컵 신화 쓴 윤덕여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때론 아빠처럼 태극낭자 이끈 때론 오빠처럼 빛나는 리더십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윤덕여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지난 2012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 감독으로 선임된 이래로 3년 만에 그가 이룬 쾌거다. 과거 대한민국 수비수로 활약했던 윤 감독. 하지만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는 드문 편이다. 

 
윤덕여 감독은 1961년생이다. 서울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윤 감독은 한국 축구계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 중 한 명이다. 일반적으로 축구 선수들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축구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윤 감독은 중학교 3학년에야 정식으로 축구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악바리로 통하며 쉼 없는 노력으로 팀 훈련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개인 훈련을 통해 기량 향상을 꾀했다. 
 
수비수로 활약
주목받지 못해
 
이런 노력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으며, 3학년까지 줄곧 주전으로 활약했다. 중3 때 축구를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상대한 기량 향상이다. 또  경신고 시절 대회 결승전에서 팔이 부러지는 부상에도 붕대를 감고 경기를 마칠 정도로 독종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외모를 보면 축구선수 출신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이다. 실제로 경기장 밖에서 그는 예의 바르며 학자 타입의 감독이라고 분류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선수시절 경기장 안에서 누구보다 끈질기며 거칠었다. 상대 공격수를 절대 놓치지 않는 악착같은 승부근성으로 유명했다. 코풀소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는 과감함 태클과 밀착수비를 자랑하는 스토퍼와 수비형 링커로 이름을 날렸다. 스토퍼는 상대의 공격을 개인 방어로 막아내기 위해 끈질기게 붙어 다니며 방해하는 역할이다. 링커는 상대방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공을 빼앗는 역할을 한다.
 

윤 감독은 25년 전인 1989년 5월 한일 정기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1991년 6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까지 2년간의 짧은 대표생활을 했다. 그동안 윤 감독은 A매치 31경기에 출전하며 대표팀의 간판 수비수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빈번히 월드컵에서 고배를 마시며 흑역사를 보내기도 했다. 
 
윤 감독이 현역 선수로 월드컵 무대에 처음 나선 것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예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윤 감독은 벨기에와 1차전에 벤치를 지켰다. 하지만 스페인과 2차전에 당시 대표팀 수비의 핵이었던 정용환 선수 대신 투입돼 스페인의 공격을 이끌던 훌리오 살리나스, 미첼을 전담 수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결과는 1-3완패. 스페인은 미첼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황보관의 중거리슛으로 1골을 만회한 한국을 무너뜨렸다.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윤 감독은 풀타임으로 활약했지만 스페인의 3골을 막지 못했다. 후반 7분에는 경고까지 받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윤 감독은 실낱같은 16강의 희망을 안고 경기한 우루과이 조별 예선 3차전에도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후반에 퇴장까지 당하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출천지 흑역사로 남았다.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
남자축구 48년 걸렸는데 12년 만에 쾌거
 
당시 윤 감독은 우루과이의 골잡이였던 프란세스 콜리를 찰거머리처럼 수비했다. 공격을 차단했던 윤 감독은 전반에 경고 1장을 받았다. 후반전 콜리는 윤 감독의 집중 마크에 신경질이 나 심판이 보지 않는 사이 공이 아닌 윤 감독의 얼굴에 헤딩을 날렸다. 이에 윤 감독은 복수를 시도하는 등 거친 경기를 했다. 후반 25분에 그는 '시간지연 행위'라는 이유로 또다시 경고를 받아 퇴장당한다. 윤 감독의 퇴장으로 10명이 싸운 한국은 후반 종료 직전 폰세카에게 공을 허용해 우루과이에 16강 티켓을 헌납했다. 
 

윤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최인영 골키퍼와 공을 주고 받는 과정을 시간 지연 행위라며 경고를준 심판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라며 “팀의 일원으로 퇴장을 당하지 않았으면 우루과이에 지지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1년가량 대표팀 생활을 했던 윤 감독은 A매치 31경기 출전 기록을 남기고 더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악바리 키운다
강도높은 훈련
 
윤 감독은 한일은행 축구단과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에서 1984년부터 1992년까지 프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는 프로 선수 시절 울산 현대에서 86년 컵대회 1번 우승, 88년과 91년 리그 준우승을 경험했다. 포항스틸러스에서 92년에는 리그 우승을 했다. 특이하게 그는 프로 선수 경력 동안 단 한 번도 퇴장을 당한 기록이 없다. 
 
윤 감독은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선수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윤 감독의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온라인 축구 게임 피파온라인에 전설적인 캐릭터로 선정됐다. 그가 현역 시절 어떤 선수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92년 윤 감독은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포항제철중학교의 축구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포항스틸러스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으로 일했다. 동시에 아브라함 브람 감독에 뒤를 이어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아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아갔다.
 
 
윤 감독은 2002년 AFC U-16 챔피언십을 비롯해 3개 대회 연속 석권, 22경기 무패행진 등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청소년대표팀은 축구 기자들 사이에서도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윤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대표팀이 해외에서 벌어진 3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연속 무패 기록도 세웠다. 이 기록은 지난 2003년 6월 부산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부산국제청소년대회 풀리그에서 아르헨티나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전 연속골을 허용하며 0-2로 패해 끝이 났다.
 
