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의 파란만장 일대기

두산재벌의 황태자 ‘비운의 삶’을 마감하다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지난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2세. 두산그룹 창업주 고 박두병씨의 둘째 아들인 박 회장은 한때 두산그룹의 총수를 맡으며 재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05년 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형제의 난’이 검찰의 전면수사로 확대되자 박 회장은 형제들의 외면을 받으며 두산가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기업가로서의 화려한 재기를 꿈꿨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는 이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으로 재계는 박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이 두산가족과의 불화와 성지건설의 경영난으로 인한 심적 압박감에서 비롯된 비운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 인수합병 등 공격 경영으로 9년간 두산가 진두지휘
2년간 피 튀는 ‘골육상쟁’…회장 박탈 및 가문 제명 수모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전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성북동 자택에서 숨졌다. 박 회장은 이날 오전 8시께 자택 안방 드레스룸 옷장 봉에 넥타이로 목을 맨 상태로 가정부 김모(63)씨에 의해 발견됐다.

수장 잃은 성지건설
망연자실 ‘어떡해’

박 회장은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숨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분간 심폐소생을 시도한 의료진은 결국 오전 8시32분께 박 회장에 대해 사망판정 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수장을 잃은 성지건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성지건설 측은 박 회장의 사망 소식이 처음 알려질 당시 사망 원인이 생전 그의 지병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당일 오후 경찰이 성북동 자택에서 박 회장의 유서를 발견하면서 성지건설 수장의 사인은 자살로 공식 확인됐다.  A4용지 7장 분량의 유서에는 가족과 회사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부채가 너무 많아 경영이 어렵다.

채권 채무 관계를 잘 정리해 달라”는 당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사망 소식에 1996년 이후 10여 년간 그를 총수로 모셨던 두산그룹 역시 침통한 분위기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믿겨지지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장례 절차를 책임지고 사흘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비운의 경영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게 된 박 회장은 두산이라는 재벌기업의 자녀로 태어나 황태자로 자란 전형적인 재계 로열패밀리다.

두산그룹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의 둘째 아들로 경기고를 거쳐 뉴욕대를 졸업했다. 그는 지난 1965년 두산산업에 첫 입성한 이후 두산산업 사장과 동양맥주 사장, OB베어스 사장, 두산그룹 부회장, 두산산업 대표이사 회장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마침내 지난 1996년 두산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2004년까지 8년 8개월 동안 두산을 이끌었다.

기업가로서의 박 회장은 재계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왔던 인물이다. 박 회장은 회장 취임 전인 1995년 당시 두산그룹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2000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전격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의 기치를 올린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두산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성장했다.

그룹 인사 반발
‘형제의 난’ 발발

그룹경영과 함께 박 회장은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는 한-이집트 경협위원장과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회 부회장을 지냈고 1998년 이후 만 7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금탑산업훈장, 스페인 민간공로훈장, 벨기에 왕실훈장, 한국능률협회 ‘2003년 한국의 경영자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도 그의 경영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대내외에서 기업가로서의 역량을 펼쳤던 박 회장은 2005년 재계에서 쌓아온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 그룹 경영권 다툼에서 시작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진 것. 두산일가는 2005년 7월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차남 박용오 회장에서 3남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박 회장을 철저히 배제했다.

큰형인 박용곤 회장과 5남인 박용만 당시 그룹 부회장이 서로 짜고 자신을 그룹에서 밀어내려 한다고 생각한 박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계열에서 분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 회장은 두산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 ‘두산그룹의 경영상 편법활동’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박 회장이 제출한 진정서에는 당시 박용만씨가 형 박용성씨의 장남인 박진원씨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팍’이라는 위장계열사를 차려 870억원을 밀반출했고 박용성씨와 박용만씨가 ‘태맥’ ‘동현엔지니어링’ ‘넵스’ 등의 회사를 통해 20년간 총 17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 회장의 갑작스런 행동은 곧바로 양측의 걷잡을 수 없는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3남 박용성씨가 박용오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던 두산산업개발의 2700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을 폭로하며 맞불작전에 나선 것.

이에 박용오 회장은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박용성씨 등 일가 28명이 대출금으로 주식을 인수했고 대출금 293억원의 5년간 이자 138억원을 회사가 대납했다고 추가로 밝혔다.

결국 서로가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 전체로 확대됐고 검찰은 이들 박씨 일가가 수년 동안 297억3000만여 원의 비자금과 29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다. 오너들은 이 돈을 생활비, 세금 대납 등 개인용도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회사 장부에 2838억6000만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2006년 7월 박용오·용성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씩을 각각 선고받았다. 5남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1년 6개월간 지속됐던 법정다툼은 박 회장에게 개인적인 아픔도 남겼다. 그룹의 회장직 박탈은 물론 형제간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던 것.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발판 마련해
금융위기·아들 주가조작 혐의 ‘발목’    


박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에 일각에서 형제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업계는 현재 박 회장이 이끌고 있는 성지건설의 자금난도 그를 압박한 요인이라고 덧붙인다. 성지건설은 ‘형제의 난’으로 두산그룹과 인연을 끊은 박 회장이 지난해 3월 기업가로서의 재기를 노리며 전격 인수한 건설사다.

