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묶이고 생숙 풀린다

정부가 비(非)아파트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비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다주택자,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정책에만 집중했다. 

그동안 재개발 가능성이 없는 지역의 비아파트는 도심에 있어도 집값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아파트와 비아파트 간 계급 의식이 형성됐고, 이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비아파트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것은 내년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준공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주택 공급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위기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아파트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는 가산금리 정책과 대출 조이기 등으로 집값 상승세를 눌러왔다. 그런데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면 다시 부동산 가격이 밀려 올라갈 수 있어 비아파트의 아파트화를 통해 공급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 제자리
계급도 형성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현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정책 평가와 제언’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 착공 물량이 10만가구에 그쳐 준공 물량 감소세가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 비아파트는 2016년부터 공급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수도권 전체 주택 공급량이 내년부터는 예년 평균치(5만6000가구)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비아파트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정책이 주택 공급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파트 선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 목적도 있는데 비아파트의 경우 투자에 따른 이익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8·8 주택공급 대책’의 후속 조치로 앞으로 7억~8억원가량의 빌라(수도권 기준) 소유자도 청약 시장에 무주택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공포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2월18일부터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이제 수도권은 전용면적 85㎡·공시가격 5억원 아래, 지방은 85㎡·공시가격 3억원 이하를 소유한 사람도 청약 시 무주택자로 인정받게 됐다.

얼마 전 도시형 생활주택 면적 확대를 허용한 데 이어 최근 오피스텔 바닥 난방 설치 면적 기준도 넓히기로 한 것이다. 도심에서 용지 확보 등의 어려움을 겪는 아파트 공급과는 달리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아파트 건설을 통해 주택 공급 효과를 확대하려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비아파트 활성화 정책…효과 있을까?
신규 공급 줄면서 생활형 숙박시설 부각

국토부는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의 면적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도시에서 전용면적 85㎡ 이하 규모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을 300가구 미만으로 공급하는 유형이다. 아파트보다 단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적은 데다 인허가와 분양 절차가 간단해 비교적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형주택·단지형 연립주택·단지형 다세대주택 등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소형주택은 가구별 주거 전용면적을 60㎡ 이하로 제한하고 있었다. 정부가 이 면적 제한을 풀기로 한 것이다. 국토부는 ‘소형주택’ 유형 이름을 ‘아파트형 주택’으로 바꾸고, 전용면적이 60㎡를 초과하고 85㎡ 이하인 경우 5층 이상 고층 건축을 허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아파트처럼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제한 완화
잇단 입법

국토부는 “주택시장서 주거 전용면적이 60㎡를 초과하는 중소형 평형에 대한 수요가 많아 시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 소형주택을 ‘아파트형 주택’으로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에 따른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용면적 60㎡ 초과 아파트형 주택은 일반 공동주택과 똑같이 가구당 1대 이상의 주차 대수를 확보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오피스텔의 바닥 난방 면적 제한도 폐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동안 오피스텔이 주거 용도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주거 부분 비중을 제한하고 발코니·욕실 설치를 금지하는 등 규제를 뒀지만 대부분 해제했다. 마지막 남은 규제가 전용면적 120㎡를 초과할 경우 바닥 난방 설치를 못하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것까지 풀기로 한 것이다.

이 밖에 ‘생활형숙박시설(생숙) 합법사용 지원방안’의 후속 조치로, 지원방안 발표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때 적용하던 일부 규제(전용 출입구 설치, 안목치수 적용)도 면제할 예정이다. 생숙은 보유자가 직접 거주할 수 없는 주택 형태다. 이를 오피스텔로 전환할 경우 직접 거주도 가능해져 사실상 주택 공급 효과가 있다.

개인 호텔화
이제 불가능

한편으로는 정부의 생숙 규제가 강화되면서, 개인 소유로 분양되는 생활숙박시설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로 인해 기존 분양된 생숙의 희소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규 생숙은 앞으로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업 신고 기준(30실 이상 또는 건축물 1/3 이상 또는 독립된 층) 이상으로만 분양이 허용되도록 연내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한다. 이는 과거 개별 실 단위로 분양이 허용됨에 따라 불법 주거 전용 문제가 발생했던 점을 감안한 조치다. 

