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대출로 내 집 마련

지난 1월29일부터 시작된 신생아 특례대출에 지난달 16일까지 3조3928억원(1만3458건)이 접수되면서 내 집 마련에 나선 수요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신규 분양 단지 가운데 분양가 9억원 이하인 동시에 택지지구 또는 도시개발로 공급되는 단지는 신생아 특례대출 혜택을 볼 수 있어 자금 부담을 덜 수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지난해 1월1일 이후 출생한 아이를 가진 가구 중 부부 합산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등 요건을 갖추면 9억원 이하 주택에 저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되는 정부 지원사업이다. 금리는 소득·대출기간·우대금리 등에 따라 연 1.6~3.3%가 적용된다.

활기 더할 
불쏘시개?

신생아 특례대출이 출시 첫날인 지난 1월29일 신청자를 확 끌어모으며 뜨거운 인기를 증명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이 시행 종료되고 주택 매매시장 거래가 얼어붙은 상황서 신생아 특례대출이 부동산시장에 활기를 더할 새로운 ‘불쏘시개’가 될지 관심을 모은다.

다만 지난해 1월1일 이후 출생아부터 적용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차주가 제한적인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파격적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1월29일 오전 9시부터 구입자금대출인 ‘신생아 특례 디딤돌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인 ‘신생아 특례 버팀목대출’ 신청을 받았다.


신생아 특례 디딤돌대출은 대출 접수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세대주 및 1주택 세대주(대환대출)에 대해 연 1.6~3.3% 저리로 5억원까지 빌려주는 상품이다. DTI(총부채상환비율) 60%, LTV(담보인정비율) 70% 이내(생애최초 80%) 이내로 최고 5억원까지 대출 가능하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적용되지 않는다. 부부 합산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순자산가액 4억6900만원 이하면 받을 수 있다. 대상 주택은 전용 85㎡ 이하(읍·면 100㎡)이고 평가액 9억원 이하여야 한다.

신생아 특례 버팀목대출은 대출 접수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세대주이면서 부부 합산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순자산가액 3억4500만원 이하인 경우가 대상이다. 연 1.1~3.0% 저리로 3억원까지 대출된다. 임차보증금 5억원(비수도권 4억원), 전용 85㎡ 이하(읍·면 100㎡) 주택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택도시기금 기금e든든’ 사이트에는 이 상품 출시 첫날 하루 종일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비스 접속 대기 안내’ 화면이 떴다. 1월29일 오전 9시40분께 접속하자 대기자가 약 1000명에 달해 1시간16분을 기다려야 했다. 오후에도 동시접속 사용자가 많아 대기시간이 길었다.

서버가 다운된 건 아니고 신청자가 갑자기 몰려서 대기시간이 발생했다. 시작 일을 공지했을 뿐 마감 기한은 없다. 선착순 개념도 아닌데 초반이라 그런지 빨리 신청하려는 수요가 좀 있는 듯하다고 HUG 관계자는 전했다.

이러한 인기가 부동산 매수심리 회복에 탄력을 줄지 주목되고 있다. 2022년 말 증가 전환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8월(3899건)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대출이 종료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부부 합산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9억원 이하 주택 저리로 최대 5억원


특례보금자리론은 주택구입자금대출과 전세자금반환대출, 대환대출 모두 가능하고 실거주 의무도 없어 시장 회복에 기여했었다. 40조원 규모였던 특례보금자리론과 달리 27조원 규모로, 예정된 신생아 특례대출은 적용 대상도 한정적이라 파급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수혜 대상을 약 40만가구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부터 적용되는 만큼 현재 1년치 수요가 누적된 상황이라 연초에는 대출 신청도 많고 거래량이 단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적용 대상이 전체 가구의 2%에 불과해 시장 전체 거래량을 크게 증가시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당장은 대출 신청이 많겠지만 주택구입자금대출보다 전세자금대출, 대환대출 위주일 듯하다는 것이 업계의 견해다.

대출일로부터 1개월 내에 대출받은 주택에 전입 후 1년 이상 실거주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도 부담이다. 정책 취지상 투자 수요를 배제하고 실수요자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대출 신청자는 더 적을 수 있다.

업계는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이 시장 회복에 기여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집값 전망 자체가 불투명해 수요자들이 적극적으로 주택 구입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수요자 위주로만 시장에 유입된다는 점에서 지난해 특례보금자리론만큼 강렬한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상자가 아닌 경우 지난 1월9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주택담보대출 대환대출(주담대 갈아타기) 서비스가 신생아 특례대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신생아 대출은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1억3000만원 이하인 차주에 적용하는 금리가 최고 연 3.30%인데 시중 은행도 3%대 주담대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수혜 대상 
40만가구

실제 대환대출 플랫폼이 들어오면서 은행 간 금리 경쟁이 붙어 자금 이동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최근 주담대 금리가 3% 중반까지 떨어진 만큼 신생아 특례대출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신규 분양 아파트 신생아 특례대출의 경우 입주 시점에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할 때 신청 가능하다. 단, 사업 유형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분양 아파트는 입주 시점에 ‘미등기’ 상태인 만큼 주택도시기금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제약을 둔 것이다.

