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청빈·겸손 대명사 프란치스코 교황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25 11: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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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개혁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일요시사=경제1팀] 이틀간 이어진 긴 콘클라베. 네 번의 검은 연기. 다섯 번째 투표만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하는 순간이었다.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선출된 것은 1282년만에 처음.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선택한 새 교황은 겸손하고 소박하지만 각종 정치·경제 비리 사안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3월12일, 세계 48개국의 80세 미만 추기경 115명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미사에서 라틴어 기도문을 읽는 것으로 교황 선출 시스템 '콘클라베'의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전 세계 가톨릭계의 눈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쏠렸다.

미주 대륙 교황
2000년 만에 처음

교황 선출을 의미하는 흰 연기가 솟아오를 것이냐, 아니면 교황 선출에 실패했음을 뜻하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냐를 놓고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구름처럼 몰린 신도와 관광객들은 애태우며 결과를 기다렸다.

지난 13일 오전 3시41분 첫 번째 연기가 피어올랐다. 예상대로 검은 연기가 나왔지만 방송을 중계하던 전 세계 텔레비전에서는 '아∼'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 다섯 번의 투표를 거친 끝에 지난 14일 오전 3시7분 마침내 제266대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 베드로 광장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들끓었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을 새로운 교황에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선출된 것이다.

새 교황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에서 따온 '프란치스코'라는 즉위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직물상의 집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회개하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삶에 따라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CNN의 존 앨런 바티칸 분석가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이 "청빈, 겸손, 소박과 가톨릭 교회의 재건"을 뜻한다고 밝혔다. 후대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쓰면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름은 프란치스코 1세가 된다.

가톨릭 역사 1282년 만에 비유럽권 선출
동성애·낙태 보수적…사회문제엔 진보적

투표가 끝난 뒤 성 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는 '파파'라는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좋은 저녁입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느님께서 저를 축복해주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답례의 인사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콘클라베는 로마 주교를 뽑는 것이다. 그런데 동료 추기경들이 세상의 끝(아르헨티나)까지 간 것 같다"고 우스겟소리를 전한 뒤 "전 로마 주교 베네딕토 16세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그는 추기경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느님이 여러분을 용서하길"이라는 가벼운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가 '교황'이라는 단어 대신 '로마 주교'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교황도 하나의 교구장으로 다른 지역의 교구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은 교황청과 지역 간, 사제와 평신자 간에 거리를 줄이고 가톨릭의 결속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의미로 분석했다.

프란치스코는 첫날 공식 업무에서부터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콘클라베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교황청이 마련한 교황 전용차를 마다하고 "괜찮아. 나는 얘들(Boys)이랑 같이 탈래"라며 다른 추기경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전 세계 가톨릭계
환영·기대감 표출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묵었던 호텔에 들러 숙박료를 직접 계산하고 자신의 짐을 건네받기도 했다. 예전 교황들은 교황청 관계자들이 모든 뒤처리를 끝마칠 때까지 바티칸에서 대기했다.

첫 직무 수행 일정으로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 대성당을 찾을 때도 교회에 불편을 끼치지 않기 위해 도착 10분 전에야 방문을 통보했고 교황 전용차가 아닌 일반 차량을 이용했다.

프란치스코는 교황 선출 당시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교황의 위엄을 나타내는 붉은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지난 2월11일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런 사임에 따라 개막된 콘클라베에서 이틀 만에 선출된 새 교황은 비유럽권 출신으로 시리아 출신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이다. 미주 대륙에서는 가톨릭교회 2000년 사상 첫 교황 탄생이다. 프란치스코는 1534년 로욜라가 설립한 수도회 예수회에서 배출된 첫 교황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국 천주교회
한국 배려 기대

