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400홈런 달성 국민타자 이승엽

‘라이언킹’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라이언킹’ 이승엽이 기어이 400홈런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이다. 한국과 일본 무대 홈런을 합치면 559개다.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400 고지는 일찌감치 넘었을 것이다. 이승엽이 그동안 기록한 1호 홈런부터 400호 홈런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본다.  
 
 
이승엽(40)은 청소년 시절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좌완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3년 청룡기대회에서는 발군의 실력으로 맹활약하며 12년 만에 모교에 우승기를 안겼다. 그는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승엽은 거듭 활약을 펼치며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고3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타자로 전향했다. 당시 부상이 오늘의 금자탑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 1∼100호  ]
[1995-1999년]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능에서 총점 40점 이하를 기록해 대학 진학 자격을 잃게 됐다. 이 때문에 이승엽은 연고 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3200만원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으로 1995년 연고팀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승엽은 좌완투수 유망주였지만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삼성 입단 초기부터 투수훈련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우용득 감독과 타격코치는 이승엽에게 배팅 재능이 있음을 알아봤다. 사실상 그는 청룡기 결승전에서 결승홈런을 쳤으며,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때도 타자로만 활약해 홈런상과 득점상을 받은 바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돌연 이승엽을 타자로 전향시켜 1년간 타자로 기용한다.  
 

그의 첫 번째 홈런은 1995년 5월2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를 상대로 뽑아냈다. 당시 그는 만으로 18세였다. 이승엽은 데뷔 첫 시즌 타율 0.285에 13홈런으로 신인으로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같은 팀인 이동수에게 밀려서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1996년 삼성라이온즈에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다. 백 감독은 이승엽에게 외다리타법을 전수했다. 그는 두 번째 시즌을 조정기로 보내며 전 시즌보다 저조한 기록으로 홈런 9개를 치며 3할의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이승엽이 다음 시즌 홈런제조기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400호 홈런 신기록
영원한 홈런왕…일본까지 합치면 559개
 
1997년 이승엽은 본격적으로 장타에 눈을 뜬다. 이때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화려한 타선의 중심축에 서게 된다. 그는 3할을 쳐내는 정교함과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타격 본능으로 팬들에게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해 이승엽은 홈런 23개(1위), 타점 114개(1위), 최다안타 170개(1위)를 기록한다. 정규시즌 MVP와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998년 이승엽의 기량은 더욱 무르익었다. 이미 전반기에만 홈런 25개를 때리며 2위와 8∼9개 차이를 벌렸다. 홈런왕 자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뒤에서 좇아오던 두산 베어즈의 타이론 우즈가 9월과 10월에만 11개의 홈런을 추가하면서 이승엽을 앞질렀다. 이에 반해 이승엽은 후반기 들어 좀처럼 홈런을 치지 못했다. 결국, 그해 홈런왕은 타이론 우즈가 됐다. 이승엽은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했다.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을 빼앗긴 뒤 이승엽에게 남은 것은 독기뿐이었다. 그는 1999년 5월5일 홈구장인 대구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100홈런을 뽑아냈다. 당시 22세로 최연소 100호 홈런 고지를 정복했다. 
 

[101∼200호 ]
[1999-2001년]
 
이승엽은 1999년 8월까지 약 34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7월에 이미 전년 타이론 우즈가 세운 42개 홈런을 돌파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50홈런을 치며 신기원을 이뤄냈다. 한화 이글스의 장종훈이 40홈런 시대를 연 지 7년 만에 기록을 깬 것이다. 그는 홈런 54개(1위), 타점 123개(1위), 득점 128점(1위), 출루율 0.458(1위), 장타율 0.733(1위)을 기록하며 타격 5관왕에 올랐다.
2000년과 2001년은 이승엽에게 위기의 시기였다.
 
 
외다리타법의 약점이 드러나자 2000년에는 홈런 36개와 2001년에는 홈런 39개를 기록했다. 지나 시즌 50홈런을 기록한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 타율도 0.279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만 24세이던 2001년 6월21일 대구 홈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200홈런을 달성했다. 외다리타법이 약점이 됐지만 꾸준한 기량을 과시했다.
 
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일본과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때려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2002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의 심정수와 홈런경쟁을 벌여 홈런 47개를 기록해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해 한국시리즈 LG 트윈스와의 6차전 경기에서 마지막 타석 전까지 20타수 2안타로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는다. 9회말 이승엽은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나온 마해영의 끝내기홈런으로 이어져 삼성 라이온즈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는 수훈을 세웠다. 비록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지만, 이승엽은 시즌MVP, 홈런왕, 골든글러브 1루 부분을 수상했다. 
 
