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 김건희 수사 맹탕 현주소

안 했나? 못 했나?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동안 멈춰있던 대장동, 기획사정, 월성 원전 의혹 등 문재인정부 사건들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일가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이례적’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는 대표적인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허위 학력·경력 ▲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공모 등이다. 검찰과 경찰은 해당 의혹들을 수년간 수사하면서 김 여사를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받는 모든 의혹이 무혐의 처분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피의자 신분
봐주기 수순?

송경호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조만간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검사 조주연)는 지난 1월 말부터 윤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었다. 당시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하자고 했으나 결과를 보고받은 김태훈 4차장 검사가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반대해 결정이 보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전문 시세 조종꾼(주가조작 선수) 이모씨, 투자자문사와 증권사 전·현직 직원 등 8명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09년 12월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간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이용해 가장·통정매매, 고가·허위 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 7804회를 제출해 1661만주(654억원 상당)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여사는 이 기간 도이치모터스 주식 146만주, 50억원어치를 거래했다.

검찰은 이후 전체 이상 거래내역을 담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했고 이 가운데 김 여사가 DS·대신·미래에셋 등 증권사 계좌를 통해 수십차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기록도 포함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 여사가 사건에 깊게 연루된 정황이 짙어졌음에도 소환조사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이치 주가조작
허위 학력·경력

잔고증명서 위조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김씨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정하지 못해 섣불리 소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김씨는 투자자가 아닌 ‘전주’로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영부인이 된 만큼 정치적 부담감이 대선 때보다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특수통 출신의 변호사도 “시세조종에 대한 혐의가 구체화되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것”이라며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무혐의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사팀은 김 여사를 주가조작 공범으로 의율 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김 여사의 계좌가 사용된 건 맞지만, 이 자체로 김 여사가 주가조작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조작 범행 수사에서 전주를 처벌하는 핵심은 ‘공모’ 여부인데, 입증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가조작 ‘선수’로 활동한 피의자는 대부분 기소되지만 돈과 계좌를 제공한 ‘전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드문 이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작전에 동원된 계좌는 157개, 계좌주는 91명으로 김 여사가 유일한 전주였던 것도 아니다.

특히 공모 입증의 열쇠를 쥔 권 전 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도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 회장 측은 올 초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가조작을 총괄했을 권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마당에 전주로 분류되는 김 여사의 처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수사팀 대다수의 의견이다.

서면조사만…
사건 끝내기

중앙지검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취임 당시 공정성을 강조한 송 지검장을 바라보는 형사부 검사들의 불만이 상당한 분위기다. 최근 수도권 재경지검에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며 ‘조국 수사’ 등을 벌이다가 추미애 전 장관 시절 뿔뿔이 좌천된 ‘특수통’들이 요직을 꿰찬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살아있는 권력이 된 김 여사와 윤석열정부에 대한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며 “검찰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 검사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송 지검장의 김 여사 사건 처리에 따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지검장은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특수2부장을, 윤 대통령이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9년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도 도이치모터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도이치모터스 SNS에 기록된 문화 후원 내역과 코바나컨텐츠의 행사 협찬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가 2018년 3월14일 공식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2010년 ‘미스 사이공’을 시작으로 ‘샤갈전’ ‘마크 리브’ ‘반 고흐 인 파리’ ‘고갱’ ‘점핑 위드 러브전’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등의 행사에 후원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행사는 모두 김 여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에서 개최한 것이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의 행사 후원과 주가조작 수사 간 연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측은 “도이치모터스의 후원이 진행됐던 기간 주가조작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이뤄졌고 2013년 경찰이 이에 대한 내사까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난해가 돼서야 권 전 회장을 비롯한 5명이 구속 기소되는 등 총 9명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안 대응 TF의 김병기 단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한창이던 2010년~2012년 윤 대통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냈다”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권 회장이 일사천리로 구속 기소됐음에도 김건희씨는 여전히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코바나컨텐츠의 부당 협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해 또 무혐의 처분했다. 코바나컨텐츠가 2016년 12월6일부터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삼성카드 등 19개 기업이 부당 협찬을 했다는 게 고발 내용의 골자다.

