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의 ‘정중동’ 행보가 심상찮다. 고요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바로 대권이다. <일요시사>는 ‘제3후보론’의 중심에서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정 총리의 노림수에 대해 취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여권 제3후보론의 중심에 있다. 제3후보론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언급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더욱 탄력받았다.
대선 구도
흔들흔들
이 대표의 사면론은 민주당을 뒤집어놨다. 사면 제안 이후 여권 지지자들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탄핵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용서할 마음도 용서할 준비도 돼있지 않다”고 지적했고, 안민석 의원은 “촛불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사면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낸 민주당 의원만 10명이 넘는다. 권리당원 중 일부는 이 대표의 ‘재신임’까지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이번 사태는 이 대표의 민주당 내 입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여권을 대표하는 대선주자임에도 사면론 한 번에 재신임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랐다. 사면론에 대한 반발은 특히 촛불민심으로 정권을 잡은 강성 친문(친 문재인)계에서 심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들의 반발에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것.
친문계 지지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이 대표의 약점이 노출된 순간이다.
사면론 이후 여권 내부에서는 제3후보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제3후보론 역시 친문계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낙연-친문’ 간 시한부 동거가 곧 종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친문계는 이 대표가 지난 8·29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부터 63.73%의 득표율을 얻었다.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인 권리당원의 상당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민주당에 입당한 친문 성향 유권자들이다. 이 대표가 친문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대표와의 동거는 친문계 입장에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다. 이 대표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친문적자’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받아 대권은 물론 정치 생명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동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 대표가 사면론이라는 친문계의 ‘역린’을 건드렸다. 여권은 뒤집어졌고 “사면은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며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이후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홍보활동 대부분 중단 이유?
‘장관 교체’ 내각 중심 잡아
친문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제3후보론은 이 대표 대안찾기의 성격이 짙다. 친문계 비공계 모임인 ‘부엉이 모임’이 해체되고 난 후 당시 회원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만든 ‘민주주의4.0’에서는 “언제든 새 인물과 손잡을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 인물로는 정세균 국무총리,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부겸 전 의원, 유시민 작가 등이 있다.
제3후보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사는 정 총리다. 정 총리의 정세균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범친노의 최대 계파로 불렸다. 이후에도 정세균계는 친노(친 노무현)와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연합해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세균계를 ‘호남 친노’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직계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정 총리의 정치적 뿌리가 호남이기 때문이다. 친노의 정신을 계승한 친문계 입장에서는 이 대표보다 정 총리와 정치적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4.0 회원인 홍영표 의원은 앞서 “현재는 두 분(이 대표, 이 지사)이 경쟁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가 온다면 제2, 제3, 제4의 후보들이 등장해서 경쟁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대권주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비전을 가진 분들’ 중 한 명으로 정 총리를 꼽았다.
문제는 정 총리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이다. 복수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정 총리의 지지율은 2%대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다. 10~20%대를 기록하는 이 대표의 지지율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다.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본다. 앞서 취임 300일 간담회에서 정 총리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시대정신’을 언급하며 대권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또 정 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단을 꾸리며 보폭을 조금씩 넓혔다. 각 분야 관련 연구단체 관계자와 대학 교수가 주축이다. 정 총리는 이들을 위촉하는 자리에서 “총리의 또 다른 눈과 귀, 입이 돼 총리와 국민 사이에 가교 역할을 잘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문위원단 등을 ‘차기 대선 캠프’라고 해석한다.
여의도
풍향계는?
정세균계도 정 총리와 보폭을 맞추는 모습이다. 정세균계가 주축인 ‘광화문 포럼’은 지난해 10월26일부터 서울 여의도에서 매월 공부 모임에 돌입한 상태다. 광화문 포럼은 50여명으로 규모를 확장했다.
대권 도전이 예상되는 정 총리는 이번 달 내 교체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등에 대한 하마평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정 총리는 ‘정중동’(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음)을 선택했다. 당분간은 총리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과 지지부진한 지지율이 그 이유로 꼽힌다.
정 총리는 최근 홍보활동을 대부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8일부터 매주 진행을 계획했던 정 총리의 정책 토크쇼 ‘총리식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초대를 끝으로 더 이상 방영되지 않고 있다.
정 총리는 여론조사에서 본인의 이름을 빼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대선주자라기보다는 총리”라고 전제한 정 총리는 “총리의 책무가 너무 막중한 상황에서 한눈을 팔면 안 되는 입장”이라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정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대권의 꿈을 접었다기보다 정국 상황을 지켜보기 위한 정무적 판단으로 읽힌다.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와 코로나19 백신 도입이 정 총리 대권 도전의 최대 분수령이다.