[201∼300호 ]
[2001-2003년] 
 
이승엽에게 2003년은 전성기였다. 타격폼을 수정한 그는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6월22일 대구구장, 이날은 이승엽의 300홈런 볼을 잡기 위해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팀이 2대3으로 뒤지던 8회말 이승엽은 초구 직구가 가운데로 몰리자 주저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홈런임을 직감한 그는 두 팔을 번쩍 들며 경기장을 돌았다. 300홈런을 축하하는 축포가 달구벌 경기장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날은 단순히 300홈런만 기록한 날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이승엽의 경기수는 1075경기로 아쉽게도 일본 다부치 고이치가 기록한 세계 최소기록인 1072경기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승엽의 당시 나이는 26세로 일본 왕정치(27세)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을 무려 5개월 앞당겼다. 
 
이날 동점이던 9회말 2사 만루에서 생애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대기록을 자축했다. 9시즌 만에 3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은 종전 장종훈이 14시즌 만에 달성한 기록을 5시즌이나 앞당겼다. 경기수로는 490경기, 타수로는 1271타수를 줄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해 이승엽이 몇 개의 홈런을 치느냐로 모아졌다. 그는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2003년 9월25일 광주 KIA전에서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5홈런을 뽑아냈다. 그 당시 이승엽의 홈런 타구가 많이 나오는 우측 외야 쪽부터 관중석이 꽉 채워졌다. 관중들은 그곳에서 역사적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를 들고 있었다. 이승엽의 55홈런볼의 가치는 현재 1억2500만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승엽은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한 일본 왕정치(55홈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승엽이 한 번만 홈런을 때리면 아시아의 신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당시 모든 관심은 이승엽의 신기록 달성 여부에 모였다. 수십명의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매일같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관심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좀처럼 남은 홈런 한 개를 추가하지 못했다. 
 
10월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는 이승엽이 홈런을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당연히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날 이승엽은 2회초 공격 4번타자로 나왔다. 선발투수가 던진 공을 통타한 그는 드디어 56호 홈런을 기록했다. 일본의 왕정치가 1964년 55개의 홈런을 터뜨린 후 무려 39년 만에 나온 대 신기록이었다. 이날은 이승엽이 ‘국민타자’로 거듭난 날이었다.
 
[301∼400호 ]
[2004-2015년] 
 

이승엽은 이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되고 FA자격을 얻게 됐다. 그의 거취는 야구팬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승엽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희망하고 있었다. 팬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인 그가 최고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며 미국 진출은 불투명해졌다. 그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12월 일본의 지바 롯데 마린스와 계약한다. 이후 약 8년간 일본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승엽은 한국에서 화려했던 전성기와 달리 일본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복과 부침이 심했다. 그의 야구인생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껴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2011년 10월21일 이승엽은 기자회견을 열어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귀국했다. 그해 12월5일 연봉 8억원, 플러스옵션 3억원에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2년에는 타율 0.307,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해 여전히 강타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홈런 7타점을 기록,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홈런 타이기록을 수립했고 6차전에서 결정타였던 싹쓸이 3루타를 기록하며 데뷔 후 첫 번째이자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13시즌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는 KIA 타이거즈의 나지완과 결승대결에서 6대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을 맛봤다. 두산 베어스와 맞붙었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타격 부진이 계속되어 7경기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1일 대구에서 열린 7차전까지 단 한 점의 타점을 뽑아내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타격자세 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역대 최고령 3할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국민타자의 부활을 알렸다. 2014년 6월14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7월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타점을 쓸어담았다. 9월10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역대 최고령 30홈런을, 한 달 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으로 최고령 시즌 100타점을 돌파했다. 
 
투수서 타자로 전환
세계 최연소 100홈런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부진하였지만 2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타이론 우즈를 제치고 포스트시즌역대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시즌 기록은 3할8리 32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다. '회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 6월3일 이승엽은 포항야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3회말에 투수 구승민을 상대로 두 번째 타석에 올랐다. 이승엽은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2구를 우익수 뒤로 날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통산 400홈런을 기록했다.
 
개인통산 400홈런은 1982년 KBO리그가 출범한 이후 34시즌 만의 첫 기록으로 이승엽은 1995년 데뷔 이후 13시즌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역선수 중 2위는 NC 다이노스의 이호준으로 그는 299홈런으로 이승엽에 100개 이상 뒤져있다. 
 
역대 KBO에서 30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양준혁(351홈런), 장종훈(340홈런), 심정수(328홈런), 박경완(314홈런), 송지만(311홈런), 박재홍(300홈런) 등 총 7명이다. 이승엽을 제외하면 심정수가 15시즌으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고, 박경완은 23시즌을 소화했다.  
 
이승엽의 개인통산 400홈런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기록인 만큼 의미가 깊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한 선수는 총 70명뿐이다. 147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52명. 80년 일본프로야구에서는 18명만이 400홈런의 위업을 달성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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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