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400홈런 달성 국민타자 이승엽

‘라이언킹’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라이언킹’ 이승엽이 기어이 400홈런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이다. 한국과 일본 무대 홈런을 합치면 559개다.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400 고지는 일찌감치 넘었을 것이다. 이승엽이 그동안 기록한 1호 홈런부터 400호 홈런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본다.  
 
 
이승엽(40)은 청소년 시절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좌완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3년 청룡기대회에서는 발군의 실력으로 맹활약하며 12년 만에 모교에 우승기를 안겼다. 그는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승엽은 거듭 활약을 펼치며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고3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타자로 전향했다. 당시 부상이 오늘의 금자탑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 1∼100호  ]
[1995-1999년]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능에서 총점 40점 이하를 기록해 대학 진학 자격을 잃게 됐다. 이 때문에 이승엽은 연고 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3200만원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으로 1995년 연고팀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좌완투수 유망주였지만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삼성 입단 초기부터 투수훈련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우용득 감독과 타격코치는 이승엽에게 배팅 재능이 있음을 알아봤다. 사실상 그는 청룡기 결승전에서 결승홈런을 쳤으며,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타자로만 활약해 홈런상과 득점상을 받은 바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돌연 이승엽을 타자로 전향시켜 1년간 타자로 기용한다.  
 

그의 첫 번째 홈런은 1995년 5월2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를 상대로 뽑아냈다. 당시 그는 만으로 18세였다. 이승엽은 데뷔 첫 시즌 타율 0.285에 13홈런으로 신인으로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같은 팀인 이동수에게 밀려서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1996년 삼성라이온즈에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다. 백 감독은 이승엽에게 외다리타법을 전수했다. 그는 두 번째 시즌을 조정기로 보내며 전 시즌보다 저조한 기록으로 홈런 9개를 치며 3할의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이승엽이 다음 시즌 홈런제조기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400호 홈런 신기록
영원한 홈런왕…일본까지 합치면 559개
 
1997년 이승엽은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화려한 타선의 중심축에 서게 된다. 그는 3할을 쳐내는 정교함과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타격 본능으로 팬들에게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해 이승엽은 홈런 23개(1위), 타점 114개(1위), 최다안타 170개(1위)를 기록한다. 정규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998년 이승엽의 기량은 더욱 무르익었다. 이미 전반기에만 홈런 25개를 때리며 2위와 8∼9개 차이를 벌렸다. 홈런왕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뒤에서 좇아오던 두산 베어즈의 타이론 우즈가 9월과 10월에만 11개의 홈런을 추가하면서 이승엽을 앞질렀다. 이에 반해 이승엽은 후반기 들어 좀처럼 홈런을 치지 못했다. 결국, 그해 홈런왕은 타이론 우즈가 됐다. 이승엽은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했다.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을 빼앗긴 뒤 이승엽에게 남은 것은 독기뿐이었다. 그는 1999년 5월5일 홈구장인 대구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100홈런을 뽑아냈다. 당시 22세로 최연소 100호 홈런 고지를 정복했다. 
 

[101∼200호 ]
[1999-2001년]
 
이승엽은 1999년 8월까지 약 3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7월에 이미 전년 타이론 우즈가 세운 42개 홈런을 돌파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50홈런을 치며 신기원을 이뤄냈다. 한화 이글스의 장종훈이 40홈런 시대를 연 지 7년 만에 기록을 깬 것이다. 그는 홈런 54개(1위), 타점 123개(1위), 득점 128점(1위), 출루율 0.458(1위), 장타율 0.733(1위)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000년과 2001년은 이승엽에게 위기의 시기였다.
 
 
외다리타법의 약점이 드러나자 2000년에는 홈런 36개와 2001년에는 홈런 39개를 기록했다. 지나 시즌 50홈런을 기록한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타율도 0.279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만 24세이던 2001년 6월21일 대구 홈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200홈런을 달성했다. 외다리타법이 약점이 됐지만 꾸준한 기량을 과시했다.
 
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일본과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려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2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경쟁을 벌여 홈런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해 한국시리즈 LG 트윈스와의 6차전 경기에서 마지막 타석 전까지 20타수 2안타로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는다. 9회말 이승엽은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나온 마해영의 끝내기홈런으로 이어져 삼성 라이온즈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수훈을 세웠다. 비록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지만, 이승엽은 시즌MVP, 홈런왕, 골든글러브 1루 부분을 수상했다. 
 
