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100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나를 따르라!’ 외친지 석 달 ‘집안 조용할 날 없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해 말 대표이사에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나선지 100일이 됐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적극적인 공격경영으로 한층 젊어진 신세계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왔다.

그러나 그의 지난 100일간의 행적은 패기만큼 논란도 함께 했다. 대표이사 취임 후 고심 끝에 내놓은 정책은 업계의 과열 경쟁만 부추긴다는 비난에 휩싸였고 롯데와의 M&A 경쟁에서는 참패했다. 지난 5일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이사에 등재되며 이제 공식적인 출범을 알리게 된 정용진호의 100일간의 행적을 되돌아봤다.

출항 후 첫 도전…이마트 앞세워 유통 가격경쟁 전면전
잇단 M&A로 광폭행보 이어가는 롯데 신동빈호에 주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총괄 대표이사 취임 이후 한 달 가량 경영 구상에 골몰했다. 입사 후 14년의 시간동안 갈고 닦은 경영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한층 젊어진 신세계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고뇌의 시간이었다. 업계는 평소 국내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를 ‘글로벌 유통 TOP 10’으로 이끈다는 포부를 밝혀온 정 부회장이 어떠한 비전을 제시할지 집중했다.

올 초 그는 신년사를 통해 정용진표 신세계의 새로운 목표를 선포했다. 이마트의 경쟁력 강화, 백화점 성장 가속화, 온라인사업 강화, 중국시장 활성화 등이 올 한 해 중점 과제로 제시됐다.

패기 가득했던 100일
올해 매출 1조원 목표

정 부회장은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온라인사업의 경우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던 다짐과 같이 정 부회장이 직접 쇼핑몰 관리에 나섰다. 그동안 계열사 신세계I&C가 운영해 오던 백화점 온라인몰인 신세계몰 사업을 최근 (주)신세계가 직접 인수한 것. 신세계는 앞서 조직을 확대 개편한 이마트몰과 함께 두 쇼핑몰을 전격 리뉴얼해 연내 온라인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겠다는 각오다.

백화점 사업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 센텀시티점 오픈, 영등포점 리뉴얼, 강남점 매장 확장 등 ‘덩치키우기’에 집중했던 신세계는 올해엔 이 같은 기반을 토대로 고객서비스를 강화해 1등 백화점으로 거듭난다는 다짐이다. 특히 올 한해는 지역 상권에 대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의 역량 강화를 위한 파격적인 행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정용진 체제 출범 이후 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이마트의 ‘신가격정책’이 그것이다. 정 부회장은 연초 10여개 핵심 생필품 가격을 업계 최저가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할인점의 본질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있다”고 강조하며 파격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펼쳤다. 평소 고객 중심의 현장 경영을 강조한 만큼 유통업의 본질적인 측면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힘쓸 것이라는 의도인 셈이다.

정용진발 가격전쟁
업계 곳곳 불협화음

연초부터 전해진 정용진발 대형마트 가격파괴 정책은 유통가 전체를 뜨겁게 달궜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등 경쟁사들이 이마트보다 ‘10원 더 싸게’를 외치며 맞불작전을 펼치자 대형마트는 일순 전쟁터로 변했다. 실제 지난 1월 대형마트의 공격적인 가격할인에 CJ 햇반, 오리온 초코파이, 서울우유, 바나나 등은 급격히 늘어난 고객들의 수요로 연이어 조기 품절됐다.

이마트의 생필품 가격인하는 삼겹살로 불똥이 튀었고 이어 라면까지 이어졌다. 특히 그동안 천정부지로 값이 솟았던 삼겹살의 경우 마트간의 가격인하 경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변동되며 ‘삼겹살 전쟁’으로 번졌다. 1월 이전 100g 1500원대였던 삼겹살 가격이 한 때 590원대로 곤두박질 쳤다. 그러나 ‘고객 중심’을 외치며 자체 마진까지 포기한 채 강행했던 정 부회장의 가격파괴 마케팅은 정작 고객들로부터 불만을 사는 의외의 결과를 나았다.

