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취임 1년을 맞았다. 쉽지 않았던 국회의장 선출부터 원 구성을 마치고 여야의 격한 대립을 헤쳐 온 파란만장한 1년이다. 취임 1년이지만 기념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국회 분위기는 험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 등 핵심 쟁점법안을 두고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국회의장으로서의 고민도 적지 않다. 부지런히 달려온 길.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고 남은 기간 동안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김 의장의 발자취를 좇았다.
꽉 채운 임기 1년 시작부터 끝까지 시련 또 시련
42일 만에 간신히 선출, 보름 동안 원구성 골머리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해 7월10일 18대 국회 전반기에 선출됐다. 헌정 60년 사상 처음으로 임기 개시 후 첫 임시회 회기에 국회의장을 선출하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다 42일 만에 처음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283명 중 263명의 의원이 찬성, 전반기 2년을 이끌 의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래저래 ‘남다른’ 국회의장의 시작이었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을 통해 내정자가 됐다. 통상 국회의장은 여당 최다선 의원이 맡았지만 최다선인 이상득 의원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각각 ‘대통령의 형님’ ‘대권주자’여서 국회의장직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결국 안상수 의원과 한판승부를 벌였고 당 소속 의원 153명 중 14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인 102표를 획득해 당선됐다. 그러나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다. 때문에 그는 당선 인사말에서 “18대 국회를 품격있는 정치를 펴는 원년으로서, 선진국회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 편 가르기 않고, 공정하고, 상대에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도록 여야를 조율해 초선-다선을 뛰어넘고, 소장과 노장의 차별없이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고, 국회의 권위와 권능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그러한 국회의 밑그림만 그릴 것이고 각종 색깔을 넣어 그림을 완성시키는 일은 의원 여러분들이 해달라”고 말했다.
40여 일 동안 국회가 표류한 점을 지적하면서 의원들의 협조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 던져진 과제는 쉽지 않았다. 여야 원내대표들 사이에서 원 구성을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천신만고 끝에 의장으로 선출된 지 한 달 보름 만에 전반기 원 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예산안 처리 및 3월2일의 여야 대타협 등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여야간 중재 노력으로 합의를 이끌며 파국을 막고 국회운영을 정상화해야 했다.
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한 파국이 적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직권상정은 그를 힘들게 했다. 김 의장은 3번의 직권상정을 시도했다. 지난해 12월12일 첫 직권상정은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 감세법안 등 예산 부수법안 13건에 대한 것이었다. 법제사법위가 심사기일 내 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하자 직권상정을 통해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한 것.
시작부터 가시밭길
‘품격정치’ 포부 당당
지난 3월2일에는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야간 첨예한 대립이 진정되지 않자 쟁점법안 15개에 대한 직권상정을 예고했다. 결국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직권상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지난 4월30일에는 주공·토공 통합법안과 소득세법, 법인세법 개정안 등 3개 쟁점법안을 직권상정을 통해 통과시켰다.
김 의장은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 처리를 두고 6월 임시국회 종료일(25일)이 다가오면서 또 한 번 직권상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핵심 쟁점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실력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장이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직권상정은 여전히 그의 심기를 복잡하게 하는 ‘골칫거리’인 셈이다. 직권상장을 피하자니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그를 비판하고 직권상정을 하면 민주당이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고민이 길어지는 동안 여야 모두에게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김 의장은 “직권상정을 두 번이나 한 의장이어서 참 가슴아프다”면서도 “스스로 위안을 삼자면 직권상정이 협상이나 타협을 이끄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그러나 국회의장이 되면서 하고자 한 두 가지는 꼭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개헌과 국회 개혁이 그것이다.
‘개헌론자’ 김형오
개헌·국회 개혁에 매진
국회의장이 되면서 던진 이 두 가지 화두는 김 의장이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이 되자마자 의장 자문기구로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와 ‘헌법연구 자문위’를 각각 구성했다.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는 최근 제·개정이 제안된 국회법, 의사규칙 및 의원윤리규칙을 제출했다. 이 국회법개정안이 국회정치개혁특위에서 확정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진다.
