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아도 훤히 보이는 민주당 전대 뻔한 결말

‘알고도 속는’ 짜고 치는 고스톱?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독무대’로 끝날 뻔한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졌다. 그래도 여의도에 짙게 드리워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그림자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반전을 기대하는 것일까? 세 후보 모두 저마다의 계획을 안은 채 이 시나리오의 엔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달 18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흥행의 불씨가 살아났다. 후보자 등록 마감을 앞두고 속속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민주당 전 의원이자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가진 김두관 후보(이하 김 후보)가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그 뒤로 유력 주자인 이재명 후보와 원외 인사인 김지수 후보가 대열에 합류했다.

한 명의 결단
두 가지 반응

지난 9일 김 후보는 세종특별자치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권 도전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이 후보의 일극체제를 비판해 왔던 만큼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이날 그는 “민주당은 역사상 유례없는 ‘제왕적 당 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워 국민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민주당 내 불거졌던 ‘어대명’ ‘또대명(또 대표는 이재명)’ 등 추대론의 주인공인 이 후보를 직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서 흔적도 없이 실종된 지 오래”라며 “지금 이 오염원을 제거하고 소독·치료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붕괴는 명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 김두관의 당 대표 출마는 눈에 뻔히 보이는 민주당의 붕괴를 온몸으로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두고 곳곳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서 이 후보를 지지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뒤집고 비명(비 이재명)계를 자처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후보는 지난해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힘 있는 단결로 이재명 대표를 지키고 영남에 교두보를 만들어 총선을 이기겠다. 누가 민주주의와 이재명 대표를 지킬 수 있겠나”라며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공약으로는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었지만 낙선하는 데 그쳤다.

부산·경남(PK)를 겨냥한 공약은 당의 주류인 호남과 수도권 유권자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4·10 총선을 앞두고 작심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민주당 내 공천 파동이 크게 일 조짐이 보이자 당 지도부를 겨냥해 “국민의힘보다 더 많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남 양산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국민의힘 김태호 후보에 패배했다.

친(친 이재명)·비명 프레임서 벗어나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란 평이 나왔지만 일부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수박’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게다가 이번 출마를 기점으로 김 후보가 본격적으로 이 후보와 각을 세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출마를 고심하던 무렵 김 후보의 선택을 만류하던 이들도 있었다. 이 후보를 상대로 출마를 선언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후보와의 통화에서 직접 출마를 말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어떻게 민주당 십자가를 지려고 하느냐’ (같이)저를 아끼는 차원서 ‘이번보다 다음에 준비해서 출마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 후보가 마음을 굳히면서 몇 개월 동안 이어지던 ‘이재명 추대론’이 막판에 뒤집혔다. 압도적인 찬성 속 다시 한번 당 대표를 지낸 뒤 대권까지 물 흐르듯 넘어가려 했던 이 후보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김 후보의 날 선 연설문이 구구한 해석을 낳는 사이 이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상 대표직 연임을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이재명 맞수로 돌아온 김두관
잘려 나간 ‘친명’ 꼬리표, 왜?

지난 10일 이 후보는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준비한 출마 선언문을 한 자씩 읽어내려갔다. 이 후보는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제1정당, 수권 정당인 민주당의 책임”이라며 “‘절망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로 바꿀 수 있다면 제가 가진 무엇이라도 다 내던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후보는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후보는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돼야 한다” “기술인재 양성에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신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의 발언도 이어갔다.

정당의 발전 방향에 대해선 “당원 중심 대중 정당으로의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당원들이 더 단단하게 뭉쳐 다음 지방선거서 더 크게 이기고 다음 대선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강조했다. 이날 이 후보의 출마 선언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는 평도 나왔다.

같은 날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김지수 대표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후보의 단독 출마로 예상됐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3파전으로 확정됐다. 막차에 탑승한 김지수 후보는 미래 세대에 초점을 맞춰 “젊은 세대의 슬픔과 고민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출마 소신을 밝혔다.

그러나 당내 지지 세력이나 체급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져도 어대명 아성이 무너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김 후보의 출마로 인해 이 후보의 입지가 흔들리진 않겠지만 작은 흠 하나도 확대해 해석되는 등 골치 아픈 상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약속대련
진검승부


대표적인 예로는 이 후보가 얻게 될 득표율이다. 2년 전 치러진 전당대회서 이 후보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 만일 이번 투표서 이 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해 77.77%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을 경우 그의 평판에 한줄기 금이 그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후보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평이다. “단 1%의 반대 목소리도 전당대회를 통해 대변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책무”라고 밝혔지만 20~30%의 지지율로 반전을 보여줄 경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후기와 함께 비명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지금부터 인지도를 쌓아 다음 대선을 노리는 것도 예측 가능한 지점 중 하나다. 만일 이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출마가 불가능해질 때 ‘그래도 이재명과 겨뤘던 김두관’이 유권자의 뇌리에 스칠 것이란 후문이다.

