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탄’ 명태균 깐 강혜경

까도 까도…27인 후폭풍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가 공개됐다. 난데없이 사건의 중심으로 끌려 나온 27명의 정치인들은 저마다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과 보수 쪽 인사를 넘어 야당까지 휘감으면서 여의도 전체가 들썩였다. 추가 폭로가 예고된 만큼 여야 모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씨 측이 명태균씨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 27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명단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윤상현·윤한홍·안홍준·김진태·김은혜·이준석·오세훈·홍준표·이주환·박대출·강민국·나경원·조은희·조명희·오태완·조규일·홍남표·박완수·서일준·이학석·안철수·강기윤·하태경·(야당)이언주·김두관·여영국 등 전·현직 정치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보다 못해
나섰다

강씨는 명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 기관 ‘미래한국연구소’ 직원 출신이다. 공천 개입 의혹에 연루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이자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강씨는 지난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명씨가 윤 대통령 측에 미공표 여론조사 결과를 81차례에 걸쳐 무료로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서 공천을 받았고, 이 과정서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 21일 강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증인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 강씨는 “김 전 의원이나 명태균 대표, 이분들은 절대 정치에 발을 디디면 안 될 것 같다”며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어서 국정감사에 출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비용 청구를 했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강씨는 “명씨가 돈을 받아온다고 해 이후 내역서를 만들어 건넸고 3월21일 (명씨가)비행기를 타고 돈을 받으러 갔다”면서도 정작 명씨는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신 그는 “며칠 뒤 명씨가 창원·의창구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투입됐고 김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의창구는 김 전 의원 지역구다.

‘누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줬느냐’는 질문에는 “김 여사가 줬고 당시 당 대표였던 이준석 의원과 당시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이 힘을 합쳐 의창구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만들고, 김 여사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대선 당시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조언했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유력 대권주자였던 시절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갑작스레 사퇴한 배경에는 명씨의 설득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강씨는 “(명 대표가)두 사람이 많이 부딪힐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김 여사가)바로 사퇴하도록 만들었다”며 “명 대표에게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언론은 김 여사의 육성 파일을 갖고 있다, 안 갖고 있다 하는 것을 중요시하던데 그 녹취는 명씨가 갖고 있을 것”이라며 “나는 김 여사 육성은 갖고 있지 않다. 명씨가 김 여사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기 때문에 공천과 관련해 김 여사의 힘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명 대표가 김 여사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물음에 강씨는 “(명씨가)육성을 스피커폰으로 해서 들려줬다”고 답했다.


국회 찾은 강혜경 명단 뿌린 노영희
“내 이름이?” 해명에도 질긴 꼬리표

다만 이날 국감에서는 명씨가 주요 사안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강씨의 증언 대부분이 명씨의 전언으로 이뤄진 만큼 명씨가 어떤 입장을 밝히느냐에 따라서 진실공방으로 이어질수 있다.

민주당은 강씨의 증언이 “상당히 객관적”이라는 평이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국정감사대책회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강씨 진술서 중요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강씨의 주장이 객관적이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기 보다 본인이 들은 것에 한해 선을 지켜 답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국회 법사위 위원인 국민의힘은 주진우 의원은 “강씨가 김 여사의 육성을 직접 들은 것은 단 한 차례, 한마디뿐이고, 대통령의 육성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며 “명씨 말을 듣고 증인이 판단한 것이기에 오류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명태균 리스트는 강씨가 증언을 마친 지난 21일 늦은 저녁이 돼서야 공개됐다. 강씨의 변호인인 노영희 변호사가 국회 출입기자단에 “(명씨와)일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이것 말고 더 있다고 한다”며 27명의 이름을 전송했다.

