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민주당 몽니 막전막후

다짜고짜 정부 괴롭히기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지난 대통령선거 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권력은 막강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권력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었던 이들은 지난 5년간 국정운영을 마음대로 휘둘러왔다. 그랬던 민주당이 세 번의 선거 패배 후 조급해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민주당표 ‘꼬장쇼’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명분 없는 꼬장에 민주당은 스스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가혹하게 심판했다. 여당이었던 민주당을 야당으로 돌려놨고, 지방자치단체장을 꿰차고 있던 민주당 정치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5년간 입법부, 행정부, 지방권력까지 차지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민주당은 선거 패배 후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민주당을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반성했다. 

당내 전쟁
당외 꼬장

그러나 패배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민주당의 반성은 아직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당내에서는 계파 간 이권 다툼이 한창이고, 당외에서는 관례를 어기면서까지 국민의힘(국힘)과 윤석열 대통령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 시작은 ‘검수완박’이라 불리는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강행 처리였다.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4월 말, 검찰의 대대적인 개혁을 골자로 하는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할 뜻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 취임 전에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무마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 조치였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이었던 민형배 의원을 ‘꼼수 탈당’시키는 등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빠르게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꼼수 탈당’이 아니라며 해명했던 민 의원은 최근 민주당에 복당계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지방선거에서 표로 다시 한 번 민주당을 심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충청도와 강원도 같은 정치색이 짙지 않은 지역의 ‘도지사’ 자리는 물론,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자리도 대부분을 국힘에 내줬다.

지난 2018년 동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4석, 기초단체장 151석을 획득한 민주당은 2022년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5석, 기초단체장 63석만 획득하는 데 그쳤다. 4년 후, 약 100석 가까운 자리를 잃은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계 전문가들은 국민이 민주당을 ‘심판’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탄핵 정국 이후로 권력을 몰아줬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정치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총평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심판을 민주당은 다르게 해석한 것일까. 요즘 민주당은 반성은커녕 검수완박 때와 비슷한 몽니를 계속 부리고 있다. 아직 빼앗기지 않은 입법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국힘과 행정부를 지속 견제하겠다는 속내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시행령 통제법’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4일 윤석열정부의 시행령 제정 등을 견제하는 ‘시행령 통제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에는 강준현·김영진·김종민·박상혁·박용진·송갑석·신현영·위성곤·이소영·이용우·이원욱·장철민·전용기 등 총 13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 의원은 발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행법에 따라 정부부처에 시정을 요구하곤 했지만, 한 번도 바로잡는 것을 못 봤다”며 “틈틈이 확인해봤지만 항상 그대로 돼있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가 말하는 국회와 정부 간 시행령 갈등은 국내 법체계에서 비롯된다. 현재 한국의 법체계는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조례 등 총 5개의 조항으로 구성된다. 법안의 통제력은 나열한 순서대로 강하다. 헌법이 가장 강한 강제성을 갖고, 그 다음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 순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위법이 상위법 안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률은 헌법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제정돼야 하고, 시행령은 법률의 테두리 안에 속해야 한다. 시행규칙과 조례도 시행령 안에 속해야만 한다. 

‘검수완박’에 이은 ‘정부완박’ 강행
견제는 해야 하는데…의도가 수상

헌법은 국민투표로만 수정·심의할 수 있고, 법률은 국회에서 소관한다. 시행령·규칙, 조례 등은 대통령과 각 부처가 소관하는데 갈등은 법 조항마다 주체가 다른 점에서 불거진다.

법률은 국회가 제정하고, 시행령은 행정부가 제정하다 보니 각기 다른 의도로 법률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다. 

그간 몇몇 대통령은 본인의 정치적 뜻을 이루기 위해 법안을 유리하게 해석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오역’해 법률 자체를 비틀어버리기도 했다. 이는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정권에서 있었던 관행이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시도였다. 2009년 이명박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 바 있다. 당시 개정안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4대강 사업의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했다.

4대강 사업은 본래 대운하 사업이었다. 대운하 사업은 대한민국의 네 개의 강,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유역을 재정비해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사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추진했던 공약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륙 수운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운하 사업 현실화에 돌입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매우 거셌다.

대운하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사업 타당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인 당시 야당에서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며 맞섰고, 각종 견제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대운하 사업을 가로막았다.


당시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정국을 경험하며 힘이 빠져있었던 이 전 대통령은 결국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고 ‘4대강 되살리기’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여야는 해당 공약에 합의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사업 예산이 나오자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주체 다른
법안 보니…

진보진영에서는 예산 낭비와 실효성 없는 공사를 이유로 사업에 다시 반대했고, 몇몇 정치인들은 4대강 사업이 결국 대운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난관에 부딪힌 이명박정부는 국회에서 ‘예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대형 국책사업을 사전에 검증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예타’ 조사는 1999년 김대중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IMF 외환위기로 국고가 바닥을 치자, 예산 사용에 더욱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서다.

도입 취지에 맞게 예타 통과는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예타가 진행되면 정부는 국회에 재정 투자의 효율성과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을 상세히 소명해야 한다. 국가재정법 제38조와 동법 시행령 13조를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이명박정부가 생각해낸 것이 13조의 수정이다. 시행령 수정을 통해 ‘예타 면제 대상’에 4대강 사업을 추가한 것이다. 