이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 후보는 ‘이재명 1인 정당’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영화 <암살>을 언급하며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독립을 위한 싸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당 발언을 접한 이 후보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럼 이재명 대표가 당을 팔아넘겼냐는 뜻이냐”며 격분된 반응을 보였다.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내심 이 대표의 추대를 기대했던 초선 의원들 사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도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 후보의 출마에 “용기 있는 결단”이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지난 11일 평산마을을 찾은 김 후보는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 민주당이 경쟁이 있어야 역동성을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김두관 후보의 출마가 민주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흥행 없이
노잼으로?

이에 김 후보 역시 “민주당을 구하는 큰일이라 계산 없이 나섰다”며 “최고위원 후보가 5인5색이 아니라 5인1색 될 것 같다. 다양성이 실종된 당의 현주소를 국민이 많이 불편해한다”고 화답했다.

오히려 김 후보의 출마를 반색하는 이들도 있다. 흥행 요소가 전혀 없는 ‘노잼 전당대회’로 끝날까 노심초사했지만 두 후보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평이다. 이 후보에게만 쏠릴 뻔한 부담과 ‘이재명 일극체제’라는 비판적인 여론을 희석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툭’ 튀어나온 김 후보에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와의 관계성을 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특히 두 사람이 사전에 합을 맞춘 ‘약속 대련’이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 후보는 단독 출마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김 후보는 정치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는 이른바 ‘윈윈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데 의의를 뒀을 것”이라며 “2026년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정치적 활동반경을 가늠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PK와 친노(친 노무현), 친문(친 문재인) 세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후보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진 않다. 지난 총선서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비명계가 당을 떠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다들 알고 있다”며 “이번 양자 대결은 당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후보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여러 굵직한 자리를 맡아왔으며 한때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사다. 비록 이번 총선서 고배를 마셨지만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다. 이번 전당대회서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후보와 겨뤄봄으로써 스스로의 체급을 확인할 좋은 기회기도 하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의 경우 ‘내가 이재명에 비해 뭐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보면 김두관 후보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번 총선서 떨어진 게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뿐, 당 대표에 도전하고 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고착된 민주당에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 “내 나이가 몇인데…내 정치해야”
지선 생각 없다는데…혹시 또 대선?

약속 대련 의혹에 대해 양측 모두 선을 그었다. 특히 김 후보는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제 나이가 몇 살인데 제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박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위해 출마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지낸 후 도정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음 지방선거가 워낙 중요해서 이번에 당 대표를 맡게 되면 기초광역의회 후보 공천 시스템을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지사에 도전할 의사는)전혀 없다”고 답했다.

약속 대련이든 진검승부든 이번 전당대회서 승기를 거머쥘 사람은 결국 이 후보일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이다. 아무리 결투의 장을 넓히고 후보군이 많아도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이 후보를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다.

김두관 후보와 김지수 후보의 출마는 이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가 주장한 ‘제왕적 대표’라는 표현과 약속 대련에 공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당원의 선택을 받아 다시 한번 당 대표직에 도전했을 뿐, 당 차원서 어떠한 압력도 외압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천준호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이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문제 삼는 건 제한적 관점이라 본다”며 “다수의 지지를 받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다양성 자체를 목표로 해서 경쟁구도를 만들고 지지를 조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현 상황은 정치권 안팎서 제기되는 일극체제가 아닌 당원 중심 체제로 당이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당대회 대진표가 구성됐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강성 지지자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다독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다 보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심리적 분당’의 원인이었던 친·비명간의 갈등이 재점화될까 마음졸이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어대명’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최요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이 건강하단 증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겹씩 쌓여갔다. 지금도 그런 과정”이라며 “이 후보의 77.77% 지지율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니며 내부서 여러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세 명의 후보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당원도 거기에 맞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치 집단에서는 갈등이 필연적”이라며 “일각서 제기되는 계파 분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용감한 도전자 김지수는 누구?

이재명·김두관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김지수 후보는 1986년생으로 민주당서 꾸준히 활동해 온 청년·원외 인사다.

그는 재단법인 ‘여시재 북경사무소’ 소장 출신으로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2022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도 도전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문을 통해 “미래 세대를 대표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 대표에 출마한다”며 “저의 도전이 대한민국에 작지만 큰 파동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었다”며 “제가 도전하지 않으면 이번 전당대회서 언급되지 않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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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