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정국 '폭풍전야' 내막

6월 지방선거 전 '대형 게이트' 터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정계 인사가 대거 연루된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터지는 게이트는 정국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이런 '중대한 사건'은 하루아침에 공개되지 않는다. 권력기관이 오래전부터 은밀히 작업해 온 결과물은 '적합한 채널'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번 지방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게이트' 조짐이 보이는 사건들은 대부분 MB와 연결돼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박근혜정부는 이것을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감출 것인가.




세작. 비밀 수단을 써서 적의 정보를 탐지하여 자기편에게 알리는 사람을 뜻한다. 국가 간 전쟁 상황을 가정했을 때 적국에 가장 먼저 파견되는 게 바로 세작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국에 잠입한 세작이 수집한 정보는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위력을 보인다.

비록 총칼을 들고 싸우진 않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면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심축은 박근혜정부. 현 집권세력과 반대되는 세력은 박근혜정부와 도처에서 국지전을 진행 중이다.


정보수집 완료
권력기관 장악


'이명박근혜'라는 시쳇말이 유행할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일선상에 이해됐다. 그러나 '이명박근혜'는 정치적 구호일 뿐 실상은 다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후 폭넓은 인적쇄신을 통해 이명박정부와 차별성을 두는 데 주력했다.

실제로 5대 권력기관이라 불리는 감사원·국정원·검찰청·국세청·경찰청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이 임기 중 예외 없이 교체됐다. 이제 각 권력기관은 VIP(대통령)의 든든한 호위무사로 '살아있는 권력'을 떠받치고 있다.


통상 5대 권력기관 장악은 정권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한 절차로 이해된다. 현 정권에 위협이 되는 정적들을 손보거나 견제할 때 권력기관의 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켜서 그렇지 MB를 직·간접적으로 겨냥한 사정작업은 그간 꾸준히 있어왔다"고 말했다. 정국을 들썩이게 할 권력형 비리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뉘앙스였다.

이명박정부 초기 참여정부 인사들의 비리·비위 혐의가 사정작업의 핵심이 된 것처럼 박근혜정부는 이른바 'MB맨'들이 연루된 사건의 내사를 대부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이 이양되면서 'MB맨'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은 어느덧 '친박'을 자처하며 각 권력기관에 은밀하게 제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는 '세작'들은 이미 이 전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들을 통해 수집된 비리·비위 사실이 어느 시점에 공개될 것인지 여부다.

사법기관에서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수사 보안을 유지하려 해도 일정 시점이 되면 공개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최근 불거진 한국경제교육협회 보조금 횡령 의혹은 이 같은 권력의 속성을 드러낸다.


MB정부 설립
공공기관 도마


지난 5일 경찰청은 감사원으로부터 정부보조금 271억원 가운데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한국경제교육협회의 A씨 등에 대한 수사 의뢰를 받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한국경제교육협회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A씨가 정부 보조금 중 일부를 횡령한 혐의를 파악하고 지난 1월13일 경찰에 고발 조치했다.




한 언론과 만난 감사원 관계자는 "횡령으로 의심되는 금액이 크고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아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사업과정에서 용역 대금을 과다 계상하고, 지급한 뒤 다시 되돌려 받는 수법 등으로 협회에 지원된 정부 보조금 일부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을 맡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감사원이 고발한 자료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사건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이 병행되는 등 본격 수사가 시작되면 피혐의자로 특정된 인물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권력기관 장악한 정부 'MB 손보기' 박차
전정권 실세 연루 한경협 횡령 의혹 도마


감사원은 앞서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동안 한국경제교육협회에 대한 감사를 벌여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MB 측근과 연관된 보조금 수사가 있을 것이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감사원 입장에선 한국경제교육협회의 부정과 관련한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셈이다.

지난 2008년 12월 세워진 한국경제교육협회는 그간 특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세부 설계와 운영은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막후에선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움직였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경제교육협회 초대 고문은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초대 회장은 황영기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이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황 회장의 뒤를 이어 2009년부터 3년 가까이 한국경제교육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들 모두는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린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건전한 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한 경제교육 활성화를 통해 합리적인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그러나 법인등기부등본상 자산 총액은 0원.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정상 운영이 요원했던 조직이다. 그럼에도 당시 기획재정부의 경제교육 주관 기관으로 선정된 한국경제교육협회는 지난 5년간 모두 271억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2009년 10억7000만원, 2010년 80억4000만원, 2011년 75억원, 2012년 70억원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특혜 시비가 일면서 보조금이 35억원으로 줄었고, 올해에는 책정 보조금이 36억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이 돈의 70∼80%는 '아하, 경제'라는 교육용 신문 제작에 쓰였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각 지역 초·중·고등학교에 매주 35만부의 '아하, 경제'를 배포하는 일을 했다. 이를 두고 야당 일각에선 "'아하, 경제'가 MB노믹스를 전파하는 기관지나 다름없었다"며 사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 온 상황이다.




한국경제교육협회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한국은행 등 정부기관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주요 경제 단체가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KT, 포스코경영연구소 등 사실상 공기업 성격을 지닌 회원사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각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의 회비를 납부해왔다.