충분한 물량 공급 없이 가격인하에만 열을 올린 결과 조기 품절 사태가 이어졌고, 물품을 구입하지 못한 고객들의 불편이 증가한 것이다. 결국 일부에선 박리다매를 위한 대형마트의 생색내기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협력업체들의 반발도 컸다. 실제 지난 1월 CJ제일제당, 오리온, 서울우유 등 일부 업체들은 추가 납품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업계는 이 같은 불협화음이 협력업체와의 충분한 조율 없이 일방적인 가격인하가 강행된 데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이마트는 “이번 가격인하 정책은 제조사에 무리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마트의 마진을 줄이는 것인데 제조사들이 공급 중단을 외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 부회장 역시 ‘고객을 위해 마트의 본질을 찾겠다’며 “최저가격 판매 정책을 꾸준히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정 부회장의 야심찬 가격파괴 정책이 시행 초기부터 잡음을 낳고 있는 사이 정작 라이벌인 롯데 신동빈호는 국내외에서 선전하고 있어 그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롯데는 지난 2월 신세계,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등 유통업계 대부들이 참여한 GS백화점·마트 인수전에서 성공하면서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다.

유통가 최대 맞수인 롯데에 참패한 정 부회장은 이후 롯데에 패한 것에 대해 관련자들을 심하게 꾸짖었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세계는 이번 인수 실패로 라이벌인 롯데에게 대형마트 부문에선 추격의 발판을 제공하는 한편 백화점 부문에선 오히려 격차를 넓히게 됐다. 실제 롯데마트는 GS마트 인수로 70개인 점포를 84개로 늘려 업계 1위인 이마트(127개 점포)와의 격차를 좁히는 성과를 거뒀다.

준비 안 된 가격 인하에 고객·업계 불만 커져
공들여온 중국 유통시장 되살리기 여전히 ‘캄캄’


반대로 백화점 부문의 경우 롯데백화점은 GS백화점 인수로 29개의 점포를 확보하면서 규모면에서 업계 3위인 신세계백화점(8개 점포)과 큰 폭으로 격차를 벌이게 됐다. 롯데의 선전은 이뿐 만이 아니다. 롯데는 앞서 1월에도 편의점 바이더웨이를 인수했다. 올 들어 한 달여 동안 국내 유통업계 대형매물로 평가받은 2개 업체를 모두 집어삼킨 것이다.

이처럼 공격적인 M&A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롯데 신동빈호의 기세는 중국에서도 계속돼 정 부회장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중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딛은 롯데는 이미 66개의 현지 점포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말 상하이 등에 55개의 대형마트를 가진 중국 유통업체 ‘타임스’를 인수하면서 점포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것.

롯데의 이 같은 성장은 규모면에서 이마트(23개 점포)의 3배에 달한다. 이마트가 롯데보다 10년이나 먼저 중국에 진출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짧은 시간 롯데의 성장세는 눈부신 수준이다. 롯데는 더욱 적극적인 행보로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에만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20개 매장을 추가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글로벌 유통업체로 성장하겠다던 이마트는 10년째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기 이마트는 지속적인 출점을 통해 오는 2013년까지 중국 전역에 88개 점포를 오픈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목표치 1/4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중국 시장에 대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해마다 대규모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 중국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에만 500억원 안팎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신세계의 계획에 따르면 올 안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해야 하지만 업계는 올해 역시 200~30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정 부회장은 중국시장 활성화를 연내 중점과제로 제시하는 등 ‘중국 이마트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 초 직접 상하이로 날아가 중국 이마트의 매출 확대와 추가 출점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다. 정 부회장은 앞서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구원투수’ 정오묵 부사장을 중국으로 급파했다. 정 부사장은 이마트 1호 점장이자 국내 이마트의 성공을 이끈 대표 인물로 그동안 현직에서 물러나 유통연수원의 교수로 재직하다 정 부회장의 부름에 복귀했다.

‘승승장구’ 롯데에
정용진 위상 ‘흔들’

결국 정 부사장은 정 부회장이 고심 끝에 내민 에이스 카드인 셈이다. 현재 정 부사장은 중국 이마트의 성공을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 세우기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정 부회장의 회심의 카드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게 될 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유통시장에서 롯데의 가파른 성장세는 라이벌인 정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긴장되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중국은 이마트가 글로벌 유통업체로 성장하기 위한 전초기지인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이익 구조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 프로필>

▲1968년 출생
▲1987년 경복고 졸업
▲1994년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졸업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
▲1997년 신세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회장
▲200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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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