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⑤ ‘바보 노무현’의 일대기

삶도 승부사 죽음도 승부사 ‘자연으로 돌아가다’



‘7전 8기’ 정신으로 굴곡 많은 정치인생 버텨
민주화투쟁 앞장선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지난 23일 토요일 오전, 편안한 마음으로 휴일 아침을 보내던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서 영예를 누렸던 그가 이제 곧 한 줌의 재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 노무현, 그는 누구인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과 성장과정 등 그의 일대기를 짚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의 빈농 집안에서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진영읍내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이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굴곡이 심하고 비탈진 인생길을 걸어왔다. 머리가 좋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자 명랑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선 ‘노천재’로도 통했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고뭉치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어머니의 충고를 자주 들어야 했다.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뻔하기도 했고 한때는 막노동판에서 날품을 팔아 끼니를 때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상고 졸업 이후 어망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가난한 시절 독학으로
사시합격한 ‘악바리’
 
그러다 군복무와 결혼(73년) 후 9차례의 도전 끝에 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지만, 8개월 만인 78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처음엔 주로 ‘돈 되는’ 조세소송을 많이 맡았지만 81년 부산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구속된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재야 변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만은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열망과 모두 가난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동시에 있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에게 ‘부림사건’ 변론은 첫 번째 열망이 두 번째 꿈으로 옮겨진 전환점이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87년 노동쟁의 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21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암울했던 당시 시절을 감안할 때 그의 변호 활동은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힘이었다.

그러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의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출발이 좋았다. 그는 당시 5공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를 꺾고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던 그해 말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렇지만 이후 14년여의 정치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92년 3당합당을 거부한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4대 총선을 비롯,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 15대 총선, 2000년 총선 등 무려 네 번이나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 같은 정치적 수난은 돌이켜보면 오히려 노 전 대통령에게 ‘약’이 되었다. 원칙을 무기로 한 승부사적 기질이 그를 모험의 바다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결국 새끼사자로 거듭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크게 세 번의 모험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92년 3당합당 거부이고, 두 번째는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 출마를 결정한 2000년 4·13 총선이다. 그는 이때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담보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3당합당을 거부하거나 서울의 노른자위 지역구를 차버린 결과는 모두 그에게 좌절을 안겨줬다.

세 번째 승부수는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이른 바 ‘단일화 대첩’.


이번에도 역시 그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국민경선 후보직을 내걸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당내 반 노무현 세력의 줄 탈당이 진행되던 중 노 전 대통령은 “국민경선으로 후보를 단일화하자”고 선수를 쳤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선수를 쳐서 주도권을 잡고 나간다는 점과 협상과정에서 자질구레한 것은 모두 양보한다”는 그의 정치스타일이 먹혀들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경선 후보직을 내건, 곡예와도 같은 대도박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패자인 정몽준 후보에게서 얼마만큼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느냐였다.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지만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탁월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으로 앞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막판 정 후보의 유세지원은 대세 굳히기로는 너무 큰 우군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선거일을 불과 두 시간 남짓 남겨 놓고 정 후보의 ‘지지 선언 철회’라는 철퇴를 맞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대권을 거머쥐었다. 단일화 합의를 불복한 정 후보의 지지 철회는 이미 노무현을 낙선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성취를 향한 도전, 기득권세력에 대한 항거라는 두 가지 기질을 엿보게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5시에 눈을 뜨곤 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거실에서 요가를 한 후 가부좌로 숨을 고르며 물구나무도 섰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섞어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동작도 있었다고 한다. 고시공부 때부터 30년 이상 계속해온 ‘요가 30분’에 대해 그는 “머리가 맑아진다”고 말했다.

어려서 지게질도 하고 산도 잘 탔던 노 전 대통령은 타고난 강골 체질이었다. 국민경선을 치르며 3개월 넘게 강행군하다 대선 과정에서 몸살을 앓기도 했지만 잔병치레가 없는 편이었다.

아버지(77세)와 어머니(94세)가 천수를 누렸고, 집에 혈압, 당뇨, 암 같은 유전 병력도 없었다고 한다. 노무현식 스트레스 해소법은 잠이었다. 화가 나면 한잠 푹 자고 털어냈다고 한다.

폭탄주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단상은 “제발 안 마셨으면…”이었다. 술은 약하나 분위기는 잘 맞추는 쪽이었지만 폭탄주 한두 잔이 오가면 얼굴이 벌게지는 등 태생적으로 술에 강한 체질은 아니었다고 한다.

‘소신’과 ‘원칙’ 중시한
굴곡 투성이 정치인생

노 전 대통령의 18번은 운동권 가요 ‘타는 목마름으로’와 선거 유세 때 따라 부르다 익혔다는 대중가요 ‘작은 연인들’(권태수·김세화)이었다.

