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조 비서실장’ 유영민 임명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1.01.04 10:10:02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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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막을 히든카드 꺼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정권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후임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일요시사>는 문 대통령이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을 선택한 이유를 추적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오는 8일 취임 2년을 맞을 예정이었다. 정치권은 이날을 전후로 노 전 실장의 교체를 예상한 바 있다. 앞서 노 전 실장 등 청와대 참모 6명은 사의를 표명했다.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책임을 지겠다는 것. 당시 노 전 실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여론 뭇매
결국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노 전 실장의 똘똘한 한 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쏟아졌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노 전 실장의 청주 집 처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으며, 김남국 의원도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노 전 실장을 향해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논란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정치권은 후임자 찾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임기를 채우는 쪽을 선택하는 문 대통령의 인사 철학도 노 전 실장의 유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비서실장 교체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 전 실장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12월28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 임기 끝날 때까지…
노영민 후임으로 임명

다만, 문 대통령에게 후임 비서실장에 대한 의견과, 후임이 정해지면 언제든 물러날 뜻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노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30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종호 민정수석 등과 함께 사표를 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덜어주고, 국정일신의 계기로 삼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의를 표했다”면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문 대통령이 백지 위에서 국정운영을 구상할 수 있도록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 청와대 ⓒ고성준 기자

정치권은 문 대통령이 신년연휴 동안 장고에 들어간 뒤 노 전 실장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8일은 노 전 실장이 취임 2년을 맞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는 통상적으로 2년의 임기를 채우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1월 중순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3기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낙점했다. 그동안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중 한 명이 후임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의 발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깜짝 인사’라는 평이다.

국정 운영
부담 더나?

유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2016년 1월15일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영입한 두 번째 기업인 출신이다. 첫 번째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이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광주 서을에 당선됐다.

유 비서실장은 민주당 입당 당시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다”며 “내가 살아온 환경과 인간관계 전반이 민주당과는 거리가 있고 당의 최근 모습 또한 많은 실망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간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좋은 희망을 갖게 됐다. 정치가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국가를 위해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유 비서실장은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 경영인으로 LG전자에 오래 몸담았다. LG CNS 부사장,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포스코ICT 사업총괄 사장,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 등이 주요 이력이다. ‘국내 CIO(최고정보책임자) 1세대’라는 독특한 이력도 보유하고 있다.
 

▲ ⓒ박성원 기자

유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친문 인사다. 민주당이 유 비서실장을 입당시킬 당시 문 대통령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문 대통령과 같이 부산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20대 총선에서 해운대갑에 출마했지만,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유 비서실장은 문재인정부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지난 2017년 7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유영민 당시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으로 여야가 공방을 펼친 바 있다. 야권은 보은 인사 논란과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배우자의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LG 출신
전문경영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이하 한국당)은 유 후보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와의 인연으로 장관 후보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LG전자 부하직원인)건호씨 결혼식에서 유 후보자를 만나 ‘우리 아들을 잘 봐달라’고 인사했다”며 “이후에(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 후보자 부부와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전자는 미래 대비에 실패한 기업이다. 문 대통령이 LG전자 상무 출신을 미래 한국의 책임자라고 내놓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유 후보가 LG전자에서 귀인을 만난 것 같다. 노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라고 쏘아붙였다.


배우자의 위장전입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우자가 경기도 양평군 농지 일대 주택를 소유하고 있는데 투기목적이 아니냐는 것. 유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 후보자는 각종 의혹에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특히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특혜채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살 만하고, 사과드린다”며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너무 저자세다. 의혹이 없는데 왜 사과까지 하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 비서실장은 지난 2019년 9월 장관 임기를 끝마치고 21대 총선에 출마했다. 이번에도 출마 지역은 해운대갑이었다. 하 의원과의 ‘리턴매치’였다. 하 의원은 개표 중반부터 큰 표 차로 유 비서실장을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두 번째 고배였다. 

문 대통령이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깜짝 발탁한 이유에 대해 정가에서는 소문이 무성하다. 첫 번째는 내년 4월에 열리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겨냥한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굳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매서워진 재계 민심 잡으려?

민주당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우려할만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과 <부산일보>의 의뢰로 지난해 12월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같은 달 28일 발표한 부산시장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야권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에 문 대통령에 이은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장 자리에 부산 인사를 앉혀 민주당 측 부산시장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 꾸준히 들렸다. 한때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서실장설이 정치권에서 나온 이유다. 이 전 수석 역시 부산 출신이다.

두 번째는 ‘재계 민심잡기’라는 해석이다. 기업가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장관 퇴임 이후 기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산업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으며, 지난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자유창의교육원 교수로 활동한 바 있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성준 기자

유 비서실장은 과학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청와대와 콘셉트가 일치한다는 점,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소통이 원만할 만큼 유연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문재인정권을 향한 재계 민심은 악화일로에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도 재계 민심이 나빠지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재계가 지난해 12월29일 국회를 찾아 중대재해법에 대한 염려와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경영책임자 처벌, 법인 벌금 부과,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4중 처벌’에 해당한다는 우려였다.

중대재해법
재계 부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1소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법사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을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4중 처벌 규정은 가혹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기업과 사업주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는 것보다 재해 예방 정책부터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이다. 

손 회장의 국회 방문은 사전 약속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재계가 중대재해법에 대한 정부안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식업계 역시 지난해 12월31일 “중대재해법에 영세 소상공인까지 범죄자로 내모는 독소조항이 포함돼있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소상공인이 가장 반발하는 조항은 ‘다중이용업소 처벌 조항’으로,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하는 사망·상해 사고에 대해서도 해당 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라고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이들은 중대재해법 정부안에 대해 정부가 재계 편들기에 나섰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 파트너인 국민의힘과의 대화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계 민심에 밝은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노영민 체제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 시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늦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8월 노 전 실장을 포함해 5명의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사표를 제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최고 책임자만 살아남은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진정되지 않았다.

유임 이후 약 5개월 동안 민심은 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더욱 심화되며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인 40%가 무너졌다.

결국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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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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