가톨릭 교회가 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데는 내부의 변화와 개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가톨릭교회는 가톨릭의 전통가치와 대립하는 동성애와 낙태 등 사회 이슈가 대두되면서 안팎으로 도전을 받아왔다. 때문에 비유럽권 교황을 통해 돌파구를 찾자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미주 대륙에서 교황이 처음 탄생한 의미를 "500년의 기다림 끝에 가톨릭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마침내 우뚝 서다"고 표현했으며 브라질 가톨릭주교협의회(CNBB)는 성명을 통해 "남미 대륙의 첫 교황이 희망의 대륙 남미의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톨릭 국가들도 비유럽 출신 첫 교황을 미주 대륙에 넘겨주긴 했지만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다음 교황 선출 때는 사상 최초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교황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천주교회도 프란치스코를 환영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축하 메시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해 지상의 교회를 이끌어 나갈 교황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억압받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평화의 사도가 돼 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도 새벽 미사 강론을 통해 "새 교황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사랑과 일치, 진리와 희망, 빛과 기쁨을 가져 오는 '평화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는 531만명으로 필리핀(7700만명), 인도(1900만명), 인도네시아(740만명), 베트남(640만명)에 이어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직후 로마교황청 관보 1면에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실렸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방한 당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를 위한 시성식을 집전했을 만큼 한국 천주교는 세계 가톨릭에서 적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는 새 교황의 한국 배려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염수정 대주교는 "새 교황께서 한국 천주교회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 주시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정치권은 화합과 평화,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1282년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으로 세계는 종교 간의 화합의 관계가 증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세계평화와 인감 존엄의 가치를 지키고 약자와 빈자를 배려하며 지구상의 다양한 종교 간의 화합을 이끄는 지도자가 돼 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새 교황께서 지금까지 교회가 그래왔듯이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를,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이루게 힘써 줄 것을 기대한다"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는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2세가 되던 해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을 시작한 그는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다. 1969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수도사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70년대 후반까지 주로 아르헨티나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1980년에는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으로 발탁됐으며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오른 그는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그는 여느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구와 탱고를 좋아한다. 그간 그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며 빈자들을 돌봐 왔다. 추기경 관저를 벗어나 시내 중심가의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으며 전용 차량을 마다한 채 버스를 이용하고 요리를 직접했으며 옷도 직접 고쳐 입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 사람들은 그를 '빈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공식 업무 첫날부터 파격 소탈 행보
숙박료 직접 계산…전용차 대신 버스

그는 현재 가톨릭계를 위협하는 동성결혼과 낙태, 피임, 안락사 등에 비판적이지만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질병을 박기 위한 피임기구 사용에는 찬성하고 동성결혼은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편인 아르헨티나 가톨릭을 현대화로 이끈 개혁적 인물로 꼽힌다.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단회의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에서 살고 있다"며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고통은 가장 더디게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등을 지적한 바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과는 불편한 관계다. 정부가 동성결혼, 낙태수술 허용, 피임기구 무료 배포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가 전체주의와 부패에 빠져있다"며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1976년부터 3년여간 민주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시기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당시 예수회를 이끌던 그는 '비정치화'를 외치며 현실에 침묵했다. 예수회 소속 수도사가 군부에 체포되는 것을 묵인했으며 군부에 의한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예수회 본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건강도 불확실하다.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 16세의 2005년 즉위 당시 나이(78)보다 겨우 두 살 적다. 역대 교황 266명 중 아홉 번째로 많다. 구체적 수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0대 때 폐 한쪽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은 것도 건강에 대한 의심을 부른다.

프란치스코 앞에는 맞부딪쳐야할 무거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줄줄이 터져나온 사제들의 성범죄와 교황청의 부패, 그리고 돈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임기간 내내 바티칸을 둘러싼 성추문에 시달렸다. 베네딕토가 직접 나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관련자들이 공개 사과하고 합의에 나서는 등 사태해결에 매달렸지만 바티칸 안팎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추문 사건들이 많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바티리스크'도 문제다. 지난해 교황청 내부에서 고위 성직자들이 뇌물을 받고 외부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며 가격을 부풀리는 등 불법 거래를 일삼았다는 기밀문서가 유출됐다. 여기에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임 교황이 바티칸 은행에 자체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등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외부에서는 더 투명한 자료 공개와 추가적인 감독 체계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프란치스코는 동성애과 동성결혼 문제, 가톨릭 내 여성지위 문제, 낙태, 안락사 문제 등 사회 변화로 인해 가톨릭이 도전받는 현안 등도 과제로 안고 있다.

이에 일환으로 프란치스코는 영적 쇄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교황 선출 후 가진 첫 미사에서 프란치스코는 예수와 십자가라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처음 집전한 미사에서 "우리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많은 것을 지을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단지 인심 좋은 비정부기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난제 산적
영적 쇄신 강조

그는 "영적인 가치가 아닌 세속적 가치를 바탕으로 어떤 일을 이룩하려 한다면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아서 곧 모두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세속적인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일 수도 있지만 주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1958년 예수회 입문, 산미겔 산호세 대학 철학 전공
▲1970년대 아르헨티나 지방 돌며 사목 활동
▲1980년 산미겔 예수회 수도원 원장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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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