당시 박 회장은 건설업계 50위권의 성지건설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진입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 2월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새 CI를 발표하면서 내부 혁신과 변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화려한 비상을 원했던 박 회장의 꿈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금융위기가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건설경기마저 악화시키면서 성지건설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업계에는 그동안 성지건설이 영업실적 악화와 차입금 증가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져 왔던 터다. 실제 올 상반기에는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 줄어든 1086억원, 영업이익은 63% 감소한 18억7000억원이었고 당기 순손실 43억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부진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지난 2007년 55위에서 지난해엔 65위로 10단계나 하락했다. 박 회장이 친필로 작성했다는 유서에도 성지건설의 부채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으로 확인돼 결국 그의 자살이 경영난으로 인한 자금 압박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성지건설 인수로
재기 노렸지만…

여기에 최근 차남인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41)이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박 회장은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중원씨는 ‘뉴월코프’라는 코스닥 업체를 인수하며 오일 슬러지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올해 초 기업 인수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나 수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 7월, 1심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결국 재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 상당한 심적 스트레스를 겪어오던 박 회장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용오 회장 프로필

1937년 3월 서울 태생
1956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64년 뉴욕대학교 상대 졸업
1965년 두산산업 입사
1974년 두산산업, 동양맥주 전무이사
1977년 두산산업 부사장
1983년 OB베어스 사장
1993년 두산상사 회장
1996~1998년 두산그룹 회장
1998~2005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2005년 두산그룹 명예회장
2008~2009년 성지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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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가 스스로 입국한 지 이틀 만에 구속됐다. 도주의 우려가 크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경찰은 약 2년간 황하나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해 왔다. 지난해에는 은거하던 장소를 특정했다. 일부러 검거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그간 황하나가 경찰에 마약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보고 있다. 황하나는 지난해 초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가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경찰은 공식적인 입국 기록이 없었기에 국내로 데려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황하나가 어떤 범죄에 연루됐는지 행적만 추적할 수 있었다. 은신처 알고도… 경기 과천경찰서가 황하나를 추적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23년부터다. 같은 해 황하나가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지인 2명과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과천경찰서는 그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압박감을 느낀 황하나는 2023년 12월 갑작스레 태국으로 출국했다. 황하나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터폴 청색수배 대상이 된 황하나는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일요시사> 취재와 정보기관이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황하나는 망고·태자 단지 배트남계 보이스피싱 조직 간부 또는 자금 세탁범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캄보디아 카르텔에 20~30대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해 성접대를 강요한 원정 성매매 알선 의혹을 받는다. 지난 24일 오전 2시 황하나는 캄보디아 프놈펜 태초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 경찰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현지 영사와 협의를 거쳐 항공기 내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5시간 후 과천경찰서 수사관들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황하나를 압송했다. 황하나는 “해외로 수차례 한국 여성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마약 유통과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자진해서 입국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을 들여다보지 않던 과천경찰서는 갑자기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본래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은 다른 청에서 내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관련 의혹을 캐물을 방침이다. 태국·캄보디아 전전…갑자기 자진 입국 밀입국 이후 1년 넘게 고급 호텔서 생활 황하나는 이달 초 경찰 측에 자진 입국 의사를 밝혔다. 2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갑자기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게 황하나의 입장이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제대로 책임지고 싶어 스스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마약 투약 혐의도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없고 지인에게 투약해준 적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양지원 서효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황하나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며 수사를 피해 온 점과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관은 황하나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주장에 대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캄보디아에 밀입국한 정황이 있고 1년 넘게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자본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게 근거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소한 아이를 키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생활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나은 환경일 순 있겠지만, 황하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재 아이의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거나 캄보디아에서 끼니를 굶을 정도로 생활력이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하나의 자진 입국이 과천경찰서와의 사전 조율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황하나가 이달 초 과천경찰서 측에 변호사를 통해 자진 입국 의견을 전달하긴 했으나 이전부터 그가 수사기관의 ‘야당’ 역할을 해왔다는 게 골자다. 정보기관 “아이 때문에? 신빙성 부족” 마약 정보 제공 ‘플리바기닝’ 노리나 실제 황하나는 경찰 측과 직접 연락하거나 측근을 통해 특정 인물들에 대해 ‘마약을 투약했다’ ‘한국으로 유통하는 것 같다’는 등의 정보를 전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곧 황하나에 대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플리바기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기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기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기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기닝은 수사기관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황하나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당국에 황하나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이유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가 밀입국했기 때문에 캄보디아 입국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캄보디아에 있으니 잡아달라고 할 수 없었고 거주지를 특정한 이후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캄보디아 당국이 한국 경찰에 비협조하는 일이 빈번한 건 사실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 측과 연락했던 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설득의 과정이었다”며 “일부 마약 관련 정보를 들은 경찰도 있겠지만 황하나를 비호해 온 것처럼 보인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