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사고 1년…’ 지금도 피눈물 흘리는 세월호 유가족

아물지 않는 상처 끝나지 않은 싸움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참사의 안타까움과 충격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16일에 머물며, 그날의 충격과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지난해 4월18일 사고 발생 3일 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한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어 4월20일 유가족들은 “수색에 아무 진척이 없으며,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며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진실 묻힌채
힘겨운 사투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던 유가족들은 대통령에게도 알려야 한다며 청와대에 항의 방문을 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저지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갓길로 빠져나와 서울을 향해 걸어갔지만, 경찰이 다시 막아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5월7일 실종자·생존자·유가족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아이들 휴대전화를 복구하는 데 있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를 거부한다”며 “대책위가 해경으로부터 일괄 수거해 직접 복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정부가 실종자를 조속히 구조하고 진상조사를 철저히 할 것을 촉구했다. 또 “검찰의 수사 내용과 더불어 해경·검찰이 수거한 휴대전화의 문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가족들은“가장 중요했던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이틀 이상 지연된 점 등을 철저히 진상규명하라”고 요구하면서 ▲검찰의 수사내용을 가족 대책위에 공개할 것 ▲해경 또는 검찰이 수거한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수사내용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철저한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해줄 것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함께 도와줄 것 등을 호소했다. 대책위는 “내 아이가 안전한 나라, 단 한 명의 국민도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는 국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함께 외치고 행동해줄 것을 국민들에게 부탁했다.
 
 
대책위는 5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즉각적으로 가동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밤샘 협상에도 여야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계약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원내대표가 “세월호의 선장이나 1등 항해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7월1일 국회에서 진행한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가 열렸다. 하지만 조사위원회 일부 여당 의원들의 불성실한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조사 중 일부 의원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며,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은 보고 기관의 책임 소재와 무관하다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또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유가족이 지지부진한 국정조사를 질타하자 “경비는 뭐하느냐?” 등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책위는 여야가 진도 현장 기관보고 여부를 두고 충돌해 국정 조사가 파행한 것에 대해 “국회가 국정조사를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규탄했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 점점 희미
유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4월16일
 

7월2일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버스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대책위는 이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순회버스를 시작하는 취지를 설명했다.
 
7월14일 유가족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10명은 국회 본청 앞에서, 5명은 광화문 등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가족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특별위원회 구성 ▲특별위원회의 충분한 활동기간 보장 ▲특별위원회 내에 전문적 소위원회 구성 ▲특별위원회에 특검수준의 독립적 수사·기소권 보장 ▲참사 재발방지대책의 지속적 시행 보장 등이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전례가 없고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며 특별법의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7월17일 대책위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이 특별법을 반대하는 것은 진상규명의 칼날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대통령은 우리를 청와대에 불러 약속한 특별법 제정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해달라”고 성토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중인 유가족들이 잇따라 구급대에 실려 갔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며칠째 이어진 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각종 루머 유포
고인 모독 심각
 
8월11일 팽목항에서 유가족은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 10명을 하루빨리 수습해 줄 것과 유가족들의 뜻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에서 8월7일의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을 사실상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월8일 유가족들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추석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기림상을 차렸다. 평소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 한 가지씩을 준비해서 함께 상을 차렸다. 기림상을 걷은 후엔 유가족 가운데 일부는 팽목항으로 향했다. 나머지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11월18일 대책위는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하루 빨리 인양해 실종자를 찾고 싶다. 인양은 침몰 당시 상황을 알아내 진상규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인양은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할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계속해서 재정적 검토와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인양 사전 조사를 담당하는 TF팀이 꾸려진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이 없는 조직이다 보니 유가족들의 불안감은 커지기만 했다.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인양 논의가 더디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는데, 이 장관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12월20일 대책위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원회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체육관에서 참사 이후 도움을 준 시민들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행사에는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을 위로한 안산시민과 자원봉사자, 단원고 3학년 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노란 목도리, 배지 등을 착용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이날 또 새누리당 몫으로 추천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 5명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열렸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와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150명이 참석해 새누리당 추천 조사위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5년 1월1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18개월 동안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진상 조사 기관인 세월호가족대책협의회도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대책위는 ‘엄마의 따뜻한 밥상’ 행사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시민 등을 합동분향소에 초청해 떡국을 대접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예전 같으면 벅찬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했겠지만 지금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295명 희생의 아픔을 가슴에 묵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은 다시 한번 선체인양을 요구했다.
 