이로 인해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이름이 호명된 여야 전·현직 의원들은 앞다투어 해명에 나섰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거나, 공천에 도움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명단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여론조사 의뢰자가 아니라 의뢰자와 경쟁관계에 있어 여론조사 대상인 사람들을 포함한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른바 ‘명태균 사태’의 핵심은 여론조사를 통한 여론조작과 공천 대가 여부를 밝히는 것이다. 모든 사실이 국민께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제대로
엮였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나는 명(태균)에게 어떤 형태든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이 없다. 오히려 명의 주장에 의하면 2021년 서울시장 경선과 당 대표 경선서 명씨에 의해 피해를 입은 후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라디오를 통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명씨가 운영하는 업체에)여론조사 의뢰한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나는 아니다”라며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관계가 있는데 빠진 분도 있더라. 자의적인 명단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야당 정치인들도 즉각 선을 그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의당 여영국 전 의원은 “명씨와 창원대학교 산업비지니스학과 동기”라며 “10여년 전쯤 경남도의원 할 때 미공표 여론조사를 명씨가 대표인 ‘좋은날리서치’에 한번 맡긴 적이 있다. ‘리스트’ 운운하며 보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경남 양산을이 지역구였던 김두관 전 의원의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 전 의원이 명씨와 만난 기록을)찾아보니 2021년 5월29일 차담이라 적혀있었다고 말씀하셨다”며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 관계자 또한 “여론조사를 의뢰한 적이 없다”며 “2021년 부산 재보궐선거 당시 박형준 후보의 상대가 이 의원이었는데 아마 이 부분 때문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이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관계없는 정치인을 리스트에 올려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길 바란다. 누가 좋아하겠나”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본질 흐리기’라며 선을 그었다. 누가 명씨와 엮여있는지가 아닌 사태의 본질, 즉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는지 밝혀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명태균발
살생부?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노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국감서 언급된 27인 명단과 관련해 알려드린다”며 “해당 명단은 소위 명씨가 언급한 ‘25인 명단’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앞서 명씨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표용 여론조사와 함께 후보자 전략 참고용 자체조사를 다수 진행했으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력 정치인이 25명가량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변호사는 “(명단에)이름이 언급된 분 중에는 여론조사를 의뢰한 분들도 계시지만 아닌 분도 있고 당시 미래한국연구소서 의뢰를 받거나 의뢰자의 경쟁자거나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던 명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명단은 명씨와 접촉해 정치계서 자리를 잡고 싶어하던 사람 중 강씨가 알고 있는 인사로 “김진태, 박완수, 김영선 이런 사람들은 명씨의 도움을 받아 여론조사도 여러 번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작업들을 조금 했던 사례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명태균 리스트에 대해서는 “당내에선 공식 입장이나 의견이 나올지 확인한 건 없다”며 “강씨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도 출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더 질의할 것은 운영위서 다루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이번 리스트를 공개한 사람은 강씨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명씨가 (자신의 덕을 본 정치인으로)자신 있게 말하는 2명이 (개혁신당)이준석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들 대다수가 명씨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실제로 연관됐는지를 떠나 “명태균과 엮여봤자 좋을 게 없다”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저마다 선 긋기에 나선 것이다.

진보·보수 합심해 “신빙성 떨어져”
오므리기 나섰지만…예고된 추가 폭로

명씨가 해당 리스트와 상이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진실공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명씨는 지난 22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명태균 리스트와 관련한 질문에 “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도 여러 명이 들어가 있다”며 “그분들한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분들 얼마나 황망하셨겠나. 저도 똑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결국 강씨 측이 리스트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번 리스트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만 남았다.

개혁신당 이기인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를 놓고 “정치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본인이 명단이라고 뿌려놓고 자체조사하거나 조사를 의뢰한 의뢰인의 경쟁자 등을 연관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강씨는 잘 모르겠지만 노 변호사는 이 이슈를 얼마나 진지하지 않게 다루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리스트 외에도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 만큼 명씨는 강씨의 증언을 하나씩 반박했다.

우선 명씨는 김 여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특정 정치인들의 공천 부탁을 들어줬다는 의혹에 대해서 전면 부인했다. 명씨는 “강씨 발언이 제가 볼 때는 70% 정도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며 “민주당에 있는 분들이 옆에서 도와주면서 내용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고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김 여사와 영적인 대화를 했다는 강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민주당서 주술적인 부분이나 그런 여러 가지 프레임을 많이 짜는 것 같다. 김 여사가 윤석열 검찰총장 사모님이었을 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비용을 받는 대신 김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에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명씨는 “나는 대선 기간 동안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며 “강씨는 매일매일 자료를 갖고 ‘(명씨가)김해공항서 서울로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증거가 될)비행기표가 하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삼천포로
빠졌다

강씨와 명씨의 입이 동시에 열리면서 장기간 폭로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서 더 많은 정치인의 이름이 언급될 가능성도 덩달아 커졌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바뀌는 상황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했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굳이 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할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사건의 핵심은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는지인데 ‘명태균과 접촉한 사람’을 색출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강혜경’ 또 다른 키맨?

강혜경씨가 검찰 조사에 앞서 “대한민국 검사들을 믿기 때문에 진실을 꼭 밝혀주실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강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에 나섰다.

강씨는 지난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치른 이후 같은 해 8월부터 매달 김 전 의원의 세비 절반을 명씨에게 보내는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25차례에 걸쳐 총 9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강씨와 명씨 간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이날 강씨의 소환조사는 검찰이 확보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부른 것으로 해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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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