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따라’ 역대 정권과 헌재 변천사

대통령 바뀌면 흔들흔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는 법원과 함께 우리나라 사법부를 아우르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의 생명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헌재 재판관 지명 주체가 각기 다른 것도 권력의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그럼에도 헌재 판결의 방향성은 정부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곤 한다.

지난 2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날 오후 대심판정서 열린 선고 재판서 재판관 9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탄핵 기각
이례적 일치

지난 2월8일 국회는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10월29일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헌재는 3가지 모두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장관)은 행정안전부의 장이므로 사회재난과 인명 피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관점서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가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각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이 장관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봤다. 


참사 원인이나 ‘골든타임’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 질의에 부적절하게 대답한 부분을 두고서는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부적절하다”면서도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봤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 재난 대응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정정미 재판관 등 4명은 이 장관의 사후 발언 일부가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행위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부분이 탄핵 사유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 동의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이 나오면서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장관의 탄핵 심판 청구에 기각 혹은 인용 가능성을 논하는 과정서 불거진 재판관의 성향을 가지고도 말이 나오는 중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탄핵 심판 판결 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탄핵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6명 이상 재판관의 찬성이 필요한데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러면서 김 의원은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을 언급했다.

1987년 개정헌법 후 현재 모습
국회·대법원장·대통령 3명씩

현재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주·정정미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으로, 유남석 헌재소장·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중도·보수 5, 진보 4로 구성돼있는 셈이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 결과가 전원 일치 기각으로 나온 점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헌재는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와서야 현재의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되면서 신설됐다. 제헌헌법에 따르면 헌법위원회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했다. 1960년 개정헌법에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돼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됐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설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제3공화국 때인 1962년 헌법에서는 법원과 탄핵심판위원회가 헌법재판권과 탄핵심판권을 행사했다. 1972년과 1980년 헌법에서는 헌법위원회가 그 기능을 담당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1988년 헌법재판소법이 발효되고 재판관 9명이 임명되면서부터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는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담당한다. 

헌재는 법관 자격을 가진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지명한다. 헌재 소장은 재판관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임기는 6년이다. 

정치 성향
판결 영향

국회·대법원장·대통령 등 재판관을 지명하는 주체가 다른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재판관의 구성이 변화하는 부분을 두고 ‘정치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색깔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기관이 헌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88년 9월 조규광 헌재소장 체제로 1기 재판부가 출범한 뒤 1994년 9월 김용준 소장이 헌재소장을 맡으면서 2기 재판부가 들어섰다. 당시까지만 해도 헌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헌재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시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및 심판 사건, 신 행정수도 문제를 맡아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13년 4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활동한 박한철 소장 체제의 5기 재판부는 역대 재판부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기수로 평가받는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소속 국회의원이 자격을 상실하면서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2015년 2월에는 간통죄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간통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241조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것. 1990년부터 2008년까지 4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가 5번째 위헌 판결이 나면서 간통죄는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재가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안은 따로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소추를 심리하고 판단한 사건이다. 2016년 12월9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박 전 대통령에 관한 탄핵 심판 절차가 개시됐다. 

이후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됐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밝힌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서 가장 유명한 말로 남았다.

문정부 때
성향 뚜렷

헌재는 2018년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문재인정부 시기로 같은 해 헌재소장을 비롯해 재판관 5명이 교체되면서 6기 재판부가 출범했다. 헌재의 판결이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크게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온 때다. 재판관 구성 자체가 진보 인사로 채워지면서 판결 관점이 좌로 치우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실제 2019년 4월 낙태죄와 관련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위헌이지만 해당 조항이 바로 무효가 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일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서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위헌으로 판결이 뒤집혔다. 

이보다 앞서 2018년 6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자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결정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뜻을 밝혔다.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의 헌법소원 당시에는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재판관의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사안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 때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민주당이 지명한 진보 성향 재판관 5명과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노무현정부서 큰 주목
박근혜 탄핵 인용 결정


국회는 지난해 4~5월 민주당 주도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사업·대형참사)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입법을 위해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비교섭단체 안건조정위원회 몫으로 표결을 행사하게 해 법안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와 별개로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검사의 수사·소추권을 침해한다며 국회의 입법 행위와 법안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 심판과 법안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유남석 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등 진보 성향의 재판관 5명은 국회 본회의서 국민의힘 의원의 심의·표결권에 침해가 없었으며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 행위도 유효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법무부와 검찰의 권한쟁의 청구에 관해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반면 보수·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 4명은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이선애·이종석·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검수완박 법안 입법 과정서 민형배 의원이 당시 민주당을 탈당한 것, 최장 90일간 법안 검토를 해야 하는 안건조정위 논의를 17분 만에 끝낸 것, 법사위서 8분 만에 가결시킨 것 등이 헌법 49조(다수결 원칙)와 국회법 57조 2, 58조(위원회 심사 절차)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진보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이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수완박 법안이 수사·소추권을 국가기관 사이서 조정·배분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의 권한을 침해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중도·보수 성향의 재판관은 법무부 장관의 청구인 적격과 검사의 권한 침해 가능성을 인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월 이선애 재판관의 후임으로 김형두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난 4월 퇴임한 이석태 재판관의 후임으로 정정미 대전고법 판사를 추천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한 진보 성향으로 꼽힌다. 이석태 재판관의 퇴임으로 진보 성향 재판관이 4명으로 줄어들고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이 5명이 됐다.

2년 안에
지형 바뀐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의 취임은 윤석열정부의 헌재 지형 재편의 시발점으로 여겨졌다. 두 재판관의 교체를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재판관 모두가 물갈이된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은 헌재 지형이 바뀐 뒤 나온 첫 주요 결정이다. 이 사건서 헌재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기각 판결을 낸 것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