당시 법률 제38조에 따르면 면제 대상은 ‘공공시설·문화재·국가안보·남북경제협력·재난예방·지역균형 발전 사업’으로 국한돼있었다. 이명박정부는 제13조 2항에 5개 사유를 수정·추가했다.

그중 이명박정부의 의도가 엿보인 것은 2항 6호다. 이명박정부는 ‘재해복구 지원’이란 항목을 ‘재해 예방·복구 지원’으로 수정했다. 당시 4대강 사업은 ‘4대강 되살리기 사업’이라 포장되어있었기 때문에 수정된 항목에 포함됐다.

9호에는 ‘지역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항목을 추가했다. 개정된 시행령을 통해 4대강 전체 사업 총예산 22조원중 10%가량은 예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문재인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시행령 정치’는 반복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부동산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임기 내내 부동산 투기꾼들과 싸움을 진행해왔다. 임기 내에 부동산 관련 정책만 수십개를 쏟아냈을 정도로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주로 사용했던 수단이 시행령 개정이었다. 

문정부에서 추진했던 몇몇 정책은 법률과 대치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때마다 법률을 수정·추가하는 일이 불가능하니 시행령을 고친 것이다. 예를 들어 양도세를 올리기 위해 이를 규정하는 ‘소득세법’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시행령에서 비과세·감면 등을 세부조항을 건드려 정책을 완성시켰다.

문정부는 주택 보유·거주기간, 조정 대상 지역 여부 등을 비틀어 집값 규제에 나섰다. 해당 법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은 그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조용하다 
이제 와서…

2018년 말 개정한 최저임금법 시행령도 대표적인 ‘시행령 정치’다. 문정부는 2018년 말 최저임금을 대폭 상승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때 정부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실제 근로하지 않는 시간(주휴 시간)을 시행령을 통해 포함시켰다.

법률에 부가적인 시행령을 하나 추가한 것일 뿐이지만, 주휴 시간 추가는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어 돌아왔다. 시행령의 근간이 되는 법률을 비틀어버린 셈이다.

최저시급뿐 아니라 코로나에 따른 소상공인 손실보상 또한 시행령으로 그때그때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 없던 코로나 피해이기에 이미 만들어져있던 법률안에는 다양한 사례가 담기지 못했다. 문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손실 대상과 액수 등을 책정해 공포했다.

사실 시행령 정치를 예방하자는 시도는 여러 모로 명분을 갖는다. 그동안 법률을 비틀 정도로 수정된 시행령으로 국민들이 숱하게 혼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최근 주장하는 ‘시행령 통제법’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검수완박’ 때와 마찬가지로 입법 의도가 다분히 불순해 보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 4월 임기가 시작된 제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차지한 채 출발했다. 6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입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시행령 통제법에 대한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민주당이 요구하고 유승민 전 국힘 의원이 주도한 시행령 통제법과 2019년 자유한국당이 추진한 ‘국회패싱금지법’이 마지막 논의였다.

뒤늦은 시행령 통제법 발의가 정권을 빼앗긴 거대 ‘야당’이 행정부의 권한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입법 권력만 남은 민주당의 ‘몽니’가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저런 명분을 갖다 붙이며 윤정부와 국힘의 힘을 빼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이 주장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 ‘법사위원장 파동’이다.

법률 위 시행령? 대통령 입맛대로
진보·보수 같은 ‘시행령 정치’

국회의 임기는 2년을 주기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제21대 국회의 후반기는 지난 6월 초부터였다. 그동안 국회는 주기가 바뀔 때마다 국회는 원구성을 달리해왔다. 각 상임위의 위원장과 국회의장 등을 새로 뽑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달 초에 진행됐어야 할 후반기 원구성이 한 달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서부터다.

보통 국회는 후반기 원구성을 출범시키기 전에 위원장자리를 어떻게 할지 미리 합의한다. 여야는 그동안 미리 합의한 바대로 원구성을 완성해왔으며, 후반기 들어서자마자 이를 곧바로 이행해 ‘권력 공백’을 최소화시켰다.

이번 제21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민주당과 국힘은 당시 민주당이 독식하고 있던 18개의 상임위원장을 11대7로 재분배하기로 합의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또한 법사위 기능을 체계·자구 심사에 국한하는 조건으로 후반기에는 국힘 측에서 맡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바뀌며 해당 합의안에 대한 정당별 해석이 180도 달라졌다. 국힘은 당시 합의한 대로 법사위원장을 가져오겠다고 해석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제 야당이 되었으니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된 민주당이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법사위원회는 상임위를 통과한 모든 법안을 마지막으로 심사해 본회의로 넘기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사위원장의 권한은 빛을 발한다. 위원장 입맛에 따라 법안 처리 속도를 가속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폐기할 권한도 갖는 것이다.

법사위원장이 입법부의 ‘게이트 키퍼’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률 제정을 주 업무로 삼는 국회 입장에서 법사위원장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만큼 지난 20년간 법사위원장 자리는 여당과 야당이 고루 차지해왔다. 18·19·20대 국회까지 1·2당이 법사위원장을 전반기 후반기에 나눠맡는 모양새가 유지돼왔다. 이 관례를 민주당이 깨려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응당 야당이 해야 하는 임무다. 독재 권력은 늘상 부패하기 마련이기에, 헌정 역사에서 야당은 끊임없이 여당을 견제했고 국민들을 부패 정치로부터 보호해왔다. 그러나 이런 견제 또한 마땅한 명분과 여론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민주당이 부리고 있는 ‘몽니’는 여러모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을 뿐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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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