이후 16년 만에 2003년 핀란드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3전 1승 2패(한국 1-6 미국, 한국 2-3 스페인, 한국 3-2 시에라리온)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비록 전패하기는 했지만, 당시 대표팀의 잠재력과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 윤 감독은 전도유망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 사퇴 이후 한달만에 그는 U-18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이후 경남FC,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를 맡으며 선수 육성에 힘쓴다. 2007년 윤 감독이 경남 FC 코치로 있을 당시 14개 K리그 감독은 시즌 동안 감독을 잘 보좌한 최고의 코치로 그를 뽑기도 했다. 그는 14명의 감독들로부터 1순위부터 3순위까지 3명씩 코치를 추천을 받은 결과 5명의 감독으로부터 1위로 꼽혔다.  
 
2011년 전남 드레곤즈는 리그 우승을 위해 윤 감독을 기술분석관으로 영입했다. 2012년 8월 정해성 전남 드레곤즈 감독이 감독직에서 사임 후 한시적으로 감독대행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 하석주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윤 감독은 전남 드레곤즈 수석코치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2년 12월 윤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지난 1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2015년 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2003년 미국 대회에서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태극낭자들은 1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승점4)를 기록하며 조 2위로 사상 처음 16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냈다. 
 
“여자 잘 알아”
고독한 승부사
 
이번 성과는 그동안 윤 감독이 쌓아온 성과가 빛을 보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여자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윤 감독은, 이전까지 남자 선수들만 가르쳤던 지도자다. 때문에 의구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과연 여자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비단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윤 감독의 지도를 받는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윤 감독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감독은 ‘아빠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술 담배도 가까이하지 않고, 조용한 성품에 말투도 부드럽다. 선수들이 실수하면 윽박지르기보다 안으로 품는 스타일이다. 혹독한 생존 경쟁 속에 축구를 해 온 선수들은 윤 감독의 배려와 믿음에 반했다. 선수들은 윤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관심 속에 도전한 월드컵이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동메달의 주역인 전가을은 “솔직히,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는 걱정이 있었다. 여자를 가르쳐본 이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데, 지내다 보니 마치 오래도록 여자들만 가르쳐 오신 분 같았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진심이다. 아부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다. 다른 모든 선수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독님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엄청난 신뢰를 보였다.
 

전 선수는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챙겨주시는 모습에 감동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면서 “감독님과 함께라면 정말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리더에 대한 확신을 전했다. 한국 여자축구가 자랑하는 지소연 역시 비슷한 견해를 전했다.
 
지 선수는 윤 감독을 향해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그런데 가끔은 어머니 같은 느낌도 받는다. 말로 표현하기 복잡하다”는 말로 특별한 감정을 표했다. 이어 “이제는 감독님도 여자축구에 대한 적응이 완벽하게 끝나신 것 같다. 여자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계신다. 무서울 때는 정말 무섭지만, 자상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시다”고 말했다..
 
‘히딩크 못지 않다’
선수생활 늦게 시작
3년전 감독으로 선임
 
윤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후반 김수연을 교체 투입을 하며 과감한 승부사의 면모도 보였다.결과는 ‘신의 한수’였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날 4-2-3-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원톱은 ‘비장의 카드’ 박은선(로시얀카) 선수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경기 초반부터 좌우 측면을 완전히 장악했다. 한국은 미드필더 싸움에서 완패하며 전반 30분까지 제대로 된 슈팅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스페인은 한국의 측면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며 최전방 공격수를 향해 절묘한 크로스를 올리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야심차게 선보인 박은선 카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이 틈을 타 공격의 강도를 높인 스페인은 전반 29분 마르타 코레데라의 왼발 크로스를 베로니카 보케테가 득점으로 연결하며 1-0 기선을 제압했다. 한국은 슈팅(2-8)과 유효슈팅(0-2) 수에서 모두 스페인에 밀리며 전반을 마쳤다.
 
윤 감독은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며 맞불작전을 펼쳤다. 전반전 패인을 역이용해 상대를 공략하려 했다. 강유미와 지소연이 좌우 측면 공략에 집중하도록 주문했다. 결국 작전은 성공적으로 맞아 들었다. 스페인 측면 수비를 허물자 한국의 공격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후반 8분 주장 조소현은 측면 강유미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했다. 1-1 동점이 된 후 윤 감독은 지친 박은선과 강유미 대신 유영아와 박희영을 각각 내보내며 공격의 고삐를 당겼다.
 
선수들 절대 신뢰
배려·믿음에 반해
 
한국은 후반 33분 김수연이 이른바 ‘슈터링(슛+센터링) 골’을 성공시키며 역전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수연은 박스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시도했지만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골망 구석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측면 공격 강화를 위해 후반 시작과 함께 김수연을 교체 투입한 윤 감독의 선택이 제대로 빛을 발한 셈이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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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