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을사년엔 더 어둡다

2025년 새해다. 지난해 부동산시장 결산과 올해 전망 및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를 살펴보자.

지난해 부동산시장은 정책 영향 등으로 차별적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 외 지역의 집값과 청약 흥행 양극화가 극명했고, 서울 내에서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마·용·성’ 등 핵심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서 집값 회복은 더딘 상황이다.

지역별 집값 양극화를 견인한 것은 수도권의 재건축 아파트였다.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 계속되자 건설사들은 미분양 우려가 적은 수도권 공급 위주로 늘려왔다.

지난해 수도권서 14만5560만가구, 지방은 11만3227가구가 공급됐다. 2023년 말 조사된 지난해 계획 물량 26만5439가구 중 97%가 실제 공급됐고, 87% (22만9904가구)는 분양으로 이어졌다. 최근 3년간 계획 물량 대비 실적이 평균 71% 수준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실행률이다. 

강남 3구
마·용·성

2023년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13.64대 1이었다. ▲서울 154.5대 1 ▲수도권 21.55대 1 ▲지방 6.62대 1 등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 회복 지역이 늘어나 시세차익을 노리는 ‘로또 청약’과 신축·아파트 선호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로 큰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강남권 ‘대어급 신축’ 아파트는 서울 평균 청약 경쟁률도 2배가량 웃돌며 강남, 서초구 2곳에만 올해 사용된 전체 청약 통장 수의 약 58%가 몰렸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공급이 이어지며 평균 분양가도 급등했다. 지난해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격은 5456만원으로, 2023년 말 3508만원보다 55.5%(1948만원) 증가했다. 부동산R114가 2000년부터 분양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연간 기준으로 최대 오름폭이다. 

반면 전국 기준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는 2023년(1800만원)보다 239만원 증가한 2039만원으로 집계됐다. 제주의 평균 분양가격은 2614만원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았다. 이어 ▲부산 2356만원 ▲울산 2125만원 ▲대전 2035만원 ▲대구 2019만원 ▲경기 2006만원 순이었다.

임기 중 270만호 공급 목표를 설정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공급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1·10 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1기 신도시의 선도지구 사업을 발표했다. 또 비아파트 수요 진작을 위해 소형 신축주택에 대한 세 부담을 낮추고, 관련 건축과 입지 규제 등을 완화했다.

이 외에도 공공 주택 14만호 이상 공급 등을 통해 공급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주택 공급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계속되자, 정부는 또다시 8·8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 택지 공급 확대,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통한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의 동시 수립, 정비사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용적률 상향,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공공 신축 매입 확대, 미분양 매입 확약, 35조원 규모 PF대출 보증 등이 포함됐다.

수도권 공급 재건축 분위기 고조
지역별·중저가 양극화 현상 심각


이 같은 정책의 후속 조치로 지난해 11월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발표됐다. 해제와 함께 신규 택지가 조성됐고, 서울에서는 강남 생활권인 서초구 서리풀지구(2만호), 경기도에서는 고양 대곡 역세권(9000호), 의왕 오전왕곡(1만4000호), 의정부 용현(7000호) 등 5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 동의, 사업자 수익성 확보나 분담금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상황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분당(1만948가구), 일산(8912가구), 평촌(5460가구), 중동(5957가구), 산본(46 20가구) 등 1기 신도시 내 13개 구역 3만6000가구가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선도지구로 선정되면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인허가 통합심의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부는 선도지구의 2027년 착공해 오는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또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을 주택담보대출(정책 대출, 전세 대출, 중도금 대출 등)을 포함한 모든 대출 상품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 규제 강화의 일환으로 이른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선 1.2%포인트(p), 지방에서는 0.75%p의 스트레스 금리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만기를 최장 50년서 30년으로 줄이면서 대출 한도가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연초부터 꾸준히 올라 8월 넷째 주 70.5로 정점을 찍은 서울의 매수심리지수(KB부동산 발표 기준)는 스트레스 DSR 규제 적용이 시작된 9월 57.8까지 급락했다.

매수우위지수는 아파트 매매 문의량을 알 수 있는 수치로,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자가 많다’를, 100 미만일 경우 ‘매도자가 많다’를 의미한다.