수상한 비자금
혐의입증 난항


이번 한국경제교육협회 수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석채 비자금' 수사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검사 장기석)는 이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계열사 편입과 사옥 매각 등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임직원 상여금을 과다 지급해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사돈을 횡령한 혐의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구체적인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회장은 경영상 판단과 회사 차원의 경조사비 지출 등을 내세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달 법원은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최근 수사팀을 재정비한 검찰은 한국경제교육협회와 관련한 자금 흐름도 일부 파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2009년부터 KT 회장과 한국경제교육협회장을 겸임했다. 그런데 협회가 모금한 기부금 활용 및 지원금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의혹이 일자 자연스레 이 전 회장이 횡령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고개를 드는 중이다. 다만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전력이 있는 만큼 기소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과 연관된 의혹은 하나 더 있다. KT의 자회사인 KT ENS 직원이 연루된 3000억원대 대출사기 사건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T ENS 직원 김모 부장은 협력업체와 공모해 2010년부터 가짜 매출채권을 담보로 시중은행 등에서 30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았다.

김 부장은 실제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협력업체와 짜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끊어줬다. 협력업체는 김 부장이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담보로 하나은행, KB국민은행, 농협은행 등 시중은행과 일부 저축은행으로부터 부당대출을 받았다.

KT ENS의 협력업체인 중앙티앤씨 등 8곳은 실제 거래가 없었음에도 서류를 위조해 2008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00여 차례에 걸친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범행을 도운 김 부장이 받은 돈은 5000여만원에 불과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복잡한 범행 수법에도 불구하고 KT ENS와 각 은행들은 "김 부장 개인의 단독 범행"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내부 도움 없인 불가능한 범죄란 게 일반의 시각이다.

김 부장 등이 빼낸 3000억원 중 하나은행으로부터 나온 170억원은 사모펀드로 들어간 뒤 주식시장에 흘러들었다. 이중 50억원은 한 코스닥 상장사를 사들이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해당 사실을 적발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출받은 돈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여러 곳에 분산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관련한 사실을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석채 비자금 수사 와중에 
KT 3000억 사기 대출 터져
검은돈 정관계 흘러간 정황


이처럼 대출 규모가 크고 ▲범행이 반복적이며 ▲복수 금융사가 속을 정도로 서류가 정교하게 위조됐고 ▲최근까지 어느 누구도 범행을 눈치 채지 못한 데다 ▲김 부장이 해외로 도피하지 않고 경찰에 자진 출두한 점 등을 근거로 일각에선 '이석채 비자금'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다.

김 부장의 상관인 김성만 전 KT ENS 대표이사는 소위 '영포 라인'으로 '이석채 체제'에서 이 전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 특히 김 전 이사는 '무궁화 위성 헐값 매각' 의혹에 연루된 인물이며, '이석채 비자금'의 한 창구로 의심돼왔다.




업계에선 '황창규 체제'가 출범하면서 일부 '세작'들이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내부 고발자와 정부 권력기관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절묘한 타이밍에 수사가 들어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끊이지 않은 이 전 회장의 정·관계 금품로비 의혹은 사실 여하에 따라 다가올 지방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이 전 회장과 함께 사정당국의 타깃이 됐던 박 전 차관은 '원전비리'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 20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김문관 부장판사)는 원전과 관련한 청탁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차관에게 징역 6월과 벌금 1400만원, 추징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박 전 차관은 여당 고위 당직자 출신인 이윤영씨로부터 한국정수공업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처리 설비 공급과 관련한 청탁의 댓가로 5000만원을 수뢰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박 전 차관에게 무죄를 내렸다. 단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으로부터 원전정책을 수립할 때 한수원 입장을 반영해달라는 명목으로 받은 700만원에 대해선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했다.

수사 초기 단계부터 이명박정부 실세인 박 전 차관 등이 개입된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원전 비리'는 단일 수사로는 최대 규모의 인원을 재판에 넘기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에서 칼끝이 무뎌지는 한계를 드러내며 '권력형 게이트'로 확대되지 못했다.


박영준 거르고
낙하산 압박하나


파이시티 수사와 원전비리 수사로 각각 법정에 선 박 전 차관에 대한 사정작업은 어느 정도 정리된 분위기다. 한국경제교육협회 수사가 아직 남아있지만 '죽은' 박 전 차관보다는 '산' 이 전 회장에게 화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권력기관의 다음 타깃은 전기·전력·석유·가스 등 에너지와 관련한 공기업이라고 전해진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 기조에 따른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공기업 압박으로 구멍 난 세수를 확보하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는 일석이조의 노림수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관계자는 "이명박정부 당시 공기업 사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정권 실세에게 금품을 전달했거나 편의를 봐준 사람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혐의 입증과는 별개로 특정 기업과 관련한 투서는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B사의 횡령과 관련한 수사는 최초 알려진 금액보다 횡령액이 4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비자금 조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상황이다. 또 이명박정부 때 급성장한 C사는 최근 역외탈세 혐의로 국세청의 표적이 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B사와 C사의 경영진 모두 지난 정권 실세와의 유착이 의심된 전력이 있다.

이처럼 박근혜정부는 이 전 대통령 주변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수사는 아직 소식이 없다. 증권가나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뜬소문만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주변을 건드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붙잡힌 측근들이 정권의 '세작'으로 돌변해 언제 자신의 등 뒤를 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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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