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검찰총장 찍어내기' 서초구청이 앞잡이 노릇?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8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합작'을 했다는 의혹은 정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이들은 불법적인 자료 획득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의심 받았다. 그런데 잠잠해지는 듯했던 '채동욱 사태'는 엉뚱하게도 서초구에서 재점화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 서초구청 소속 조모(53) 행정지원국장이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유출했다는 정황이 발견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진짜 몸통은?
누가 지시했나 

앞서 시민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은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조선일보> 기자 2명, 개인정보 유출에 관여한 성명불상인을 가족관계의등록등에관한법률·초중등교육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장영수)는 고발장 접수로부터 2달여가 지난 11월20일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조 국장의 사무실과 자택에 수사팀을 보내 컴퓨터 파일과 내부 문서, 전산 자료 등을 확보했다. 또 조 국장의 신체를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내역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구청 한 관계자는 "원세훈 핵심 측근 중 1명이 조 국장"이라고 귀띔했다.

 

조 국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국장은 원 전 원장이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비서실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행정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원 전 원장은 2008년 조 국장을 행정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이와 관련 <노컷뉴스>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의 말 등을 인용해 "조 국장이 경북 포항 출신이고 ▲원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른바 '영포회' 소속으로 ▲원 전 원장의 가정사도 맡아 처리하는 집사 역할을 수행했었다"고 보도했다.

잠잠해지다 엉뚱하게도 서초서 재점화
임모씨·채군 모자 서류 무단 조회·열람

기자가 확인을 위해 자문을 구한 서울시 전 직원의 설명도 비슷했다. 그는 "조 국장의 승진이 굉장히 빨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직급은 높았지만 서초구청으로 임용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높은 사람이 힘을 써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6월14일 조 국장은 행정지원국 소속 부하 직원을 통해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 조회·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곳은 서초구청 행정지원국 산하 오케이민원센터로 특정됐다. 오케이민원센터는 서초구민의 개인정보와 관련한 서류 발급 및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검찰은 채군의 모친인 임모(54)씨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오케이민원센터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혐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됐다.

열람한 시기와
사건 시점 일치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수사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서초구청 측은 임씨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문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법상 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증명서를 조회·열람·발급받기 위해선 증명신청서에 명확한 사유를 적시한 뒤 제출해야 한다.


단 당사자는 예외로 하며, 제3자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기 위해선 이를 위임한 당사자나 배우자, 형제자매 등으로부터 본인동의서나 위임장을 전달받아 제출해야 한다.

직무상 필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문서를 열람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반드시 열람 사유와 근거법령을 기재한 신청기관의 공문, 관계 공무원의 신분증명서가 함께 제출돼야 한다. 또 가족의 동의 없이 관련 기록을 열람했다면 해당 열람 사실을 가족에게 고지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조 국장이 상기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검찰은 최근 조사한 행정지원국 직원으로부터 조 국장의 지시로 관련 문서를 무단 조회·열람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 국장의 해당 행위가 직무권한 범위 내에 있었는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조 국장이 열람·조회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유출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법상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으로 조회·열람·발급받거나 사용 목적 외의 부정한 용도로 유용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또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 등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경우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살펴봤을 때 조 국장에 대한 형사 처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측은 지난 11월27일 "조 국장에 대한 자체 징계나 내부 감사는 현재 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기자는 조 국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직원을 만나고자 했으나 "휴가 중이라 출근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조 국장에게서 직접 해명을 들으려고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조 국장은 검찰에 소환됐다.

11월28일 오전 10시께 검찰은 조 국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으로 조회·열람한 경위와 목적, 자료의 외부 유출 또는 임의로 사용한 의혹, 국정원 등 다른 정부기관의 개입 여부 등을 캐물었다.

