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이기흥 기막힌 우연, 왜?

손바닥으로 통하는 대통령과 회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큰 논란 없이 윤석열정부 첫 국정감사를 마무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FC 후원 의혹’과 체육회 운영 전반에 대해 여야의 질타가 쏟아졌으나 무난하게 매듭을 지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체육계에서 거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체육 외에도 자신의 종교인 불교에도 관심이 깊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을 지냈을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도 공식적이진 않지만 독실한 불자로 알려져 있다. 김건희 여사와의 연을 맺어줬다는 ‘무정 스님’의 존재만으로도 그가 불교에 관심이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정관계
마당발

이 때문에 역대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 회장과 윤석열정부 간 불협화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요시사>는 이 회장과 윤 대통령 및 현 정부와의 닮은꼴을 알아봤다.

이 회장은 체육계에서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한다. 문재인정부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추가 문제를 논의했을 때 ‘현재 2명인 한국의 IOC 위원(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승민 IOC 선수위원) 수를 한국의 국제스포츠 기여도에 맞게 3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한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

당시 바흐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IOC 내부 절차를 따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는 2017년 6월8일 이사회를 열고 이 회장에게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자격과 IOC 위원 후보 추천을 위임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해 8월 IOC로부터 위원 추천을 받지 못했다. 셀프 추천 논란에 대해 이 회장은 “사실은 많은 사람과 의논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등 절차를 다 거쳤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회장이 문재인정부 출범에 기여한 인물로 꼽혀 IOC 위원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이 회장과 문정부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윤, 대선 경선 과정 왼손 ‘왕(王)’자 논란
이, 2018년 국감 당시 비슷한 문양 포착

2017년 3월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2000여명의 체육인이 결집하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그 자리에는 문재인 캠프에서 문화예술교육특보단장로를 역임한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도 있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수년간 활동한 도 전 장관은 대선 유세 기간 중인 같은 해 4월 대전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및 시·도(시·군·구)체육회 임직원 워크숍에도 참석해 체육정책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인맥은 정치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과거 야당 총재 비서관과 사업가로 활동한 덕에 법조계와 재계에도 이 회장과 친분이 깊은 사람이 즐비하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과거부터 무속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인위적으로 하얀색 눈썹을 붙였다거나 왼손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일부러 새기고 토론회에 나왔다는 주장이 상당했다.

윤 대통령의 임금 왕자는 지난해 9월26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왕자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게 보였던 만큼 누군가 매번 새로 써줘 주술적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원조 왕자’
빨간색으로

당시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주술에 의존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다. 윤석열 캠프 측은 홍 시장의 비판에 대해 “주술적 의미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6차 토론회에도 누가 써주면 그대로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무속 논란은 건진법사 전모씨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직속 네트워크본부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당시 선거대책위원회는 “전씨가 고문으로 활동한 사실이 없다”며 네트워크본부 자체를 해산했다.

논란의 불씨를 꺼버린 것이지만 윤 대통령을 견제하는 언론과 정치권 입장에서는 사실상 증거를 인멸했다고 볼 수 있다.

‘손바닥 왕 자’는 윤 대통령보다 이 회장이 앞섰다. 2018년 10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앞서 선서 중인 이 회장의 <뉴스1> 사진을 보면 윤 대통령과는 다른 오른속에 왕 자로 보이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가 이 회장의 손금을 봐준 것으로 추정된다. 무속에서 손바닥에 왕자를 쓰는 것은 언변이 부족하거나 가기 싫은 자리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조계종 부설 사단법인인 날마다좋은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원혼과 일제강점 이래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쓰러진 넋들을 기리기 위해 2014년 8월 공연을 열기도 했다. 넋전이란 사람의 넋을 모양내 오린 종이로, 불교의 제사의식에서 유래돼 민간 제사의식에까지 널리 퍼진 전통문화의 하나다.

현재는 사찰에서 행해지는 백중행사 등에 흔적이 남아 있고 무속신앙에 쓰이고 있다.

이른바 이 회장의 무속 의혹은 윤 대통령의 의혹과는 본질이 다르다. 또 윤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회장이 무속에 관심이 깊은 정황이 포착되거나 언급된 적도 없다.

