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 김건희 수사 맹탕 현주소

안 했나? 못 했나?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동안 멈춰있던 대장동, 기획사정, 월성 원전 의혹 등 문재인정부 사건들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일가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이례적’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는 대표적인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허위 학력·경력 ▲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공모 등이다. 검찰과 경찰은 해당 의혹들을 수년간 수사하면서 김 여사를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받는 모든 의혹이 무혐의 처분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피의자 신분
봐주기 수순?

송경호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조만간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검사 조주연)는 지난 1월 말부터 윤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었다. 당시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하자고 했으나 결과를 보고받은 김태훈 4차장 검사가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반대해 결정이 보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전문 시세 조종꾼(주가조작 선수) 이모씨, 투자자문사와 증권사 전·현직 직원 등 8명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09년 12월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간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이용해 가장·통정매매, 고가·허위 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 7804회를 제출해 1661만주(654억원 상당)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여사는 이 기간 도이치모터스 주식 146만주, 50억원어치를 거래했다.

검찰은 이후 전체 이상 거래내역을 담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했고 이 가운데 김 여사가 DS·대신·미래에셋 등 증권사 계좌를 통해 수십차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기록도 포함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 여사가 사건에 깊게 연루된 정황이 짙어졌음에도 소환조사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이치 주가조작
허위 학력·경력

잔고증명서 위조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김씨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정하지 못해 섣불리 소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김씨는 투자자가 아닌 ‘전주’로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영부인이 된 만큼 정치적 부담감이 대선 때보다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특수통 출신의 변호사도 “시세조종에 대한 혐의가 구체화되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것”이라며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무혐의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사팀은 김 여사를 주가조작 공범으로 의율 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김 여사의 계좌가 사용된 건 맞지만, 이 자체로 김 여사가 주가조작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조작 범행 수사에서 전주를 처벌하는 핵심은 ‘공모’ 여부인데, 입증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가조작 ‘선수’로 활동한 피의자는 대부분 기소되지만 돈과 계좌를 제공한 ‘전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드문 이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작전에 동원된 계좌는 157개, 계좌주는 91명으로 김 여사가 유일한 전주였던 것도 아니다.

특히 공모 입증의 열쇠를 쥔 권 전 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도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 회장 측은 올 초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가조작을 총괄했을 권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마당에 전주로 분류되는 김 여사의 처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수사팀 대다수의 의견이다.

서면조사만…
사건 끝내기

중앙지검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취임 당시 공정성을 강조한 송 지검장을 바라보는 형사부 검사들의 불만이 상당한 분위기다. 최근 수도권 재경지검에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며 ‘조국 수사’ 등을 벌이다가 추미애 전 장관 시절 뿔뿔이 좌천된 ‘특수통’들이 요직을 꿰찬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살아있는 권력이 된 김 여사와 윤석열정부에 대한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며 “검찰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 검사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송 지검장의 김 여사 사건 처리에 따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지검장은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특수2부장을, 윤 대통령이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9년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도 도이치모터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도이치모터스 SNS에 기록된 문화 후원 내역과 코바나컨텐츠의 행사 협찬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가 2018년 3월14일 공식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2010년 ‘미스 사이공’을 시작으로 ‘샤갈전’ ‘마크 리브’ ‘반 고흐 인 파리’ ‘고갱’ ‘점핑 위드 러브전’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등의 행사에 후원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행사는 모두 김 여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에서 개최한 것이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의 행사 후원과 주가조작 수사 간 연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측은 “도이치모터스의 후원이 진행됐던 기간 주가조작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이뤄졌고 2013년 경찰이 이에 대한 내사까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난해가 돼서야 권 전 회장을 비롯한 5명이 구속 기소되는 등 총 9명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안 대응 TF의 김병기 단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한창이던 2010년~2012년 윤 대통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냈다”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권 회장이 일사천리로 구속 기소됐음에도 김건희씨는 여전히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코바나컨텐츠의 부당 협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해 또 무혐의 처분했다. 코바나컨텐츠가 2016년 12월6일부터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삼성카드 등 19개 기업이 부당 협찬을 했다는 게 고발 내용의 골자다.

