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문심’ 어디로 향할까?

손만 잡아도 50% 먹고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이낙연·조국이 홀로서기에 나섰다. 한 목소리로 “윤석열정부 심판”을 외치면서도 화합과 견제를 반복한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서 여의도를 바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속마음이 아리송하다.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이 과연 누구의 뒤를 받쳐줄지 눈길이 쏠린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직후 집권한 만큼 큰 기대를 받았다. 이 때문일까? 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코로나 팬데믹, 부동산정책 등 온갖 악재를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는 평이 나온다. 2022년 청와대를 떠났지만 중요한 일을 앞둔 야권 인사들이 하나 같이 평산마을을 찾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건재한
영향력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4일,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마을에 위치한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이들은 30여분간 회담한 뒤 지도부와 함께 오찬을 가졌다. 총선을 60일 앞두고 성사된 만남인 만큼 문 전 대통령은 당의 통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파 다툼을 비롯해 선거제 개편 문제를 놓고 당내 이견이 평행선을 달리던 때였다.

1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제1야당을 사수하기 위해 병립형으로 마음이 기운 듯했다.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주당 핵심 관계자조차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병립형을 선택할 가능성에 크게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남을 가진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5일, 이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언했다.

이날 이 대표는 “거대 양당 한쪽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패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맞은 편 역시 대응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며 “선거 때마다 반복될 위성정당 논란을 없애고 준연동제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 이 악순환을 피하려면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하지만 여당이 반대한다. 그렇다고 병립형 회귀를 민주당이 수용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했다. 병립형으로 가닥이 잡히던 상황을 단숨에 뒤집을만한 인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은 180석을 경험했던 만큼 이 대표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줬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역시 ‘정치 입문’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 문 전 대통령을 찾았다. 조 대표는 지난달 12일, 문 전 대통령을 만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신당 창당을 통해서라도 윤정부 심판과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안에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당을 창당하는 불가피성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사실상 조 대표의 신당 창당 계획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이후 조 대표는 곧바로 부산을 찾아 창당을 공식 선언한 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중대 발표 전 찾는 필수 코스
평산마을서 어깨동무 ‘찰칵’


새로운미래를 이끄는 이낙연 공동대표 또한 지난해 7월 신당 창당을 시사하기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미국서 귀국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공동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2시간가량 만찬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큰 실마리를 남기지 않았다. 예방 직후 이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통령의 별도 당부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있었지만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 공동대표는 지난 1월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새로운미래 창당 과정에 돌입했다. 앞서 이 대표와 회동을 통해 이견을 조율을 시도했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을 떠난 것이다.

세 명의 대표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평산마을을 찾았다. 저마다의 길을 택하면서 지금의 총선 구도가 형성된 만큼 문 전 대통령의 입김이 여전히 여의도의 기류를 바꿀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이재명·이낙연·조국 대표는 모두 민주당이라는 뿌리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둥지를 틀었지만 결국 문 전 대통령과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다. 친문(친 문재인)은 지난 정부서 180석을 구성했던 세력이다.

따라서 친문 세력을 조금이라도 적으로 둔다면 곧바로 지지율이 고꾸라질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해석이다.

하지만 위 주장이 무색하게 친문과 친명(친 이재명) 세력은 총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 충돌했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이 만남을 거듭하며 화합을 중요시했지만 지지자와 계파 간의 갈등을 봉합하지는 못했다. 결국 공천 과정서 설훈·홍영표 등 다수의 친문계가 컷오프당하거나 경선서 탈락했고 이는 줄탈당으로 이어졌다.

공천 파동의 뇌관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의 뜻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나 싶더니 이번에는 경기 안산갑에 공천을 받은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이 파문에 휩싸였다.

양 후보는 2008년 언론연대 사무총장 시절 ‘이명박과 노무현은 유사 불량품’이란 제목의 칼럼을 작성했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고 쓴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오월동주
여의도

이 밖에도 ‘미친 미국소 수입의 원죄는 노무현’이란 칼럼서 “낙향한 대통령으로서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양 후보의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도부는 발언 대상이 사회적 약자 등이 아닌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유세 현장서 양 후보와 관련한 기자 질문에 “발언이 지나쳤다”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그 이상의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우리 국민들께서 판단할 것”이라며 사실상 공천 유지 입장을 밝혔다.


