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따라’ 역대 정권과 헌재 변천사

대통령 바뀌면 흔들흔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는 법원과 함께 우리나라 사법부를 아우르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의 생명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헌재 재판관 지명 주체가 각기 다른 것도 권력의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그럼에도 헌재 판결의 방향성은 정부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한다.

지난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날 오후 대심판정서 열린 선고 재판서 재판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탄핵 기각
이례적 일치

지난 2월8일 국회는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0월29일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헌재는 3가지 모두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각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이 장관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봤다. 


참사 원인이나 ‘골든타임’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 질의에 부적절하게 대답한 부분을 두고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면서도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 재난 대응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정정미 재판관 등 4명은 이 장관의 사후 발언 일부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부분이 탄핵 사유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이 나오면서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장관의 탄핵 심판 청구에 기각 혹은 인용 가능성을 논하는 과정서 불거진 재판관의 성향을 가지고도 말이 나오는 중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탄핵 심판 판결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탄핵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6명 이상 재판관의 찬성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러면서 김 의원은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했다.

1987년 개정헌법 후 현재 모습
국회·대법원장·대통령 3명씩

현재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주·정정미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으로, 유남석 헌재소장·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중도·보수 5, 진보 4로 구성돼있는 셈이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 결과가 전원 일치 기각으로 나온 점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헌재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와서야 현재의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되면서 신설됐다. 제헌헌법에 따르면 헌법위원회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했다. 1960년 개정헌법에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돼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됐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설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제3공화국 때인 1962년 헌법에서는 법원과 탄핵심판위원회가 헌법재판권과 탄핵심판권을 행사했다. 1972년과 1980년 헌법에서는 헌법위원회가 그 기능을 담당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1988년 헌법재판소법이 발효되고 재판관 9명이 임명되면서부터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는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담당한다. 

헌재는 법관 자격을 가진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지명한다. 헌재 소장은 재판관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임기는 6년이다. 

정치 성향
판결 영향

국회·대법원장·대통령 등 재판관을 지명하는 주체가 다른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재판관의 구성이 변화하는 부분을 두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색깔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기관이 헌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88년 9월 조규광 헌재소장 체제로 1기 재판부가 출범한 뒤 1994년 9월 김용준 소장이 헌재소장을 맡으면서 2기 재판부가 들어섰다. 당시까지만 해도 헌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헌재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시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및 심판 사건, 신 행정수도 문제를 맡아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13년 4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활동한 박한철 소장 체제의 5기 재판부는 역대 재판부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기수로 평가받는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소속 국회의원이 자격을 상실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2015년 2월에는 간통죄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간통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241조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것. 1990년부터 2008년까지 4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가 5번째 위헌 판결이 나면서 간통죄는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재가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안은 따로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소추를 심리하고 판단한 사건이다. 2016년 12월9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 심판 절차가 개시됐다. 

이후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됐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밝힌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서 가장 유명한 말로 남았다.

문정부 때
성향 뚜렷

헌재는 2018년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문재인정부 시기로 같은 해 헌재소장을 비롯해 재판관 5명이 교체되면서 6기 재판부가 출범했다. 헌재의 판결이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크게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온 때다. 재판관 구성 자체가 진보 인사로 채워지면서 판결 관점이 좌로 치우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 2019년 4월 낙태죄와 관련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이지만 해당 조항이 바로 무효가 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일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서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위헌으로 판결이 뒤집혔다. 

이보다 앞서 2018년 6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자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결정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뜻을 밝혔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의 헌법소원 당시에는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재판관의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사안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 때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이 지명한 진보 성향 재판관 5명과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노무현정부서 큰 주목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


국회는 지난해 4~5월 민주당 주도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입법을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비교섭단체 안건조정위원회 몫으로 표결을 행사하게 해 법안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와 별개로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검사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한다며 국회의 입법 행위와 법안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 심판과 법안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등 진보 성향의 재판관 5명은 국회 본회의서 국민의힘 의원의 심의·표결권에 침해가 없었으며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 행위도 유효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법무부와 검찰의 권한쟁의 청구에 관해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반면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은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이선애·이종석·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검수완박 법안 입법 과정서 민형배 의원이 당시 민주당을 탈당한 것, 최장 90일간 법안 검토를 해야 하는 안건조정위 논의를 17분 만에 끝낸 것, 법사위서 8분 만에 가결시킨 것 등이 헌법 49조(다수결 원칙)와 국회법 57조 2, 58조(위원회 심사 절차)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진보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이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수완박 법안이 수사·소추권을 국가기관 사이서 조정·배분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권한을 침해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의 청구인 적격과 검사의 권한 침해 가능성을 인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월 이선애 재판관의 후임으로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난 4월 퇴임한 이석태 재판관의 후임으로 정정미 대전고법 판사를 추천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한 진보 성향으로 꼽힌다. 이석태 재판관의 퇴임으로 진보 성향 재판관이 4명으로 줄어들고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이 5명이 됐다.

2년 안에
지형 바뀐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의 취임은 윤석열정부의 헌재 지형 재편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다. 두 재판관의 교체를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재판관 모두가 물갈이된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은 헌재 지형이 바뀐 뒤 나온 첫 주요 결정이다. 이 사건서 헌재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을 낸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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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