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비운의 성완종 파란만장 인생사

억울해서 극단적 선택? 궁지몰려 비극적 결말?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나는 MB맨이 아니다"라며 검찰의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다음날 그는 유서를 남긴 채 돌연 잠적하면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날은 해외자원개발 비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떵떵거리는 삶을 누렸던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1951년생으로 충남 해미에서 태어났다. 너무나 가난했던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엄마를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외삼촌이 쥐어준 10원짜리 지폐 몇 장과 엄마가 식모살이한다는 집 주소뿐이었다. 이후 그는 서울 영등포의 한 교회에 머물며 신문팔이와 약국 심부름을 했다. 하루 15시간씩 중노동을 하며 돈을 모았다. 
 
여야 넘나드는 
정치권 인맥들 
 
1970년 성 회장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화물운송업을 시작했다. 1976년 서산토건 지분을 인수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30대 중반 대전과 충남지역 3위 건설업체였던 대아건설을 인수했다. 성 회장은 회사가 안정되자 1991년 사재 31억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서산장학재단은 수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학과 학술·교육사업, 문화 및 사회복지사업을 벌여왔다. 
 
2000년 성 회장은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들로 구성된 ‘충청포럼’을 창립했다. 생전 그의 화려한 인맥의 원천도 바로 충청포럼이다. 특히 성 회장은 여야와 정권을 넘나들며 탄탄한 정치권 인맥을 구축했다. <일요시사>가 보도한 “‘특사만 2번’ 성완종 인맥창고 충청포럼 해부”에 따르면 성 회장은 충청포럼을 통해 여야 가리지 않고 상당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은 실로 화려하다. 특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충청포럼 창립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충청포럼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성 회장과 경남기업의 인연은 2003년부터 시작된다. 주택건설을 통해 자본금을 마련한 그는 해외시장 진출을 고민했다. 성 회장은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경남기업에 눈독을 들였다. 당시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등 경영 부침을 겪었다. 성 회장은 대아건설을 통해 경남기업 지분 51%를 확보했다. 경남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국내 도급순위 20위권 중반의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일약 대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그가 기업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성 회장은 평소 경남기업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강조했다. 주인이 수차례 바뀌기는 했지만 건축과 토목 부문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업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62년 도급순위 30위권 건설기업 중 최근까지 순위를 유지한 업체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경남기업이 유일하다.
 
성 회장은 정치인형 기업인이만 막상 정치권에서는 유독 부침을 겪었다. 
그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6대 총선부터다. 당시 충청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민련 공천을 받으려다가 탈락했다. 2003년 김종필 총재의 특보단장을 맡으면서 자민련 전국구 2번으로 공천을 받았지만 득표율이 저조해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자원외교 검찰 수사받다 목숨 끊어
전날 무혐의 호소 눈물의 기자회견
 
성 회장은 2007년 대선 때는 당시 한나라당의 경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를 측면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이 이름을 바꾼 선진통일당의 공천으로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산-태안에서 당선돼 초선의원이 됐다. 이후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하면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됐다. 하지만 얼마 뒤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당선무효형이 선고 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성 회장과 경남기업은 파란만장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어도 매번을 기사회생해 살아났다. 이 때문에 언론은 성 회장과 경남기업이 매번 역대 정권에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번 특별사면
3번 워크아웃
 
경남기업은 1951년 설립되며 국내 건설업체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경남기업은 해외건설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경남기업의 굴곡진 역사는 1988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대우그룹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우 계열사로 편입됐다. 하지만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떨어져 나왔다. 이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남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됐고 같은 해 8월 워크아웃을 처음으로 신청하게 된다.
 
2003년 성 회장은 경남기업을 인수했다. 이후 매출액 2조원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 위기가 터졌다. 이로 인해 경남기업은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자금난에 시달려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경남기업은 2011년 워크아웃 조기 졸업을 했다. 하지만 2013년 다시 경남기업은 고질적인 자금난으로 회사는 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생전 성 회장은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성 회장은 2004년 자민련 불법정치자금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5년 5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성 회장은 집행유예 잔형이 면제됐다.  
 