잇단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월별 매매 거래량도 2023년 12월 1790건서 지난해 7월 9518건으로 7개월 연속 증가하다가,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8월부터 7609건으로 꺾이기 시작해 스트레스 DSR 적용이 시작된 지난해 9월에는 4951건으로 떨어졌다. 대출 길이 막힌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기 더 어려운 여건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십억원에 이르는 아파트가 대다수인 강남 등 상급지에선 대출 의존도가 크지 않았던 탓에, 서울 지역 내에서도 중저가 아파트와의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1분위(하위 20% 평균) 평균은 4억9061만원, 5분위 평균(상위 20% 평균)은 26억8774만원으로 5분위 배율이 5.5배로 벌어졌다.

이는 2008년 통계 조사 이래 역대 최대 격차다. 전국의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0.93으로 역시 역대 최대 격차를 이어갔다.

집값 상승 피로감에 전세 수요는 이탈했다. 전셋값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일부 수요자들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사례도 속출했다. ‘전세의 월세화’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10월 대비 1.4p 상승한 119.3을 기록해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다.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을 보면 지난해 11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서 월세 비중은 44.1%로 10월(41.2%)보다도 크게 상승했다. 전세 사기 여파에 전세 기피가 심화한 빌라 등 다세대 주택에선 이미 월세 거래가 전세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1~11월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 거래 중 월세 거래는 6만6194건으로, 2023년보다 10.1% 늘었다. 반면 전세 거래량은 5만7604건으로 같은 기간 13.3% 줄었다.

2025년 부동산시장도 경기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반기는 대통령 탄핵 정국과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서 관망세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다만 전반적으로 분양과 입주 물량 감소로 수도권에서는 전셋값과 매매값이 자극받을 요인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만큼 부동산시장에 다시 자금이 몰린다면 수도권 주요 지역 중심의 수요 양극화가 심화될 거라는 분석이다.

올해도 ‘얼죽신’ 선호 지속
‘상저하중’ ‘전약후강’ 전망

국내 주요 25개 건설사는 올해 전국 158개 사업장서 총 14만6130가구(민간 아파트 기준·임대 포함)를 분양할 예정이다. 이는 2000년 이후 최저치로, 지난해(22만2173가구)보다 34% 줄어든 수준이다. 지난해 실제 분양도 계획 물량의 83.7%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실제 물량은 이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공급 물량(-35.7%)이 가장 크게 줄어든다. 서울은 18% 감소한다. 지난해 청약 광풍이 불었던 강남권 등의 분양도 올해에는 대거 줄어든다. 지난해 강남권에서는 8개 단지 2781가구가 일반분양으로 나왔는데, 올해에는 7개 단지 2113가구로 수백가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당장 올해 전국 입주 물량도 총 26만3330가구로, 지난해 36만4058가구 대비 10만가구 이상의 큰 물량 감소가 예상된다. 분양과 입주 물량은 각각 주택 공급의 선행·후행 지표 역할을 한다. 입주 물량이 당장 시장에 공급되는 주택이라면, 분양 물량은 공사를 거쳐 2~3년 뒤 시장에 공급될 주택이다.

두 물량이 동시에 줄어드는 것은 시장 상황 악화로 몇 년 전부터 아파트를 덜 지었고, 침체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더 지을 계획이 없다는 의미다.

경기침체 외에도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공급 정책 동력도 떨어지면서 불안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비사업 기간을 대폭 줄인다는 내용의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 통과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고, 현 정부가 추진하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도 전망이 어둡다.

역대 최대치로 목표를 잡은 공공주택 착공 및 인허가 목표도 국정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추진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상황이 이렇자 주택 수요가 높은 서울 내에서는 전셋값과 집값이 자극받을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출 규제 지속과 탄핵 정국으로 매수 심리가 올 상반기 다소 눌릴 것으로 전망하나, 상황에 적응되면 결국 주요 지역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본격적인 공급 절벽으로 전세 가격이 불안해지면서다.