[201∼300호 ]
[2001-2003년] 
 
이승엽에게 2003년은 전성기였다. 타격폼을 수정한 그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6월22일 대구구장, 이날은 이승엽의 300홈런 볼을 잡기 위해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팀이 2대3으로 뒤지던 8회말 이승엽은 초구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자 주저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홈런임을 직감한 그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경기장을 돌았다. 300홈런을 축하하는 축포가 달구벌 경기장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날은 단순히 300홈런만 기록한 날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이승엽의 경기수는 1075경기로 아쉽게도 일본 다부치 고이치가 기록한 세계 최소기록인 1072경기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승엽의 당시 나이는 26세로 일본 왕정치(27세)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무려 5개월 앞당겼다. 
 
이날 동점이던 9회말 2사 만루에서 생애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대기록을 자축했다. 9시즌 만에 3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은 종전 장종훈이 14시즌 만에 달성한 기록을 5시즌이나 앞당겼다. 경기수로는 490경기, 타수로는 1271타수를 줄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해 이승엽이 몇 개의 홈런을 치느냐로 모아졌다. 그는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03년 9월25일 광주 KIA전에서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5홈런을 뽑아냈다. 그 당시 이승엽의 홈런 타구가 많이 나오는 우측 외야 쪽부터 관중석이 꽉 채워졌다. 관중들은 그곳에서 역사적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를 들고 있었다. 이승엽의 55홈런볼의 가치는 현재 1억2500만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한 일본 왕정치(55홈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승엽이 한 번만 홈런을 때리면 아시아의 신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당시 모든 관심은 이승엽의 신기록 달성 여부에 모였다. 수십명의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매일같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좀처럼 남은 홈런 한 개를 추가하지 못했다. 
 
10월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는 이승엽이 홈런을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날 이승엽은 2회초 공격 4번타자로 나왔다. 선발투수가 던진 공을 통타한 그는 드디어 56호 홈런을 기록했다. 일본의 왕정치가 1964년 55개의 홈런을 터뜨린 후 무려 39년 만에 나온 대 신기록이었다. 이날은 이승엽이 ‘국민타자’로 거듭난 날이었다.
 
[301∼400호 ]
[2004-2015년] 
 

이승엽은 이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되고 FA자격을 얻게 됐다. 그의 거취는 야구팬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승엽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하고 있었다. 팬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인 그가 최고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며 미국 진출은 불투명해졌다.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12월 일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한다. 이후 약 8년간 일본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승엽은 한국에서 화려했던 전성기와 달리 일본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복과 부침이 심했다. 그의 야구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껴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2011년 10월21일 이승엽은 기자회견을 열어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귀국했다. 그해 12월5일 연봉 8억원, 플러스옵션 3억원에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2년에는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13시즌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는 KIA 타이거즈의 나지완과 결승대결에서 6대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을 맛봤다. 두산 베어스와 맞붙었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타격 부진이 계속되어 7경기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1일 대구에서 열린 7차전까지 단 한 점의 타점을 뽑아내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타격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국민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4년 6월14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7월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쓸어담았다. 9월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을, 한 달 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투수서 타자로 전환
세계 최연소 100홈런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였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역대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8리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다. '회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 6월3일 이승엽은 포항야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3회말에 투수 구승민을 상대로 두 번째 타석에 올랐다. 이승엽은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2구를 우익수 뒤로 날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기록했다.
 
개인통산 400홈런은 1982년 KBO리그가 출범한 이후 34시즌 만의 첫 기록으로 이승엽은 1995년 데뷔 이후 13시즌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역선수 중 2위는 NC 다이노스의 이호준으로 그는 299홈런으로 이승엽에 100개 이상 뒤져있다. 
 
역대 KBO에서 30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양준혁(351홈런), 장종훈(340홈런), 심정수(328홈런), 박경완(314홈런), 송지만(311홈런), 박재홍(300홈런) 등 총 7명이다. 이승엽을 제외하면 심정수가 15시즌으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고, 박경완은 23시즌을 소화했다.  
 
이승엽의 개인통산 400홈런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기록인 만큼 의미가 깊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총 70명뿐이다. 147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52명. 80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18명만이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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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