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조 비서실장’ 유영민 임명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1.01.04 10:10:02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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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막을 히든카드 꺼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정권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후임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일요시사>는 문 대통령이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을 선택한 이유를 추적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오는 8일 취임 2년을 맞을 예정이었다. 정치권은 이날을 전후로 노 전 실장의 교체를 예상한 바 있다. 앞서 노 전 실장 등 청와대 참모 6명은 사의를 표명했다.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책임을 지겠다는 것. 당시 노 전 실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여론 뭇매
결국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노 전 실장의 똘똘한 한 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쏟아졌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노 전 실장의 청주 집 처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으며, 김남국 의원도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노 전 실장을 향해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논란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정치권은 후임자 찾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임기를 채우는 쪽을 선택하는 문 대통령의 인사 철학도 노 전 실장의 유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비서실장 교체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 전 실장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12월28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 임기 끝날 때까지…
노영민 후임으로 임명

다만, 문 대통령에게 후임 비서실장에 대한 의견과, 후임이 정해지면 언제든 물러날 뜻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노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30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종호 민정수석 등과 함께 사표를 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덜어주고, 국정일신의 계기로 삼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의를 표했다”면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문 대통령이 백지 위에서 국정운영을 구상할 수 있도록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 청와대 ⓒ고성준 기자

정치권은 문 대통령이 신년연휴 동안 장고에 들어간 뒤 노 전 실장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8일은 노 전 실장이 취임 2년을 맞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는 통상적으로 2년의 임기를 채우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1월 중순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3기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낙점했다. 그동안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중 한 명이 후임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의 발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깜짝 인사’라는 평이다.

국정 운영
부담 더나?

유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2016년 1월15일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영입한 두 번째 기업인 출신이다. 첫 번째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이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광주 서을에 당선됐다.

유 비서실장은 민주당 입당 당시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다”며 “내가 살아온 환경과 인간관계 전반이 민주당과는 거리가 있고 당의 최근 모습 또한 많은 실망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간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좋은 희망을 갖게 됐다. 정치가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국가를 위해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유 비서실장은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 경영인으로 LG전자에 오래 몸담았다. LG CNS 부사장,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포스코ICT 사업총괄 사장,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 등이 주요 이력이다. ‘국내 CIO(최고정보책임자) 1세대’라는 독특한 이력도 보유하고 있다.
 

▲ ⓒ박성원 기자

유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친문 인사다. 민주당이 유 비서실장을 입당시킬 당시 문 대통령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문 대통령과 같이 부산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20대 총선에서 해운대갑에 출마했지만,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유 비서실장은 문재인정부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지난 2017년 7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유영민 당시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으로 여야가 공방을 펼친 바 있다. 야권은 보은 인사 논란과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배우자의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LG 출신
전문경영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이하 한국당)은 유 후보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와의 인연으로 장관 후보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LG전자 부하직원인)건호씨 결혼식에서 유 후보자를 만나 ‘우리 아들을 잘 봐달라’고 인사했다”며 “이후에(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 후보자 부부와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전자는 미래 대비에 실패한 기업이다. 문 대통령이 LG전자 상무 출신을 미래 한국의 책임자라고 내놓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유 후보가 LG전자에서 귀인을 만난 것 같다. 노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라고 쏘아붙였다.


배우자의 위장전입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우자가 경기도 양평군 농지 일대 주택를 소유하고 있는데 투기목적이 아니냐는 것. 유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 후보자는 각종 의혹에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특히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특혜채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살 만하고, 사과드린다”며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너무 저자세다. 의혹이 없는데 왜 사과까지 하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 비서실장은 지난 2019년 9월 장관 임기를 끝마치고 21대 총선에 출마했다. 이번에도 출마 지역은 해운대갑이었다. 하 의원과의 ‘리턴매치’였다. 하 의원은 개표 중반부터 큰 표 차로 유 비서실장을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두 번째 고배였다. 

문 대통령이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깜짝 발탁한 이유에 대해 정가에서는 소문이 무성하다. 첫 번째는 내년 4월에 열리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겨냥한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굳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매서워진 재계 민심 잡으려?

민주당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우려할만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과 <부산일보>의 의뢰로 지난해 12월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같은 달 28일 발표한 부산시장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야권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에 문 대통령에 이은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장 자리에 부산 인사를 앉혀 민주당 측 부산시장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 꾸준히 들렸다. 한때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서실장설이 정치권에서 나온 이유다. 이 전 수석 역시 부산 출신이다.

두 번째는 ‘재계 민심잡기’라는 해석이다. 기업가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장관 퇴임 이후 기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산업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으며, 지난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자유창의교육원 교수로 활동한 바 있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성준 기자

유 비서실장은 과학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청와대와 콘셉트가 일치한다는 점,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소통이 원만할 만큼 유연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문재인정권을 향한 재계 민심은 악화일로에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도 재계 민심이 나빠지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재계가 지난해 12월29일 국회를 찾아 중대재해법에 대한 염려와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경영책임자 처벌, 법인 벌금 부과,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4중 처벌’에 해당한다는 우려였다.

중대재해법
재계 부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1소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법사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을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4중 처벌 규정은 가혹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기업과 사업주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는 것보다 재해 예방 정책부터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이다. 

손 회장의 국회 방문은 사전 약속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재계가 중대재해법에 대한 정부안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식업계 역시 지난해 12월31일 “중대재해법에 영세 소상공인까지 범죄자로 내모는 독소조항이 포함돼있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소상공인이 가장 반발하는 조항은 ‘다중이용업소 처벌 조항’으로,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하는 사망·상해 사고에 대해서도 해당 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라고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이들은 중대재해법 정부안에 대해 정부가 재계 편들기에 나섰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 파트너인 국민의힘과의 대화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계 민심에 밝은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노영민 체제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 시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늦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8월 노 전 실장을 포함해 5명의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사표를 제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최고 책임자만 살아남은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진정되지 않았다.

유임 이후 약 5개월 동안 민심은 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더욱 심화되며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인 40%가 무너졌다.

결국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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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