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총수의 법정 구속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중형이 선고된 이상 조속한 경영 복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자 후계자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경영 능력 입증과 경영권 승계라는 두 가지 시험대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다.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 지원하고 30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1심 재판부가 중형을 내렸다.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조용래 부장판사)는 공정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예상 못 한
중형 선고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박 전 회장은 실형이 선고됨에 따라 법정에서 구속됐다. 박 전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그룹 경영전략실 전 실장·상무 등 전직 임원 3명에게도 재판부는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3∼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금호산업 법인에는 벌금 2억원이 확정됐다.
앞서 박 전 회장 등은 그룹 재건과 경영권 회복을 위해 계열사를 동원,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금호고속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회장 등이 무리하게 지배력을 확장하려다가 부실 우려를 불러왔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박 전 회장이 2015년 12월 금호터미널 등 계열사 4곳의 자금 3300억원을 인출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산업 주식 인수 대금에 쓴 혐의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박 전 회장에게 내려진 징역 10년은 재벌 총수의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 중 비교적 높은 축이다. 이보다 높은 처벌을 받은 재벌 총수는 징역 15년이 확정됐던 한보사태의 정태수 전 회장 등 소수에 국한된다.
총수의 구속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또 한 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노출됐음을 의미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재계 순위를 7위까지 끌어올렸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자금난에 빠지면서 대우건설을 되팔아야 했다.
이후 주력 계열사를 줄줄이 팔아치웠고, 금호석유화학의 계열분리를 거치며 사세가 더욱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재계 순위는 26위로, 전년 대비 4계단 하락했다.
일단 박 전 회장 측은 판결에 불복한 상태다. 지난 23일 박 전 회장의 변호인은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조용래)에 전날 항소장을 제출했고, 함께 기소된 전직 임원 3명과 금호건설 역시 함께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2심에서도 1심과 엇비슷한 형량이 확정될 경우 박 전 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는 더욱 요원해진다. 올해로 78세인 박 전 회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출소하게 된다. 앞서 박 전 회장은 2019년 3월 그룹 경영 위기와 관련,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놨고, 금호산업은 주총 의결 안건으로 상정됐던 박 전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의안을 철회한 바 있다.
요원해진 오너 복귀 시나리오
물음표 앞에 노출된 장남
이런 이유로 최근 재계에서는 박세창 금호건설 사장의 전면 재배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의 장남인 박 사장은 연세대학교 생물학 학사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마친 후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 차장으로 입사했다.
2005년 금호타이어로 옮겨 경영기획팀, 한국영업본부, 영업총괄, 기획관리총괄 등을 역임했다. 이듬해 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핵심사업을 관리하는 전략경영실 사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아시아나세이버 대표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재계에서는 아시아나IDT 사장에 부임한 직후부터 박 사장을 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분류했다. 실제로 박 사장은 이 시기에 ‘4차 산업 사회 기반구축을 통한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 및 미래전략 수립’ 등의 프로젝트를 지휘하면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박 사장은 지난해부터 금호건설에 몸담고 있다. 현재 미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상태고, 실질적인 금호건설 경영은 서재환 대표가 맡고 있다.
보폭 넓히는
금호 후계자
다만 박 사장을 축으로 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완료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주사격인 금호고속에 대한 박 사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게 걸림돌이다.
금호고속은 핵심 캐시카우인 금호건설을 지배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 박 전 회장 일가는 금호고속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력을 통해 나머지 그룹 계열사를 관장한다. 박 사장이 금호그룹 총수로 올라서기 위해선 결국 금호고속의 최대주주로 올라서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박 전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9명의 지분율은 95.85%에 달한다. 이 가운데 최대주주인 박 전 회장의 개인 지분율은 40%대인 반면 박 사장의 지분율은 20%대 후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이 금호고속 최대주주로 올라서려면 박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흡수해야 한다. 금호고속이 비상장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 전 회장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속 혹은 증여에 필요한 자금의 규모가 달라진다.
일단 금호고속 순자산 가치에 근거하면, 박 사장이 박 전 회장이 보유한 금호고속 주식을 전부 매입하는 데 1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2020년 말 감사보고서에 공시된 순자산 가치에 적용하면 박 전 회장이 보유한 금호고속 주식은 약 1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무렵 금호고속 기업가치(3970억원)에서 박 전 회장의 지분율을 계산한 수치다.
현행법상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하는 주식 상속·증여의 경우 법정 최고세율인 50%가 적용된다. 경영권 승계가 수반되는 대주주 지분일 경우 여기에 20% 할증이 적용돼 실질세율은 60%다.
펼쳐진
가시밭길
그나마 박 전 회장이 보유한 금호고속 주식을 모두 넘겨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박 사장은 이미 3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 중이기 때문에 박 전 회장의 주식 가운데 15%가량만 흡수해도 지배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