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결혼도…’ 친족상도례의 허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28 08:22:31
  • 호수 14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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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고소할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기 결혼을 당해서 혼인취소소송을 해 현재는 혼인 취소 상태다. 결혼 생활 중 전 남편은 내 주민등록증을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 명의를 도용했다. 그때 생긴 빚이 1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친족상도례’ 때문에 전 남편을 고소할 수도 없다.”

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나와 있다. 또 형법 제365조(친족 간의 범행)에는 ‘죄를 범한 자와 본범 간에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신분 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고 적시돼있다.

가족 문제는 
가족이 해결

이 법률은 ‘친족상도례’라고 한다. 법률을 쉽게 해석하면 8촌 내 혈족이나 4촌 내 인척·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죄·사기죄 등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특례를 말한다. 이 법의 취지는 가족 문제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가족 내 문제는 가족이 해결하자고 만든 것이다. 하지만 허점이 존재하는 만큼 비판도 많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적 처벌을 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친족에게 경제범죄(사기·횡령·배임·특별경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수는 지난 3년간 평균 800명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친족상도례를 이용한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법 테두리 밖의 삶은 최유라(가명)씨가 겪은 일로 설명된다. 최씨는 전 남편 강지훈(가명)씨를 보육원 봉사활동서 만났다. 최씨보다 5살 어렸던 강씨는 봉사활동 중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많이 앞장섰다. 누가 봐도 싹싹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강씨가 다니는 직장은 삼성이었다. 그는 보육원에 올 때마다 회사 명찰을 목에 걸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모전에 붙어서 삼성에 취직했다고 했다.

강씨는 당시 집이 충남 천안이었는데, 자신의 차인 제네시스로 봉사활동에 온 사람 모두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여기에 서울에 살던 최씨도 포함됐다.

강씨는 최씨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천안에 거주 중이었던 강씨는 퇴근 후 최씨를 보기 위해 매일 서울에 갔다. 여기에 최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런 과정에 가족관계증명서, 월급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최씨에게 보여줬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강씨의 부모가 모두 사망으로 기록돼있었다. 

만남부터 도주까지 완벽한 플랜
주민증 사진 찍어서 명의 도용

강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고 치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러다 돌아가셨다. 부모님 사이가 너무 안 좋았다. 그런데 너희 집은 따뜻한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도 너무 좋으신 분 같다. 나도 가족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둘은 2016년 결혼에 골인했다.

강씨는 최씨를 위해 이직한 뒤 최씨 부모 집 근처에 집을 구했고 행복해했다. 가족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살면서 이런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당시의 삶이 “평범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집에서 업무를 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서 일을 했다. 퇴근은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강씨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2021년 초다. 강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상속 정리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다. 어머니가 남긴 재산은 꽤 많았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직계가족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강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최씨는 둘째를 출산해 부모님 집에서 한 달 동안 몸조리를 했다. 그 후 집에 돌아갔을 때, 감춰져 있던 비극이 눈앞에 드러났다. 다시 찾아간 집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비밀번호로 문을 열어도 열리지 않았다. 인근 주민센터에 동사무소 직원이 동행해 집 문을 열었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 주인은 황당해했다. 강씨가 집주인에게 연락해 보증금을 모두 받고 집을 내놨다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었던 가구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이 감쪽같았다.

사라진 가장
무너진 가정

공동으로 사용하는 은행 계좌는 2000만원 넘는 돈이 있었지만 250만원, 500만원씩 계속 돈이 출금됐다.

최씨는 강씨의 고향에 찾아갔을 때부터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했다. 강씨의 부모는 모두 살아 있었고 남동생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강씨의 명의도용으로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강씨 고향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앞서 그는 자신을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에 취직해 야간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었으나 대학교 졸업도, 삼성에 다닌 것도 거짓말이었다. 강씨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고, 삼성 하청업체서 일했으며 겨우 6개월을 다니면 다행이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강씨가 보육원 봉사활동에 오기 직전 교도소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기죄로 1년6개월 형을 살았다. 강씨는 사기 결혼을 계획해 의도적으로 최씨에게 접근한 것이다.

연애 중 방문한 강씨 부모 산소는 모르는 사람 것이었는데 당시 옷을 태우기도 했다. 결혼식에 왔던 강씨 어머니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강씨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해 최씨에게 접근했다.

