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갈’ 이재명 순장조 리스트

당권 잡자마자 싹 다 묻힐 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고대에는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아내나 신하 등을 함께 매장하던 장례 풍속이있었다. 이를 ‘순장’이라 부르는데, 간혹 자진해서 죽거나 강제로 땅에 묻는 경우가 있었고, 보통 죽여서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순장조’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직접 순장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에 실시된 ‘2022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치열했던 민주당의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선거 후 승복’이라는 민주당 최대의 기치 아래 민주당 의원들은 대동단결했고, 모든 계파가 이재명 대표를 축하해주며 원팀임을 보여줬다.

자의 반 
타의 반

그러나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자 가라앉아있던 갈등이 수면 위로 다시금 떠오르는 모양새다. 전당대회 당시 민주당의 계파 갈등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신흥 세력인 친명(친 이재명)계를 견제하기 위해 친문(친 문재인), 친낙(친 이낙연)계, 친정(친 정세균)계 등은 합심해 대치 전선을 구축했고, 전대 전략을 함께 짜는 비명(비 이재명)계로 이합집산했다. 

전당대회 초반 무렵엔 불출마 카드를 들고 나와 친명계를 압박했고, 중후반 무렵엔 97 그룹을 필두로 내세운 ‘세대교체론’을 승부수로 띄웠다.

그러나 각종 선거전략에도 불구하고 비명계는 친명계의 압도적인 승리를 막아낼 수 없었다. 이 대표가 77%의 득표율로 당 대표에 당선됐고, 수석 최고위원에는 대표적 친명계인 정청래 의원이 당선됐다. 남은 선출직 최고위원 자리도 장경태, 박찬대, 서영교 의원이 한 자리씩 차지해 친명계가 과반을 이뤘다. 


여기에 원내대표로 일찌감치 선출된 박홍근 의원까지 합세하며 비로소 ‘친명 지도부’는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이 대표는 전대 직후,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해 계파를 모두 아우르는 대표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비명계도 새 지도부의 출범을 축하해줬다.

이처럼 비명계가 울며 겨자 먹기로 잠시 ‘덮어뒀던’ 계파 갈등이 요즘 검찰의 수사로 다시 부상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이 대표에게 조여가자 비명계 의원이 하나둘 이 대표를 민주당에서 내쫓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현재 말 그대로 양팔이 다 잘려나간 상태다.

그가 직접 언급했던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김 전 부원장은 지난 8일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측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부원장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대장동 일당으로 불리는 정민용 변호사, 남욱 변호사, 김만배씨 등과 유착관계를 맺어왔으며, 이 과정에서 금품을 받고 사업상 특혜를 줬다. 특히, 지난해 대선 경선 과정에서는 대선자금 20억을 대장동 일당에게 공공연하게 요구했으며, 그중 8억4700만원을 총 4차례에 걸쳐 받았다.

정 실장도 김 전 부원장의 사례와 유사하다. 검찰은 그가 대장동 일당과 유착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고, 총 1억4000만원의 뇌물수수와 428억원 상당의 대장동 개발 이익금을 공유받기로 약속했다고 보고 있다. 법원은 이런 검찰 측의 의심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며 구속 수사를 승인해줬다.


가라앉은 계파 갈등, 검 들쑤시는 형국
정진상·김용 구속…이 대표도 초읽기?

이 대표의 양팔이 떨어져 나간 것에 이어 몇 안 되는 친명계 중진 의원도 검찰 측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4선의 노웅래 의원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수천만원대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6일과 18일 노 의원의 국회 사무실과 자택을 차례로 압수수색하고, 지난 24일에는 국회 본관을 추가로 조사했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국회 본관에서 컴퓨터 자료가 담긴 서버를 확보해 이메일 등 뇌물 수수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중이라고 취재진에게 전했다.

검찰 측은 노 의원이 박씨로부터 뇌물을 받고 2020년 2월~12월 물류센터 인허가, 발전소 납품, 폐선로 부지 옆 태양광 설비 설치 등 사업 관련 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으며 노 의원 자택에서 발견한 현금 다발을 그 증거물로 파악하고 있다.

노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해보이는 가운데 검찰은 압수한 증거물들을 토대로 협의 입증에 자신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 전 부원장과 정 실장, 노 의원까지 검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와 가깝다고 여겨지던 민주당 인사들이 하나 둘 정치적 종말을 맞이하면서 이 대표의 리더십마저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지만, 민주당 내부 분위기는 ‘이 대표를 버리자’는 쪽으로 급격히 쏠려가고 있다”며 “지금 비명계를 제외한 친명계 인사들만 (이 대표를)비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저들도 곧 힘이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전방위적인 검찰 수사에 의원들이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 이들(친명계 의원)이 ‘민주당 지키기’에 힘을 쏟고 있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이 대표를 내치자는 의견이 점점 힘을 받고 있고, 그 시기에 대한 의견만 다를 뿐이지 기본 방향에 대한 이견은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한 의견은 대동소이하다. 크게 다른 점이라면 그 시기”라며 “현재 비명계는 ‘봄꽃’파와 ‘첫눈’파로 나뉘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첫눈파에 속한 의원들은 비교적 강성 친문과 정세균계로, 하루빨리 이 대표를 내치자는 쪽에 의견을 쏟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됐다고…
울며 겨자 먹기

이들은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이미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첫눈이 올 때쯤 이 대표를 버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통 첫눈이 연내에 내리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 대표의 퇴진이 올해 안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반면 ‘봄꽃’파는 내년 초쯤을 이 대표의 퇴진 시기로 보고 있다. 중도파와 일부 친명계 의원들로 이뤄져 있는 봄꽃파는 아직 이 대표를 버릴 때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검찰 수사를 조금 더 지켜보고 난 후 내년 초쯤 이 대표의 퇴진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대표와 함께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게 봄꽃파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비명계는 민주당에서 이 대표를 끝까지 지키자는 주장을 일부 친명계에서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검찰 수사가 결국 이 대표를 향하게 될 것이고 지난 대선에서부터 많은 상처를 입은 민주당이 이 대표의 구속까지 끌어안을 수 없다는 분석 아래서다.

