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상정’ 후폭풍 휩싸인 김형오 국회의장

“MB 형님 부탁 괜히 들어줬나~”


김형오 국회의장이 연초부터 벼랑 끝에 몰렸다. 새해 첫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직권상정으로 강행처리한 데 대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 야당은 당초 오는 2월 임시국회 처리 입장을 밝혔던 김 의장이 말을 바꾼 것에 대해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비난은 최근 김 의장이 직권상정 직전 이명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야당은 법적 대응과 함께 사퇴까지 요구하며 그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노조법 직권상정 직전 ‘MB와의 30분 통화’ 사실 드러나 곤혹
야당 “날치기 법안 통과 배후 밝혀졌다”…김 의장 사퇴 압박

“양심상 하나도 거칠 것이 없고 거짓이 없다. 고민 끝에 직권상정 했다.” 지난 1일 새벽, 제4차 국회 본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밝힌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감이다. 김 의장은 이날 야당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조법을 직권상정으로 강행처리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앞서 노조법을 직권상정 하지 않겠다던 김 의장이 여당의 압박에 스스로 말을 바꿨다며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새해 벽두 날치기 통과
알고 보니 MB 입김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김 의장은) 어떻게 아침에 한 얘기가 다르고 오후에 한 얘기가 다른가. 안 한다고 했다가 직권상정하고”라며 김 의장의 태도 변화를 지적했다. 원색적인 비난도 들려왔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이 한밤중에 국회에서 굿이 벌어졌다. 국회의장 무당이 지금 살아난 우리 노동자들의 단결의 권리를 죽이고 있다”며 노조법 날치기 통과를 이끈 김 의장을 비난했다.

김 의장은 “내가 말한 부분은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의 논의 중에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환노위에서 토론을 끝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하며 자신은 말을 바꾼 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조법 직권상정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길은 더 거세져만 가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키운 것은 지난 5일 <중앙일보>의 보도다.

<중앙일보>는 이날 ‘김형오 의장의 노조법 직권상정은 MB가 전화로 30여 분 설득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를 통해 김 의장이 직권상정 직전 이명박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이 있음을 공개했다. 신문은 복수의 의장실 관계자의 말을 빌어 지난해 12월 31일 이 대통령이 김 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조법안이 반드시 처리돼야 하는 이유를 장시간 설명하며 의장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당시 국회 본회의장의 국회의장석을 지키던 김 의장의 전화 통화는 주위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간혹 큰 소리가 오고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또 김 의장이 이 대통령과의 전화를 마친 뒤 밤 10시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을 불러 대화를 나눴고 이후 법안 직권상정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보도는 애초 노동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약속했던 김 의장이 갑작스레 입장을 선회, 직권상정한 원인이 대통령의 입김에 있다는 지적이었다.

국회 대변인실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노조법 직권상정은 김 의장의 독자적 결단일 뿐 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와는 무관하다는 것. 대변인실은 지난 5일 보도 자료를 통해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예산안 연내 처리를 당부하고 준예산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노조법은 지나가는 말로 걱정하는 정도뿐이었다. 김 의장과 대통령의 통화가 노조법을 주제로 장시간 이뤄졌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과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김 의장 사퇴 압박
법정 투쟁 움직임도

대변인실은 또한 “노조법 직권상정은 김 의장이 노조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사회에 미칠 파장을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법안을 직권상정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변인실의 해명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부채질한 모양새다. 김 의장과 이 대통령의 전화 통화 사실이 대변인실을 통해 공식 확인됨에 따라 야당의 비난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

입법부의 수장이 여야의 대립이 팽배한 국회 법안 처리를 앞두고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김 의장은 이 대통령의 전화 때문에 직권상정을 결심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오히려 이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확인해준 꼴이 됐다”고 지적하며 “이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해 우려를 표한 것이 압력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장에 대한 야당의 사퇴 압박 공세도 더해졌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의회의 수장으로서 중립성과 독립성을 밝히고 그 권위를 세워야 할 김 의장은 대통령의 전화 한 통화에 자신이 내뱉은 대국민 약속마저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대통령의 오더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한 뒤 “김 의장은 의회의 수장이 아니라 수치다. 당장 그 의자에서 내려와야 한다”며 의장 사퇴를 촉구했다.

유은혜 민주당 수석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국회를 행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김형오 의장이 즉각 물러나는 것만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밝혔다.
야당은 김 의장에 의해 강행처리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법적인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민노당은 조만간 헌법재판소에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 대변인실 “김 의장 독자적 결단” 현 정부 개입의혹 부인
2010년 예산안 및 노조법 통과 등 당권 도전 위한 줄서기 의혹


민노당은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지난해 12월30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만 회의장에 참석시켜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은 김 의장이 애써 날치기 통과시킨 개정안이 본격적인 사법투쟁이 진행될 경우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한편 김 의장이 노조법 직권상정을 두고 현 정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는 해석들이 대두되자 정계에선 김 의장의 차기 당권 도전설이 더욱 힘을 받는 분위기다.

사실 정계 일각에선 오는 5월 임기 만료를 앞둔 김 의장이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김 의장이 직접 한나라당 대표직에 도전하겠다는 언급을 한 적은 없지만 대표직 도전설은 측근들 입을 통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최근 차기 당권 도전이 주목되는 김 의장과 안상수 원내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서로 당 대표 경선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에 정계는 김 의장의 이번 직권상정이 현 정부와 여당 내 지지세력을 모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 의장이 2월 국회상정을 약속했던 기존의 입장을 변경할 시 예측되는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것은 임기 종료 이후 자신의 행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인 것이다.

실제 김 의장은 앞서 예산안에 대해서도 국회법까지 무시하며 여당의 힘을 실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한나라당이 2010년 예산안을 장소를 바꿔 편법적으로 통과시키자 김 의장이 불과 3시간 만에 예산 처리에 필요한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심사를 마칠 것을 국회 법사위에 요구한 것.

임기 뒤 당권 도전
염두에 둔 밑밥작전(?)

그러나 이에 앞서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이미 법사위 산회를 선포한 뒤였던 것이 확인되면서 이는 1일 1회기 원칙에 따라 심사기간 지정이 무효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김 의장은 국회법이 정한 권한에 따라 심사기일 지정을 통보할 수 있다며 직권상정을 강행했다. 이로 인해 앞서 12월29일부터 3일간 연내 예산안 국회 처리를 두고 의장직까지 내건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지키고 있던 김 의장은 야당으로부터 “누구를 위해 자리를 미리 맡아두고 있는 것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김 의장은 이에 대해 지난 6일 국회 조찬기도회 신년 예배 신년사를 통해 “국회의장의 말을 왜곡하고 아전인수 식으로 몰아치는 버릇은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형오 국회의장 프로필

1947 경상남도 고성 출생
1971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졸
1992 ~ 현재 14, 15, 16, 17, 18대 국회의원
1998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1998 한나라당 정보통신위원장
2004 한나라당 17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2004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8 제18대 국회의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