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북 지역 산을 다니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나무와 꽃의 생육상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후변화 조사원 친구로부터 대아수목원에 활짝 핀 인동초(忍冬草), 장미꽃, 엉겅퀴 사진 3장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곧장 시인 친구가 고난을 상징하는 인동초를 보니 숙연해진다며, 전주 전매청 앞에서 모닥불 피고, 김대중을 외치며 밤새웠던 열정이 인동초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고 댓글을 달았다.
나도 김대중 인동초(忍冬草)가 왠지 초라하게 보인다며, 요즘 겨울이 너무 따뜻해서 겨울 같지 않고, 오히려 여름이 무척 더워서 여름답다며, 무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고 피는 인하초(忍夏草)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답했다.
인동초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나서 따뜻한 봄이 왔을 때 꽃을 피우고, 뿌리부터 줄기, 잎, 꽃봉오리까지 모두 약재로 쓰이는 이로운 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광주민주화운동묘역을 방문해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 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하면서부터 인동초는 김대중을 상징하는 꽃이자 단어가 됐다.
그리고 실제 인동초 김대중은 독재라는 엄동설한에 얼어붙은 흙을 뚫고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워낸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내가 방글라데시에서 동남아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현지인 친구도 나에게 40도가 넘는 더위를 잘 이겨내고 가을에 피는 꽃을 가리켜 방글라데시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치와 싸우고 있는 야당총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당시 현지인이 나에게 방글라데시어로 말해준 꽃이름을 지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꽃이름을 한문으로 번역하면 분명 인하초(忍夏草)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북반구에 위치해 있어 겨울이 혹독한 계절이고, 남반구의 나라는 여름이 혹독한 계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인동초(忍冬草)가, 방글라데시에서는 인하초(忍夏草)가 어려움을 이겨낸 지도자를 상징하는 꽃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산업화가 시작된 19세기 말부터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온난화시대를 맞이하게 됐고, 그래서 지금은 북반구의 겨울도 별로 춥지 않다.
내가 댓글에서 인하초를 꺼낸 것도 이제 우리나라에서 겨울은 별로 춥지 않기 때문에 겨울을 나는 데 큰 인내가 필요 없고, 오히려 더운 여름을 날 때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다육이를 키우고 있는데, 다육이 전문가들 이야기에 의하면 다육이도 전에는 겨울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름나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력난도 전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심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겨울보다 여름에 전력난이 더 심하다고 한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겨울나기보다 여름나기가 더 힘든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지구온난화 현상은 단순히 기온 상승만이 아닌 다양한 변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지구의 환경문제를 지구온난화 대신 기후변화라고 일컫는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와 싸운 지도자를 인동초 대신 인하초로 표현해야 한다는 내 생각도 정확히 표현하자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인해 생기는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
친구가 나무와 꽃의 생육상태를 관찰하고 기록할 때, 왜 기온변화에 따른 조사가 아닌 기후변화에 따른 조사를 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덥거나 하는 매일매일 변화하는 것은 기상이지만, 기후는 오랜 시간 동안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기상현상의 특징을 뜻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퇴직 후 지금은 고향에서 기후변화 조사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나라 산에서 서식하고 있는 인하초를 꼭 한 번 찾아보라고 권할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하초(忍夏草)라는 별명을 가진 지도자가 나올 것을 대비해서...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본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