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동영 전 의원의 한 핵심측근은 정 전 의원이 출마선언을 하기 불과 며칠 전까지도 <일요시사>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전 의원이 관악을에 출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정 전 의원의 입장은 불과 며칠 만에 180도 바뀌었다. 주변의 출마 압박에도 한동안 불출마를 고집하던 정 전 의원이 갑자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띄운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정 전 의원의 관악을 출마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봤다.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 관악을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정 전 의원은 “관악을 선거는 ‘이대로가 좋다’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국민 간의 한판 대결”이라며 “저를 그 도구로 내놓아 정면승부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승부수
정 전 의원은 출마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며 “제가 무엇이 되고 안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자신의 출마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제일 먼저 정 전 의원의 출마를 비난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분이 야권 분열에 앞장서고 나선 점은 우리 국민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개탄스러운 처사”라며 “정동영 후보의 출마는 어렵게 살려가고 있는 정권 교체의 불씨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정 전 의원의 이날 관악을 출마선언은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 전 의원은 이번 재보선에는 불출마한 후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전북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이미 지난달 3일 전북에서 국민모임 지지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세 모으기 작업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한 상태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전북 출신 인사 105인이 정 전 의원이 몸담고 있는 국민모임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국민모임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 전 의원에게 4월 재보선 관악을 출마를 간곡히 요청하고 있었지만 정 전 의원이 그동안 불출마 입장을 고집했던 것도 내년 전북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이야기가 정치권에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일각에선 정 전 의원이 전북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과 힘을 합친다면 호남판 자민련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정 전 의원으로서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전북 출마를 끝까지 고집하는 편이 유리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 전 의원은 왜 갑자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띄운 것일까?
현재 정치권에서는 정 전 의원의 관악을 출마와 관련해 온갖 풍문들이 나돌고 있다. 그동안 정 전 의원의 관악을 출마를 가장 강력하게 설득해온 인물은 국민모임의 김세균 공동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난 몇 달간 김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승리 확신
재보선 전패로 창당 동력 상실 우려
따라서 김 대표가 최근 정 전 의원에게 뭔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임을 전제한 후 “내가 듣기로는 정 전 의원이 관악을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김 대표가 국민모임에서 나가겠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안다”며 “김 대표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한 측근은 “그런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 전 의원은 그야말로 사심 없이 기존 기득권 정치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번 재보선에서 국민모임이 단 한 석도 얻지 못한다면 향후 창당 동력이 급격히 상실될 수 있다는 점도 정 전 의원이 출마를 결심을 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또 정 전 의원과 김희철 전 의원의 연대설도 나돈다. 김희철 전 의원은 관악을 새정치연합 당내 경선에서 현 정태호 후보와 맞붙어 불과 0.6%차이로 낙천한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의 앙금으로 인해 정 후보를 돕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은 전북 출신으로 관악을 지역에서 강력한 호남 조직을 갖추고 있다. 정 전 의원과는 동향이기도 하다.
정 전 의원으로서는 김 전 의원이 선거 기간 내내 중립만 지켜줘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이에 대해서도 정 전 의원 측은 “김 전 의원 측이 우리를 도와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김 전 의원과 접촉한 적은 없다”며 “전부 시중에 떠도는 낭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정 전 의원이 관악을 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한 방은 바로 높은 지지율이었다.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정 전 의원이 관악을에 출마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의 한 측근은 “통합진보당 후보와는 단일화하지 않겠지만 정의당, 노동당과는 단일화를 할 예정이다. 새누리당 후보나 새정치연합 후보 그 누구랑 붙어도 해볼만 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측근은 “서울 출마를 끝까지 거부하고 내년 총선에서 패잔병처럼 전북에 다시 돌아와 출마한다고 했을 때 과연 전북민들이 우리를 기꺼이 환영해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며 “나가서 깨지더라도 도전해봐라, 너희들이 어려운 곳에 도전했을 때 전북민들은 기꺼이 힘을 실어주겠다. 그런 목소리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관악을엔 야권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도 위협적이지만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도 7~8%의 고정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만약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다면 정 전 의원 개인뿐만 아니라 국민모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따가울 것이다.
정동영의 부활?
그러나 정 전 의원 측은 새누리당의 어부지리 승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관악을은 역대 7번의 선거에서 보수여당후보를 언제나 득표율 35% 안에 가뒀고 대표성 있는 야권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결국 야권 내의 싸움이 될 것이고 야권의 1등이 당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야당이 관악지역을 27년 동안이나 독점했지만 지역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또 관악은 야권세가 강한 지역이기도 하지만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도 30%가량이나 된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이 분열할 경우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경고한다. 과연 정 전 의원의 정치생명을 건 마지막 승부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