“주술 아니다”
“기운” 해석도


윤 대통령은 불교계 인연이 각별하다. 검찰총장이 되기 전인 2019년 7월까지 김 여사와의 연을 맺게 해준 ‘무정 스님’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고 불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윤 대통령과 불교의 첫 인연은 1980년대 초 윤 대통령이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법대에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이 열렸다. 검사 역할을 맡은 윤 대통령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후 외갓집이 있는 강원도 강릉으로 피신한 윤 대통령은 중광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중광 스님은 윤 대통령에게 멘토 역할을 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중관 스님을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처음 만났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관계 확인은 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불교는 종교를 넘어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 자체로, 불교 문화재의 원형 보존 및 훼손 방지는 선택이 아닌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하며 불교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과거 내세웠던 불교 공약은 ▲전통사찰 보존 ▲전통문화유산 보존 ▲국립공원 제도 개선 ▲공공기관 종교 편향 근절 등 4개 분야로 나눠 각각의 방안을 마련했다.

윤 대통령은 불교 공약 외에도 지난 1월 열린 불교리더스포럼 5기 출범식에 참석하는 등 불심 잡기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불교리더스포럼은 이 회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곳으로 불교지도자 네트워크로 알려진 단체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상임대표로 위촉됐고 15명의 공동대표로는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육현표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김민배 TV조선 대표 ▲차승재 동국대 교수 ▲최영현 한국복지대학교 특임교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 ▲손창동 공무원불자연합회장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회장 ▲최현국 공군 예비역 중장 ▲고유환 동국대 교수 ▲정연만 전 환경부 차관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 각 사회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있다.


조카 대통령실 근무 확인…소통창구 역할?
아주 특별한 인연…닮은꼴 불교 행보 눈길

윤정부와 불교계의 교감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 회장의 조카인 이강래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은 강승규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지난달 제37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진우 스님을 예방했다.

앞서 이 선임행정관은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행정사 자격증을 갖춘 행정 전문가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로 강의했고 UC 버클리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정책사례·실무연구이사(위원장),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운영실무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기도 했다.

특히 국회와 청와대에서 10여년간 정부 정책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명박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 의전관(행정관)으로 G20 서울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를 기획·총괄하고 홍보기획팀장(선임행정관)으로서 대통령의 이미지(PI) 관리와 다양한 정책 행보를 기획했다.

재직 중에는 ‘정책제안 우수자’로 선정되어 대통령실장 표창(장관급)을 받기도 했다.

이 선임행정관과 강 수석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윤 대통령의 축하 난을 진우 스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같은 달 이진복 정무수석은 대통령실불자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수석은 취임사로 “국익과 국민을 위한 국정 운영이 마치 부처님의 말씀처럼 노력을 통한 공덕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며 “공덕의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직면할 수 있겠지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정각회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국회 정각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신심과 책임감을 인정받은 이진복 정무수석이 회장을 맡게 돼 든든하다”며 “불교계 현안 해결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회 정각회장 소임을 맡게 된 만큼, 대불회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불교계의 숙원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독실한 불자?
교감 공통점

이 회장은 “세대, 지역, 종교 등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현상을 극복하고 지혜롭게 해결해나가기 위한 노력에 대통령실불자회가 앞장서 달라”며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말고 수행을 위해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는 태고보우 스님의 말씀처럼 행동 하나가 모두 국민과 함께하는 수행이라고 여기고 굳건한 사명감으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민석 VS 이기흥,  체육계 진짜 실세는?

체육 행정을 총괄하는 사람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하지만 체육계 인사들은 보통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진짜 실세라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은 관계는 친분이 있다기보다는 앙숙에 가깝다. 실제 서로가 비난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공개됐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파문이 터졌을 당시 안 의원은 한 방송사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이 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안 의원은 “이 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면 된다. 그러면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며 KOC 분리를 주장했다.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장과 KOC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사퇴하지 않았고 KOC 분리에 대해서도 “이런 상태에서 KOC 분리라니 지금 앞뒤가 안 맞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라며 반발했다.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당선됐을 때도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나타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체육계 주요 인사가 대거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안 의원은 IOC 위원 선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대학 교수 출신이다.

생활체육과 학교체육을 강조하고 KOC 분리를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로 알려진다.

반면 이 회장은 대한카누연맹, 대한수영연맹을 이끈 뒤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거쳐 2016년 10월 통합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입지전적 인물로 안 의원과는 기반이 대조적이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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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