4월 보궐 선거는 ‘미니 대선’으로 불린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시 행정을 지휘하는 서울시장 당선인이 어느 진영에서 나오느냐는 여권이 정권 연장에 성공할지, 야권이 정권 심판을 이룰지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산은 대한민국 근현대 정치사의 중심에 있는 지역이다. 부산·경남 지역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 체제를 쓰러뜨린 도화선이었다. 이 같은 정신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바뀐 분위기
4월 분기점
1987년 5월 문 대통령이 변호사이던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부산 시민들에게 보여준 일화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광주MBC와의 인터뷰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을 꼽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광주의 진실을 알려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기는 데 함께한 ‘동지’였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최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어느덧 국민의힘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준 상태다. 보궐 선거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KBS부산과 부산MBC의 의뢰로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같은 달 4일 발표한 부산시장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민주당 후보군과의 1대 1 가상대결에서 모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리서치앤리서치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만약 서울·부산시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내주게 되면 ‘정권 심판론’이 서울·부산으로부터 시작돼 걷잡을 수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또 문 대통령에 대한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이는 정 총리의 대권가도에도 악영향이다.
정 총리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본부장으로서 코로나19 방역을 총지휘하고 있다. 방역의 성과가 정 총리의 대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총리의 책무가 너무 막중한 상황에서 한눈을 팔면 안 되는 입장”이라고 말한 점은 코로나19의 상황을 마무리 한 이후 대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심은 백신 도입이다. 백신 도입 후 코로나19 3차 대유행을 안정세로 전환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총리직을 사임하는 명분이 생길 수 있다.
정 총리의 사임 시기는 자연스레 해외 백신이 도입된 후로 전망된다. 문재인정부는 2021년 1분기부터 1000만명분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순차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문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제출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결과 등 심사 자료를 기반으로 허가·심사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2월 말 접종이 시작될 전망이다.
후임자 물색 난항에…
지지율 부진 정면돌파?
얀센(600만명분) 백신은 2분기에 도입되며, 모더나 백신 2000만명분 또한 2분기 공급이 예상된다. 문정부는 화이자 백신의 도입 시기를 3분기에서 2분기로 앞당기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 총리의 4월 사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이는 정치 일정을 고려한 분석이다. 여야가 4월 보궐선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정 총리가 이를 앞두고 사임할 경우 후임 총리 인선에 유권자들과 언론 매체의 관심이 집중될 수 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후임 총리의 비리 등이 터질 경우 민주당이 이번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등 새로운 장관이 입각한 상황에서 내각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 총리가 사임한다면 부처 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당장 정 총리를 이을 후임자도 보이지 않는 상태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으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복수의 언론은 추 장관이 ‘자진 사퇴’가 아닌 사실상 ‘경질’ 당했다는 법조계 안팎의 얘기를 보도했다.
추 장관은 지난 7일 법무부를 통해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경질설을 부인했다. 친문 일각에선 추 장관을 차기 대선주자로 세우자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김현미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4일 교체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으로 여론의 비판이 높았던 점이 교체 이유로 꼽힌다. 이에 경질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청와대 측은 당시 김 전 장관 경질설에 대해 “새로운 정책 변화에 대한 수요도 있기 때문에 변화된 환경에 맞춰 더 현장감 있는 정책을 펴나가기 위한 변화”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아파트를 ‘빵’에 비유하며 국민적 공분을 산 김 전 장관이 당장 후임 총리로 임명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성과 중심
전략 통하나?
과연 정 총리는 총리직을 무사히 마치고 차기 대권의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을 것인가. 6선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 국회의장을 거친 정 총리에게 남은 한 자리는 대권뿐이다.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 이후 정 총리가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등판할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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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서울시장 차출론 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유력 인사 차출론이 제기됐다. 주인공은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이는 인물난에서 비롯됐다. 7일을 기준으로 민주당 진영에서 출마선언을 한 인사는 우상호 의원이 유일하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출마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지만, 장담할 순 없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내각에서 물러난 이후 불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으로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야권에서는 10여명 안팎의 후보가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한 뒤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의 출마 선언에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까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도 예상된다.
중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후보가 민주당 진영에서 절실해졌지만, 실제 정 총리와 김 전 부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민주당 선거기획단 측은 김 전 부총리 출마와 관련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전했고, 정 총리 역시 이미 서울시장 불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