고발인인 황희석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청탁금지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코바나컨텐츠에 협찬한 기업들이 윤 대통령 혹은 동료 검사들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전시회에 협찬금을 지급한 회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부당하게 협찬금을 수령했는지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황 변호사는 주장했다.

검찰 수사팀은 1년3개월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협찬 기업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도 진행했지만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피고발인들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전고검 검사로 국정 농단 특검팀에 파견돼있던 윤 대통령의 신분을 고려할 때 해당 협찬이 공무원 직무상 받은 금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김 여사의 어머니인 최은순씨는 지난해 1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2020년 3월 최씨를 동업자인 안모씨와 공모해 2013년 1~8월 4차례에 거쳐 총 349억원 상당의 신안상호저축은행 명의 잔고증명서(사문서) 위조 ▲위조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함에 따른 사문서 행사 ▲부동산을 차명으로 소유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일반인이라면…
고심하는 검찰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혐의만 인정했고 ▲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최씨는 사문서 행사 혐의를 두고 ‘동업자 안씨가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2013년 8월7일 관련 재판에 위조한 잔고증명서 1건(100억 원 상당)을 제출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잔고증명서를 제출하면서 함께 법원에 제출했던 최씨 명의 사실확인서에 최씨가 직접 서명날인한 점 등에 비추어 최씨가 안씨와 공모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부동산 차명 소유 혐의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김모씨와 도촌동 부동산 매매계약을 중개했던 이모씨 모두 해당 부동산의 실소유자가 최씨라고 증언했고, 최씨와 그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부동산 관련 대출금을 변제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최씨가 도촌동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최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재판에서 김 여사가 여러 번 언급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최씨의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김씨는 2010년경 서울대 EMBA 과정에서 김건희를 알게 됐고, 2012년경 김건희의 전시회를 통해 최은순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검경, 대질·소환조사 없이 무혐의
“정황 짙다” 지적 불구 불기소 무게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김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최씨가 허위 잔고 증명서를 김 여사의 회사 감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김 여사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세행은 이 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했고 경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김 여사의 과거 허위 학력·경력 기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도 검찰처럼 사건을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환 없이 서면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혐의를 전제로 한 조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서면조사가 무혐의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 내용을 받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여사 허위경력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김 여사 변호인 측과 조율한 뒤 서면조사서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최 청장은 “대학 관계자 입장도 다 조사했고 서면조사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서 질의서를 보냈다. 성급하게 한 건 아니다”라며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3일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개혁국본),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김 여사에 대해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한 한림성심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에 20개에 달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며 사기와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여사는 이에 같은 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남은 한 사건
마지막 기회?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를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업무방해가 꼽히는데, 두 혐의 모두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이다. 수원여대 겸임교수 관련 의혹은 2007년으로 이미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고, 안양대 관련 의혹도 이력서 작성일이 2013년 6월이라 김씨는 1년 차이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건희 녹취 소송 현주소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기간에 <서울의소리> 측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소송 사건이 조정에 회부됐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익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김건희 여사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및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조정 회부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보다는 합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 권한으로 해당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

첫 조정기일은 오는 24일로 잡혔다.

김 여사 측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1월 <서울의소리>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의소리>가 유튜브에 올린 김 여사와 이 기자 간 통화 내용 중 법원이 공개를 허용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서부지법은 김 여사의 MBC 상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김 여사가 연관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발언과 일부 사적이거나 감정적인 발언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김 여사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또 서울남부지법은 김 여사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모두 일부 인용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은 서울서부지법의 판단과는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수사 중 사안에 대한 발언도 보도가 가능하다고 봤다.

<서울의소리> 측 변호인은 언론에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에서 방송을 해도 된다고 한 범위 내에서 방송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여사 측 변호인은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은 녹음파일 공개 이후 나왔다”고 반박했다.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녹음파일은 MBC 보도 관련 가처분 결정에서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것이 분명하고, 이때는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도 나지 않았던 시기라는 주장이다.
김 여사 측 변호인은 가처분 결정과 무관하게 해당 녹음파일을 공개한 데 따라 김 여사의 인격권 등이 침해됐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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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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