우선 재개발·재건축 분양 아파트는 입주 시점에 바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없다.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 추가 분담금, 입주민 관리처분 인가 동의 거부 등이 발생하면 등기가 몇 년씩 늦춰질 수 있다. 즉 금융권 입장서 담보로 잡을 아파트가 실제 대출자한테 소유권 이전이 언제 될지 가늠하기 어려워 대출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신도시 및 도시개발구역서 공급되는 아파트의 경우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정비사업과는 달리 등기 지연 우려가 없다. 다만 규모에 있어 세대수가 300세대 이상이어야 하며, 대출 신청은 사용 승인 이후 6개월 이내여야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다.

선뜻 나서기…
집값 불투명

신생아 특례대출은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는 30대에도 유리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이들 연령대 구매 열기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의 ‘2023년 전국 아파트 연령대별 거래량’을 살펴본 결과 30대가 26.6%를 차지해 40대(25.8%)를 웃돌았다. 2019년 조사 이후 30대가 40대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30대의 내 집 마련 열기가 여전히 살아 있고, 정부 복지 목적 대출이라는 점에서 젊은 세대 관심이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대부분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되며 9억원 미만으로 나오는 경우를 찾기 어려워 인천 등 서울 인접 지역서 신생아 특례대출 요건을 갖춘 신축 아파트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신생아 특례대출이 가능한 신규 분양 아파트.

▲왕길역 로열파크씨티= 인천 서구 왕길동에 ‘왕길역 로열파크씨티’가 분양 중이다. 1500세대 대단지로, 전용면적 59·74·84·99㎡ 모든 타입서 신생아 특례대출이 혜택이 가능하다. 전매제한 기간은 6개월이며 실거주 의무도 적용받지 않는다. 금융 혜택으로 계약금(10%)을 납부하면, 중도금은 전액 무이자 혜택을 제공해 구매 부담도 크게 낮췄다.

‘한도 충분’ 연말까지 신청 가능
꺾인 매수심리 이참에 살아날까?

올해 9월 입주하는 리조트특별시 첫 번째 시범단지로 시공은 주택 명가 대우건설이 맡았다. 조경은 대한민국 조경 분야 1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이 맡았다.

▲영통역자이 프라시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일원에 들어서는 ‘영통역자이 프라시엘’ 아파트가 미분양 잔여 세대를 선착순 분양 중이다. 지하 3층~지상 최고 23층, 총 472가구 규모다. 전용면적은 84㎡A 201가구, 84㎡B 109가구, 84㎡C 107가구, 84㎡D 35가구, 100㎡ 20가구로 구성된다. 2026년 하반기 입주 예정. 

단지는 남향 위주 4베이 판상형 구조로 채광과 통풍이 우수하다. 피트니스클럽, 골프연습장, 필라테스 등 입주민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시설도 갖춰진다.


분양 관계자는 “최근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으나, 용인은 다양한 개발 호재와 우수한 교통여건으로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빠르게 소진 중”이라고 전했다.

경기에서는 영통·망포 생활권에 속한 영통역자이 프라시엘(472세대)도 전용면적 84㎡ 452세대에 한해 대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는 전체 세대수 95%에 해당한다. 전매제한도 6개월로 짧다.

▲평택 브레인시티 중흥S-클래스= 지제역 인근에 위치한 미분양 아파트 ‘평택 브레인시티 중흥S-클래스’가 선착순 분양 중이다. 지하 2층~지상 최고 35층 16개동, 총 1980세대 규모다. 전용면적 59㎡, 84㎡로 구성된다. 입주는 2027년 2월 예정.

1980세대 모두 신생아 특례대출이 가능하다. 파주 힐스테이트 더 운정의 경우 아파트 744세대 가운데 펜트하우스(6세대)를 제외한 전용면적 84㎡ 738세대가 신생아 특례대출 혜택을 볼 수 있다. 입주 전 전매도 가능하다. 청약통장은 필요 없고 실거주 의무와 재당첨 제한도 없다.

서울 인접지
신축 아파트

단지는 잔디마당과 어린이 물놀이터, 아트놀이터, 자작나무원, 청유원 등 조경 특화 설계가 적용된다. 피트니스센터를 비롯해 GX룸, 실내골프연습장, 다목적 실내체육시설 등이 들어선다. 홈플러스와 이마트, CGV, 롯데시네마 등이 인근에 위치하고 은행·병원·약국 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중심상업지구가 가깝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부지도 인근에 계획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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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 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 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대구·경북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경북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대구·경북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 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사라진 2인자 대구·경북·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