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명태균에 맞선 강혜경

김 여사 공천 개입 풀어낼 핵심 키맨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강혜경씨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작심 증언을 쏟아내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강씨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씨의 불법 여론조사 의혹 등을 폭로한 핵심 제보자다. 최근 검찰 조사를 마친 강씨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추후 밝혀낼 수 있을까?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가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목을 끌었다. 강씨는 명씨가 운영했던 언론사 <시사경남>의 편집국장 출신이자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사무실서 회계 책임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명씨의 여론조사 실무도 맡았던 최측근이었으나 최근에는 핵심 제보자가 됐다. 

의혹 폭로
작심 증언

강씨는 이날 법사위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해 국민의힘 책임당원이라고 밝히며 “김 전 의원이나 명태균 대표, 이분들은 절대 정치에 발을 디디면 안 될 것 같고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어서 국정감사에 출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이 국회에 직접 나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 대선 과정서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법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공천을 받았고, 공천 과정에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선 강씨는 김 여사가 대선 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개입했던 정황을 공개했다. 실제로 그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23일 김 전 의원과의 통화에서 강씨는 “대통령선거할 때 우리가 자체조사를 많이 했다”며 김 여사에게 (명태균)본부장이 돈을 받아오겠다며 자신에게 (여론조사 비용)청구서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명씨가 서울로 상경해 여론조사 비용 대신 김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을 받아왔고, 김 여사가 배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김 여사와 명씨 사이에 무속으로 형성된 공감대가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도 내놨다. 명씨와 김 여사가 첫 만남 이후 가까워진 계기를 아느냐고 묻는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 질문에 강씨는 “(김 여사가)명태균 대표를 봤을 때 조상 공덕으로 태어난 자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첫 대면을 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명씨가 김 여사 친분을 자랑하면서 ‘장님 무사’ ‘앉은뱅이 주술사’ 등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 같은 경우는 장님이지만 칼을 잘 휘두르기 때문에 장님 무사라고 했고, 김 여사는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주술사라 장님의 어깨에 올라타서 주술을 부리라는 의미로 명씨가 김 여사에게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명씨가 김 여사와 영적으로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김 여사의 ‘오빠’가 윤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씨는 이날 2022년 재보선 당시 김 여사가 “오빠한테 전화 왔죠. 잘될 거예요”라고 명씨와 통화한 음성 녹음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가 언급한 오빠가 “윤 대통령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실무 최측근서 제보자로 돌아서
“여론조사 비용 대신 공천 받아”


강씨는 김 여사가 김 전 의원을 시켜 명씨의 생계를 챙겼다고 말했다. 그는 “김 여사가 명씨의 자녀를 챙겨야 된다”며 “생계유지를 해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이 세비로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이 세비를 받으면 자신의 계좌를 통해서 현금을 만들어 명씨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지급됐고, 해당 비용은 9600만원에 달했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강씨가 들은 건 모두 명씨의 전언뿐”이라며 강씨와 명씨의 증언 신빙성이 낮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명씨의 생계를 챙기라는 지시 내용은 김 여사의 육성을 직접 들은 것이냐” 혹은 “명씨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냐”고 묻자 “명씨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강씨는 답했다. 

주 의원이 “대통령의 육성을 들은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곽규택 의원도 “명씨의 진술 외에 (강씨의 주장에 대한)다른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씨는 같은 날 자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명씨와 관련된 여야 정치인 27명을 지목하고 법사위에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 명단을 제출했다. 앞서 명씨는 언론 인터뷰서 자신과 거래한 유력 정치인이 국회의원 25명을 포함해 30명 이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강씨도 국정감사에서 ‘명씨와 거래했다는 후보자 또는 의원 25명을 알고 있느냐’는 질의에 “명단을 제출하겠다”고 답했고, 이 명단을 이날 공개한 것이다. 이후 명단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는 큰 파장이 일었다. 

당사자들 대부분은 “명씨와 거래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강씨 측도 “그 명단들이 전부 다 문제인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명단에는 여권 인사와 야권 인사 3명의 이름이 포함돼있었다. 이에 명씨는 지난 22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명씨는 “그분들한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고 저도 똑같은 입장”이라며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도 여러명이 들어가 있더라”라고 밝혔다. 김 여사와 영적 대화를 나눴다는 강씨의 주장을 두고도 “대통령 영부인 되실 분한테 ‘당신은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말을 해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치열한 공방
정치권 술렁

민주당은 강씨를 당 차원서 보호하는 공익제보자 1호로 선정했다. 앞서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지난 4일 김건희 가족 비리 국정 농단 규명 심판본부와 함께 공익제보자 권익보호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강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노영희 변호사는 이날 “명씨가 어떤 기자분에게 전화로 ‘강혜경의 국감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이 위증죄로 고발하지 않으면 내가 공적 대화를 또 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며 “이것은 곧, 그동안 국민의힘서 문제가 돼왔던 여러 가지 고발 사주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명씨는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의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지난 22대 총선서 김 전 의원이 원래 지역구인 경남 창원·의창을 떠나 경남 김해갑 출마를 선언한 배경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골자다. 