강씨가 최씨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그는 최씨 친구에게 연락해 “둘째 출산 비용이 부족하다”며 600만원을 빌렸고 “아내가 유산했다”며 다시 500만원을 빌렸다. 

사람들은 최씨의 남편이니까, 최씨가 힘든 상황이니까, 최씨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대출까지 
고스란히

강씨는 최씨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자동차를 사거나 렌트했는데 명의는 당연히 최씨였다. 자동차 렌털숍에 가서 “아내가 탈 것”이라며 최씨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구매한 차량이 외제차 아우디와 국내 중형차인 그랜저였다. 

강씨는 이 차량 두 대를 빌려 일주일만 돈을 냈고, 나머지는 모두 체납했다. 체납 고지서는 모두 최씨에게 날라왔다. 현금으로 K7도 샀다. K7을 살 현금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최씨 이름으로 대출을 3000만원 냈고 갚지 않았다. 강씨는 K7을 대포차로 팔았지만 과태료는 최씨 앞으로 날라오고 있다.

강씨의 사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평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할 일이 많아 사업자등록을 했다. 이때 최씨는 기존에 쓰던 컴퓨터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했다. 강씨는 최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는데, 이 금액이 얼마인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연금·건강보험을 이용한 대출 2000만원, 사채를 받으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최씨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딸이 신체포기각서 쓴 것을 알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사채업자가 집에 찾아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한 적도 있다.

최씨의 지인 역시 강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전부 강씨의 아내인 최씨를 신뢰하고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지인 4명에게 친 사기로 피해 금액은 1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강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더 황당한 것은 컴퓨터에 저장돼있던 파일들이다. 강씨는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사람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놨다. 그중에서 빨간 줄이 그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사기 치려고 했을 때 실패했던 사람들이었다. 뚜렷하게 사기 친 흔적이 드러난 문서가 있는가 하면,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문서도 있었다. 

“아내가 쓸 거”라면 전부 “OK”
‘혼인 과정 중’이라 발만 동동

강씨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협동조합에 가입시켰다. 그 문서에는 아이가 갖고 있는 보유 금액으로 215억원과 878만원이 적혀 두 개로 나눠져 있었다. 또 상속 진행 및 출금화 완료 예정일도 결정돼있었다.

최씨가 알지 못했던 아이의 국민은행 통장도 있었다. 이 통장에는 6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 있었다. 부동산 영수증도 있었다. 역시 아이 이름으로 2억7000만원 가량의 부동산 영수증이었다.

최씨 이름으로 피감자 원산지 확인 증명서, 한 번도 입원한 적 없는 삼성병원 입원 확인서 등의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최씨 지인은 최씨에게 “강씨가 아이 통장에 이 정도 돈이 들어있다거나, 최씨가 피감자를 판매했다는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빌렸을 확률이 높다”며 “나도 이런 영수증을 보여줘서 돈을 빌려줬는데, 문서는 조작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최씨는 강씨와 혼인무효소송을 했고, 혼인이 취소됐다. 그는 강씨를 상대로 ▲금전적 사기 ▲문서위조 ▲상간녀로 총 3건의 고소를 했다. 그러나 이 중 2건은 ‘친족상도례’로 인해 고소 건은 취소됐다. 

최씨는 <일요시사>에 “전 남편은 나와 결혼한 기간 동안 나를 중심으로 뻗어나가 사기를 쳤다. 결혼 자체도 사기였는데 혼인 중이었다는 이유로 고소가 취소된 건 말이 안 된다”며 “미혼모 모임에 나가 보면 친족상도례로 피해본 사람이 많다. 일부러 이 제도를 노리고 결혼한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고 억울해했다.

친족상도례 관련 전문가는 “이 법은 1953년 형법과 함께 제정됐다. 과거 농경시대와 대가족제도를 배경으로 면책 범위를 넉넉히 준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가족이나 친족 내 큰 어른에게 갈등을 중재할 권위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대가족은 해체됐고 가족의 개념과 형태는 크게 달라졌다”고 짚었다.

취소된 고소
범죄 면죄부

이 전문가는 “그런데도 1항은 2005년, 2항은 1995년에 개정된 게 마지막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해야 할 형법이 악질적 범죄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라며 “자녀가 노부모 재산을 절도하거나 횡령하고, 부모를 상대로 사기 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우자 몰래 이혼을 계획하고 배우자 재산까지 빼돌리거나 훔쳐 다른 가정을 꾸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장애가 있는 친족을 착취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조언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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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