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강경 보수파'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6 16: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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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플러스·외교 마이너스 "깐깐한 스타일"

[일요시사=경제1팀]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됐다. 남 내정자는 '돌직구남'으로 불릴 정도로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안보'만큼은 튼튼히 다질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외교'다. 성격이 지나치게 깐깐해 주변국과의 협조체계 구축·협상 등 '총론'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각종 비리로 지탄을 받아온 국정원인지라 직원들도 남 후보자의 스타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새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됐다. 

지난 2일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연이은 도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고 예방하기 위해 시급한 인선을 우선적으로 발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회 검증 문턱
무사히 넘었다

윤 대변인은 남 내정자에 대해 "확고한 안보의식을 가진 분으로 지금의 안보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고 국정원이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일에는 남 내정자에 대한 국회 정보위 인사청문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면서 마무리됐다. 정보위는 보고서 종합의견에서 "후보자가 평소에 검소하게 생활해 온 것으로 보이고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경력이 상당해 보이는 점, 관련 연구와 강의에 진력해 온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정원장으로 직무수행을 무난히 수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8일부터 진행됐던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의혹 등 남 내정자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야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남 내정자가 청문회를 위해 신고한 재산 내역을 두고 강원도 홍천군 토지 매입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남 내정자는 참모총장에 재직 중인 2004년 11월 경춘고속도로 설악인터체인지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강원도 홍천군에 밭 510m²(약 155평)를 부인 명의로 매입했다. 실거래 기준으로 3080만원선이었던 이 땅은 8년 뒤인 지금 6200만원선 정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똑 떨어지는 대북관 국정원 기능 강화 기대
주변국과 협조체계 구축·협상력 부족 평가

이에 대해 남 내정자는 "맹세코 투기를 한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 그는 "전역 당시 친한 동기가 같이 농사를 짓자고 해 산 것"이라며 "땅 값이 오를 만큼 오른 뒤 비싸게 주고 산 것이고 실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투기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추미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주말 농장하겠다는 분이 농지에서 대지로 전체 땅의 2/3이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지목을 변경 한 것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따져 물었고 남 내정자는 "여름에 일하다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땅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총 소득 7억여원 가운데 70% 이상을 저축한 것과 관련해서는 "평소 생활비를 적게 쓴다. 옷 한 벌을 15년 이상씩 입고 살았다"고 말했다.

남 내정자는 서경대 군사학과 석좌교수 재직 당시 군사학과 졸업생 26명 전원이 학사 장교로 선발된 것과 관련해 제기된 전관예우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2008∼2009년 당시에는 원광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있었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가 원광대에 다니면서 서경대를 위해 로비했다는 게 되는 데 이게 납득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군 쏠림인사
부작용 우려


국정원장에 육군 장성 출신이 임명된 것은 1999년 12월 임동원 원장(육군 소장)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법조인 출신의 신건·고영구·김승규·김성호 원장, 내부승진의 김만복 원장이 임명됐고 현재 원세훈 국정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군 출신 인사를 앉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보실장, 국정원장,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통일부 장관, 외교안보수석 등 외교·안보 요직 '빅6' 중 절반인 세 자리가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군사 정부'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기 고조 대북관계 어디로?

남 내정자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내정자는 모두 육군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다. 남 내정자가 육사 25기로 가장 선배이며 육사 27기인 김장수 내정자가 남 후보자가 거친 6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등을 이어 받았다. 박 내정자는 김장수 내정자로부터 육군참모총장 직위를 이어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정부의 안보외교정책 기조가 '강경책'으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지난 2011년 연평도 포격 같은 남북간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강한 대응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정원에 민간인이 아닌 군 출신이 수장으로 내정된 것에 대해서 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 의지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정보 독점 우려
참여정부와 충돌

야권은 "특정 군맥의 독주가 우려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과거 상하관계로 맺어졌던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논의구조가 확보될리 만무하다"며 "가급적이면 육·해·공 인사들을 골고루 포진해서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하나회가 전횡을 부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문민정부 때 해체시켰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 멤버들이 육사 출신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정보 한정 및 독점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육사 출신들이 결성한 사조직으로, 신군부 세력으로 발전해 1979년 군사반란인 12·12사태의 주역이 됐다.