입맛 없을 때 찾는 음식은 삼계탕이었다. 서울 효자동에 있는 ‘토속촌’이 그가 잘 가던 삼계탕 집이다. 부인인 권 여사는 “과식을 하지 않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잡곡밥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고 전한 바 있다. 정계 입문 후엔 아침에 꼭 밥을 챙겨먹고 보약도 먹었으며, 음료는 녹차를 자주 마셨다고 한다.

운동은 ‘즐기는’ 쪽이었다. 복싱(중학교), 요트(초기 변호사 시절), 볼링(정계 입문 후)은 아마추어 수준이었고 골프는 해양수산부 장관(52세) 때 배웠다. 골프에 대해선 “칠 때가 돼서 쳤고, ‘핸디 30’에 딱 한 번 80대에 들어가 봤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머리(필드 입문)’를 얹어준 친구 강태룡씨가 전한 노 전 대통령의 골프 폼은 ‘자치기’ 형이었다. “드라이브(180∼200야드)가 장타는 아니고, 공을 잘 맞추는 ‘또박또박’ 타법이었다. 실수가 적고 게임에 열중했다. 물(워터 해저드)을 넘기기 꺼림칙하면 무리하지 않고 돌아가는 스타일”이 강씨가 전한 노 전 대통령의 골프관이다.

노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축구선수는 홍명보, 윤정환,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이다. ‘창조적’이란 이유에서다. 친구 유영씨는 “고등학교 때 방과 후 고무공 축구를 많이 했고, 노 전 대통령은 기술은 없어도 체력이 좋았다”고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에게 포지션을 묻자 “동네축구에 무슨 포지션이냐”고 되묻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독학을 해 왔던 터라 문제가 생기면 책을 먼저 찾는 다독형이었다. 컴퓨터도, 요트도 책으로 시작해 독학했고 원리가 담긴 서적부터 시작해 응용서적까지 읽는 게 노 전 대통령의 독서 습관. 부인인 권 여사는 “갖고 있는 책이 2000권이 넘고 거실까지 서재로 쓰고 있으며 미래학, 사상서, 경제, 경영, 국가전략과 관련한 책이 많고 의외로 소설은 적다”고 말한 바 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독후감(<리콴유 자서전>, 지미카터의 <나이 드는 미덕> 등)을 써 추천하곤 했다.

젊은 시절 습작도 있다고 한다. 울산 막노동판에서 다쳐 입원중일 때 2편의 단편소설을 썼는데 주제는 ‘희망도 없이 돌아다니는 노가다들의 삶과 애환’ ‘간호원 연가’였고, 모두 자신을 주인공으로 쓴 글이란다.

노 전 대통령은 친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사귀면 깊게 사귀었다. 소위 ‘경상도 촌놈’ 스타일이다. 사람을 사귈 때는 상대방 됨됨이를 따지는 등 상당히 세심하게 가리는 편이었다. 정치인치고는 심하게 낯을 가린다는 평도 이 때문이었다.

경남 대창초등학교―진영중―부산상고 등 그가 거친 학교의 동창 가운데 절친한 친구는 10명 정도뿐이었다.

고교 동창인 원창희, 강태룡, 중학 동창인 노태구 경기대 교수, 초등학교 동창인 이승보, 조용상씨 등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고향을 찾을 때 추어탕과 막걸리를 함께하며 추억을 더듬는 멤버들이었다. “무현이가 술 한잔 걸치면 곱사춤을 추고 구성진 노래 가락으로 분위기를 띄운다”고 이들은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친구라도 원칙에 어긋나는 부탁은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에게 사소한 부탁을 했다가 무안을 당한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반면 빚보증을 섰다가 떼이고도 ‘내 탓’이라며 친구를 감싼 예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인 가운데는 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부산지역 재야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이 지역 재야 세력의 대부인 송기인 신부와 82년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눈빛만 봐도 서로 속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노 전 대통령과 절친했다.


송 신부는 80년대 초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미 문화원 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알게 된 사이로 노 전 대통령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이놈’하고 꾸짖을 수 있던 어른이기도 하다. 송 신부는 지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 행보를 두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질책했다고 한다.

고민 생기면 독서하고,
대인관계는 깊이 있게

문 실장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술잔을 기울이며 심경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 문제로 고심할 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게 측근들 전언이다.

손숙(연극인), 명계남, 문성근(영화배우), 김하기(소설가), 임정남, 강은교(시인), 이창동(영화감독), 박계동(화백)씨 등 문화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빼놓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손씨가 환경부 장관에서 물러날 당시 “지식인이 들끓는 여론 때문에 상처 받아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변호사 모임’(노변모)의 이돈명, 황산성, 노경래, 최병모, 이석태, 박연철 변호사 등도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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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