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⑤> 2009년 연예계 키워드 ‘베스트3’

소송·막장·걸그룹…‘핫이슈’


2009년 연예계에도 수많은 영광과 시련, 좌절과 희망이 뒤섞여 대중과 함께 했다. 숱한 별들이 명멸했고 각종 사건사고에 스타들은 울고 웃었다. 즐거움을 안겨준 화제의 작품들 속에서 많은 말들도 회자됐다. 일요시사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올 연예가의 키워드 ‘베스트3’을 정리해봤다.

바람 잘 날 없는 연예계…끊임없는 법정공방
‘막장드라마’ 모 아니면 도 … 위험한 시청률 도박
소녀시대·브아걸·카라…가요계 대세는 걸그룹


최근 들어 연예인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법적 분쟁이다. 한솥밥을 먹던 매니지먼트사와 연예인의 전속계약 분쟁에서부터 초상권이나 저작권 침해, 계약 불이행, 사생활 침해 등 ‘연예인 소송’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제기되고 있다. 현재 법정공방을 벌이는 연예인만 해도 내로라하는 스타급 연예인들이 즐비하다.

<1>법원 담장 위 걷는 연예인들 ‘소송’

가장 큰 이슈는 한류스타 이병헌. KBS 2TV <아이리스>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병헌은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지난 8일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또한 헤어진 여자친구는 지난 10일 이병헌이 불법으로 바카라 도박을 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이병헌 측은 무고혐의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해 맞대응을 하고 있다. 

MBC <선덕여왕> 미실로 큰 인기를 누린 고현정은 지난 8월 드라마 출연 계약금 때문에 5억원대의 소송을 당했다. 고현정은 <선덕여왕> 방송 전부터 <대물>에 출연키로 하고 계약금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초 지난해 SBS 편성 예정이었던 <대물>은 차일피일 편성이 미뤄지며 결국 촬영조차 들어가지 못했고 그 사이 고현정은 <선덕여왕>에 먼저 출연해 대박을 쳤다.

이김프로덕션 측은 이에 고현정을 상대로 계약금과 위약금 5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고 고현정은 2008년 아무런 연예활동을 못 한데다 MBC <내조의 여왕> 등 드라마 3편과 영화 5편의 출연 제의를 거절해야 했다며 맞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현재 양측의 소송은 원만히 합의된 상태다.
인기 스타들의 전속계약관련 분쟁은 1년 내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한류스타로 떠오른 김범은 지난 12월8일 전 소속사 이야기엔터테인먼트로부터 전속계약 위반에 대해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전속계약을 위반하고 전 소속사 킹콩엔터테인먼트와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야기엔터테인먼트는 전속계약금으로 1억5000만원을 지급했고 킹콩엔터테인먼트는 두 회사 간의 합병조건으로 1억500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양측은 전속계약과 합병에 대한 의견을 달리하고 있어 법정에서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
인기그룹 동방신기 3인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의 소송은 동방신기를 사랑하는 아시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시작된 전속계약 분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지난 7월31일 동방신기 3인이 SM을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후 4개월 넘게 법적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먼저 합의를 권고했지만 불발됐다. 이후 10월27일 법원은 전속계약 일부 효력정지 판결을 내렸다. 일단은 동방신기 3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SM은 본안 소송 결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SM은 중국 심천 공연을 문제 삼았고 동방신기 3인은 공연 확인서의 사인은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SM은 날조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방신기 3인은 최근 중국에서 화장품 사업과 관련, 사기혐의로 피소됐다. 전속계약 문제로 꼬인 실타래는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 가고 있다.

지난 7월31일 윤상현은 전 소속사 엑스타운으로부터 10억1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전 소속사에 따르면 윤상현은 지난해 MBC <크크섬의 비밀>이 종영되고 난 후 출연료 미정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께 만나기로 했지만 바로 전날 약속을 취소했고 이후 차기작으로 KBS 1TV <집으로 가는 길>의 대본 연습이 끝난 상황에서 12월 중순 회사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도하차하고 전속계약도 파기해 소속사에 피해를 안겼다는 설명이다.

씨야 남규리도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규리는 씨야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 측과 지난 4월부터 전속계약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남규리는 소속사와 접촉해 씨야 합류와 가수 활동 여부에 대해 코어콘텐츠미디어와 논의를 벌이면서 화해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복귀를 최종 거부하면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한 연예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불어닥친 ‘한류’ 바람으로 스타 연예인의 수익규모가 ‘움직이는 중소기업’ 급으로 커지면서 이를 둘러싼 각종 분쟁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기MC 김용만은 프랜차이즈 분식업체와의 소송에 휘말렸다. ㈜용만두 측은 최근 김용만의 이름을 딴 만두 체인 사업을 진행하다가 김용만 측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시켜 큰 손해를 입었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에 김용만 측은 사업 참여주체가 불분명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아 최종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한류스타 배용준은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도용해 관광상품을 판매한 여행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배용준은 지난 7일 여행상품 판매에 자신의 이름과 ‘욘사마’라는 별명을 사용하지 말라며 여행업체 S사를 상대로 1억원의 퍼블리시티권 침해 정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태지도 소송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서태지컴퍼니는 서태지의 모습이 들어간 티셔츠를 판매하지 말라며 의류판매업체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서태지컴퍼니는 불법행위로 팬들의 신뢰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2>욕하면서 보는 재미 ‘막장드라마’

‘불륜’ ‘혼전임신’ ‘출생의 비밀’ 등을 소재로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막장드라마’들이 득세한 한 해였다. 웬만한 스토리 구조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갈수록 더 독해질 수밖에 없다.
공감할 수 없는 기억상실 설정이 남발되고 동일인물이 전혀 다른 신분과 얼굴로 둔갑한다.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청자 반응은 나쁘지 않다. 욕하면서 즐기는 ‘막장드라마’의 전형인 탓이다.

