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개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노림수

대단한 결단…알고 보면 오너 배불리기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한라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주)한라(구 한라건설)리스크로부터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를 분리해 대주주 지배체제 강화에 총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기업분할을 놓고 만도의 현금으로 또 다시 한라의 부실을 메우기 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겉으로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정 회장 일가의 그룹 내 장악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레 회자된다.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가 분할된다. 오는 10월 만도는 새롭게 출범해 재상장된다. 만도는 지난달 28일 경기 평택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 만도로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개편

이 날 만도 전체 주주의 66%가 참석했다. 안건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12.95%)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변 없이 통과됐다. 기업분할이 완료되면 한라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남게 된다.

이날 신사현 만도 대표는 주총에서 사업 분할에 대해 “지주회사 체제 도입을 통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등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순환출자 문제도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도의 분할기일은 9월1일이다. 자산분할 비율은 0.48대 0.52로 기업 분할 절차가 완료되면 기존 만도주주들은 한라홀딩스 주식 0.48주, 제조회사인 만도 주식 0.52주씩 각각 보유하게 된다. 새롭게 출범하는 만도는 오는 10월6일 거래소에 재상장된다. 따라서 만도 주식은 오는 28일부터 10월5일까지 거래 정지된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은 지주사 한라홀딩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개편될 전망이다.


만도 분리 등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정비
부실 메우기 꼼수? 줄줄이 ‘도미노 부실’우려

현재까지는 (주)한라가 만도 지분 17.29%를, 만도가 한라마이스터 지분 100%, 한라마이스터는 (주)한라를 15.86% 보유하고 있다. 즉 한라그룹은 ‘(주)한라→만도→한라마이스터→(주)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기업은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릴 수 있다. 계열사끼리 출자해 자본금과 계열사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재벌들이 계열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적인 출자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중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부실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현행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는 계열사 간의 출자, 즉 상호 출자를 금지하고 있는데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순환출자 규모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라그룹 역시 순환출자를 통해 흑자경영을 해온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살려내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기업 분할을 통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게 한라그룹의 명분이다.

분할 재상장해
한라 간접지원?

우선 만도차이나홀딩스, 만도브로제, 만도신소재 등은 만도의 자회사로 남는다. 한라마이스터, 만도헬라, 한라스택폴 등은 한라홀딩스 자회사로 재편된다. 지주사 한라홀딩스는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한라홀딩스가 건설사 (주)한라의 모회사격인 한라마이스터를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만도 독자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한라그룹의 주장이다.

하지만 만도의 분할은 (주)한라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주)한라는 여전히 실적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주)한라는 42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만 약 3300억원이다.

만도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만도 주총에서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의 지분 13.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만도를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만도로 분리하는 내용의 기업분할 계획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한라그룹) 사업 분할 목적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주회사의 전환이라고 하지만 그간 유상증자로 현금소진이 높은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으로 조성한 자금을 사업 분할에 활용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도의 장기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직 공시된 게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할 전 157%인 만도의 부채비율은 분할 뒤 25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자산은 5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줄고, 1조235억원에 이르는 이익잉여금도 모두 사라질 전망이다. 빚만 늘어나고 통장잔고는 텅텅 비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한라홀딩스는 4500억원의 현금자산과 1조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넘겨받았다.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또 주요 자회사인 만도헬라가 한라홀딩스 소속으로 결정된 것도 만도에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만도 분할을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분할을 통해 만들어지는 순수 지주회사는 사업회사보다 기업가치가 작기 때문에 대주주의 지분확보가 쉽고 상속이나 증여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이 변경된 지배구조로 인해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는 사업 부문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순환출자를 끊기 위해선 합병, 주식교환 등을 거쳐야 한다”며 “한라와 한라홀딩스가 합병을 한다 해도 건설부문의 부진을 만도가 계속 메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몽원 회장
그룹 장악력

한라에 대한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재계가 시끄러운 것은 정몽원 회장의 지분 때문이다. 정 회장의 개인 지분이 한라에 몰려 있다. 정 회장의 한라 지분은 23.58%다. 분할 후 만도와 건설사 한라는 분리되지만 지분율은 변동되지 않는다. 만도의 최대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비율 7.71%는 한라홀딩스와 만도에서 동일하게 7.71%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 회장이 한라홀딩스를 통해 만도까지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이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이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 확보해 한라홀딩스의 보유현금으로 한라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라홀딩스의 영향력은 만도와 한라에 모두 미친다.즉, 분할 이후에도 '한라-한라홀딩스-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는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실상 신설법인 만도의 대주주 또한 여전히 한라다.

