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청빈·겸손 대명사 프란치스코 교황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5 11: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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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개혁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일요시사=경제1팀] 이틀간 이어진 긴 콘클라베. 네 번의 검은 연기. 다섯 번째 투표만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하는 순간이었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1282년만에 처음.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선택한 새 교황은 겸손하고 소박하지만 각종 정치·경제 비리 사안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3월12일, 세계 48개국의 80세 미만 추기경 115명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미사에서 라틴어 기도문을 읽는 것으로 교황 선출 시스템 '콘클라베'의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전 세계 가톨릭계의 눈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쏠렸다.

미주 대륙 교황
2000년 만에 처음

교황 선출을 의미하는 흰 연기가 솟아오를 것이냐, 아니면 교황 선출에 실패했음을 뜻하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냐를 놓고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구름처럼 몰린 신도와 관광객들은 애태우며 결과를 기다렸다.

지난 13일 오전 3시41분 첫 번째 연기가 피어올랐다. 예상대로 검은 연기가 나왔지만 방송을 중계하던 전 세계 텔레비전에서는 '아∼'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다섯 번의 투표를 거친 끝에 지난 14일 오전 3시7분 마침내 제266대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 베드로 광장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들끓었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을 새로운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선출된 것이다.

새 교황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직물상의 집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회개하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삶에 따라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CNN의 존 앨런 바티칸 분석가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이 "청빈, 겸손, 소박과 가톨릭 교회의 재건"을 뜻한다고 밝혔다. 후대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쓰면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름은 프란치스코 1세가 된다.

가톨릭 역사 1282년 만에 비유럽권 선출
동성애·낙태 보수적…사회문제엔 진보적

투표가 끝난 뒤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는 '파파'라는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좋은 저녁입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느님께서 저를 축복해주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답례의 인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콘클라베는 로마 주교를 뽑는 것이다. 그런데 동료 추기경들이 세상의 끝(아르헨티나)까지 간 것 같다"고 우스겟소리를 전한 뒤 "전 로마 주교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그는 추기경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느님이 여러분을 용서하길"이라는 가벼운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가 '교황'이라는 단어 대신 '로마 주교'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교황도 하나의 교구장으로 다른 지역의 교구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교황청과 지역 간, 사제와 평신자 간에 거리를 줄이고 가톨릭의 결속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의미로 분석했다.

프란치스코는 첫날 공식 업무에서부터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콘클라베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교황청이 마련한 교황 전용차를 마다하고 "괜찮아. 나는 얘들(Boys)이랑 같이 탈래"라며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전 세계 가톨릭계
환영·기대감 표출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묵었던 호텔에 들러 숙박료를 직접 계산하고 자신의 짐을 건네받기도 했다. 예전 교황들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모든 뒤처리를 끝마칠 때까지 바티칸에서 대기했다.

첫 직무 수행 일정으로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을 찾을 때도 교회에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도착 10분 전에야 방문을 통보했고 교황 전용차가 아닌 일반 차량을 이용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 선출 당시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교황의 위엄을 나타내는 붉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지난 2월11일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런 사임에 따라 개막된 콘클라베에서 이틀 만에 선출된 새 교황은 비유럽권 출신으로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이다. 미주 대륙에서는 가톨릭교회 2000년 사상 첫 교황 탄생이다. 프란치스코는 1534년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 예수회에서 배출된 첫 교황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 천주교회
한국 배려 기대

