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기사회생한 남재준

버틴 원장님…정권 약점 쥐고 있나?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유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해임론이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다.

이미 야권에서는 특검 카드를 꺼내드는 등 총력전을 선언한 상황이다. 반면 여권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주류·비주류 간 온도차가 감지된다. 얽히고설킨 정치권의 이해관계는 또 다른 '대형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괴물'이 된 국정원이 있다. 정가에서는 "국정원을 무너뜨리려면 청와대를 먼저 무너뜨려야 할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이 나온다. 이렇듯 박근혜정부의 '중추'는 지금도 꼿꼿하다.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수사결 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했다. 지난 1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사과
남재준 꼿꼿

비록 공개석상은 아니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4번째 있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윤창중 성추문 사태,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 당시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태풍의 한 가운데 인물이 살아남은 사례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유일하다. 앞서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마찰이 있었을 때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또 윤창중 성추문 사태 때는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옷을 벗었다. 아울러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 때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 물러났다.


이들 모두는 '청와대의 의지와 동떨어진 행동으로 권력에서 멀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남 원장만큼은 예외적으로 면죄부가 떨어졌다.

지난달 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실제 수사 결과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국정원이 간첩 행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범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검찰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후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지체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법원 선고가 있기 전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청와대가 서둘러 사과하고 적절한 선에서 책임을 따지는 게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 입장에서도 자신의 임기 내에 일어난 일인 만큼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관측됐다.

청와대 차원
사표 반려한 듯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 요구된 '남재준 해임'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거듭된 실책에도 박 대통령은 남 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측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하자 남 원장도 거침없었다. 그는 이날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A4 용지 1장 남짓한 대국민사과문을 들고 국정원 본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 발언보다 1시간 앞선 시각, 남 원장은 "증거서류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정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남 원장이 썼던 '뼈를 깎는 개혁', '환골탈태' 등의 표현을 박 대통령도 똑같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의전 구조상 표현이 중첩된 것을 미뤄봤을 때 청와대와 국정원의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내부적으로 남 원장의 유임을 결정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이 남 원장에게 전달됐고, 이를 확인한 남 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 원장을 감싸고도는 것일까.

남 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전사'라고 부른다. 국정원장에 취임한 후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한 그다. 남 원장은 쉽사리 남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아부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오히려 남 원장은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 탓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주변에 적도 많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던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돌리면서 종국에는 계급장을 떼야했다.

지난 2004년 있었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자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섰다. 직을 걸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남 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실상 면죄부…경질론 선긋기
청와대-국정원 기자회견 앞서 사전 교감설 '솔솔'

그러나 남 원장은 노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군 수뇌부들을 초청한 골프대회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석에서 참여정부의 국방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을 성토한 이른바 '정중부의 난'에 남 원장이 연루되기도 했다. 물론 남 원장은 해명 과정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책임을 진다"며 군을 떠났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괴감을 갖는다"던 그였다. 이로부터 10년 뒤 남 원장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남 원장의 선택은 10년 전 과거와 달랐다. 지금 그는 전방위 사퇴압박을 정면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남 원장의 '노욕'인 것일까.

정권 지킨 공신
토사구팽 어려워

복수 관계자는 남 원장이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남 원장은 증거조작 파문이 불거졌을 때부터 거취 문제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수사결과 발표 직후에도 청와대 쪽에 사의 표명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을 재신임했다.

남 원장의 유임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설이 불거졌다. 가장 유력한 설은 '공신설'이다. "정권에 큰 공을 세웠는데 어떻게 취임 2년 차에 토사구팽을 할 수 있겠냐"는 설명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6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 원장이 (과도 있지만) 그동안 공도 많았다"며 "임기를 잘 마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 원장은 박근혜정부가 중대한 기로에 설 때마다 파격 행보로 청와대를 도왔다.

일례로 국정원은 지난해 국가기밀문서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언론과 정치권에 공개했다. 당시 여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를 남 원장이 NLL 국면으로 단박에 전환한 것이다.


또 남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진행과정에서 부하 직원에게 진술 거부를 지시하거나 출석에 불응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정상적인 수사를 방해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뒷조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보를 수집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였지만 국정원이 외곽에서 지원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채 전 총장을 쫓아낸 1등공신이 남 원장인 것이다.

더불어 남 원장은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연루된 이른바 RO 사건으로 공안몰이에 성공했다. 만약 이번 유우성 사건까지 랑데부가 됐다면 야권의 지방선거 패배는 한층 가시화될 터였다. 증거조작 파문은 남 원장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였겠지만 그간 국정원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관련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정보에 의존한 통치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직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정보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보고받은 정보에 좌지우지 될 때 공무원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정상적인 업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입장에서 정보를 쥐고 있으면 공무원들을 다루기 쉽다. 정적이 되면 언제든 치명적인 정보로 상대를 쳐낼 수 있는 까닭이다. 채 전 총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무원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게 된다. 또 정보의 맛을 본 대통령은 조직 장악에 필요한 정보를 갈구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이란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워낙 의심이 많은 스타일이다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VIP(대통령)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남 원장을 해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오랜 청와대 생활로 '정보가 갖고 있는 힘'을 알고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핵심 권력기관을 믿지 못할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때문에 오히려 국정원 측에서 박 대통령과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남 원장과 자칫 틀어졌을 경우 남 원장이 노 대통령을 대화록 공개로 공격했던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겠냐는 추측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둘의 관계는 원만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원 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은 충성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드가 달랐던 '노통'과는 달리 '박통'과는 합이 잘 맞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지방선거 앞두고
공안사건 터질까

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 공안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남 원장의 유임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아직 정확한 실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RO 사건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 사정기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과 기무사가 국정원을 돕는 형태로 수사팀을 꾸려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확인했다. 피의사실이 공표되면 또 한 번의 '공안 광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책임자인 남 원장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난 한 해 동안 남 원장은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올 초 기자와 만나 "정치를 남재준이 다 했다"고 했을 정도다. '남재준 해임론'도 한 주 사이 쏙 들어갔다.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상임위 개최도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의 호위무사인 남 원장. 호위무사의 죽음은 곧 '높은 분'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야권은 어찌 보면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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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