첫눈이 올 즈음이든, 봄꽃이 필 즈음이든 이 대표를 향한 민주당 내부의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탐탁지 않았던 새 지도부에 ‘사법 리스크’라는 핑계가 생기니 민주당 의원들이 빠른 속도로 이 대표 곁을 떠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에 오래 몸담고 있었던 한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이 대표의 경험 부족을 꼽았다. 

그는 “여러 번 당 대표를 지내봤는데 이 대표는 유독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전당대회 이후 모든 계파를 아우르겠다던 그는 계파 통합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무소불위
100일천하


그가 지적하는 것은 이 대표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최측근들과만 소통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도부 회의나 다른 계파 의원들과의 소통을 배제한 채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어온 본인의 보좌진과 일부 친명계 의원들과만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의 당선 이후 꾸준히 배제돼왔으며,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대표와의 신뢰 관계는 무너져갔다고 밝히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불통을 느껴온 민주당 의원들은 당 대표가 된 후에는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이 대표에게 변화를)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뭐 하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때 느낀 배신감이 지금 비명계 의원들이 이 대표 측에 대한 검찰 수사를 대하는 태도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태도는 최근 이어진 민주당 인사들의 ‘불편한’ 의견이다.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동규의 오염된 진술에 의존할 뿐 물증이 없다고 우리 당에서는 항변해 왔는데, 어쨌든 법관 앞에서 8시간 넘게 정말 치열한 영장심사를 거쳐서 영장이 발부됐다”며 “구속영장 발부의 전제조건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소명이 됐다고 일단 전제를 한다면, 사실 상당히 공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정 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입증받았고, 당도 더 이상 이 대표 측 사법 리스크를 ‘당 차원에서’ 방어하기엔 무리라는 의견으로 해석된다. 

박용진 의원도 “유죄인지 무죄인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이 일과 관련해서 당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김 전 부원장이 기소됐으니까 당헌 80조 적용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야 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꿈틀대는 ‘봄꽃파’와 ‘첫눈파’
강성 처럼회, 지도부 함께 엮이나

그가 말한 당헌 80조는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검찰 기소 시 바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한다는 내용의 당규다. 즉, 박 의원은 김 전 부원장과 정 실장이 기소됐으니 당 차원에서 당무 정지 및 징계 주장을 한 것이다. 

조 의원과 박 의원처럼 쓴소리를 잘하는 현역 의원들이 슬슬 이 대표에 대한 비판에 시동을 거는 가운데, 비명계 내부에서는 아예 ‘순장조’에 대한 이야기까지 맴도는 중이다.

지도부에 친명계가 들어선 후, 불통 문제를 심하게 겪었던 일부 의원들은 그 앙금이 아직 남아 있다고 했다. 이들은 “만일 이 대표의 퇴진이 이뤄진다면 민주당에 남아 있지 못할 사람들이 더 있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즉 이 대표와 함께 땅에 묻혀야 하는 순장조가 지금 민주당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순장조’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비리 의혹에 연루돼 이미 구속 수감된 김 전 부원장과 정 실장, 그리고 이 대표와 정치적 뜻을 함께한 강성 처럼회 의원들, 현재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의원들이 포함된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친명 지도부가 출범한 이후, 무소불위를 휘둘렀던 몇몇 이를 민주당 인사들이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이름을 다 거론하긴 그렇지만 현재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면면을 보면 누군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통의 원인이 이 대표에게도 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측근들의 권력욕과 아첨도 한 몫했다고 했다. 또 만일 당권이 친명에서 비명으로 넘어갈 경우,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 중 몇몇은 민주당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순장조 리스트가 곧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 대표를 끝까지 지키려는 의리도 중요하겠지만, 본인의 실리를 잃으면서까지 그러는(이 대표를 비호) 것을 보면 ‘저 사람이 리스트에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비명계도
갈리는 노선

정 실장과 김 전 부원장, 강성 처럼회 초선 의원들, 그리고 현재 이 대표와 함께 주요 의사결정 회의를 진행하는 지도부원들이 순장조 리스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퇴진이 지금 당장 이뤄진다면, 전당대회 이후 이어졌던 현 민주당 지도부의 무소불위 권력 역사는 ‘100일 천하’로 끝나게 될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이낙연 조귀 귀국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조기 퇴진설이 점차 퍼지자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조기 귀국설도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중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끝난 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 전 총리는 현재 워싱턴주에 거주하며 현지 교민들과 활발한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워싱턴 교민들을 상대로하는 강연에 자주 나가며 워싱턴 특파원들, 그리고 한국 지지자들과의 줌미팅도 수시로 하고 있다.

이달 셋째 주, 민주당에서는 몇몇 의원이 이 전 총리를 만나러 미국에 간다는 루머가 퍼졌다.

실제로 설훈, 이병훈, 윤영찬 의원 등 친문 의원 여러 명이 거론됐으며 민주당 출입기자들은 해당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의원실 관계자들에게 수차례 전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소문은 이내 가짜로 밝혀졌다.

윤영찬 의원실은 긴급 문자를 돌려 “설훈, 이병훈 의원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다는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낙연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단체로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으며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 전 총리의 조기 귀국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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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