그동안 특별법과 관련해 보상 문제와 대학특례입학, 의사상자 지정 등의 논란이 있었다. 언론은 유가족들이 이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피해자 전원을 의사자와 의상자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정치권에 제안한 적이 없다. 대책위가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마련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에도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의사상자로 지정한다는 취지의 내용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해 7월3일 발표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 담겨있다. 
 
“더이상 못봐줘”
48명 단체 삭발
 

당시 전해철·부좌현 의원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에는 “세월호 희생자 전원과 피해자를 ‘의사상자’로 인정해 예우해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의사상자 지정을 두고 논란이 일자, 세월호 특별법 여야 TF팀은 기존 의사상자와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을 ‘4·16국민안전의인’으로 별도 지정해 명예를 예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전 의원은 “의사상자 지정이 보상에 집중돼 있다면, 4·16국민안전의인 지정에 따른 조치는 명예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원고 학생을 위한 ‘대학 특례입학’ 방안 역시 대책위 청원 특별법안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요구한 적도 없다는 게 유가족들의 증언이다. 세월호 피해 학부보는 “교육청이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특례입학 얘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지지하는 여론이 돌아설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해 7월15일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안을 병합 심사해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 학생 대입지원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피해를 입은 학생의 대입 지원을 위해 ‘정원 외 입학’ 근거를 마련한다는 게 법안 내용의 핵심이다. 유은혜 의원은 “피해 학생 대입지원 특별법안을 두고 피해 가족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특혜를 준다는 쪽으로 소문이 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참사 이후 성적이 급격 하락해도 내신 성적 수준에 맞게 대학 원서를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법안 골자”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단원고 3학년은 무조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입학을 강제하는 내용이 아니다.  
 
숨기기 바쁜 정부…나몰라 국회
정치권·언론 희생양으로 전락
 
특별법 제정 요구가 한창일 때 유가족들이 보상 때문에 특별법을 원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책위가 청원한 특별법안에는 보상과 관련해 ‘국가 책임의 원칙’ 정도만 언급된 정도다. 당시 유가족들은 정부와 보상 문제를 두고 공식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오히려 피해 보상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라고 밝혔다.
 
향후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사고 원인 등을 규명할 수 있으려면 조사권과 기소권을 특별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유경근 대책위 대변인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부터 밝혀달라고 했지 언제 돈 달라고 한 적 있느냐”며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 조치부터 제대로 마련해주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참사가 일어나고 온 국민이 충격과 애도를 이어갈 때 인터넷에는 세월호 관련 악성글이 난무했다. 당시 확인된 글만 150여건이 넘었다. 네이버조차 악플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림이나 노래로 희생자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등 정상인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글들이 쏟아졌다. 특히 커뮤니티 ‘일베’에서 한 회원이 단원고 실종 여자 교사와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 모욕 및 여성을 비하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글과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검거됐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일베에 올라온 비슷한 글을 보고 자신도 호기심이 생겨 글을 썼다고 진술했다. 무엇보다 이 글쓴이는 여자였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일부러 비하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 과정 진술했다. 이 일베 회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유가족들을 외부 선동꾼으로 매도하는 유언비어도 인터넷에 퍼졌다. 대표적으로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부 욕하던 사람 중에 유가족인 척하는 이가 있다” 등의 유언비어다. 이 유언비어를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진짜인 것처럼 이를 SNS에 퍼뜨려 논란이 됐다. 그러나 당사자가 실제 실종자 유가족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게 되자 권 의원은 22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대국민 공개사과를 한 뒤 해당 글과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다.
 
1주기를 앞두고 유독들은 끝내 머리를 밀었다. 삭발식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가족뿐 아니라 실종자 가족, 생존학생 가족, 등 52명이 함께했다. 이 중 48명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명은 같은 시간 진도 팽목항에서 삭발했다. 이들이 단체 삭발을 감행한 이유는 지난 1일 정부의 배·보상 기준 발표 때문이다. 이후 언론에서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이 1인당 8억2000만원을 보상금으로 받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돈? 집어치워”
인양까지 거부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모든 배상 및 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 150여명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참사 1주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선체 인양을 통한 실종자 완전 수습과 철저한 진상규명이지 배상과 보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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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