윤관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평화시대를 함께 열자던 대통령의 다짐이 군 출신 인사 일색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은 "이번 인사로 외교안보라인 인사의 핵심은 모두 육사출신이 장악하게 됐다"며 "벌써부터 신군부시대니 육사전성시대니 하면서 특정군맥의 득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외교안보라인이 군 출신으로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며 "안보는 1000번 강조해도 모자라지만 안보를 강조한다고 11명 축구선수 전체를 공격수로만 뽑을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남 내정자는 어떤 인물일까.


1944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난 남 내정자는 65년 육사 25기로 입학해 69년 임관했다. 하나회(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육사 출신 사조직)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멤버가 아니었던 그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특히 남 내정자는 1979년 하나회 주동으로 일어난 12·12 쿠데타로 동기였던 김오랑 소령을 잃고 그의 묘소에서 통곡했다는 이유로 진급 누락 등 불이익을 받았다.

그가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때는 김영삼 정부 들어 하나회가 척결되면서 부터다. 남 내정자는 95년 6사단장을 시작으로 97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98년 수도방위사령관, 2000년 합참 작전본부장, 2002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군부 요직을 두루 거쳐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2005년에는 육군 최고 수장인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다.

군 시절 기본 중시 철저한 ‘원칙주의자'
"FM장교 유명"…타협 모르는 '돌직구남'

한시에 능통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한문에 능숙하며 취미는 등산이다. 최전방 철책에서 지휘관으로 생활하며 병사들과 함께 걷다가 생긴 취미다.  

군 생활의 대부분을 작전분야에 몸담았던 남 내정자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FM'(군내에서 원칙이나 규정대로만 한다는 의미)의 대명사 혹은 '돌직구남'으로 불릴 정도다.


그는 부대 지휘관 시절 행사 때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도록 했고, 부하들과 회식도 애국가로 마무리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직각보행을 어기지 않았으며 군 생활 내내 부하들에겐 청렴과 결백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참모총장 역임 후 2005년 4월, 40년간 몸담았던 군을 떠나면서 관용차 대신 쏘나타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장군으로서는 드물게 골프도 하지 않는가 하면 군사 교범을 마치 '성경'처럼 여길 정도였다. 육군대학 대대장반 장교들에게 '묏자리도 기관총 진지 자리를 찾듯이 하면 최고의 명당을 찾을 수 있다'고 강연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는 스타일로 육군참모총장 시절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벌이며 대립했다.

노 전 대통령이 별장인 청남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자 청와대 참모들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남 내정자가 이를 거절한 것이 첫 번째 충돌이다.

남 내정자는 군 법무관을 국방부 산하로 옮기려던 청와대에도 반대했다. 당시 그는 "군 법무관이 지휘관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고려시대 무신 반란 사건인 '정중부의 난'을 언급한 것으로 비쳐 논란이 됐다. 그는 "(정중부의 난은) 무인들을 무시한 결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 쿠데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장군 진급 인사 문제로도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 지난 2004년 육군 진급심사가 끝난 지 한 달가량 뒤인 그해 11월22일 장교 숙소인 서울 용산구 국방 레스텔 지하에서 육군 준장 진급심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는 괴문서가 발견되면서 부터다. 군 검찰은 '군 장성 진급비리 수사'에 착수했고 남 내정자는 전역지원서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의 사의를 반려하면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지만 그가 '나눔회'라는 군내 엘리트 사조직의 멤버라는 말이 돌았다. 2004년 12월 국방부 현안보고에서 당시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은 "남 총장 밑에 있던 사람들이 다 진급됐는데 비리 자료를 수집해 경쟁자를 탈락시켰다"며 "군내 사조직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남 내정자는 예편 후에도 노무현 정부와 충돌했다. 2006년 당시 노 대통령이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라고 발언하며 군 복무기간 단축, 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을 논의 하자 이에 반발에 다른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2007년 경선 때
국방특보로 활동

전역 후 충남대, 원광대, 서경대 등에서 군사학 강의를 하며 지내던 그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였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안보 분야를 자문해 왔다. 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 중대한 안보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남 내정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상의했다. 지난해부터는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국방안보 분야 특보로 활동하면서 국정원장은 물론 국가안보실장, 국방장관 등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왔다. 가족은 부인 김은숙씨와 두 딸이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남재준은?>

▲서울 출생, 65세
▲배재고·육사 25기
▲수도방위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서경대 석좌교수
▲새누리당 행추위 국방안보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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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