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인기'만 없는 김동연 대선후보

“막 퍼주는 이·윤 생각 없으니 막 뱉어”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있다. 학교 내에서 각종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 교무실에 불려간 적도 없다. 때로는 옳지 않은 일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급우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학생이 반장 선거에 나가기만 하면 늘 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은 역대 대선에서도 손꼽을 만큼 혼탁한 선거가 됐다.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는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연일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무속인 논란’ ‘도박 논란’ ‘주가 조작’ ‘대장동 비리’ 등 하나만 터져 나와도 치명상이 될 약점들이 이번 대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나온다. 

사실, 이런 형국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후보의 지지율이 대폭 빠져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각종 비리들이 터져도 양강 체제는 더욱 공고해져갔다. 오히려 각 당의 지지자들이 결집해 서로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깜짝 반등했던 것도 후보들의 비리보다는 국민의힘 ‘내홍’ 문제가 주된 원인이었다.제3지대에서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후보는 지금 대선판이 억울하기만 하다.

그는 가족 리스크에서도, ‘대장동’이나 ‘고발 사주’ 같은 본인 비리 의혹에서도 자유롭다. 그의 경력 또한 요즘 국민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경제 대통령’에 가장 부합한다. 김 후보는 지난 40년간 청와대에서 경제 관련 일만 해온 ‘경제통’이다. 


김 후보는 정치인으로서의 드라마도 갖추고 있다. 대선 출마 후, 판자촌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이 재조명되며 언론은 그에게 진정한 ‘개천의 용’이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아무런 배경 없이 능력만으로 청와대의 중책을 맡아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행정 능력도 탁월해 그간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그가 함께 일한 대통령만 총 6명(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나 된다.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캐스팅 보트가 될 2030 청년들에 대한 이해도도 가장 높은 후보다. 타 후보들과 달리 대학생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인물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2015년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약 2년간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일선에서 목격해왔다.

이번 대선 출마 때도 출마 선언문의 절반가량을 청년들을 위한 공약으로 채웠다.

판자촌 유년 시절 ‘개천서 용’
배경 없이 오직 능력으로 중책

개천에서 난 용 신화, 도덕적 흠결이 없는, 경제·청년 전문가 등 대선후보로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김 후보가 단 하나 갖지 못한 것은 ‘지지율’이다. 새로운물결의 초기 예측과는 달리, 완벽한 김 후보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조사한 모든 여론조사에서 1%대 지지율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최근 몇몇 조사에서는 0.5%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요즘 고심이 많을 김 후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다음은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


-‘나는 OOO 대선후보’라고 정의한다면.

▲제게 ‘지지율만 빼고 다 가진 후보’라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평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지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존 정당들의 달콤한 권유를 마다하며, 기존 정치권에 빚을 지지 않은 채 시작했습니다. 그 제의를 받아 그들의 자금력과 조직을 활용했으면 아마도 지금보다 지지율도 높았을 테고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고, 낡은 정치 체제 안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후보들이 걸어가는 길과 가장 크게 다르다고 말씀드립니다.

나는 ‘기존 정치권에 빚이 없는 후보’라고 자부합니다.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신 걸로 압니다. 그럼에도 경제관료가 되려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스스로 표현하면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입니다. ‘세상 누구를 내 자리에 데려다 놓아도 나보다 열심히 살 수는 없다’는 각오로 살았습니다.

덕수상고 3학년 때 은행에 들어갔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이 높았습니다.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학력에 대한 갈증에 야간대학을 다녔는데,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고시 잡지를 보고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고시란 게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공직에 대한 포부나 의식은 딱히 없었고 다분히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되는 게 제게 더 나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후보님이 이뤄낸 기적을, 지금 청년들은 이뤄낼 수 있다고 보시나요.

▲기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제게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청년 시절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과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착실히 저축하면 내 집은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실제로 지금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성세대고 더구나 공직에 오래 몸담았던 터라 더 좋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 점 때문에 청년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그만큼 시대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년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세대가 지금 청년세대입니다. 많이 힘들고 화도 날 겁니다. 다만, 힘들고 실패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았으면 합니다. 남이 하고 싶은 일,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해답을 고민하고 찾아가는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새로운물결이라는 이름을 지으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새로운물결’은 세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부패를 쓸어버리는 물결입니다. 우리 사회에 기득권과 부패가 얼마나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온 국민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부패만 없애도 수많은 기회가 생깁니다. 저와 ‘새로운물결’의 집권은 대한민국에서 부패를 종식하는 반부패 원년이 될 것입니다. 