조 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원 전 원장의 지시나 국정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족관계등록부 기록내용을 유선전화로 전달했을 뿐 문서 형태로 출력하거나 외부로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복수 언론 및 관계자는 조 국장이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시기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점이 일치하는 것에 착안, 그 배후에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위와 목적,
유출 의도는?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는 지난 9월6일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입수해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해당 기사를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가족관계등록부, 주민등록초본, 출입국증명서가 있다. 이들 문서는 행정기관에서 발급 업무를 위해 전산망에 접속하면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1월29일 검찰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수사팀은 최근 가족관계등록부 사무를 관장하는 대법원과 안전행정부의 전산망 서버 내역을 확보해 조사했다. 이는 전국의 가족관계등록부 전산 조회 기록을 전수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각 기관은 가족관계등록부를 보관·관리·처리하고 있다. 전국 관공서에는 가족관계 업무 담당자가 1만3237명 지정돼 있다.



이들은 가족관계 업무 전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부여받아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때문에 담당 공무원이 특정인의 가족 정보를 조회하면 전산망 서버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특정 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느 기관에서 '몇월 며칠 몇시 몇분'에 누구의 가족부를 열람했는지까지 확인된다.

현재까지 조 국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임씨의 기록을 조회한 횟수는 2회로 파악됐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조회수는 늘어날 수 있다. 관련 조사를 마친 검찰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조 국장과 함께 압수수색을 당했던 서초구청 감사담당관 임모 과장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임 과장은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다음날인 9월7일 청와대 관계자의 공문 요청으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임 과장은 '채동욱 찍어내기'의 배후 인물 중 1명으로 지목된 곽 전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 과장은 지난 2003년 곽 전 수석이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있을 때 같은 부서 소속 검사이던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방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때문에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의 개인 정보 유출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원세훈·곽상도 측근 수사선상
청와대·국정원 개입여부 관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곽 전 수석은 파견 나온 임 과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곽 전 수석이 임 과장을 특별히 챙겼던 기억이 있다. 파견이 끝난 뒤에도 곽 전 수석이 임 과장 등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조선일보> 보도 직후 진위 파악에 나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사실 확인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임 과장에게 공문을 보내 관련 문서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임 과장의 경우 정식 공문을 받은 뒤 업무 권한에 따라 기록을 조회해 정상적으로 업무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채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유출 의혹을 받는 서초구청 관계자들이 각각 원 전 원장과 곽 전 수석의 측근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팎의 시선은 '진짜 몸통이 누구냐'에 쏠리고 있다.

더구나 채군 모자의 주소지는 강남구인데 엉뚱하게도 서초구청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해석이다. 이에 기자는 좀 더 정확한 입장을 듣기 위해 임 과장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남구 사는데
서초구서···왜?

검찰은 지난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해 채군 모자의 항공권 발권기록 자료를 넘겨받았다. 아울러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서버에서 로그인 기록 등을 뒤졌다. 검찰이 이르면 이번 달 중순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 이외의 유출 경위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개입설은 증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건드렸다가 내홍을 겪은 검찰 입장에서 수사를 확대할리 없다는 예상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채 전 총장의 '명예'를 위한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 원세훈과 친분 눈길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진익철 서초구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친분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복수 제보자는 "서울시 5급 이상 공무원 중 진익철과 원세훈의 친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진 구청장과 같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서울시청에서 함께 일했다. 그런데 단순히 같은 직장을 다니는 수준이 아닌 핵심 측근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앞서 원 전 원장이 서울시에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재정기획관은 기획관리실장의 직속 참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 복수 관계자는 "진익철과 원세훈은 부부끼리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키맨'인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진 구청장은 유출 사실을 몰랐으며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진 구청장은 한 지역 공식행사에 참여해 "조 국장 개인의 불법 행위"라며 자신과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석>

 

[바로잡습니다]

일요시사는 2013년 12월 1일자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중 하단 기사인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서울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익철)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음과 같이 바로잡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86~1988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에 재직했으며 1993년 3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 '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을 맡았습니다. 진 구청장은 1989~1993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지냈습니다.

진 구청장이 '기획관리실 재정기획관'으로 있던 1997년, 원 전 원장은 '내무국'을 거쳐 '중앙공무원교육원'에 파견을 나갔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99년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시의회 사무처장'을 맡았고, 진 구청장은 2001년~2002년까지 '공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지낸 기간은 2003년 11월부터 2006년 6월이며, 진 구청장은 2003~2005년까지 '환경국장'으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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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