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드는 문정부 겨냥 사건 현주소

‘뭉개고 질질’ 아직은 살아있는 권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기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청와대 권세에 눌려 있던 사건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대립할 당시 한참 시끄러웠다가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은 사건을 <일요시사>가 다시 조명해봤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모인 촛불시민의 지지로 탄생했다. 검찰은 그 연장선상에서 적폐청산의 칼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공격과 방어라는 정반대 상황에 놓인 검찰은 문정부 들어 ‘역대급’ 관심을 받았다.

적폐 청산
검찰개혁

문정부 첫 검찰총장인 문무일 전 총장은 2년 임기를 다 채웠다. 1988년 2년 임기제 도입 이후 무사히 퇴임한 8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문 전 총장 시기의 검찰은 정부와 크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통상적인 수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후부터 상황이 확 달라졌다. 정확히는 윤 후보가 취임 이후 두 달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에 칼을 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조국 수호’ ‘조국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맞부딪쳤다.

이와 동시에 문정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검찰과 정부의 대립구도가 첨예해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정부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자리를 옮겼다. ‘대학살’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당시 검찰 인사의 파장은 상당했다. 


공수처 이첩 사건 지지부진
기소 이후 한참만에야 재판

특히 윤 후보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 법무부가 검찰 제도를 손보면서 검찰총장은 고립돼갔다. 윤 후보와 추 전 장관의 대립은 ‘전쟁’으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추 전 장관은 윤 후보를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시도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것이다.

검찰 내부에도 묘한 기류가 흘렀다. 윤 후보의 측근이 밀려난 자리를 친정부 인사가 채우면서 검찰 안에서도 대립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이성윤 서울고검장이다.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이 고검장은 문정부에서만 검찰 요직 빅4(서울중앙지검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중 3자리를 차지할 만큼 승승장구했다.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윤 후보는 직무정지-가처분 소송 승소 등의 과정을 거치고 결국 올해 3월 검찰총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지난달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단 한 번도 정치를 해본 적 없는 검사 출신의 정치 신인이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8개월. 

일각에서는 윤 후보가 정치 엘리트 코스를 초고속으로 밟을 수 있었던 원인으로 추 전 장관과 문정부 겨냥 사건 수사를 꼽는다. 추 전 장관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면서 인지도가 늘어났고, 더 나아가 문정부와 맞서는 구도로 비쳐지면서 지지세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문정부와 관련된 사건에 칼을 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윗선 노린
검찰총장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문정부 관련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이 당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역대급 승리를 거두면서 문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든 것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의 기세에 눌렸다는 것.

대표적으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 등이 꼽힌다.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돼있거나 친정부 검사가 얽혀 있는 등 문정부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건이다. 

실제 지난 6월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관련 수사팀 검사가 대거 물갈이 됐다.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을 수사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이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하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이동했다. 

대전지검에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평가 의혹 사건을 맡았던 이상현 형사5부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옮겼다. 당시 검찰 인사를 두고 문정부 겨냥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 인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실무 기구인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근무하던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며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중천씨를 6차례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검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과거사위의 수사 권고에 토대가 됐다. 과거사위는 2013년 김 전 차관에 대한 경찰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고 판단했고,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윤씨와 만나 골프나 식사를 함께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은 해당 보고서가 상당 부분 허위거나 왜곡·과장됐다고 의심했다. 청와대가 배후에서 정권 실세 연루 의혹이 있던 ‘버닝썬’ 사건을 덮으려는 목적으로 이 검사의 범행을 부추긴 게 아닌지도 들여다본다는 입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이 검사와 수차례 연락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사건은 지난 3월 공수처로 이첩된 이후 현재까지 마무리가 안 된 상황이다. 지난 5월과 6월 이 검사를 소환조사하고, 7월 이 전 비서관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이후 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 사건도 수원지검의 이 고검장 기소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이 고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6월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 역시 공수처가 들고 있다.  

엇박 나는
수사기관

공수처는 수사 무마 의혹보다 공소장 유출 의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5월12일 이 고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튿날 일부 언론에 공소장 내용 일부가 보도되면서 유출 의혹이 불거졌고, 대검 감찰부는 법무부 지시로 즉각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후 7개월 만에 대검 감찰부는 수원지검 수사팀에 연루 정황이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수원지검 수사팀 검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대검 서버를 압수수색하는 등 반년 넘게 수사를 이어가던 공수처로선 난감한 입장에 처한 것. 두 건 모두 여권에 부담이 되는 수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은 기소된 지 1년10개월 만에 재판이 시작됐다. 2014~2018년 울산시장을 지낸 김기현 전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은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송철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당시 김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이던 박모씨를 수사했다. 

검찰은 송병기 당시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해당 첩보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보했고, 울산경찰청이 이에 따라 하명수사를 벌였다고 보고 있다. 또 김 원내대표의 주요 공약이던 ‘산재모병원’의 예비타당성 조사 탈락이 선거 한 달 전인 5월에 발표된 점, 송 시장이 문 대통령의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을 들고 나온 점 등에 청와대의 입김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는 부정선거의 종합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며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전 청와대 참모를 비롯해 여권 인사들을 기소했다. 

관련자 임기 다 끝날 듯
3개월 남은 대선 영향?


하지만 22개월 만인 지난 11월에야 첫 증인신문이 이뤄지는 등 재판이 늘어지면서 송 시장의 임기가 끝난 이후 1심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원내대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정부패 의혹의 중심인 것처럼 보도되면서 제 평판이 극도로 나빠졌다”며 울산경찰청의 수사가 울산시장 낙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월성 원전 경제성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한 바 있다. 그 첫 재판이 지난 14일 열린 것.

3명의 공무원이 기소된 지 1년 만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를 언급한 피의자의 진술이 공개됐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피의자 심문 조사 내용 등을 통해 월성 원전 조기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과 관련해 산자부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될 수 있는 자료 삭제와 정리에 대한 지시가 있었고 실제 이행됐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의자 가운데 1명이 다른 사람과 SNS로 ‘청와대와 장관이 책임져야 할 일인데, 실무자들만 감사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대화한 사실을 밝혔다. 또 검찰은 이들이 삭제한 자료를 모두 공용전자기록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재판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부당개입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정재훈 한수원 사장 사건과도 연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월성 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에 청와대와 정부가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들을 기소했다. 

다음 정부로
넘어간 공?

대선은 불과 3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문 대통령의 임기는 5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일부 사건의 경우 기소가 이뤄지고 1년(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1년10개월(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 만에 재판이 시작된 만큼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결론이 나오기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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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