고발인인 황희석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청탁금지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코바나컨텐츠에 협찬한 기업들이 윤 대통령 혹은 동료 검사들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전시회에 협찬금을 지급한 회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부당하게 협찬금을 수령했는지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황 변호사는 주장했다.

검찰 수사팀은 1년3개월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협찬 기업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도 진행했지만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피고발인들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전고검 검사로 국정 농단 특검팀에 파견돼있던 윤 대통령의 신분을 고려할 때 해당 협찬이 공무원 직무상 받은 금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김 여사의 어머니인 최은순씨는 지난해 1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2020년 3월 최씨를 동업자인 안모씨와 공모해 2013년 1~8월 4차례에 거쳐 총 349억원 상당의 신안상호저축은행 명의 잔고증명서(사문서) 위조 ▲위조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함에 따른 사문서 행사 ▲부동산을 차명으로 소유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일반인이라면…
고심하는 검찰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혐의만 인정했고 ▲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최씨는 사문서 행사 혐의를 두고 ‘동업자 안씨가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2013년 8월7일 관련 재판에 위조한 잔고증명서 1건(100억 원 상당)을 제출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잔고증명서를 제출하면서 함께 법원에 제출했던 최씨 명의 사실확인서에 최씨가 직접 서명날인한 점 등에 비추어 최씨가 안씨와 공모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부동산 차명 소유 혐의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김모씨와 도촌동 부동산 매매계약을 중개했던 이모씨 모두 해당 부동산의 실소유자가 최씨라고 증언했고, 최씨와 그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부동산 관련 대출금을 변제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최씨가 도촌동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최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재판에서 김 여사가 여러 번 언급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최씨의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김씨는 2010년경 서울대 EMBA 과정에서 김건희를 알게 됐고, 2012년경 김건희의 전시회를 통해 최은순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검경, 대질·소환조사 없이 무혐의
“정황 짙다” 지적 불구 불기소 무게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김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최씨가 허위 잔고 증명서를 김 여사의 회사 감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김 여사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세행은 이 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했고 경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김 여사의 과거 허위 학력·경력 기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도 검찰처럼 사건을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환 없이 서면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혐의를 전제로 한 조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서면조사가 무혐의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 내용을 받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여사 허위경력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김 여사 변호인 측과 조율한 뒤 서면조사서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최 청장은 “대학 관계자 입장도 다 조사했고 서면조사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서 질의서를 보냈다. 성급하게 한 건 아니다”라며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3일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개혁국본),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김 여사에 대해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한 한림성심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에 20개에 달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며 사기와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여사는 이에 같은 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남은 한 사건
마지막 기회?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를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업무방해가 꼽히는데, 두 혐의 모두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이다. 수원여대 겸임교수 관련 의혹은 2007년으로 이미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고, 안양대 관련 의혹도 이력서 작성일이 2013년 6월이라 김씨는 1년 차이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건희 녹취 소송 현주소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기간에 <서울의소리> 측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소송 사건이 조정에 회부됐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익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김건희 여사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및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조정 회부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보다는 합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 권한으로 해당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

첫 조정기일은 오는 24일로 잡혔다.

김 여사 측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1월 <서울의소리>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의소리>가 유튜브에 올린 김 여사와 이 기자 간 통화 내용 중 법원이 공개를 허용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서부지법은 김 여사의 MBC 상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김 여사가 연관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발언과 일부 사적이거나 감정적인 발언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김 여사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또 서울남부지법은 김 여사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모두 일부 인용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은 서울서부지법의 판단과는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수사 중 사안에 대한 발언도 보도가 가능하다고 봤다.

<서울의소리> 측 변호인은 언론에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에서 방송을 해도 된다고 한 범위 내에서 방송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여사 측 변호인은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은 녹음파일 공개 이후 나왔다”고 반박했다.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녹음파일은 MBC 보도 관련 가처분 결정에서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것이 분명하고, 이때는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도 나지 않았던 시기라는 주장이다.
김 여사 측 변호인은 가처분 결정과 무관하게 해당 녹음파일을 공개한 데 따라 김 여사의 인격권 등이 침해됐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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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