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⑤ ‘바보 노무현’의 일대기

삶도 승부사 죽음도 승부사 ‘자연으로 돌아가다’



‘7전 8기’ 정신으로 굴곡 많은 정치인생 버텨
민주화투쟁 앞장선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지난 23일 토요일 오전, 편안한 마음으로 휴일 아침을 보내던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서 영예를 누렸던 그가 이제 곧 한 줌의 재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노무현, 그는 누구인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과 성장과정 등 그의 일대기를 짚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의 빈농 집안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진영읍내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이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굴곡이 심하고 비탈진 인생길을 걸어왔다. 머리가 좋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자 명랑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선 ‘노천재’로도 통했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고뭉치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어머니의 충고를 자주 들어야 했다.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뻔하기도 했고 한때는 막노동판에서 날품을 팔아 끼니를 때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상고 졸업 이후 어망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가난한 시절 독학으로
사시합격한 ‘악바리’
 
그러다 군복무와 결혼(73년) 후 9차례의 도전 끝에 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지만, 8개월 만인 78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엔 주로 ‘돈 되는’ 조세소송을 많이 맡았지만 81년 부산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구속된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재야 변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만은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열망과 모두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동시에 있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에게 ‘부림사건’ 변론은 첫 번째 열망이 두 번째 꿈으로 옮겨진 전환점이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87년 노동쟁의 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21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암울했던 당시 시절을 감안할 때 그의 변호 활동은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힘이었다.

그러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출발이 좋았다. 그는 당시 5공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를 꺾고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던 그해 말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렇지만 이후 14년여의 정치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92년 3당합당을 거부한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4대 총선을 비롯,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 15대 총선, 2000년 총선 등 무려 네 번이나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 같은 정치적 수난은 돌이켜보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에게 ‘약’이 되었다. 원칙을 무기로 한 승부사적 기질이 그를 모험의 바다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결국 새끼사자로 거듭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크게 세 번의 모험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92년 3당합당 거부이고, 두 번째는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 출마를 결정한 2000년 4·13 총선이다. 그는 이때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담보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3당합당을 거부하거나 서울의 노른자위 지역구를 차버린 결과는 모두 그에게 좌절을 안겨줬다.

세 번째 승부수는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이른 바 ‘단일화 대첩’.


이번에도 역시 그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국민경선 후보직을 내걸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당내 반 노무현 세력의 줄 탈당이 진행되던 중 노 전 대통령은 “국민경선으로 후보를 단일화하자”고 선수를 쳤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선수를 쳐서 주도권을 잡고 나간다는 점과 협상과정에서 자질구레한 것은 모두 양보한다”는 그의 정치스타일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경선 후보직을 내건, 곡예와도 같은 대도박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패자인 정몽준 후보에게서 얼마만큼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느냐였다.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지만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탁월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으로 앞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막판 정 후보의 유세지원은 대세 굳히기로는 너무 큰 우군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선거일을 불과 두 시간 남짓 남겨 놓고 정 후보의 ‘지지 선언 철회’라는 철퇴를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대권을 거머쥐었다. 단일화 합의를 불복한 정 후보의 지지 철회는 이미 노무현을 낙선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성취를 향한 도전, 기득권세력에 대한 항거라는 두 가지 기질을 엿보게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5시에 눈을 뜨곤 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거실에서 요가를 한 후 가부좌로 숨을 고르며 물구나무도 섰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섞어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동작도 있었다고 한다. 고시공부 때부터 30년 이상 계속해온 ‘요가 30분’에 대해 그는 “머리가 맑아진다”고 말했다.

어려서 지게질도 하고 산도 잘 탔던 노 전 대통령은 타고난 강골 체질이었다. 국민경선을 치르며 3개월 넘게 강행군하다 대선 과정에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잔병치레가 없는 편이었다.

아버지(77세)와 어머니(94세)가 천수를 누렸고, 집에 혈압, 당뇨, 암 같은 유전 병력도 없었다고 한다. 노무현식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이었다. 화가 나면 한잠 푹 자고 털어냈다고 한다.

폭탄주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단상은 “제발 안 마셨으면…”이었다. 술은 약하나 분위기는 잘 맞추는 쪽이었지만 폭탄주 한두 잔이 오가면 얼굴이 벌게지는 등 태생적으로 술에 강한 체질은 아니었다고 한다.

‘소신’과 ‘원칙’ 중시한
굴곡 투성이 정치인생

노 전 대통령의 18번은 운동권 가요 ‘타는 목마름으로’와 선거 유세 때 따라 부르다 익혔다는 대중가요 ‘작은 연인들’(권태수·김세화)이었다.