양 후보와 경선서 맞붙어 패한 친문계 전해철 의원은 SNS를 통해 “양 후보의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자 인식의 표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를 포함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수박, 바퀴벌레, 고름이라 멸칭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해 왔다”며 “대통령님에 대한 비난의 발언은 그 빈도와 말의 수위, 내용의 문제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잠시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계파 갈등의 불씨가 살아나자 김부겸 상임선대위원장이 급히 진화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이 문제는 일단 정리하고 이제 총선 승리라는 한 가지 목표로 매진하는 게 옳을 것 같다”며 “한 목소리를 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서 매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화약고와도 같은 친문·친명 갈등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전부터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명문(친명·친문이 서로 화합하는)’ 정당을 거듭 강조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명문 정당은 두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거두기 위한 ‘립서비스’뿐이라는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친문 세력이 끌어들이는 지지층을 보장받고자 하고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세력을 보호해줄 ‘장치’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이 지나고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사이가 껄끄러워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이 대표는 무리하게 공천을 진행시켰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 없이도 총선서 승리를 거둘 것이란 자신감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 지지도는 ▲조국혁신당 10% ▲개혁신당 2% ▲새로운미래 2% ▲녹색정의당 1%로 집계됐다. ‘지지 정당 없음·모름·무응답’은 21%였다.

민주 진영
새로운 바람

지역구 투표 정당 역시 ▲조국혁신당 5% ▲개혁신당 2% ▲녹색정의당 1% ▲새로운미래 1% 순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18.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 10일, 광주 광산을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지지율을 견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공동대표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배경을 두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호남 사람에게 있어 민주당을 탈당한 사람은 ‘가출한 아이’와 똑같다”며 “게다가 개혁신당과 손을 잡지 않았나. 이는 광주 민심에 호소하기 어려울뿐더러 문 전 대통령 또한 선뜻 손을 들어주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새로운미래에 힘을 실어준다면 친명계와 친낙(친 이낙연)계의 계파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것으로도 예상했다.

이 공동대표가 현재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대표는 다른 후보에 비해 늦게 출마를 선언했다. 현장을 찾아 지역주민과 스킨십을 한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율이 상승할 가능성을 마냥 닫을 수 없다는 관측도 제시된다.

반면 가장 늦게 출발한 조국혁신당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창당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지율이 오름세를 기록하며 이번 총선의 돌풍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힘을 입은 듯 조 대표 또한 활동 반경을 넓히는 추세다. 당초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야권의 본진이라는 점을 강조해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지민비조’를 표어로 내세웠다. 유권자의 교차 투표를 격려함으로서 민주당과 상생의 관계로 거듭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역시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듯했다. 이 대표와 조 대표는 지난 5일, 국회서 만나 “윤정부 심판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며”며 총선 연대를 강조했다. 조 대표가 “윤석열 탄핵”을 가감 없이 외친 덕에 ‘정권 심판론’이 한층 두드러지는 효과도 한몫했다.

공천 파동? 사법 리스크?
미운 놈 떡 하나 더 줄까?

하지만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위협하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민주당이 “지역구도 비례도 민주당을 찍어 달라”며 ‘몰빵론’으로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에 조 대표는 “뷔페에 가면 여러 코너가 있지 않나”라며 “음식을 보고 본인 취향에 맞는 것을 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지민비조에서 더 나아가 “조국혁신당을 찍는 김에 민주당을 찍으라”는 ‘비조지민’으로 전환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자신감의 배경으로 문 전 대통령의 긍정 메시지가 소폭 반영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창당을 앞둔 조 대표가 평산마을을 찾았을 때 문 전 대통령은 이 공동대표와 달리 격려의 말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있어 조 대표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문 전 대통령이 조 대표를 당시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기 때문에 ‘집중적인 정치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조국혁신당에 마음이 반발 앞선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서로의 이해타산이 성립했다”고 평가했다.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2심서 실형을 받은 조 대표는 총선 출마를 통해 정치적 부활을 노리고 있다. 친문 세력은 민주당서 대거 컷오프되면서 갈 곳을 잃었다.

조국혁신당의 몸집이 커질수록 친문 세력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 나설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하지만 자신의 세력이 22대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 물밑서 움직이지 않겠냐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조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현재 이 대표는 일주일에 2~3번씩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똑같이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 대표까지 집중을 받는다면 정부·여당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격 대상이 된다.

이 같은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의 관계에 선을 긋는 분위기도 이어진다. 마음의 빚을 진 문 전 대통령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격려의 말을 했을 뿐, ‘조 대표의 신당 창당에 크게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오히려 22대 총선서도 민주당이 제1야당을 이어가기 위해 전적으로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무용론’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임기가 끝난 정치인의 영향력은 총선 판세를 뒤엎을 만큼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닫힌 문?
열린 문?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 전 대통령의)메시지가 (특정 당의)지지율에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는 ‘이미 지나간 세력’이라는 점을 들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전 정부의 영향이 여의도 담을 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은 ‘전 정부 심판’이 아닌 ‘현 정부 심판’으로 치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악재가 찾아올 때마다 문 전 대통령이 자칭타칭 구원투수로 소환된다. 총선 결과를 떠나 4월10일 이후 문 전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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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