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한층 더 진화한 배우 조인성

“걱정만 하다 내려놓고 들이댔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조인성의 어깨는 늘 무거웠다. 국내의 창작자들은 조인성의 파트너로 두 명 이상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멀티 캐스팅보다는 적은 인원이 나오는 작품이 많았다. 조인성을 부각하는 게 흥행 면에서 효과적이라 판단했던 것 아닐까. 이유를 막론하고 조인성은 작품 내외적으로 늘 현장의 주인공이었다. 따라서 외롭게 홀로 책임져야 할 때도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 조인성이 김윤석과 허준호라는 거목에 기대 오롯이 연기에만 집중한다. 신작 <모가디슈>에서다. 

학교 선생님마저 ‘광채’가 나는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거주한 서울 천호동 일대에서 조인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큰 키의 훤칠한 외모, 극강의 매력을 가진 그의 주위에는 늘 그를 흠모하는 여학생들로 붐볐다. 

광채
꽃미남

1998년 의류 브랜드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가 KBS2 <학교3>를 통해 카메라에 얼굴을 비춘 후 조인성 개인의 삶은 턱없이 작아졌다. 이제껏 한국 연예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몸에 작은 머리를 가진 꽃미남이라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서나 그를 알아봤다.

굵직한 선을 가진 서구적인 인상의 스타들이 사랑받던 시절, 조인성의 등장과 함께 남성미의 기준이 뒤바뀌었다. 

MBC <뉴 논스톱>에 출연해 스타덤에 올랐고, SBS <피아노> <별을 쏘다> 영화 <클래식> 등을 통해 점차 자신의 연기적인 영역을 넓혀갔다. 2004년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을 통해서는 명실상부한 국내 톱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정장 차림에 가방을 처음으로 메고, 구두 대신 스타일리쉬한 단화를 신은 그의 스타일링은 남성 직장인의 로망이 됐다. 당시 조인성의 패션을 맡은 발리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많은 직장인이 따라 하려 했지만, 조인성 외에는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패션이라, 낭패를 본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는 슬픈 뒷이야기도 있다.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최우수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조인성은 꾸준히 배우로서 진화해 나간다. 이미 광고계의 블루칩으로서 왕자님 이미지의 캐릭터만 택했다면 더 큰 신드롬을 일으켰을 텐데, 그가 바라보는 다음 목적지는 언제나 도전이었다.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기보다는 특별한 인물에 눈길을 보냈다.

이복 형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해 저항하는 청춘이었던 SBS <봄날>을 비롯해 삭발을 하고 온갖 추잡한 행위를 하면서 두목에게 충성했다가 결국 비수가 꽂히는 영화 <비열한 거리>나, 남자 배우와 농밀한 키스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영화 <쌍화점>까지,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조인성과는 사뭇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군 복무 후, 인간 내면을 그려내는데 가장 섬세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 노희경 작가와 협업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tvN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누가 봐도 뻔한 길은 아니었다. 노 작가의 작품이 여타 드라마처럼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력은 점점 더 짙어졌다. 

영화 <모가디슈> 안기부 요원 역
“김윤석·허준호에 기대고 싶었다”

영화 <더 킹>은 그야말로 조인성의 원맨쇼다. 동네 건달에서 정치 검사로 한국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다가, 막다른 길에 몰려 복수를 감행한 박태수(조인성 분)는 영화 내에서 모든 내레이션을 포함해 95%가 넘는 장면에 등장한다. 배우로서는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값진 모험이었다. 


이어 남주혁, 배성우, 엄태구 등과 함께 고구려를 지킨 장만춘의 삶을 묘사한 <안시성>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성과를 얻었다. 그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어딘가 건들건들하고 마음을 다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의 영역에 있고 때로는 정의로운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어딘가 모르는 까칠함이 있지만,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매우 진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조인성도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인물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조인성은 이번에는 앞장서는 대신 중간에서 서포트하는 포지션을 택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여러 배우와 호흡을 하는 방향이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에서다. 영화 자체가 큰 모험이자 도전이다.

이역만리 타지인 모로코에서 4개월간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것에 이어 외국에서 외국인들이 벌이는 전쟁을 그린다. 그 사이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남북한 대사관들의 이야기다. 남한 한신성 대사관은 배우 김윤석이, 북한 림용수 대사관은 허준호가 맡았다. 

조인성이 연기한 강대준은 안기부 정보요원으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안기부에서 좌천돼 소말리아로 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성실하며, 정의롭게 일을 헤쳐가기보다는 늘 뒤에서 수를 부리며 외교전을 하려는 인물이다. 남한 외교에 힘을 떨어뜨리기 위해 공작을 벌이는 북한에 대항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걸 일삼는다. 

늘 불평불만이 많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에는 어김없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라의 대의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강자 앞에서는 헤프게 웃고, 약자 앞에서는 싸늘하다. 때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윽박부터 지르고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남북이 화합하는 순간에서는 희생한다. 꼭 매력적이지 않은 강대준에 조인성은 기어코 매력을 붓는다.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구현한다.

“책임질 게 
 많아졌다”

“인물을 표현하기에 앞서서 상황에 집중했어요. 영화는 내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텐데요. 그때부터 상황이 달라지죠.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날것을 표현해내려고 했어요.”