우선 제·개정이 제안된 국회법은 국회에 계류 중인 의안과 동일한 내용의 의안의 국회제출을 금지해 동일한 내용의 입법발의를 남발해 의원입법 발의건수를 부풀리던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국회의원 본인이 이미 발의한 의안과 내용이 모순되는 의안을 발의할 수 없도록 했다. 윤리규칙 권고안에는 국회의원의 직무상 국외활동에 가족동반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민간 등이 여비를 지원하는 직무상 국외활동에 대해서는 국회 윤리특위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고, 사후에 여비내역 등을 신고·공개토록 했다. 국회의원의 배우자나 4촌 이내의 친·인척을 의원보조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했다.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 활동과 발맞춰 국회 사무처와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의 조직과 인원을 재배치하는 등 국회 산하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도 펼쳤다.
3차례 직권상정 시도, 여야 합의 유도 위해 고심
남은 기간 개헌, 국회개혁 두 가지 ‘화두’ 이뤄낼까
헌법연구자문위를 통한 개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성과도 곧 나올 예정이다. 제헌절을 앞두고 지난 1년간 연구한 결과 보고서를 내놓는다는 것. 김 의장은 취임하면서 “올해는 건국 60주년, 제헌 60주년 되는 해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정치는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라고 했는데, 의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가자”고 의지를 불태웠던 ‘개헌’ 논의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김 의장은 그동안 각종 행사나 인터뷰에서도 개헌에 대한 변치않는 의지를 드러냈었다. 그는 “1987년 헌정 체제를 지금까지 20년 남짓 유지하고 있는데 직선제 이후 대통령 5명 가운데 4명이 불행한 결과를 맞았다”면서 “이런 부작용이 지금 엄청난 시련으로 느껴지는 만큼 개헌을 통해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취임 1년을 기념한 인터뷰에서도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권력 분점 형태로 개헌을 마무리 지은 뒤 타협과 조화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구조 개편이 없이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개헌절 기점으로
개헌 논의 성큼
김 의장은 “국회가 타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5년 내내 싸우는 근본적인 이유도 차기 정권을 염두에 두고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자기 입장만 밀어붙이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권력구조 하에서 국회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내각제냐 중임제냐 이원정부제냐 등은 결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라며 “어떤 형태이든 본질적으로 권력의 분점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17일 제61주년 제헌절을 맞아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을 공식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을 비롯한 5대 국경일 중 제헌절은 국회에서 주관하는 유일한 행사로 국회가 ‘헌법’을 제정했다는 의의를 살리고자 한 것이다. 이날 국회가 준비하고 있는 개헌절 행사 중 ‘제1회 국회의장배 전국대학생 토론대회’ 본선에서 ‘권력구조 개헌, 무엇이 바람직한가’라는 논제로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글로벌 시대의 역동적 변화와 새로운 헌법질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와 ‘헌정 61주년, 국회발전과 방향과 과제’를 다룬 제헌절 기념 세미나도 준비, 개헌을 향한 군불 지피기에 나섰다. 국회가 여야 대치로 어지러운 상황인 만큼 취임 1주년 행사는 따로 갖지 않았다.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도 하지 않았다. 국회 환경미화팀 150여 명과 오찬을 함께한 뒤 ‘어린이 국회’ 행사로 조용히 보냈다.
어두운 취임 1년
“마음이 어둡다”
취임 1주년을 맞아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근심이 묻어난다. “자괴와 민망함과 책임감에 마음이 어둡다”는 글귀로 시작된 편지에서 김 의장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거론되는 ‘직권상정’ 정치는 18대 국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18대 국회는 의회민주주의 가치를 후퇴시킨 국회로 기록될까 걱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87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 위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개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