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2023 재벌기업 희비 결산

뜨고 지는 현실에 상반된 표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재벌기업들의 1년 성적표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심각한 불황의 여파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곳도 눈에 띈다.

올해는 경기침체 여파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재벌기업 사이에서 희비가 극명히 엇갈렸다. 당초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 이슈가 악재로 작용한 기업도 눈에 띈다. 반대로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건실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낸 기업도 제법 보인다. 

악재와 호재
엇갈린 명암

롯데그룹은 주력 부문에서 부진이 부각됐으며, 특히 롯데케미칼의 매출 하락이 확연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2조2761억원을 기록했던 롯데케미칼은 올해 연말 기준 매출 19조9830억원(3분기 누적 14조7503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년과 비교해 2조원 이상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의 또 다른 축인 롯데쇼핑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는 흐름이었다.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매출은 3조7391억원, 영업이익은 14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매출 4조132억원·영업이익 1500억원) 대비 매출은 6.8%, 영업이익은 5.3% 감소한 수치다. 앞서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2%, 30.8% 줄어든 바 있다.

신세계그룹의 경우 이마트의 실적 부진이 그룹 전체에 악재로 작용한 모습이다. 이마트는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22조1000억원, 영업이익 386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0.2%에 불과했다.


이마트는 2021년부터 이베이코리아, W컨셉코리아, 스타벅스(지분 인수) 등을 품는 대규모 M&A를 단행하면서 4조원 넘게 투자했지만 아직까지 특출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 예로 2021년 43억원 흑자를 거뒀던 이베이코리아는 신세계그룹에 편입된 직후였던 지난해에 655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3분기까지 322억원 적자가 쌓였다.

심각성을 인지한 신세계그룹은 지난 9월 계열사 대표이사를 절반 가까이 교체하는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실적 반등요소를 찾지 못하자, 오너 차원에서 인적 쇄신 칼을 빼든 것으로도 풀이된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 신통치 못한 실적을 나타냈다. 3분기 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3조7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 넘게 감소했다. 

다만 3분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지난 19일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내년과 내후년 각각 65%, 3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힘겨웠던
한해 농사

카카오그룹, 다우키움그룹, 태영건설그룹 등은 실적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부각된 이슈가 그룹 전체에 영향을 준 케이스다. 궁극적으로 그룹 신뢰도에 커다란 흠집이 났다는 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카카오그룹은 카카오,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잡음이 잇따르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의 여파가 지대했는데, 그룹 창업주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혼란이 계속되면서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던 그룹 중장기 전략에 제동이 걸린 형국이다. 지난 20일 카카오페이는 미국 증권사인 ‘시버트’의 경영권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 변경 사항을 공시했다. 앞서 카카오페이는 글로벌 금융사업 확장을 위해 지난 4월 시버트의 지분 51%를 두 차례에 걸쳐 약 1039억원에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다. 

지난 5월 카카오페이는 807만5607주(19.9%)를 1차 거래를 통해 확보했고 내년 중 2차 거래를 통해 나머지 주식 2575만6470주을 인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카카오 그룹의 경영진이 지난 10월부터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시버트의 태도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키움그룹은 올해에만 두 번에 걸쳐 주가조작 사태와 관련해 이름을 올리면서 신뢰도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지난 4월 ‘라덕연 사태’가 불거진 무렵 김익래 회장이 주가조작 의혹에 휘말렸던 게 결정적이었다.

쉽지 않았던 생존 활로 찾기
“웃고 울고” 극명히 갈린 성적

당시 김 회장은 다우데이타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 자신이 보유한 다우데이타 지분을 처분하면서 600억원대 차익을 거뒀고, 내부정보를 이용해 매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 회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차익 환원의 뜻을 밝힌 채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10월에는 핵심 계열사인 키움증권이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와 관련되면서 또 한 번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영풍제지 주가조작 일당이 키움증권의 계좌를 활용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해당 사건으로 키움증권에서 약 4943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반대매매로 610억원만 회수하는 데 그쳤다. 

태영건설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논란에 휩싸이면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태영건설의 PF 부실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소문이 빗발쳤고, 심지어 부도·워크아웃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태영건설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조3891억원, 영업이익 977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만 놓고 보면 꽤나 양호한 상태였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2%, 영업이익은 311% 증가한 수치다. 다만 실적과 별개로 재무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올해 3분기 기준 태영건설의 총차입금은 1조2600억원, 부채비율은 478%에 달했다. PF우발채무는 3조4800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3.7배 수준이다.

잘 되거나
나쁘거나

앞에서 열거한 대기업이 실적 악화, 부정적 이슈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반면, 현대자동차그룹, 포스코그룹, 에코프로그룹 등은 눈부신 성장세를 나타냈다. 내년 전망도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역대 최다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올해 11월까지 미국 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랑은 151만5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1%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연말까지 160만대 이상 판매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힘입어 올해 15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 영업이익은 15조3723억원으로 전년 대비 56.5%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활약에 힘입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에너지 부문에서의 안정적 수익 확보, 유럽으로의 친환경 산업재 판매량 증가 등을 기반으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포스코에너지를 흡수 합병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통합 이전 영업이익 합산치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9025억원)과 포스코에너지의 영업이익(2710억원)을 더하면 1조1735억원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올해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에코프로그룹은 올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차전지 관련 기업으로 분류되는 ‘에코프로 3형제(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에이치엔)’가 화제성 면에서 단연 돋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 코스닥 시총 순위는 ▲셀트리온헬스케어(9조1780억원) ▲에코프로비엠(9조75억원) ▲엘앤에프(6조2491억원) ▲카카오게임즈(3조6738억원) ▲HLB(3조3076억원) 순이었다. 해당 순위는 올해 들어 다소 바뀌었다. 지난 16일 기준 에코프로비엠은 1위, 에코프로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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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