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조 비서실장’ 유영민 임명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1.01.04 10:10:02
  • 호수 1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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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막을 히든카드 꺼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뒤를 이어 문재인정권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후임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일요시사>는 문 대통령이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을 선택한 이유를 추적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오는 8일 취임 2년을 맞을 예정이었다. 정치권은 이날을 전후로 노 전 실장의 교체를 예상한 바 있다. 앞서 노 전 실장 등 청와대 참모 6명은 사의를 표명했다.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책임을 지겠다는 것. 당시 노 전 실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여론 뭇매
결국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노 전 실장의 똘똘한 한 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쏟아졌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노 전 실장의 청주 집 처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비판받을 소지가 여럿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으며, 김남국 의원도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부동산 민심을 악화시킨 노 전 실장을 향해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논란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정치권은 후임자 찾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임기를 채우는 쪽을 선택하는 문 대통령의 인사 철학도 노 전 실장의 유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비서실장 교체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 전 실장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태의 책임을 지고 지난해 12월28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하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문 임기 끝날 때까지…
노영민 후임으로 임명

다만, 문 대통령에게 후임 비서실장에 대한 의견과, 후임이 정해지면 언제든 물러날 뜻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노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30일 다시 한 번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김종호 민정수석 등과 함께 사표를 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덜어주고, 국정일신의 계기로 삼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의를 표했다”면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문 대통령이 백지 위에서 국정운영을 구상할 수 있도록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 청와대 ⓒ고성준 기자

정치권은 문 대통령이 신년연휴 동안 장고에 들어간 뒤 노 전 실장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8일은 노 전 실장이 취임 2년을 맞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는 통상적으로 2년의 임기를 채우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1월 중순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3기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낙점했다. 그동안 민주당 내부에서는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중 한 명이 후임으로 발탁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유영민 신임 비서실장의 발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깜짝 인사’라는 평이다.

국정 운영
부담 더나?

유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2016년 1월15일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영입한 두 번째 기업인 출신이다. 첫 번째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이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광주 서을에 당선됐다.

유 비서실장은 민주당 입당 당시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다”며 “내가 살아온 환경과 인간관계 전반이 민주당과는 거리가 있고 당의 최근 모습 또한 많은 실망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당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간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좋은 희망을 갖게 됐다. 정치가 건강해질 수 있는 일이라면 국가를 위해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유 비서실장은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 경영인으로 LG전자에 오래 몸담았다. LG CNS 부사장,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 포스코ICT 사업총괄 사장,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 등이 주요 이력이다. ‘국내 CIO(최고정보책임자) 1세대’라는 독특한 이력도 보유하고 있다.
 

▲ ⓒ박성원 기자

유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친문 인사다. 민주당이 유 비서실장을 입당시킬 당시 문 대통령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문 대통령과 같이 부산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20대 총선에서 해운대갑에 출마했지만,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유 비서실장은 문재인정부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지난 2017년 7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유영민 당시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으로 여야가 공방을 펼친 바 있다. 야권은 보은 인사 논란과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배우자의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했다.

LG 출신
전문경영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이하 한국당)은 유 후보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인 건호씨와의 인연으로 장관 후보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청문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LG전자 부하직원인)건호씨 결혼식에서 유 후보자를 만나 ‘우리 아들을 잘 봐달라’고 인사했다”며 “이후에(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 후보자 부부와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전자는 미래 대비에 실패한 기업이다. 문 대통령이 LG전자 상무 출신을 미래 한국의 책임자라고 내놓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유 후보가 LG전자에서 귀인을 만난 것 같다. 노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올 수 있었겠나”라고 쏘아붙였다.


배우자의 위장전입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배우자가 경기도 양평군 농지 일대 주택를 소유하고 있는데 투기목적이 아니냐는 것. 유 후보자는 “위장전입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 후보자는 각종 의혹에 낮은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특히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특혜채용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살 만하고, 사과드린다”며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너무 저자세다. 의혹이 없는데 왜 사과까지 하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 비서실장은 지난 2019년 9월 장관 임기를 끝마치고 21대 총선에 출마했다. 이번에도 출마 지역은 해운대갑이었다. 하 의원과의 ‘리턴매치’였다. 하 의원은 개표 중반부터 큰 표 차로 유 비서실장을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두 번째 고배였다. 

문 대통령이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깜짝 발탁한 이유에 대해 정가에서는 소문이 무성하다. 첫 번째는 내년 4월에 열리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겨냥한 인사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굳이 그를 선택한 이유는?
매서워진 재계 민심 잡으려?

민주당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시장을 국민의힘에 내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우려할만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과 <부산일보>의 의뢰로 지난해 12월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같은 달 28일 발표한 부산시장 적합도 조사에 따르면, 야권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에 문 대통령에 이은 청와대 2인자인 비서실장 자리에 부산 인사를 앉혀 민주당 측 부산시장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 꾸준히 들렸다. 한때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서실장설이 정치권에서 나온 이유다. 이 전 수석 역시 부산 출신이다.

두 번째는 ‘재계 민심잡기’라는 해석이다. 기업가 출신인 유 비서실장은 장관 퇴임 이후 기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산업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으며, 지난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자유창의교육원 교수로 활동한 바 있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성준 기자

유 비서실장은 과학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청와대와 콘셉트가 일치한다는 점,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소통이 원만할 만큼 유연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문재인정권을 향한 재계 민심은 악화일로에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도 재계 민심이 나빠지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재계가 지난해 12월29일 국회를 찾아 중대재해법에 대한 염려와 애로사항을 호소했다. 경영책임자 처벌, 법인 벌금 부과,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4중 처벌’에 해당한다는 우려였다.

중대재해법
재계 부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1소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법사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을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4중 처벌 규정은 가혹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 기업과 사업주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는 것보다 재해 예방 정책부터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의견이다. 

손 회장의 국회 방문은 사전 약속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재계가 중대재해법에 대한 정부안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식업계 역시 지난해 12월31일 “중대재해법에 영세 소상공인까지 범죄자로 내모는 독소조항이 포함돼있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소상공인이 가장 반발하는 조항은 ‘다중이용업소 처벌 조항’으로,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하는 사망·상해 사고에 대해서도 해당 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라고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의당은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과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이들은 중대재해법 정부안에 대해 정부가 재계 편들기에 나섰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협상 파트너인 국민의힘과의 대화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계 민심에 밝은 유 비서실장을 노 전 실장의 후임으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노영민 체제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 시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늦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8월 노 전 실장을 포함해 5명의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사표를 제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실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최고 책임자만 살아남은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은 진정되지 않았다.

유임 이후 약 5개월 동안 민심은 바닥을 향해 나아갔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더욱 심화되며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인 40%가 무너졌다.

결국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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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