한라그룹은 한라홀딩스와 한라 합병 가능성에 대해 “우려에 불과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번 분할로 지주회사를 통해 과거처럼 만도의 돈이 한라에게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한라그룹 관계자는 “만도나 한라홀딩스를 통해 한라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려일 뿐,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라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부실계열사인 (주)한라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이번 분할로 순환출자 구조는 끊어지게 된다”며 “만도 부채비율이나 현금자산의 경우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게 얼마나 어떻게 나올지는 공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합병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라 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분할 재상장이 만도 경쟁력 강화가 아닌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지분율이 희석되고 분할 재상장 이후 분리된 두 기업의 주가가 동반상승하지 못하면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주주가치 훼손
투자자들 우려

소액주주들의 원성은 지난4월부터 이어졌다.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지주회사 전환체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만도는 꾸준히 성장해 재작년부터 매출 3조원을 넘는 등 흑자경영을 해온 업체다. 반면 한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몇 년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한라그룹은 지배구조 핵심인 (주)한라가 유동성 위기를 겪자 만도와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이용해 두 차례에 걸쳐 자금을 지원했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적자의 늪에 허덕이는 한라를 지원하기 위해 만도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한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회 지원한 것이다. 
 

한라는 2012년 1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730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 중 200억원어치를 만도의 자회사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이어 지난해 4월에도 3385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해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만도가 한라마이스터의 유상증자에 돈을 대고, 이 자금을 다시 한라건설의 증자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만도의 돈이 꾸준히 한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만도 자회사를 통해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상법 제549조의 9에 따르면 상장회사는 주요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 이사 및 업무관여자, 감사를 상대방으로 하거나 그를 위해 신용을 공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도의 최대주주는 17.29%의 지분을 보유한 한라다. 이에 경제분야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을 상법의 신용공여 금지위반으로 고발한 바 있다.

겉으론 순환출자 고리 정리 내세워
실제론 오너일가 장악력 강화 분석

주주총회 다음날 증시에서 만도 주가는 뚝 떨어졌다. 만도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분할 후 만도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 한 연구원은 "대주주 한라 리스크 등 잇단 악재로 만도 주주들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며 "회사에 대한 신뢰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당일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만도 투자자는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돈을 한라건설로 빼돌리기 위해 서둘러 지주회사로 전환한 모습”이라며 “정 회장은 만도를 챙기고 한라를 버려야지 덩치만 키우려고 내실과 주주이익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분할 후 만도가 한라의 건설 실적 부진을 커버하는 지원이 다른 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분할 전 보유한 만도주식을 팔겠다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한라홀딩스 가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만도 소액주주는 “만도가 재상장하게 되면 만도 주식은 오를지 모르겠지만 한라홀딩스는 하락할 것”이라며 “만도만 보유하고 싶은데 분할 후 재상장으로 한라홀딩스까지 떠안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분할의 혜택이 소액주주가 아닌 대주주 한라에만 있을 수 있다는 부연이다.

하지만 한라그룹은 만도의 가치는 현재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곳 관계자는 (한라홀딩스와 만도는) 주식 수로 보면 48대 52로 나뉘는데 분할되는 회사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가치로 따지면 현재보다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하나는 오르고 하나는 적게 떨어지더라도 전체적 가치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제시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백화점, 위니아만도 인수
삼촌기업 조카가 품는다

현대백화점이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를 인수한다. 최근 동양매직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현대백화점은 위니아만도 인수로 그동안 추진해 왔던 가전제조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 

현대백화점은 지난7일 글로벌 사모펀드 시티벤처캐피털파트너스(이하 CVC파트너스)와 위니아만도 지분 100%를 매입하는 내용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계약 금액 등 세부 조건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실사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TV홈쇼핑 업체 현대홈쇼핑과 식품유통전문업체 현대그린푸드를 거느리고 있다. 위니아만도 인수를 통해 판매와 제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위니아 만도는 한라그룹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옛 만도기계) 가전부문에서 출발한 회사다. 1995년 선보인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해졌다. 한라그룹은 고(故) 정주영 회장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현재는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촌이 매각했던 기업을 조카가 인수하게 된 것이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외에도 에어컨과 제습기 등 가정용 공조기기를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4127억원, 영업이익 168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홈쇼핑,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등 그동안 유통업을 위주로 사업을 펼쳤으나 이번 위니아만도 인수를 계기로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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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