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김학의 출금 사건 막전막후

의혹 너머에 추라인 검사들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김학의 사건’이 재점화 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둘러싼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2013년. 7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건은 종결되지 않았다.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망령처럼 정치권을 떠도는 모양새다. 이번에는 출국금지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 의혹이 제기됐다.
 

▲ 출국 중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JTBC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3월 법무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른바 ‘별장 성접대 동영상’ 의혹으로 취임 6일 만에 낙마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2013년 시작
여전히 논란

김 전 차관에 대한 경찰, 검찰의 수사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 진행됐지만 수사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종결됐다. 김학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문재인정부로 들어서다. 문정부 출범 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발족되면서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의혹이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3월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별장 동영상 화질이)명확한 건 (2013년)5월에 입수했는데,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하고 명확하기 때문에 (김 전 차관과)동일인이라고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과 함께 김 전 차관 사건을 언급하면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특히 이 사건에 검찰과 경찰이 유착됐다는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과거사위의 활동 기간이 연장됐다. 같은 해 3월22일 과거사위는 태국으로 나가려던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았다.

김 전 차관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뇌물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문제는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점이다.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 승인요청서 등에 이미 종결됐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건·내사번호가 게재됐다는 의혹이 나온 것. 

2019년 3월 출국금지 과정
“절차적 흠결 있었다” 제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익신고서를 접수한 공익제보자는 대검과 법무부가 이를 묵인·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 전 차관의 긴급 출국금지 당시에도 파견검사에게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적법 절차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22일 밤 인천공항에서 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발권한 뒤 이튿날 0시20분에 출발하는 방콕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재수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출입국당국이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를 법무부에 보고하면서 당시 재수사 사건을 조사하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도 해당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된 이규원 검사는 김 전 차관이 출국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 2013형제65889호로 자신 명의의 ‘긴급 출금 요청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2013형제65889호는 김 전 차관이 2013년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성폭력 혐의 사건번호였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고성준 기자

출입국관리법상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 피의자’라는 조건의 긴급출금 대상자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또 이 검사는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은 뒤엔 법무부 장관의 사후승인을 위해 서울동부지검 내사번호(2019년 내사1호)를 활용했다. 이 내사번호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지검장의 직인을 찍어야 하는 곳에는 ‘代이규원’이라고 서명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긴급 출국금지 요청은 ‘수사기관의 장’이 해야 한다. 당시 이 검사가 파견검사 신분이었던 게 쟁점이 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조사단에 파견 나간 이 검사가 정식 수사 권한도 없이 허위 공문서로 긴급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
“명운 걸어라”

법무부는 지난 12일 “긴급 출국금지 및 사후 승인을 요청한 조사단 소속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내사 및 내사번호 부여,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고위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법무부의 해명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현직 법조인들까지 법무부의 논리를 반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법무부의 해명은)근거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면서 “사건번호 부여는 검사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내사사건은 수제번호를, 수사사건은 형제번호를 부여하는데 모두 주임검사가 상사에게 결재를 올려 완료되면 담당 직원이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정유미 인천지검 부천지청 인권감독관은 “검사들은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수사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그 인권이 설령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인간들의 인권이라 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임시번호 뒤 정식번호가 수사관행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리는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다”며 “적어도 내가 검찰에 몸담고 있던 20년간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사법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아무리 형사처벌 필요성이 절박해도 적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나쁜 놈 잡는데 그깟 서류나 영장이 뭔 대수냐, 고문이라도 못 할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냥 야만 속에서 살겠다는 자백”이라고 꼬집었다. 

전 장관도
책임론 나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사건 조사팀에 소속됐다가 사퇴한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도 “김 전 차관의 출금 문제는 공무원의 역할인 ‘법치주의 실현’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정의실현을 위해 불가피한 업무처리였다는 건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반부패·강력부장인 이 지검장이 출국금지 과정이 절차적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동부지검에 정식 내사번호를 입력해 동부지검장 명의로 출국금지를 요청한 것으로 해달라는 취지로 연락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이 출입국본부를 방문해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박 전 장관이 출국금지 승인 요청을 받아들인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이종근

대검은 당초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배당됐던 이 사건을 수원지검 형사3부로 재배당했다. 소규모 지청에서 수사하던 사건이 상급기관으로 올라간 것이다. 재배당 조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검찰청 규모 등을 고려해 보다 충실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재배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양지청 지휘부가 수사를 뭉개고 있다는 일각의 의심에 대해 선을 그은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건을 두고 박 전 장관 등이 관여해 불법이 자행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 정부 들어 4명의 법무부 장관이 모두 무법부 장관이 되고 있다”며 “법치주의를 선도적으로 무시하는 문재인정부의 소위 ‘법무장관 시리즈’는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 “수사관행” 해명
법조인들 “말도 안 된다”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조직의 명운이라는 어명을 받아 든 법무부 내 친문(친 문재인)파들이 김학의 출국금지 쇼를 연출하고 실행에 옮겼고, 불법이 탄로 나자 은폐와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법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제라도 국민들께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특단의 지시를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당 대표나 원내대표의 언급 등 당 차원의 대응은 자제하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 등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라인으로 언급되는 검사들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법사위원 가운데서는 김용민 의원만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의원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회수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이 대놓고 봐준 김학의 사건이 재발견돼 김학의가 구속되자 검찰의 분풀이가 이를 조사한 사람들로 향하는 것 같다. 검찰 입장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돼버린 사람들이 김학의 사건의 실체를 밝혔고, 검찰의 부정을 폭로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변호사로서 과거사위 김학의 사건 주무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위 간사인 이용구 법무실장(현 법무부 차관)에게 연락이 와 출국금지 필요성이 있고, 조사단에서 과거사위에 출금을 요청하면 과거사위가 이를 권고하고 법무부가 출금을 검토하는 방안을 상의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야 “사과해”
여 침묵 중

자유연대와 공익지킴이센터 등 8개 시민단체는 지난 14일 박 전 장관과 김 의원 등 7명을 형법 허위 공문서 작성죄 및 동행사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의 공동정범으로 고발했다. 이들은 “피고발인 박상기, 이용구, 김용민, 이규원, 김태훈, 이성윤은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이며, 이들의 범죄행위를 보면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당시 법무부 감찰 과거사위 위원인 이용구와 김용민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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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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