둘째, 기득권 둑을 허물고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를 만들어내는 물결입니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공약, 구호만 요란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공약과 정책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일한 대통령 6명
노무현과 가장 잘 맞고
문재인이 가장 아쉬워

셋째, 기득권 양당 정치를 바꾸는 물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진흙탕입니다. 새 물결로 깨끗하게 쓸어버리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힘이 새 물결이 될 것이고, 그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깨고 국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YS 때부터 총 6명의 대통령을 모셨습니다. 최고와 최악을 꼽는다면.

▲최고, 최악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람이 컸던 일 중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 때 만들었던 ‘비전 2030’ 수립입니다. 당시 25년 뒤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을 담았습니다. 처음으로 ‘동반 성장’이라는 말을 썼고,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간다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정치권의 세금 폭탄 프레임에 말려들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때 기득권 정치의 폐해를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경험으로는 경제부총리로 일할 당시 부동산 등 경제 현안에서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다는 일화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분들을 비난하거나 깎아내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국가 경제, 나라 살림을 맡아온 경험으로 정책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 구성원, 이해관계가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이념에 따른 목표에 매몰될 경우 국가 정책의 방향도 일방적이고 거칠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공무원이었을 때 못 느꼈던 점이 있을까요?

▲공직에 있을 때 지금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좋은 정책도 잘못된 정치로 인해 실패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에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소신으로 한 말입니다. 그리고 작년 8월 대선 출마 선언 후 5개월여 동안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 혼탁한 대선판을 겪으며 여야 어디가 집권하든 흔히 말하는 ‘정권 재창출’이나 기득권 정당 사이의 ‘정권교체’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헛된 장밋빛 약속이나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정치판 자체를 바꾸고 정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하고 있습니다. 

-양강 후보들의 경제 정책 중 비판받을 부분이 있다면.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가 양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두 분 다 자신들이 추구해온, 추구하겠다는 가치와 비전에 어긋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 공약을 내세우면서 국민소득 5만불과 경제강국 5대 강국, 국가주도에 의한 대규모 투자로 성장을 견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민주당이 추구해온 진보적 가치와 맞지도 않고, 이명박정부 시절 ‘747’ 공약을 연상시킵니다. 

“기존 낡은 정치에 빚이 없다”
YS 때부터 빠짐없이 러브콜

윤석열 후보는 임대료의 3분의 1을 깎아주고 나머지는 국가와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합니다. 3분의 1 임대료는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고, 시장가격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발생하게 된 시장 왜곡에 대해서 과연 생각은 해봤는지 의심스럽습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에 대한 입장은 아직 확고하신가요? 이것을 어떻게 해낼지 구체적인 방안이 궁금합니다.

▲작년 11월 ‘권력구조 대개혁’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거기에 4년 중임제 개헌을 위한 개헌 공약이 있습니다. 당연히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현재의 대통령 후보들이 먼저 합의해서 길을 트고, 당선자가 임기 초반에 강력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헌법개정국민회의’를 구성, 2023년 말까지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해내고, 2024년 총선 일정에 맞춰 대통령선거까지 한꺼번에 치르는 일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은 임기가 2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정치개혁’을 위한 헌신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정치권이 이 문제에 합의한다면 국민들께서 박수쳐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최저임금제에 대해 현 정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히 가야 할 방향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인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큰 부담이 됩니다. 임금은 노동의 가격입니다. 임금의 가격이 오르면 임금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주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결국 고용에서 조정이 일어났고, 부정적인 효과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목표가 분명히 보인다고 무작정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특히 최저임금 같은 경우는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칙하에 경제의 상황을 잘 살피고 속도 조절하며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정책 추진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습니다. 많은 변수를 같이 봐야 하는데 특정 목표나 이념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부분을 놓치면서 시장이 왜곡됩니다. 투기 억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함과 동시에 공급 확대를 원활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수도권 올인 구조를 깨는 국토균형 발전도 병행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국가정책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민과 시장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지금 정부가 지나치게 잦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은 것이 시장 신뢰를 잃게 만든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집권하면 1년 안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끝으로 같이 대선 레이스를 뛰고 있는 후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대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루하루 거친 언사와 날선 공격만 오가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도 힘드시고, 또 당사자들 마음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덕담이랄까, 격려의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계실 텐데 건강 챙기시면서 끝까지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위한 길에 나섰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김 후보는 황급히 다음 일정을 소화하려 움직였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게 목표인 김동연의 대선 캠프는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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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