주택 수요자들이 주택을 보유하는 평균 기간을 고려했을 때 수개월 정도의 탄핵 이슈로 향후 수요를 짐작할 수 없겠다. 다만 주택 공급 상황만 보았을 땐 당장 올 상반기 중 지역을 불문하고 전셋값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출 부담에 중저가로 수요가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로 갈수록 공급 축소가 부각돼 이는 결국 시차를 두고 집값 상승으로 나타나게 될 전망이다. 

치솟는
전세가

한 부동산 전문가는 “2025년 부동산시장은 ‘상저하중’이 예상되는데, 특히 탄핵 정국과 1%대 경제성장률 전망으로 전반적으로 주택시장의 활발한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만 하반기에는 공급 부족에 따른 전셋값 상승이 매매시장에 영향을 주면 수도권 일부에서는 상승 전환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 부동산은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올해에는 탄핵, 경기침체, 강력한 대출 규제 등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도 있지만 금리 하향 조정, 주택시장 진입 인구 증가, 공급 부족 누적 등 상승 요인이 더 커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주산연은 최근 발표한 ‘2025년 주택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집값이 3~4월까지 약세, 중반기 이후에 강세를 보이는 ‘전약후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상승률은 전국은 0.5% 하락, 수도권 0.8% 상승, 서울 1.7%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2025년 부동산시장엔 큰 변화가 예고된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한편 서민과 청년층을 위한 금융 지원이 확대되고 주택 취득 관련 세제 혜택도 커진다. 다음은 새해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들이다.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절반 수준으로= 올해 1월부터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약 1.2~ 1.4% 수준이었던 5대 시중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올해엔 0.6~0.7% 수준으로 낮아진다. 해당 혜택은 올해 1월 중순 이후 신규 대출에 적용된다.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요건도 완화된다. 부부 합산 연소득 기준이 기존 1억3000만원서 2억5000만원으로 상향된다. 올해부터 3년간 출산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대출 기간 중 추가 출산 시 금리 우대 폭도 기존 0.2% 포인트서 0.4% 포인트로 확대된다. 

올 7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도입된다. 스트레스 DSR은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가늠하는 제도로 시행 이후에는 대부분의 금융권 대출 한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권 대출을 고려 중이라면 7월 이전에 대출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지방 주택 사면 1주택자 혜택 유지= 지방 소멸 방지를 위해 인구 감소 지역과 비수도권 주택 취득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강화된다.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주택을 신규 취득할 경우 기존 1주택자로 간주해 세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는 서울에 집을 보유한 사람이 지방에 주택을 하나 더 구입하면 2주택자가 돼 세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방에 있는 집을 하나 더 사더라도 1주택자로 인정해준다. 비수도권서 전용면적 85㎡(약 25평) 이하 또는 6억원 이하 미분양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도 혜택이 적용된다.

주택을 매도하거나 보유할 때 내는 세 부담도 완화된다. 양도소득세는 취득 시 공시가격 기준으로 1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제 한도가 12억원까지 확대된다. 장기 보유(15년 이상) 또는 70세 이상 고령자는 최대 80%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청년층에 분양가 80% 저리 대출= 청년 주택드림대출도 출시된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청년층을 위해 분양가의 최대 80%까지 낮은 금리(최저 2.2%)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대상은 만 19~34세 무주택 청년으로 연소득 7000만원 이하(부부 합산 1억원 이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대상도 확대된다. 연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뿐 아니라 배우자까지 청약저축 납입액의 40% 한도서 연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경우에도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이 배우자에게까지 확대된다. 비과세 한도는 500만원이다.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가능= 올해 6월부터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또 기존 ‘재건축 안전진단’ 명칭이 ‘재건축 진단’으로 바뀌며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기 전까지 진단을 통과하면 된다.

규제 완화 조치로 재건축을 위한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동시에 재건축 기간이 최대 3년 가까이 단축될 전망이다. 아울러 재건축 등 정비사업 시 주민 의사결정 과정에 전자 방식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도록 해 의사결정도 크게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3~4월 약세
중반 후 강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주도하던 도심복합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이 개정된다. 신탁사와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등이 사업자로 참여해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준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최대 700%까지 상향된다. 다만 개발 이익의 일부는 공공주택으로 환원해야 한다.

올해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주택 공급 확대와 금융 비용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될 예정이며, 특히 서민·청년층·고령자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혜택이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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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