류 감독의 <모가디슈>는 영화계가 주목한 작품이다. 워낙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데다 끼 많고 능력 있는 배우가 대거 출연해서다. 앞선 작품인 <군함도>가 비교적 실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은 후 류 감독이 절치부심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정작 시나리오를 본 배우들은 “이걸 어떻게 찍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시나리오 상황에 맞는 미술을 구현하는 것부터 수많은 외국인이 필요한데 비중이 작지도 않으며, 언어적인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장소도 매우 변화가 많은데 어떻게 다 섭외할 것인지 등 의문부호가 붙었다.

김윤석, 허준호처럼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모가디슈>는 쉽지 않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인성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봤을 때 ‘영화를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하기도 했죠. 익숙한 동네도 아니고요. 영화를 찍는 것도 찍는 거지만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도 관건이었어요. 현지 적응에 대한 고민도 있었죠. 여러 스태프 덕분에 슬기롭게 헤쳐나갔던 것 같아요. 의문이 많았지만, 류승완과 허준호, 김윤석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가 컸어요. 함께하고 싶었나 봐요. 주저하지 않았어요.”

앞서 <모가디슈>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선배 배우들과 작업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선배들로부터 연기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4개월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얻은 것이 적지 않다고 했다. 

“영화라는 작업은 모두가 함께해야 해요. 그간 타이틀롤이 많아서 부담감이 컸는데, 두 거목이 자리를 하고 계셔서 저는 연기에만 집중하면 됐어요. 비교적 심플한 마음이었어요. 앙상블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의지할 사람이 있다 보니 여유도 생겼고요.”

어느덧
23년

이미 수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 조인성이지만, 선배 배우들의 깊이에 놀라는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두 분의 대단함을 많이 느꼈어요.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과 해석 면에서 차원이 다른 수준을 느꼈어요. 같이 서 있기만 해도 힘을 느꼈던 것 같아요. 특히 시나리오에는 나오지 않는 빈 곳을 채우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저도 계속 영화를 할 건데요. 그런 부분에서 저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또 오랜만에 현장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40세가 넘은 조인성은 어느덧 선배 배우가 됐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모델이 되고 벌써 데뷔 23년이 지났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가 주목하는 배우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조인성도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스스로 좋은 배우의 덕목을 갖추고 있는지 불안했다고 한다.

김윤석을 붙잡아놓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한참 동안 조인성의 불안을 경청한 김윤석의 대답은 “널 믿어. 응원할게”였다고. 조인성은 이 말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응원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사실 활동하다 보니 어느덧 선배급이 돼버린 거죠.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의문점도 있었고, 앞으로 삶의 방향성에 대한 모호성도 있었어요. ‘잘하고 있나?’라는 질문만 되뇌기도 했고요. 방향이 헷갈릴 때 물어볼 선배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인지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어찌 됐든 쉽게 꺼내기 힘든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물어봤고, 응원을 받았어요. 앞으로 더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

“갈등이 없으면 그게 행복 아닐까요?”
“경험을 통해 진화해 나가고 있어요”

은근히 적지 않은 어록을 생산해냈다. 배우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의 영역이나 살아가는 부분에 있어서 귀감이 될만한 말을 적지 않게 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버거왕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호한 지점을 깔끔하게 정립하기도 했다.

한때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밝힌 그는 최근 여러 면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게 관념적인 언어잖아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 있고요. 저는 행복이란 특별히 갈등이나 힘든 점이 없다면 행복이라 생각해요. 힘든 게 없다는 게 행복이라면, 앞으로 더 행복할 것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 문제가 없다면 모든 것들이 행복일 수 있다는 개념으로요. 오히려 우리가 행복을 좇다 놓치는 보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덧 불혹을 넘긴 조인성도 수많은 인물을 거치면서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듯하다. 누군가 선망하는 스타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터벅터벅 걸어온 인생의 어려운 포인트를 설명해주는 선생님 같은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책임질 것이 많다는 거기도 하죠. 행동에 대한 책임이요.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죠. 여러 예상을 하고요. 예상이 적중하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해요. 통찰력이 있다고 늘 맞는 것도 아니죠. 항상 조심하고 용기가 안 나는 것도 있어요. 용기가 안나다보니까 움츠려들기도 하고요. ‘움츠려드는데 이게 맞는 겁니까?’가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럼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오히려 선배님들이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두려워하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경험이 많아서요. 저 역시 이번 경험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선배님들을 보면서 확인하는 거죠. 선배님들도 여러 경험을 통해 진화해 온 것처럼요. 앞으로 저도 계속 성장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멋있게 사는 건 없어요. 현실에 충실하는 게 최선이죠. 그러면 나중에 뭐가 되도 되겠죠.”

영화는 매우 매끄럽다. 남녀노소 누가 봐도 엄지를 들 만큼 괜찮은 작품이다. 올로케이션의 가장 좋은 예라는 수식어가 붙을지도 모를 정도다. 수백억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영화계의 지원으로 손익분기점은 300만으로 내려갔다. 평소 같으면 첫 주에 넘겨버릴 수치지만, 코로나19 시국인지라 이마저도 어려운 숙제라는 게 현실이다. 

소박한 꿈
현실에 충실

“<모가디슈>라는 이름으로 모인 영화인들이 용기를 한 번 내봤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은 분들에게 소개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공감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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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