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물 만난 유승민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

‘할 말 하는’ 화통한 대구 사나이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짤박’(짤린 친박) 유승민(57·대구 동을) 의원이 새누리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선인 이주영 의원과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경선을 펼친 결과, 투표 참여의원 149명 중 84표를 얻어 새 원내대표로 확정됐다. 

 
유 원내대표에게는 수많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첫 번째는 ‘원박(원조박근혜)’이고, 두 번째는 ‘탈박(탈박근혜)’, 세 번째는 ‘경제정책통’이다. 거침없는 화법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일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15년간 수많은 정치적 부침을 겪다가 이룬 쾌거란 평가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앞으로 고쳐나갈 것이 많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얘기했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하자마자…
미스터 쓴소리
 
이어 “민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더 나은 대안인지 같이 고민하는 찹쌀떡 같은 공조를 이루겠다”며 “대신 대통령과 청와대 식구들, 장관들도 더 민심에 귀 기울여주고 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함께 총선 승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는 굴곡진 정치 역정을 걸어왔다. 그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여당 인사다. 정치 무대 한가운데서 화려하게 활동을 하다가도 한순간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는 1958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등을 졸업하며,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만기 제대를 했다. 이후 1987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까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특히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는 현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이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4년간 위스콘신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신고전학파 학풍과 달리 정부 개입의 필요성 등 소신을 피력하고는 했다는 후문이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위스콘신대에서 유학(박사과정)한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 경제수석과는 상반된 경제철학을 가진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정·청의 경제정책 수뇌부가 위스콘신 출신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부동산 부양 등 거시정책을 과감하게 확장 운영해야 한다는 최 경제부총리, 안 경제수석과 달리 유 원내대표는 “국가와 시장만으로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며 소규모 공동체 중심의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론’을 펴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19대 국회로 3선 반열에는 올랐지만, 그의 정치 경륜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유 원내대표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그의 젊음을 바쳤다. 이 당시 그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연구에 주력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 연구에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중장기적 ‘중부담 중복지’ 원칙을 제시하고 스스로 “외교·안보는 보수지만 복지·고용·노동 분야는 리버럴(진보)”이라고 밝힌 그의 철학이 이때 형성된 것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 TK 출신 

거침없는 화법으로 직언 날려 
 
그는 지난 2000년 초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1982년 초부터 KDI에서 15년여를 근무(미국 위스콘신대 박사와 UC샌디에이고 대학원 초빙교수 기간 제외)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사태인 1997년 말 전에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연구를 내놓았다. 당시 그의 연구주제를 보면 대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민영화 정책, 무역과 산업 정책, 규제개선, 제조업의 기술적 효율성 등 다양하다. 
 
KDI에서 같이 근무했던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는 재벌이나 경제력 집중 연구도 많이 했으며 인간성이 따뜻하고 박사 중심 엘리트주의인 KDI에서 석사 연구원을 배려하는 등 젊은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장경제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적 가치에 충실했던 학자”라며 “논리정연하고 글발 좋은 스타 박사였고 동료들과 후배들과 잘 어울렸다”고 기억했다. 다른 KDI 출신 관계자는 명문가(부친이 대구에서 13대(민정당), 14대(민자당) 의원을 역임한 유수호 전 의원) 출신이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강남좌파 느낌이 좀 났다”고 전했다.
 
경제연구에 몰두
최경환과 각세워
 
이처럼 그는 주로 학계에 몸담고 있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이다. 그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영민함과 정책 능력을 주류 정치권이 인정한 것이다. 이 전 총재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하며, 2002년 대선에서 최측근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패하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1년여 공백기를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사퇴 후 대구 동을에 출마해 지역구에 당선됐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관계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역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무엇보다 초선 시절이던 2005년 흔들리던 한나라당에 박 대통령이 대표가 돼 원군을 자청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당을 맡아 재건에 나설 당시 비서실장으로 2005년 1월부터 약 10개월간을 보필한 사람이다. 그해 유 원내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다. 이 인연이 이어져 그는 2007년 이명박 당시 후보 측과 벌인 전대미문의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책사(정책메시지총괄단장)를 맡는 등 정치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대선 후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BBK 주가조작 사건’과 재산 은닉 의혹 등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와 관련된 온갖 의혹들을 파헤치는 ‘이명박 저격수’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내세운 대운하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국민이 가진 식수원 오염 가능성이나 환경파괴 우려에 대한 답이 안 됐다” 대운하를 비판했다. 이어 MB가 골재로 8조원을 충당하겠다는 것도 물량이 동시에 시장에 나오면 가격 폭락이 벌어지는 등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굴곡진 정치 인생사…여권의 숨은 잠룡

청와대 공개 비판 “당청관계 변화 예고” 
 
사실상 ‘유승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 유 원내대표는 활동 범위를 넓혀 이 후보 측의 강력한 네거티브 공세를 전면에서 방어하는 등 비로소 '정치인 유승민'으로 재탄생했다. 정가에서 그의 계파 성향을 원조 친박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1차 칩거'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사안별로만 자기 목소리를 냈다. 특히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친박계의 수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침묵으로 4대강 사업에 동조하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만 비판적 목소리를 계속 냈다.
 