김 전 의원은 결과적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이 과정서 명씨가 김 여사에게 도와달라며 연락했고 김 여사는 ‘단수면 나도 좋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어 (김 전 의원이)경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하는 등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가 연락을 주고받았던 관계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오세훈·이준석·홍준표·김종인 등 여권 핵심 인사들과 명씨의 관계가 급부상했다. 명씨의 불법 여론조사 이력과 맞물리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최근 명씨가 지난 대선 경선 및 본선 당시 자체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도 조작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강씨는 지난 6일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서 대선 직전인 2022년 초 명씨가 수십 차례 비공개 여론조사를 진행해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게 보고했다며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강씨에 따르면 명씨가 지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8일까지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3000~5000개 샘플로 조사해 매일 윤 대통령 쪽에 보고한다고 명태균 대표가 저한테 전화했다”며 “(윤 대통령에게)보고해야 되니 빨리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론조사 직후인 같은 해 3월20일쯤 명씨가 ‘정산 내역서를 뽑아놓아라’고 지시한 후 내역서를 갖고 서울로 올라갔다. 명세서상 금액은 3억6000만원 정도”라며 “명씨가 (대통령 부부를)만나러 서울에 간다고 해 그때 그 서류를 봉투에 넣어서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씨는 명씨가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대금 3억60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직후 창원특례시 의창구 보궐선거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강씨는 “그 여론조사 비용 대가가 김영선의 공천”이라고 주장했다. 


숨겨진 뒷돈
공천은 미끼

반면 명씨는 지난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이 같은 강씨의 주장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 그는 “자체조사는 내가 필요해서 한 것이고, 비용 관련된 것은 내가 그분들한테 청구한 적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다”며 “식탁 위에 밥을 먹는 사람하고 식탁 밑에 강아지가 떨어지는 것만 보고 무엇을 알겠느냐”고 말했다. 

명씨의 반박에도 2022년 대선 당시 실시했던 여론조사 비용 일부를 같은 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충당했다가 돌려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새로운 의혹이 추가됐다. 

<한겨레>와 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는 명씨가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매일 선거일까지 여론조사를 돌린다”며 “돈은 모자라면 (미래한국연구소)소장에게 얘기해서 A와 B한테 받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각 영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와 광역의회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최종적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명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서 김 전 의원이 대신 갚아준 정황도 드러났다. 총 1억2000만원 중 6000만원은 김 전 의원이 보전받은 선거 비용서 충당됐고, 나머지는 김 전 의원이 미래한국연구소에 공보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전달됐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명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당시 여론조사를 진행한 미래한국연구소는 자신과 무관하며, 예비후보들이 건넨 돈은 미래한국연구소 김모 소장이 차용증을 작성해 빌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강씨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위한 여론조사 비용을 다른 이들로부터 대신 납부받은 게 총 2억2700만원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밝혔던 1억2000만원보다 약 1억원 이상 추가된 셈이다.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는 없어
“진실 꼭 밝혀주실 거라 믿어”

지난 24일 강씨는 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서 1억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는데, 사실을 확인해 보니 총 2억2700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노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선 전 약 3개월 동안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출마 예정자 A씨로부터 9차례에 걸쳐 총 1억4500만원, 국민의힘 광역의회 출마 예정자 B씨로부터는 4차례에 걸쳐 총 8200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2억2700만원의 돈을 PNR 리서치를 통한 공표 여론조사와 미래한국연구소의 비공표 조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돈의 성격에 대해선 “출마 예정자 본인의 여론조사 등 선거마케팅 비용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해당 비용은 별도로 계좌이체를 통해 받았고 2억2700만원은 현금이었다”고 부연했다. 

실제 20대 대선 직전 3개월 동안 PNR 리서치를 통해 회당 440만원씩 약 30회의 공표 여론조사가 실시됐고,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서도 약 10회에 걸쳐 원가 기준 7000만원 상당의 비공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미래한국연구소 비공표 조사 중에는 표본이 3000~6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면밀조사 9회가 포함된다. 

강씨는 지난 23일 김 전 의원과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약 11시간30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날 그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검에 변호인과 출석하면서 취재진에게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며 “대한민국 검사님들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진실 꼭 밝혀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조사를 마치고 나온 강씨는 “아주 기본적인 조사만 했고 녹음 파일에 대한 조사는 시작도 안 됐다”며 “(조사할)내용이 너무 많아 몇 차례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다”라며 “내용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강씨를 상대로 한 다섯 번째 소환이자 검찰이 지난 17일 대검과 부산지검 소속 검사 1명씩을 보강한 이후 사건 관련자들을 처음 소환한 일정이었다. 검찰은 의혹 제기 당사자인 강씨를 추후 추가 소환한 뒤 여러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씨와 김 전 의원을 불러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춰진 내막
밝혀질 진실

다만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여러 가지인 데다 강씨를 상대로 조사할 내용도 많아 명씨 등을 소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달 강씨와 명씨, 김 전 의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그동안 관련 증거들을 분석하는 한편 추가 압수수색을 통해 보강 자료를 수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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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