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기 도는데… 정부가 찬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부동산 대책 보니…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부동산과 관련한 내용은 혼란만 가중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졸속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란 것. 구체적인 안이나 방안도 없이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오히려 시장을 더 교란시키고 사회적인 비용만 더 유발해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월세시대 대비 한다더니 임대차 선진화 방안
일단 발표하고 보자?…오히려 시장혼란 지적

4년 전부터 서울 강남 논현동 영동시장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이호영(58) 씨는 작년 말 건물 주인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세 들어 있는 건물이 팔려 장사를 조만간 접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점포를 오픈하면서 실내 인테리어, 집기, 권리금에 들어간 자금은 약 1억5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장사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갑자기 문 닫게 되면서 쏟아 부은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이씨는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받아 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잃게 됐다”고 말했다.

말 많은 권리금
양성화 & 보호

앞으로 이씨처럼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치킨집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나 세입자의 과도한 권리금 요구로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상가 권리금 보호제도 도입 방안을 밝힌 것은 권리금 법제화 논의의 첫 단추를 꿰었다는 평가다. 그동안 권리금은 용산 참사 등 숱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유발한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정부는 그동안 임차상인 간 관행으로 치부해 수수방관해 왔었다.
▲권리금 표준화 = 정부 방안은 권리금 양성화와 보호라는 ‘투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비교적 저항이 덜한 양성화 부분부터 시행될 계획이다. 우선 법적으로 권리금을 정의해 돈의 성격부터 규정할 방침이다. 권리금은 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정의조차 없었다.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임차상인이 건물주에게 매번 패소한 이유다. 이로써 건물주의 횡포에 대항할 법적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영세 임차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금 거래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고 권리금 피해를 구제해주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점포 권리금은 상가 임대차 계약과는 별도로 점포 내 설비나 입지 여건, 기존 영업권 등 상가 운영과 관련한 유무형 이익을 환산해 임차인들 간에 주고받는 돈을 말한다. 1960년대 이후 상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새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기존 세입자에게 웃돈 성격으로 주던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점포 세입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권리금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언젠가는 한 명의 세입자가 권리금 없이 장사를 접어야 하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임대기간이 끝나고 나서 건물주가 기존 상가와 다른 업종으로 변경해 다시 임대하거나 건물 리모델링이나 재개발, 매각 목적으로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할 경우 임차 상인은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정부는 상가 임대차 시장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한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보호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모든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해 임대 기간 중에 건물주가 바뀌어도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제시하는 영업기간(5년)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서울의 경우 환산 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인 임차인만 보호하고 있다.
권리금 표준계약서 제도도 도입한다. 신규 임차인이 기존 상인에게 지급한 권리금 내역 등이 적힌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를 임대차계약서와 함께 구청이나 세무서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상가 세입자가 권리금을 떼일 경우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정부는 거래를 맡은 중개사가 권리금 계약서를 활용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정부는 권리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임차인을 보호하는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권리금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는 조정기구도 만들 방침이다. 또 건물주의 요구로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빼앗길 경우 남은 임대 기간 동안 임차인이 벌 수 있는 영업 가치를 계산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키로 했다. 일본에서는 건물주가 상가 세입자를 내보낼 경우 단골고객 수에 따라 권리금을 보상해주며 영국에서는 건물 주인이 운영을 잘해 건물 가치를 높인 임차인을 내보낼 경우 가치 상승분에 대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상가 권리금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임차인 간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가 권리금 내용을 이면으로 계약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우려되며 권리금 시장이 더 음성화될 수도 있다.
건물주인 입장에서는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받는다는 분석도 있다. 시설·영업권 등으로 나뉜 권리금의 성격부터 명확히 하고 정부가 법으로 보장해줄 적절한 범위를 정해야 하는데 양성화하는 취지는 좋지만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권리금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금융사들은 상가담보 대출시 우선 변제가 가능한 권리금을 감안해 대출금액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건물주가 빌릴 수 있는 돈이 예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
또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물주가 권리금을 근거로 임대료를 높이는 부작용도 벌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리금은 건물은 노후되어 임대료는 낮은데 영업이 잘되는 점포에서 높게 형성되고 건물주가 권리금액을 바탕으로 가게 영업 상황을 파악, 임대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권리금은 개인 간의 거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점포 세입자나 부동산중개업소 외에는 시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상가 임대차 시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권리금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 언제 시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임대차 선진화 = 서울과 지방에서 각각 주택을 보유 중인 이진희(55) 씨는 서울의 아파트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려다 얼마 전 생각을 바꿨다. 3억원에 전세를 주고 있던 서울 아파트를 월세로 돌리려고 했지만 지난달 26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본 후 전세를 더 올려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월세 소득에 대한 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서다.

