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엔 없는’ 이색 직업 열전

대기업 직원 안부러운 문신장이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최근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안으로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새롭게 뜨고 있는 직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립탐정(민간조사원)을 포함해 이혼플래너(이혼상담사), 디지털장의사와 같은 이색 일자리가 눈길을 모은다. 또 이번 계획에서는 배제됐지만 타투이스트(문신시술가), 로비스트와 같은 사실상 현존하는 직업에 대해서도 합법화 논의가 한창이다. 국내에는 아직 없거나 공인된 적 없는 '신직업'들을 소개한다.
 

"얘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문제아였는지 몰라요. 선생님이 '너 커서 뭐 될래'라고 하면 '몸에 그림 그려서 돈 벌 거예요'라고 했거든요. 그때는 아무도 이 친구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어요. 그런데 정작 사회에 나와 보니까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건 그 친구더라고요. 연봉이 저의 2배는 될 걸요?"

"남들과 달라"

최근 모 대기업에 입사한 A(24)씨는 친구인 B(24)씨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B씨의 직업은 타투이스트. 홍대 인근에서 사람들에게 문신을 해주고 있는 그는 "평범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정부는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새로운 직업 40여개를 육성·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정부가 가려낸 마흔네가지의 직업 중에서는 도시재생전문가, 가정에코컨설턴트, 산림치유지도사 등과 같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직업이 있는가하면 사립탐정(민간조사원), 동물간호사와 같이 제법 친숙한 직업도 눈에 띄었다.

이들 직업의 도입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구직난 해소 및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직업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가 나올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은 계속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 각 부처는 해당 직업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가 또는 국가공인 민간 자격을 신설해 전문인력을 양성할 방침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민간시장에서 직업 창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을 유도할 계획이다.

여러 직군 중 가장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직업은 이혼플래너다. 이혼플래너는 '이혼식'이 있는 미국에서 발달한 직업으로 기본적인 업무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웨딩플래너와 동일하다. 이혼플래너는 이혼식에 필요한 장소 섭외 및 행사 기획 등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

일자리 창출용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 발표
사립탐정·이혼플래너·디지털장의사 등 관심
타투이스트·로비스트 등도 합법화 논의 한창

서구문화권에서 이혼은 인생의 새 출발이자 행복한 순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혼식은 비난이 아닌 축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아직 이혼식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이혼플래너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발표에서 이혼플래너는 '이혼상담사'로 직업 명칭이 바꿔 표기됐다.

국내에서 이혼상담사는 이혼에 따른 각종 문제(자녀양육 등)를 해결하고, 이혼 준비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와 업무가 중복되거나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법령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 이혼상담사가 '개인의 행복'을 이유로 상대방의 이혼을 조장하거나 이혼 전 재혼을 알선하는 등의 업무를 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적잖은 갈등이 전망된다.

그렇지만 늘어나는 이혼율을 감안했을 때 이혼플래너 도입은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혼플래너와 같이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직업모델은 디지털장의사다.

디지털장의사는 서구권에서 '사이버 언더테이커'로 불린다. 디지털장의사는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는 개인정보를 개인이 사망한 후 소멸시키는 일을 한다.


실제로 주위를 보면 개인 사망 후에도 카카오톡을 비롯한 메신저나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SNS 계정은 여전히 살아있다. 여러 연예인들의 사례에서 보듯 한 연예인이 사망하면 그와 관련한 문서(혹은 정보)들은 때때로 남은 유족에게 고통을 안긴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이 바로 '잊혀질 권리'다. 고인은 물론 유족에게도 잊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장의사는 도입 단계에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고인과 관련한 사진앨범을 만들어주고 메신저가 등록된 회사에 연락해 계정삭제를 요구하는 정도의 업무만 처리한다는 오해였다.

그러나 디지털장의사가 다루는 업무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 관공서나 금융권에 남아있는 고인의 개인정보를 처리하기도 하면서 유족은 물론 고인도 생전에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지운다. 더불어 보안 처리된 온라인 유언장을 갖고 있다가 고인이 사망한 후 지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디지털장의사는 아직 세계적으로 희귀한 직업군이라 정부 역시 중장기적인 육성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립탐정(민간조사원)은 정부가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직군 중 하나다. OECD 가입국 중 민간조사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지난 10여년간 민간조사원 도입은 전향적으로 검토돼왔다. 외국 사례를 비춰봤을 때 민간조사원 제도가 실패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민간조사원 도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일자리 규모는 4천여개 수준. 법무부와 경찰청 등 유관기관은 이른 시일 내에 민간조사원 도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이 협의체 안에선 교육과정 신설과 국가자격 부여 방안이 함께 논의될 것이다.

그런데 당초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 타투이스트는 이번 정부 발표에서 배제됐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타투이스트가 합법화될 경우 약 4천개 수준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조사원과 같은 규모다.

그러나 타투이스트는 의료행위의 주체인 의사 등 기존 직역과의 갈등이 우려돼 배제됐다. 타투이스트 B씨는 "사실 짧게 보면 국가가 공인해주지 않아도 (시술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은 양성화해야 하지 않겠냐"며 "정부가 문신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당장 거리만 나가봐도 문신이나 네일아트의 수요가 굉장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를 공인하지 않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란 지적이다.

눈 가리고 아웅?

로비스트나 자금조달자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직업들이 국내에서는 음성화돼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업계에서 활동했던 한 로비스트는 "우리 인생이 다 부탁하고, 부탁받고, 부탁 들어주는 일인데 이걸 괜히 나쁘게만 호도해 우리 같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이 로비스트는 "몇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구속되거나 유죄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합법적인 부탁'이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퇴임한 정부 고위관리가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면 사실상 로비스트가 아니겠냐"며 "대기업들이 은퇴한 정계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로비를 위한 포섭"이라고 입을 모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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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