2010년 8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남한강 이포보에서 고공농성 당시 시민단체는 야당과 함께 한나라당도 참여하는 국회 차원의 4대강 검증을 요구했다. 이때 한나라당에서는 유일하게 유승민 원내대표만이 찬성 입장을 보내왔다. 이런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한나라당 내에서는 드물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러던 중 2011년 개최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용감한 개혁’을 슬로건으로 친박계 주자로 나서 홍준표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전면에 복귀, 화려하게 지도부에 입성했다.
 
이후 ‘유승민표’ 정책을 차근차근 내놨고, 이듬해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그의 복지·분배 정책을 차용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는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 총선 직전 박 대통령이 주도한 당명 개정에 가장 강력히 반대했고, ‘충성심과 약속’으로만 똘똘 뭉친 친박의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았다. 
 

한때 친박계 선봉
지금은 짤박 신세
 
그는 비록 원조 친박이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 복지와 분재 강화라는 여권 내에서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들을 피력하면서 점차 친박 주류와 거리가 멀어졌다. 
 
박 대통령도 최근에는 그를 중용하지 않는다. 이후 비판적인 발언이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 ‘탈박’으로 분류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평가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시기다. 또한 그는 사석에서 가끔 이때를 회상하며 “최측근이었지만, 직언을 마다치 않았다”고 말하곤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도 잠시, 2012년 최구식 의원 측 비서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해 디도스 공격을 벌였던 것이 알려졌고, 급기야 5개월 만에 지도부 책임론에 밀려 총사퇴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더욱, 그는 ‘원조 친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이어 들어선 박 대통령의 비대위 체제에서 배제되면서 결국 세력권과 멀어졌다. 
 
 
이후 '2차 칩거'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였다. 그는 독특한 색깔의 ‘탈박’이고자 했다. 비박(비박근혜) 성향이 강한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을 규합해 지지그룹을 형성했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7월 전대에선 김무성 대표가 아닌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을 지원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누군가의 참모’ 이미지를 벗고 ‘자기 정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당·청 관계는 물론 여당 전반의 폭넓은 개혁을 선도할 것이란 기대다. 
 
지난해 10월에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며 청와대 비서실 인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 ‘십상시’등이 회자되면서 그날의 발언이 다시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른바 ‘K·Y설’로 정윤회씨 문건 유출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함께 거론돼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진 최준영 작가가 여·야 대권주자에 대해 짧은 평이 회자가 됐다. 그는 유 원내대표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라고 평가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이런 우호적인 평가는 입때껏 그가 보여준 상식에 맞는 행보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후 원내대표로서 어떤 행보를 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한편 유 원내대표의 등장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여전히 전략 등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정기국회 때까지 ‘증세’냐 ‘복지 축소’냐의 결론을 내겠다는 유 원내대표는 그동안 부동산 부양 등 ‘초이노믹스’에 대해 “돈만 날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세연·이종훈·민현주 의원 등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원들이 이번에 그를 집중 지원한 것도 그의 이 같은 철학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국책 싱크탱크에서 정책제언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야당에서도 서민 이슈를 선점당할까 봐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19대 총선 때 KDI 연구원 시절 작성한 논문의 중복게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과도한 흠집내기란 평가가 우세했다. 
 
유 원내대표는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총 26건의 법안 발의를 했다. 경제정책통 정치인에겐 다소 적은 개수다. 전문분야인 경제와 동떨어진 국방위원회에서 간사와 위원장을 역임했다. 최근 인권교육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부수단체의 반발에 못 이겨 철회해 아쉬움을 남겼다. 
 
새누리당 텃밭 대구에 지역구를 두고있을 뿐 아니라 대구 지역을 넘어 TK 맹주로 떠올랐다. 이 지역 의원들의 공천과 당선에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친이, 친박 이후 뚜렷한 계파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른바 ‘유승민계’를 형성해 독자 세력 가능성을 보여준다. 청와대의 관계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은 후 김무성 당 대표와 갈등 관계를 해소해 당내 기반을 강화했다.  향후 김 대표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건이다.
 
파격적인 정책들
독자세력 가능성
 
화통한 대구 사나임은 틀림없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가장 약점으로 지적된 것이 동료 의원들과 친화력이다. 대중적인 이미지 또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재산규모는 2013년 말 기준으로 30억6400만원, 지역구인 대구뿐 아니라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 일대에 약 14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유승민은?]
 
▲1958년 대구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한나라당 박근혜 선거대책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 2012년 국회 국방위원장 ▲17·18·19대 국회의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