임대인도 부담
임차인도 부담

최근 부동산업계 및 시중은행에 따르면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월세 소득과 관련한 임대인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임대사업자 등록 후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유리한지, 그렇지 않으면 월세를 전세로 돌리거나 아예 처분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 임대인의 손익 계산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대시장 자체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임대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세액공제 확대로 인한 세원 노출이 주요인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으면서 2주택자 이하(월세 소득 연 2000만원 이하)에 대해 분리과세키로(14%) 했지만 기존에 세금을 전혀 안 내던 임대인 입장에서 이를 혜택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이번 방안 발표로 사실상 임대등록제가 실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분리과세 혜택이 있지만 소득 노출로 월세를 계속 놓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임대인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고액 월세가 많은 서울 강남권에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은 고소득자가 많아 종합소득과세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이다. 이번 조치로 세원이 노출된 임대인의 경우 보유 주택 수와 임대소득 등에 따라 임대소득과 연봉을 합산해 최고 38%의 세율을 부담할 수 있다. 1주택자여도 9억원 초과 주택에서 2000만원이 넘는 월세 소득을 얻는다면 종합소득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월세 시대’를 대비했다는 정부 의도와 달리 전세 공급이 오히려 늘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 전세의 경우 아예 전세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세 공급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전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수익이 기대되는 월세에 대한 보상심리로 전세 가격을 높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의 국회통과 등 과세 관련 방침이 명확해지기까지 월세 계약을 미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임대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임대인이 월세를 유지하는 경우 월세를 올려 세금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 경우 임차인은 세액공제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또 임대인이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유주택자나 총급여 7000만원 이상 세입자를 가려 받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번 조치가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밝히는 등 큰 방향에선 맞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추가적으로 보다 세밀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은퇴 이후 월세로 생활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선진화 방안대로 되면 이들의 투자가 위축돼 임대주택 공급이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리츠나 사업자에 의한 임대시장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개인 임대인의 공급 역시 위축될 수 있고 2주택자에 대해서는 비과세를 해주는 등 완충지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주인 과세 강화 = 집주인의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강화된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겉으로는 임차인에게 세액공제를 통한 혜택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세금을 집주인에게서 걷어내겠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월세 부담을 줄이는 방편으로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은 임차인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 소득구간 3000만원 내외의 저소득층에게는 10%의 세액공제가 기존 소득공제에 비해 대략 40여만원 정도의 이익이 있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세액공제 한도가 연 750만원의 10%인 75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중산층 월세세입자들은 불과 10여만원의 이익이 있을 뿐 실제 큰 실익이 없다.
문제는 집주인들이다. 집주인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특히 그동안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월세를 주고 매달 월세 수입을 받고 있었지만 굳이 세무서에 신고를 하지 않았던 관례들이 깨지게 되면, 집주인들은 당장 월세를 놓은 집을 팔아야 할지, 아니면 다시 전세로 돌려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이번 방안 발표 이후 대책의 파장과 장단점 및 주택 매도나 전세전환 등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모처럼만에 수도권 주택시장에 거래가 늘어나고 매수세가 늘면서 온기가 감돌고 있는 분위기가 금번 대책으로 인한 적지 않은 충격파로 시장에 냉기를 불어넣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이번 방안은 최근 야당에서 꾸준히 추진을 검토해온 ‘주택임대사업자 의무등록제’가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치 이러한 법안이 실질적으로 상당부분 시행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주택시장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주택시장 정상화 의지를 통해 그동안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 등을 통해 다주택자들의 징벌적 과세를 폐지한 것은 물론, 다주택자들과 잠재적 예비 다주택자들(추가로 주택을 매수하려는 유주택 수요자)로 하여금 주택 매수에 제동을 걸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었다. 하지만 이번 방안은 세입자 지원과 투명과세라는 명분은 있지만, 기존 주택시장 정상화 방안과 엇박자가 날 수도 있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의 고민
꼼수만 늘어날 듯

전문가들은 특히 주택 한두채를 통해 월세를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의 경우, 소득 감소에 따른 타격과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수심리가 상당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또 다시 주택 거래가 감소하는 부작용을 염려하고 있다. 월세 소득이 적은 집주인은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월세 금액이 높은 서울·수도권 주요지역 월세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는 집주인들은 이번 대책으로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집주인들이 월세를 전세로 돌리거나 월세지원액만큼 월세를 올려 임차인들의 실질 혜택이 거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집주인들이 소득세 부과와 소득노출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으로 인해 주택을 매도하거나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예비 주택매수자들도 매수 심리가 약해져 시장 자체가 오랜만에 찾아온 온기가 냉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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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