가톨릭 교회가 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데는 내부의 변화와 개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의 전통가치와 대립하는 동성애와 낙태 등 사회 이슈가 대두되면서 안팎으로 도전을 받아왔다. 때문에 비유럽권 교황을 통해 돌파구를 찾자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미주 대륙에서 교황이 처음 탄생한 의미를 "500년의 기다림 끝에 가톨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마침내 우뚝 서다"고 표현했으며 브라질 가톨릭주교협의회(CNBB)는 성명을 통해 "남미 대륙의 첫 교황이 희망의 대륙 남미의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톨릭 국가들도 비유럽 출신 첫 교황을 미주 대륙에 넘겨주긴 했지만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다음 교황 선출 때는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교황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천주교회도 프란치스코를 환영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축하 메시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해 지상의 교회를 이끌어 나갈 교황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억압받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평화의 사도가 돼 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새벽 미사 강론을 통해 "새 교황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사랑과 일치, 진리와 희망, 빛과 기쁨을 가져 오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는 531만명으로 필리핀(7700만명), 인도(1900만명), 인도네시아(740만명), 베트남(640만명)에 이어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직후 로마교황청 관보 1면에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실렸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방한 당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를 위한 시성식을 집전했을 만큼 한국 천주교는 세계 가톨릭에서 적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는 새 교황의 한국 배려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염수정 대주교는 "새 교황께서 한국 천주교회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 주시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정치권은 화합과 평화,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1282년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으로 세계는 종교 간의 화합의 관계가 증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세계평화와 인감 존엄의 가치를 지키고 약자와 빈자를 배려하며 지구상의 다양한 종교 간의 화합을 이끄는 지도자가 돼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새 교황께서 지금까지 교회가 그래왔듯이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이루게 힘써 줄 것을 기대한다"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2세가 되던 해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시작한 그는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1969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수도사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70년대 후반까지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80년에는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발탁됐으며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오른 그는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는 여느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구와 탱고를 좋아한다. 그간 그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빈자들을 돌봐 왔다. 추기경 관저를 벗어나 시내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으며 전용 차량을 마다한 채 버스를 이용하고 요리를 직접했으며 옷도 직접 고쳐 입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사람들은 그를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공식 업무 첫날부터 파격 소탈 행보
숙박료 직접 계산…전용차 대신 버스

그는 현재 가톨릭계를 위협하는 동성결혼과 낙태, 피임, 안락사 등에 비판적이지만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질병을 박기 위한 피임기구 사용에는 찬성하고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편인 아르헨티나 가톨릭을 현대화로 이끈 개혁적 인물로 꼽힌다.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단회의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에서 살고 있다"며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고통은 가장 더디게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등을 지적한 바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는 불편한 관계다. 정부가 동성결혼, 낙태수술 허용, 피임기구 무료 배포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가 전체주의와 부패에 빠져있다"며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1976년부터 3년여간 민주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시기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당시 예수회를 이끌던 그는 '비정치화'를 외치며 현실에 침묵했다. 예수회 소속 수도사가 군부에 체포되는 것을 묵인했으며 군부에 의한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예수회 본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건강도 불확실하다.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2005년 즉위 당시 나이(78)보다 겨우 두 살 적다. 역대 교황 266명 중 아홉 번째로 많다. 구체적 수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0대 때 폐 한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은 것도 건강에 대한 의심을 부른다.

프란치스코 앞에는 맞부딪쳐야할 무거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줄줄이 터져나온 사제들의 성범죄와 교황청의 부패, 그리고 돈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임기간 내내 바티칸을 둘러싼 성추문에 시달렸다. 베네딕토가 직접 나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관련자들이 공개 사과하고 합의에 나서는 등 사태해결에 매달렸지만 바티칸 안팎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추문 사건들이 많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바티리스크'도 문제다. 지난해 교황청 내부에서 고위 성직자들이 뇌물을 받고 외부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며 가격을 부풀리는 등 불법 거래를 일삼았다는 기밀문서가 유출됐다. 여기에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임 교황이 바티칸 은행에 자체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등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외부에서는 더 투명한 자료 공개와 추가적인 감독 체계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프란치스코는 동성애과 동성결혼 문제, 가톨릭 내 여성지위 문제, 낙태, 안락사 문제 등 사회 변화로 인해 가톨릭이 도전받는 현안 등도 과제로 안고 있다.

이에 일환으로 프란치스코는 영적 쇄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교황 선출 후 가진 첫 미사에서 프란치스코는 예수와 십자가라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처음 집전한 미사에서 "우리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많은 것을 지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단지 인심 좋은 비정부기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난제 산적
영적 쇄신 강조

그는 "영적인 가치가 아닌 세속적 가치를 바탕으로 어떤 일을 이룩하려 한다면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서 곧 모두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세속적인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일 수도 있지만 주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58년 예수회 입문, 산미겔 산호세 대학 철학 전공
▲1970년대 아르헨티나 지방 돌며 사목 활동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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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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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