이러한 개정 사항은 생숙 건설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법 개정안 시행일 이후 최초 건축허가 신청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번 규제로 앞으로 생숙은 기존처럼 개별 소유자가 각 실을 운영하는 방식(사실상의 개인 호텔화)은 불가능해졌다. 반면 이미 분양된 생숙은 규제 대상서 제외돼 합법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번 규제로 신규 공급이 줄어들면서 기존 생숙의 희소성이 크게 부각될 것”이라며 “특히 브랜드와 입지, 운영 전문성을 갖춘 시설은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비아파트 활성화 수혜 단지.

▲마포 에피트 어바닉= HL D&I 한라는 ‘마포 에피트 어바닉’을 분양 중이다. 단지는 지하 5층~지상 24층, 2개동 총 407가구로 전용면적 34~46㎡ 아파트 198가구와 전용면적 42~59㎡ 오피스텔 209실 규모다. 오피스텔은 전용 42㎡ 38실, 전용 59㎡ 171실로 구성했다.

전용면적 59㎡ 타입의 주거용 오피스텔은 채광과 통풍이 뛰어나다. 3베이(Bay) 구조에 욕실 2개를 갖췄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발코니까지 적용해 오피스텔임에도 아파트의 장점을 모두 갖춘 특화 설계를 도입했다.


일반적인 오피스텔 대비 약 20㎝ 더 높은 층고로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에어컨과 붙박이장, 중문 등을 기본으로 제공하며 100% 자주식 주차공간도 갖췄다.

브랜드, 입지, 운영 전문성
3박자 갖춘 시설 가치 인정

피트니스와 그룹운동(GX)룸, 골프클럽, 탁구장, 댄싱룸, 로커룸&샤워실 등 다양한 운동 시설을 지하 2층에 조성한다. 지상 2층에는 카페 그린하우스와 코쿤카페, 힐링가든, 리프레시 라운지, 릴랙스 라운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최상층에 있는 루프톱에는 바비큐가 가능한 다이닝과 펫플레이그라운드, 키즈플레이존, 라운지 등이 들어선다.

사통팔달 교통망과 생활 인프라, 교육 환경 등을 모두 누릴 수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이 도보 2분 거리인 초역세권에 있다. 해당 노선을 이용하면 여의도와 광화문 업무지구까지 1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다. 지하철 2호선 아현역도 도보권이고 지하철 5·6호선, 경의중앙·공항철도 환승역인 공덕역도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

차량 교통망도 우수하다. 마포대로와 신촌로 등 간선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고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진입이 쉬워 자차를 이용해 서울 전역으로의 이동도 용이하다.

분양 관계자는 “공급이 희소한 서울 마포구에 선보이는 단지여서 오래전부터 분양을 기다려온 수요자가 많았다”며 “초역세권 입지에 우수한 상품성까지 갖춰 많은 관심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 스테이 클래식 명동=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 옆 대로변에 이 지역 최초로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인 ‘더 스테이 클래식 명동’이 회사 보유분을 파격 분양 중이다. 회사 보유분은 특별 할인가인 3억원대 분양가 적용 시 부가세(VAT)를 제외하면 수익률은 7.5%에 달한다. 

준공이 완료돼 즉시 수익이 발생하고 있는 더 스테이 클래식 명동은 중구 남대문로3가 94 일대에 지상 13층, 117실 규모로 들어선다. 기본 TV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을 비롯해 침대, 식탁, 소파, 스타일러까지 최고급으로 갖춘 채 공급된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호텔과 달리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고 오피스텔과 호텔의 장점을 결합해 장단기 임대 또는 숙박업이 가능하다. 또 호실당 개별등기가 가능하고 가구 수에 포함되지 않아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레지던스는 국내 10개 이상의 호텔 및 레지던스 운영 경험이 있는 회사가 운영한다.

지하철 1·2호선 서울시청역과 4호선 회현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 장단기 임대 수요가 높다. 서울 3대 중심업무지구 중 핵심 지역이라 한국·우리·신한은행 본점, 삼성생명, 대한항공,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국내 기업은 물론 화이자제약, 한국베링거인겔하임, H&M, 코카콜라, 도요타 등 다국적기업도 가깝다.

준공 완료
즉시 수익

개발 호재 및 향후 미래가치도 크다. 서울역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서울역 강북 COEX 개발 사업)이 2026년 완공되면 안정적인 수익과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9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총 1213만742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7%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94% 수준까지 회복한 수치로, 이전처럼 연간 1500만명 이상의 해외 관광객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돼 단기숙박 위주로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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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