성 회장은 특사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한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돼 다시 기소됐다. 행담도 개발사업 공사시공권을 받은 대가로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에게 120억원을 빌려준 혐의로 1·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7년 12월31일 재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또 다시 특별 사면을 받았다. 

맨주먹으로 성공 ‘자수성가 기업인’
종자돈 200만원으로 2조 그룹 일궈
 
2012년 성 회장이 국회의원이 된 해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2011년 총선을 앞둔 당시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구 주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가을 음악회 공연을 무료 관람토록 했다. 또 충남 지역 유력단체인 충남자율방범연합회에 청소년 선도 지원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기부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기부행위라며 유죄를 판단해 성 회장에게 국회의원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선거법상 실형이나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국회의원직이 상실된다. 성 회장은 즉각 항소했다. 2심에선 청소년 선도 지원금 혐의만 인정돼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됐다. 이 역시 당선무효형이었다.  
 
 

이후 성 회장은 곧바로 경남기업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가 국회의원이 돼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당시 경남기업의 부채비율은 200%가 넘었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는 워크아웃 중인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성 회장은 복귀 후 베트남 서기장을 만나 상호 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등 경남기업을 살리기에 주력했다. 성 회장은 경남기업의 자산매각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1조원이 웃도는 차입금과 금융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법정관리 절차를 개시했다.
 
성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16층 뱅커스클럽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 회장은 최근 자원외교 비리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 가운데 그는 “나는 MB맨이 아니다”라며 자신을 향해 겨눠진 검찰의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이명박맨?
박근혜맨?
 
입장 발표에서 그는 “기업과 정치를 하면서 부끄러운 적은 있어도 파렴치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정직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계에 대해 “2007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추천을 받았으나 첫 회의 참석 후 중도 사퇴했다”며 말했다. 이어 “2012년 총선 선진통일당 서산태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새누리당과 합당 이후 대선 과정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며 이명박 정권과 결탁해 특혜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성 회장은 “2013년 워크아웃 신청도 당내가 현역 국회의원이었지만 어떠한 외압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성 회장은 해외자원개발 과정 300억원의 융자금을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성공불융자금은 해외 자원개발에 참여하는 기업은 모두 신청할 수 있다”며 “당사의 모든 사업은 석유공사를 주간사로 해 한국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유독 경남기업만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기업은 2011년까지 총 1342억원을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했다. 석유 및 가스탐사 사업 4건에 653억을 투자했다”며 “이 중 321억원은 성공불 융자로 지원받고 332억원은 지자체자금으로 투자해 모두 손실처리해 회사도 큰 손해를 봤다”고 강조했다. 
 
성 회장은 “경남기업이 암보토비 니켈 사업에 지분율 2.75%로 참가해 689억원을 투자했다. 이중 에너지 특별융자로 127억원을 받았지만 대우인터내셔널에서 해당 지분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성 회장은 “잘못 알려진 사실로 인해 한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아 참담하다. 왜 내가 자원외교의 표적 대상이 됐는지, 있지도 않은 일들이 마치 사실인 양 부풀려졌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흐느껴 울기도 했다.
 
지난 9일 성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그는 10시간 만에 서울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m 떨어진 나무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성 회장은 2m 높이의 나뭇가지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였다. 
 
성 회장은 이날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유서에는 “나는 결백한 사람이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는 억울하다.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자살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은 오전 9시 경남기업의 기업회생절차 법정관리인이 취임하는 날이었다. 또 오전 10시 성 회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일 800억원대 융자금 사기 대출과 9500억원대 분식회계를 통해 250억원가량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횡령·사기 등)로 성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성 회장의 수사 방식의 적절성 여부에 논란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수사 받던 중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자원 개발 비리는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안이어서 흔들림 없이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서 내용은?
공개시 후폭풍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던 태풍이 성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역풍을 맞은 꼴이 됐다. 성 회장이 생전 전·현 정부 주요 인사 등 정치권과 친분을 맺어왔다. 그는 죽기 전에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 자신에게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그의 시신에서 발견된 메모에 거론된 인물만 보더라도 일각에서는 ‘성종완 리스트’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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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