입맛 없을 때 찾는 음식은 삼계탕이었다. 서울 효자동에 있는 ‘토속촌’이 그가 잘 가던 삼계탕 집이다. 부인인 권 여사는 “과식을 하지 않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고 전한 바 있다. 정계 입문 후엔 아침에 꼭 밥을 챙겨먹고 보약도 먹었으며, 음료는 녹차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운동은 ‘즐기는’ 쪽이었다. 복싱(중학교), 요트(초기 변호사 시절), 볼링(정계 입문 후)은 아마추어 수준이었고 골프는 해양수산부 장관(52세) 때 배웠다. 골프에 대해선 “칠 때가 돼서 쳤고, ‘핸디 30’에 딱 한 번 80대에 들어가 봤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리(필드 입문)’를 얹어준 친구 강태룡씨가 전한 노 전 대통령의 골프 폼은 ‘자치기’ 형이었다. “드라이브(180∼200야드)가 장타는 아니고, 공을 잘 맞추는 ‘또박또박’ 타법이었다. 실수가 적고 게임에 열중했다. 물(워터 해저드)을 넘기기 꺼림칙하면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는 스타일”이 강씨가 전한 노 전 대통령의 골프관이다.

노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축구선수는 홍명보, 윤정환,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이다. ‘창조적’이란 이유에서다. 친구 유영씨는 “고등학교 때 방과 후 고무공 축구를 많이 했고, 노 전 대통령은 기술은 없어도 체력이 좋았다”고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에게 포지션을 묻자 “동네축구에 무슨 포지션이냐”고 되묻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독학을 해 왔던 터라 문제가 생기면 책을 먼저 찾는 다독형이었다. 컴퓨터도, 요트도 책으로 시작해 독학했고 원리가 담긴 서적부터 시작해 응용서적까지 읽는 게 노 전 대통령의 독서 습관. 부인인 권 여사는 “갖고 있는 책이 2000권이 넘고 거실까지 서재로 쓰고 있으며 미래학, 사상서, 경제, 경영, 국가전략과 관련한 책이 많고 의외로 소설은 적다”고 말한 바 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독후감(<리콴유 자서전>, 지미카터의 <나이 드는 미덕> 등)을 써 추천하곤 했다.

젊은 시절 습작도 있다고 한다. 울산 막노동판에서 다쳐 입원중일 때 2편의 단편소설을 썼는데 주제는 ‘희망도 없이 돌아다니는 노가다들의 삶과 애환’ ‘간호원 연가’였고, 모두 자신을 주인공으로 쓴 글이란다.

노 전 대통령은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사귀면 깊게 사귀었다. 소위 ‘경상도 촌놈’ 스타일이다. 사람을 사귈 때는 상대방 됨됨이를 따지는 등 상당히 세심하게 가리는 편이었다. 정치인치고는 심하게 낯을 가린다는 평도 이 때문이었다.

경남 대창초등학교―진영중―부산상고 등 그가 거친 학교의 동창 가운데 절친한 친구는 10명 정도뿐이었다.

고교 동창인 원창희, 강태룡, 중학 동창인 노태구 경기대 교수, 초등학교 동창인 이승보, 조용상씨 등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고향을 찾을 때 추어탕과 막걸리를 함께하며 추억을 더듬는 멤버들이었다. “무현이가 술 한잔 걸치면 곱사춤을 추고 구성진 노래 가락으로 분위기를 띄운다”고 이들은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친구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부탁은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에게 사소한 부탁을 했다가 무안을 당한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반면 빚보증을 섰다가 떼이고도 ‘내 탓’이라며 친구를 감싼 예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인 가운데는 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부산지역 재야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이 지역 재야 세력의 대부인 송기인 신부와 82년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눈빛만 봐도 서로 속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노 전 대통령과 절친했다.


송 신부는 80년대 초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미 문화원 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알게 된 사이로 노 전 대통령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이놈’하고 꾸짖을 수 있던 어른이기도 하다. 송 신부는 지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 행보를 두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고민 생기면 독서하고,
대인관계는 깊이 있게

문 실장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술잔을 기울이며 심경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 문제로 고심할 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게 측근들 전언이다.

손숙(연극인), 명계남, 문성근(영화배우), 김하기(소설가), 임정남, 강은교(시인), 이창동(영화감독), 박계동(화백)씨 등 문화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빼놓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손씨가 환경부 장관에서 물러날 당시 “지식인이 들끓는 여론 때문에 상처 받아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변호사 모임’(노변모)의 이돈명, 황산성, 노경래, 최병모, 이석태, 박연철 변호사 등도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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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