막장드라마의 물꼬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5월까지 방영돼 논쟁의 불꽃을 태운 SBS <아내의 유혹>이 텄다. 상상 이상의 행동범주를 보여주는 캐릭터와 복수에 복수로 맞서는 억지스런 스토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현모양처였던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가장 무서운 요부가 돼 예전의 남편을 다시 유혹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복수극이 줄거리지만 우연이나 억지스런 스토리 때문에 방영기간 내내 ‘막장’이란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대신 시청률 대박이란 반대급부를 누리기도 했다.

예상 밖의 해외수출 성과도 이뤘다. 지난해 5월부터 방영돼 올 초 막을 내린 KBS 1TV 일일극 <너는 내 운명> 역시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지만 최고 시청률 43.6%를 기록하는 보상(?)을 받았다.
최근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천사의 유혹>은 남자판 <아내의 유혹>이다. 동일한 작가가 <아내의 유혹2>를 표방하고 쓴 작품답게 너무나 쏙 빼닮았다. 아내의 복수극 대신 남편의 복수극이란 설정만 빼면 대부분의 스토리구성은 흡사하다.

<아내의 유혹>을 봤던 시청자라면 <천사의 유혹>이 아니라 아예 <남편의 유혹>이 더 현실적이고 적절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확실하게 달라진 부분도 있다. 여주인공 장서희(구은재)가 얼굴에 점하나만 찍고 어설픈 1인2역을 연기했다면 이번엔 남자주인공 배수빈(안재성)과 한상진(신현우)이 2인1역의 동일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점이다. 전신성형을 통해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바꾸는 설정으로 전작에서 지적된 현실성과 긴장감을 많이 보완한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전작을 성별만 바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작가의 의도는 ‘욕을 좀 먹더라도 전작에서 확인된 시청률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건지도 모른다. 빠른 스토리 전개와 극적 긴장감을 한층 증폭시키고 색다른 인물들 가미해 업그레이드했다고 자기복제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막장’의 굴레를 뒤집어쓴 대가는 챙기고 있다. 첫회 10%의 시청률로 막을 열었지만 주인공 신현우가 성형술을 통해 안재성으로 바뀐 뒤 서서히 복수 모드로 전개되면서 시청률이 20% 가까운 급상승세로 돌아섰다.
<3>걸그룹‘춘추전국시대’

2009년 가요계는 걸그룹 춘추전국시대를 보냈다. 지난 1월 소녀시대가 ‘Gee’로 싱그러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걸그룹 ‘춘추전국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무대를 꽉 채운 9명의 소녀들은 하이힐을 신고 발길질을 해대며 ‘소원을 말해봐’로 다시 한 번 뭇 삼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걸그룹의 ‘엉덩이춤’ ‘시건방춤’ 등이 유행한 것도 올해를 정리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님~엉덩이 좋아하시죠~?’라고 당당히 외친 카라의 ‘엉덩이춤’을 보다가 러닝머신에서 굴러 떨어질 뻔한 언니도 있다고 하니 남녀불문 그 춤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팔짱끼고 골반을 좌우로 흔들며 고개도 한 번씩 꺾어주는 ‘시건방춤’은 각종 패러디가 난무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신인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대형, 신생 가릴 것 없이 기획사들은 새로운 걸그룹을 선보였다. YG엔터테인먼트의 투애니원과 큐브엔터테인먼트의 포미닛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기존 걸그룹의 고정 이미지였던 청순·귀여움의 틀에서 벗어나 파워풀한 모습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포미닛은 특히 가격대비 최대 효과로 각종 대학축제와 행사의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에프엑스와 애프터스쿨도 뚜렷한 개성으로 사랑 받았으며 레인보우, 토파즈, 시크릿 등도 걸그룹 열풍에 합류했다.

이러한 현상은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휴대전화, 식료품, 의류, 스포츠 등 각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걸그룹 모셔가기에 매진했다. 특히 치킨 업계에서의 경쟁은 가장 심했다. ‘걸그룹 치킨 전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거의 모든 브랜드가 이들을 모델로 삼았다.
활약상은 연말 시상식에서 눈에 띄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골든디스크상 시상식에서 소녀시대가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신인상도 이례적으로 포미닛·티아라 두 걸그룹에게 돌아갔다.

지난달 ‘MAMA’(엠넷 아시안뮤직어워드)에서도 브라운아이드걸스가 2관왕, 투애니원이 3관왕을 차지했다. 슈퍼주니어·샤이니·2PM·SS501 등 남성 그룹과 김태우·백지영·박효신 등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걸그룹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화려함과 파급력은 약했다.
한 가요 관계자는 “남성 아이돌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던 가요계에 걸그룹 열풍은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소녀 이미지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게 주효했다. 대중이 따라 추고 부르기 쉬운 춤과 노래도 신드롬으로 이어진 한 요인이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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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